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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280화 (280/373)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부 26화

김희연은 뚱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이미 그분 인생이 너무 암울해서 그런 거 아니에요?”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그렇게 말하는 선배 표정이 너무 편해 보이더라.”

“어떻게 그래요?”

“글쎄, 본인 인생을 음미하는 느낌? 그냥 하루하루 충실하고, 살아 숨 쉬는 걸 즐기는 사람처럼 보였어.”

“숨…… 쉬는 걸 즐겨요?”

“최근 들어서 그게 무슨 말인지 조금은 알 것 같더라고.”

김희연은 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어서 대답하라는 듯이, 눈에서 레이저가 나오는 것처럼 보였다.

이에 싱겁게 웃으며 얘기했다.

“사람들이 그러잖아? 죽으면 편해진다고.”

“농담 식으로 그런 얘기 많이 하죠.”

“정작 죽는 게 제일 어려운데 말이야.”

“…….”

“지금도 봐. 좀비한테 물리면 편해질 텐데, 우린 아등바등 살아남고 있잖아.”

김희연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입술을 앙다문 채 고개 숙이기에, 어깨를 토닥이며 얘기했다.

“사는 게 힘들다지만, 죽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잖아?”

“그것도 그렇죠.”

“그러니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면 돼. 더 깊게 파고들 필요 없어.”

“…….”

“멈추지만 않으면, 이 지긋지긋한 게임도 클리어할 수 있을 거야. 아니, 할 거야.”

김희연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일 뿐, 더는 질문을 잇지 않았다.

조금은 편해진 모양이다.

이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감정적으로 힘들 때는 언제든 얘기해. 여기서 네 얘기 안 들어줄 사람은 없으니까.”

“……네.”

김희연의 어깨를 토닥이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얘기했다.

“슬슬 배고픈데, 다들 깨우고 아침부터 먹을까?”

김희연은 배시시 웃으며 설여원과 윤혜리, 오혜선을 깨우러 갔다.

난 남자들을 깨우고, 서둘러 아침상을 차렸다.

* * *

간단한 샌드위치로 아침을 해결한 뒤, 무기를 점검하고 이동할 채비에 나섰다.

이정우는 보호대를 착용하며 지도를 살피는 모습을 보였다.

뒤이어 내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다.

“재형아, 이거 지도에 표시 네가 한 거야?”

“네, 아침에 이것저것 생각하면서 적어봤어요.”

볼펜으로 이동 루트를 표시하고, 각 위치별로 발생할 수 있는 변수를 정리했다.

이정우는 루트를 살피며 물었다.

“스타필드 확인한 뒤에 여원이 본가…… 여기서 어떻게 움직인다는 거야? 조정경기장에 적힌 표시는 또 뭐고.”

“주변에 좀비가 없을 경우 지하철로 이동하고, 뚫고 들어가기 어려우면 조정경기장 뒤편의 한강공원으로 이동할 거예요.”

“한강 따라서 이동한다는 거야?”

“많이 돌아가는 길이지만, 그게 제일 안전하죠. 만약 배를 구할 수 있으면 더 좋고요.”

이정우는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모양이다.

“준비 끝났어. 이동하면 돼.”

곧 전완수와 최현이 다가오며 얘기했다.

다들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는 것으로 보였다.

오직 한 명, 설여원만 긴장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오늘이면 부모님의 생사를 알 수 있기에, 다소 긴장한 모양이다.

이에 설여원을 쳐다보자, 그녀는 애써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구구절절 설명해 봐야 불필요한 오지랖만 되기에, 덩달아 고개를 끄덕이며 모두에게 얘기했다.

“출발하죠.”

* * *

하남IC 방면에 세워둔 살수차를 통째로 인벤토리에 넣었다.

혹시나 해서 실험해 봤는데, 코인만 투자하면 보관할 수 있었다.

“한 대에 5,000코인이나 필요한데?”

“앞으로 자주 쓰일 거야. 식물은 계속 나올 테니까.”

누가 챙기는 게 좋을지 상의한 끝에, 설여원과 전완수의 인벤토리에 한 대씩 넣었다.

거대한 살수차가 직사각형 형태의 아공간에 들어가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살수차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기에, 일행에게 잠시만 기다리라고 한 뒤 하남 소방서로 향했다.

독 안개 제거기가 필요하기에, 전완수를 데리고 이동했다.

어젯밤 부화장을 처리할 때 사용한 살수차가 그대로 있었다.

“재형이 네가 챙길 거야?”

“나도 챙겨야지.”

이번 살수차는 내 인벤토리에 넣었다.

일행은 살수차 한 대에 5,000코인을 소모했지만, 난 4,000포인트로 가능했다.

어시스트 포인트로 지금껏 손해 본 것을 드디어 챙겨주는 건가?

“재형아, 변종이랑 좀비들 시체 저렇게 방치하고 이동해도 돼?”

옆에 있던 전완수가 묻기에,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이제 정리할 필요 없어.”

“왜?”

“변종이 진화하라면 감염된 식물이 꾸준히 영양분을 공급해야 돼. 이미 죽은 변종이랑 좀비는 영양분 공급이 안 되거든.”

“3단계랑 4단계, 둘 다?”

“응, 어떤 기준으로 3단계와 4단계가 구분되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죽은 변종은 진화시키지 못해.”

“1단계 변종이 2단계로 진화할 수도 있…… 아, 이제 시스템상 불가능한가?”

“어, 세 번째 에피소드부터 모든 변종이 2단계부터 시작하니, 이제 시체들 하나하나 찾아다니면서 태울 필요 없어.”

“시체를 섭취해 봐야 시체 먹기 효과 말고는 없는 거지?”

“그렇지.”

전완수는 아랫입술을 삐죽 내밀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살수차를 확보하고 하남IC 앞에 있는 일행에게 돌아갔다.

대열 중앙에 오혜선과 한민욱을 배치하고, 다 같이 북쪽 농원으로 이동했다.

실개천을 건너서 200m 정도 나아갔을까?

앞서가던 설여원이 오른손을 들며 정지신호를 보냈다.

다들 걸음을 멈추자, 설여원은 어딘가를 가리키며 얘기했다.

“저쪽, 비닐하우스 옆에 감염된 식물.”

“몇 마…… 아니지, 식물 범위는?”

설여원은 좌우를 살피더니, 눈썹을 긁적이며 얘기했다.

“정확한 범위는 파악할 수 없어. 좌우 길이는 120m 정도로 보이는데,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모르겠어.”

“거대 식물은 없어?”

“아직 안 보여.”

“보라색으로 보이는 부분 있으면 바로 얘기해. 하남에 감염된 식물이 많은 거로 봐서는, 근처에 거대 식물 있을 거야.”

설여원은 알겠다는 대답과 함께 인벤토리에서 호스를 꺼냈다.

그 모습을 보고 놀란 눈으로 쳐다보자, 설여원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왜 그렇게 쳐다봐?”

“살수차를 완전히 꺼낼 필요 없이, 그렇게 해도 물줄기가 나가?”

“나도 몰라. 실험해 보려고.”

만약 저 방법이 가능하다면…… 대박인데?

“온다.”

설여원은 전방을 응시하며 얘기했다.

식물들은 수백 미터 밖에서도 땅의 울림을 감지하기에, 우리가 아무리 엄폐해도 소용없었다.

전완수는 설여원을 따라 인벤토리에서 호스를 꺼내더니, 정면으로 달려나갔다.

쏴아아아아아아-!!

물대포를 쏘며 나아가는 설여원과 전완수.

이게 되네?

놀랄 새도 없이, 황급히 카타나를 쥐고 감염된 식물들을 처리했다.

“오혜선 씨랑 한민욱 씨 챙겨!”

이정우의 외침에, 황덕록과 박재우는 두 사람이 뒤처지지 않도록 속도를 조절했다.

축축하게 젖은 지면을 박차며 쏜살같이 뚫고 들어갔다.

감염된 식물들은 움직임이 느리고 물에 젖으면 힘을 쓰지 못하기에, 손쉽게 카운트를 높일 수 있었다.

대략 250m 정도 나아갔을까?

감염된 식물들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가드레일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농원이 끝나고 도로에 인접한 모양이다.

뒤를 돌아보자, 좌우 120m 범위로 퍼져 있던 식물들이 이곳으로 집중되는 모습을 보였다.

“커헉! 헉! 허억!”

오혜선과 한민욱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 자리에 쓰러졌다.

박재우와 황덕록이 두 사람을 뒤로 끌고 가는 걸 확인한 뒤, 설여원을 쳐다보며 물었다.

“식물들 전부 이쪽으로 오고 있어?”

“어, 도심으로 나가는 식물은 없어.”

“좋아, 여기서 전부 처리하고 가자.”

농원에 있는 식물이 도심으로 올라가면 부화장을 만들지도 모르기에, 전부 처리하고 이동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설여원과 전완수가 물을 뿌리고, 내가 카운트를 독점하는 식으로 처리했다.

가드레일에 등을 기댄 채 거친 숨을 고르던 오혜선은 퍼석한 입술을 핥으며 물었다.

“여러, 콜록! 여러분은 숨도 안 차요?”

오혜선이 묻자, 이정우는 싱겁게 웃으며 얘기했다.

“이 정도로 지치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시드볼트에 그냥, 있을 걸, 그랬나?”

오혜선이 허탈하게 웃으며 묻자, 이정우는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였다.

한민욱은 말할 기운도 없는지,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양손으로 심장을 쓸어내렸다.

결인들과 일반인의 체력은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크르르르르…….

뒤이어 결인들의 뒤로 좀비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김희연은 후방을 살피며 얘기했다.

“스타필드 주차장 방면에 다수의 좀비요.”

“식물은 재형이한테 맡기고, 뒤는 우리가 처리하자.”

이정우는 창과 방패를 손에 쥐며 가드레일을 넘어갔다.

* * *

모든 식물을 처리하고, 카타나에 묻은 끈끈한 액체를 털어내며 일행의 곁으로 돌아왔다.

“얼마나 올렸어?”

정진영이 묻기에, 홀로그램을 살피며 대답했다.

“대략 7,000카운트 올린 것…… 어?”

많아 봐야 6,000일 텐데, 왜 7,000카운트나 올라간 거지?

의아한 표정을 짓자, 정진영은 싱겁게 웃으며 얘기했다.

“식물 정리할 동안 도로 위에 있는 좀비들은 우리가 정리했어.”

가드레일 너머를 살피자, 스타필드 주차장 입구까지 늘어진 시체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언제 이렇게 많은 좀비를 죽인 거지?

혹여나 우리의 위치를 파악한 변종이 있을지도 모르기에, 시체들을 살피며 읊조렸다.

“감지.”

-3분 동안 500m 내의 좀비와 변종의 움직임을 감지합니다.

-움직임이 포착된 적은 감지의 지속 시간이 끝나도 10초간 위치를 추적할 수 있습니다.

-감지의 재사용 대기 시간은 10분입니다.

*5성 이상의 대장 좀비, 혹은 변종은 자주색으로 표시됩니다.

다행히 이곳으로 접근하는 변종은 없었다.

이정우와 정진영이 변종에게 들키지 않도록 신경 쓰며 처리한 모양이다.

그러다 문득, 스타필드 내부에 있는 자주색 존재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50, 60, 70, 80…… 대체 몇 마리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스타필드를 살피자, 옆에 있던 전완수가 물었다.

“왜 그래. 무슨 문제 있어?”

“저기 생존자 없어.”

“응?”

“스타필드에 생존자 없다고.”

모두의 시선이 설여원에게 쏠렸다.

설여원은 마른침을 삼키더니,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확실해? 좀비들 숫자는.”

“좀비는 없고 변종만 득실거려.”

“몇 마리나 되는데, 알파야?”

“델타.”

푸웁!!

갑자기 뺨을 적시는 물줄기에, 옷소매로 얼굴을 닦으며 고개를 돌렸다.

“아, 죄송해요. 놀라서.”

델타라는 말에 놀랐는지, 물을 마시던 윤혜리는 내 얼굴에 뿜었다.

설여원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델타 숫자는 얼마나 되는데.”

“내가 확인한 건 82마리. 감지의 범위가 500m라서 더 있을지도 몰라.”

“그건 아닐 거야. 스타필드 끝에서 끝까지의 거리가 500m 안 돼.”

“그래?”

“스타필드랑 백화점 합쳐도 대략 450m 정도?”

“그럼 82마리가 전부라는 거네.”

“전부 2단계야?”

“웅크리고 있어서 모르겠어.”

델타 변종은 어둡고 비좁은 곳을 좋아한다.

지금껏 델타를 만나지 못한 것도, 우리가 아파트 단지 외부만 정리해서 그럴 가능성이 크다.

설여원은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델타는 얼굴에 입만 존재한다고 그랬지? 그럼 청각이랑 후각도 없는 거야?”

“어, 그런데 빛이랑 열은 감지할 수 있어.”

“빛이랑 열?”

“빛을 비추거나 근처에 열이 감지되면 움직여.”

“눈이 없는데 빛을 어떻게 알아?”

“우리도 눈 감으면 앞은 안 보이지만, 손전등 비추면 빛이 날아든다는 건 알잖아.”

“아.”

설여원은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을 지켜보던 이정우는 내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다.

“들어가려고?”

“들어가야죠. 그래야 단서든 뭐든 찾죠.”

“이미 생존자가 없는데, 굳이 들어갈 필요가 있을까?”

“터미널에 일지를 남긴 사람이 스타필드로 갔어요. 누구든 흔적을 남겼을 겁니다.”

이정우는 한숨을 내쉬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두려워서가 아니라, 뒤에 있는 오혜선과 한민욱 때문이었다.

이를 파악하고, 엷은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수비팀은 여기서 기다려줘요. 수색대만 들어갈게요.”

“괜찮겠어?”

“우르르 들어가면 열 감지에 발각되기 쉬워요. 소수로 움직이는 게 안전합니다.”

덤덤하게 얘기하자, 그제야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뒤이어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김희연이 입을 열었다.

“그럼 저희는 저쪽, 비닐하우스에 있을게요.”

안개 때문에 정확한 위치는 모르겠지만, 북동쪽 방향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 한강과 가까운 방향이었다.

이에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움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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