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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279화 (279/373)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부 25화

“조정경기장?”

이정우가 묻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여기서 북쪽으로 올라가면 농원이 나오고, 그 위에 한강 공원이 있어요. 공원이 조정경기장까지 이어집니다.”

“전부 공원이니까, 좀비들의 숫자도 적을 거라는 말이지?”

“네, 감염된 식물이 걱정되지만, 4단계 변종을 만나는 것보단 안전하겠죠.”

그러자 옆에 있던 오혜선이 입을 열었다.

“한강공원으로 이동한다면 가는 길에 스타필드도 확인하는 게 어때요?”

“식량이라면 충분합니다.”

“아니요, 다들 이것 좀 보세요.”

오혜선은 주머니에 넣어둔 공책을 꺼냈다.

낡고 찢어진 공책.

설마 하는 마음에 오혜선을 쳐다보며 물었다.

“일기장이에요?”

“아니요, 일기장보다는 일지에 가까워요.”

“일지요?”

“지도 찾을 때 터미널 2층에서 찾았어요. 그리고 1층에 들어오면서 못 봤어요?”

“어떤 거요?”

“화살표 있는 거.”

화살표?

전혀 못 봤다.

좀비의 위협이 있다면 경계하며 들어왔겠지만, 이미 수비팀이 정리해 둔 장소라서 지친 몸을 이끌고 들어왔을 뿐이다.

뒤이어 오혜선의 옆에 있던 한민욱이 입을 열었다.

“화살표가 가리키는 장소가 스타필드였고, 화살표 옆에 글자가 적혀 있었습니다.”

“무슨 글자요.”

“생존자는 스타필드로 오라고 적혀 있었어요.”

너무 의심스러운데?

스타필드를 쉘터로 사용한다는 말인데…… 무슨 자신감으로 동네방네 소문내는 거지?

의구심에 가만히 턱을 매만지자, 옆에 있던 이정우가 입을 열었다.

“일단 일지부터 확인하자.”

“아, 네.”

오혜선이 건네주는 일지를 펼치자, 날짜와 함께 그날의 사건 사고가 기재되어 있었다.

[6월 14일]

-안개가 퍼진 지 3일째.

-첫날보다 조용함. 하지만 밤만 되면 비명이 들리는 것으로 보아,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이 다수라 생각됨.

-군부대 움직임X.

-식량 이틀 치 남음.

-식량 확보 시급.

[6월 18일]

-양손 조경 가위 획득. 쓸 만함.

-아침에 30대 여자 두 명 도착. 저녁에 노부부와 40대 남자 도착.

-남은 식량 4일 치.

[6월 24일]

-현재 생존자 8인.

(노부부, 중년 부부, 30대 여자 둘, 40대 남자, 그리고 나)

-남은 식량 3일 치.

(40대 남자가 식탐이 많다)

-무기 확보가 시급하다.

대부분 이런 식으로 적혀 있었다.

일지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

이건 낙서장이라고 부르는 게 옳지 않을까?

글씨도 삐뚤빼뚤한 것으로 보아, 중학생이 쓴 것으로 보였다.

[6월 27일]

-현재 생존자 6인.

(식량 챙기는 과정에 노부부 사망)

-터미널에 덫 설치 필요.

(좀비들이 자꾸 올라온다.)

[6월 30일]

-30대 여자 둘 사망. 40대 남자 좀비에게 물림.

(매표소에 포박 후 경과 지켜보는 중.)

-남은 식량 7일 치.

-어젯밤 스타필드 방면에서 불빛 감지.

[7월 2일]

-스타필드에서 구조대가 왔음.

-중년 부부는 의심스럽다고 했지만 내가 보기엔 아님.

-내일 함께 이동하기로 했음.

일지에 적힌 내용은 여기까지였다.

안개가 퍼진 초기 상황을 적어놨는데, 실없는 내용만 잔뜩 적혀 있었다.

그나마 쓸 만한 내용이라면 스타필드에서 구조대가 왔다는 것 정도.

1층에 있는 화살표도 그렇고, 이 낙서장에도 그렇고, 스타필드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자 맞은편에 있던 황덕록이 입을 열었다.

“7월 2일 이후로 내용이 없다는 건, 여기 있던 사람들 전부 스타필드로 갔다는 거 아니야?”

“나도 그렇게 생각해.”

“우리가 오늘 정리한 반경에 스타필드도 있잖아. 그럼 생존자 없다는 거네.”

“스타필드 내부 상황은 모르지. 그리고 스타필드 근처는 확인 안 했어. 아파트만 정리했지.”

“아…….”

“생존자가 있다면 좀비들 울음소리 듣고 더 꼭꼭 숨었을 거야. 생존자가 없다면 오늘 우리가 정리한 좀비들 사이에 스타필드 좀비들도 있었을 거고.”

황덕록은 입맛을 다시며 머리를 긁적였다.

이정우를 쳐다보자, 그는 팔짱을 끼며 얘기했다.

“어떻게, 확인하러 가?”

“확인해서 나쁠 건 없어요. 단서를 찾을 수도 있고요.”

“무슨 단서?”

“만약 스타필드에서 왔다는 구조대가 하남 전체를 활동반경으로 했다면, 여원이 부모님도 스타필드로 이동했을 가능성이 있잖아요.”

“…….”

“생존자가 있든 없든, 흔적이 있을 거예요. 생존자들이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면 이동했다는 흔적이라도 남겼을 겁니다.”

“흔적을 안 남겼을 가능성도 있잖아.”

“터미널 1층에 스타필드로 오라는 화살표랑 글자를 적어둔 사람이에요. 스타필드를 버리고 이동했다면 비슷한 흔적을 남겼을 겁니다.”

그러자 동그랗게 둘러앉아 있던 일행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뒤이어 라면 국물을 마시고 있던 정진영이 입을 열었다.

“야, 혹시 구조대라는 사람들 플레이어 아닐까?”

“플레이어요?”

“아파트가 이렇게 많은데 플레이어 한 명이 없겠어? 그리고 아파트가 많다는 건 좀비도 엄청 많았다는 건데, 플레이어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바깥 활동을 해.”

“…….”

“우리가 오늘 정리한 좀비만 봐도 그래. 거의 5개월간 여기 있는 좀비들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다는 건데, 가브리엘 없이 어떻게 좀비들을 피해서 이동해?”

일리 있는 말이다.

이마를 긁적이자, 이번엔 박재우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이상한데요?”

“뭐가?”

정진영이 묻자, 박재우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플레이어면 쉘터를 만들 필요가 없잖아요.”

“그게 무슨 말이야? 쉘터를 만들 필요가 없다니.”

“시작부터 아크의 위치를 알려줬는데, 굳이 스타필드에 쉘터를 만들 이유가 없잖아요. 저라면 퀘스트 받자마자 서울로 갈 것 같은데.”

“…….”

정진영은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았다.

난 정진영과 박재우의 말을 곱씹으며 생각했다.

박재우의 의견도 일리 있지만, 한 가지 허점이 존재했다.

이에 박재우를 쳐다보며 얘기했다.

“서울로 들어가는 걸 시기상조라 생각했을지도 모르지.”

“왜?”

“일지의 내용은 안개가 퍼진 초기야. 첫 번째 에피소드가 진행 중인 상황이지.”

“그래서.”

“첫 번째 에피소드는 안전가옥이야. 쉘터를 만들고, 거기서 좀비카를 제작해서 탈출해야 돼.”

“…….”

“플레이어 숫자가 부족했을지도 모르고, 메인 퀘스트를 완료하지 않은 상태라서 서울 진입이 어려웠을지도 몰라.”

“음…… 듣고 보니 그렇네.”

박재우는 금세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모든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정우는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얘기했다.

“그럼 스타필드부터 확인한 뒤에 여원이 본가로 이동하자. 반대하는 사람 있어?”

당연히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정우는 손뼉을 치며 말을 이었다.

“지금은 너무 늦었으니 일찍 자고, 내일 아침 일찍 움직이자.”

“넵!”

다들 힘차게 대답하며 다 먹은 밥그릇을 치웠다.

* * *

여명이 밝지 않은 이른 새벽, 일찍이 라꾸라꾸에서 일어나 텐트 밖으로 나왔다.

“일어났어요?”

창가에서 들리는 여자의 목소리.

부스스한 머리를 넘기며 창가를 쳐다보자, 김희연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거기서 뭐 해? 안 잤어?”

“잤어요. 3시간 정도.”

“더 자. 피곤해서 어떻게 움직이려고 그래.”

김희연은 대답 대신 엷은 미소를 지었다.

창가로 걸어가 바깥 상황을 살피자, 2층까지 올라왔던 안개가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보아하니 밤새도록 여기서 보초를 선 것 같은데, 어제 일이 마음에 걸리는 건가?

“너 미워하는 사람 없어. 신경 쓰지 마.”

“네? 아…….”

본인이 특혜를 받았다고 생각해서, 보초도 자처하고 있었다.

김희연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자, 그녀는 쓴웃음을 지으며 얘기했다.

“다들 변종이랑 싸우는데, 저만 옥상에서 편하게 있었던 건 사실이니까요.”

“독 안개 제거기를 지켜야 하는 것도 사실이지.”

“…….”

“그리고 마냥 논 것도 아니잖아? 쇠뇌로 감마 변종 처리하고, 계속 엄호 사격했을 것 아냐.”

“그건 그렇죠.”

“그러니 마음 쓰지 마. 넌 할 일 다 했어.”

김희연은 씁쓸한 표정을 짓더니, 곧 풀이 죽은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냥 좀…… 혜리랑 재우 오빠, 덕록 오빠, 정우 오빠 싸우는 것 보고 미안하더라고요. 다들 고통스러워하는데, 도와주러 나갈 수가 없어서…….”

자꾸만 동굴로 들어가기에, 김희연의 머리에 꿀밤을 날렸다.

“아!”

엄청 약하게 쳤는데, 김희연은 이마를 문지르며 금세 울상을 지었다.

“생각하지 마.”

“네?”

“긍정적인 것만 생각해. 왜 도움도 안 되는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

“그럴 시간에 다음엔 어떻게 싸우는 게 좋을지 생각해.”

대수롭지 않게 얘기하자, 김희연은 뚱한 표정을 지을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에 눈치를 보며 물었다.

“물 마실래?”

“……네.”

김희연에게 물병을 건네주고, 옆자리에 앉아 플레이어 정보를 확인했다.

[플레이어 정보]

-캐릭터 이름: 에덤 화이트

-능력: 강화

-한계 돌파 7단계

*세 번째 에피소드 클리어 시 한계가 해금됩니다.

-현재 처리한 좀비의 수: 152420/100000

-남은 포인트: 4607

-스킬: 좀비화, 급가속 Lv.MAX, 감지 Lv.MAX, 하울링 Lv.MAX, 광폭화 Lv.MAX

-패시브 스킬: 재생, 광란(5/10)

-특수 스킬: 연격, 난동

-보유 중인 칭호: 4

-보유 중인 성물: 3

152,420카운트?

생각보다 좀비 카운트를 많이 모았다.

좀비는 대략 4만에서 5만 마리가량 죽인 것 같은데, 변종과 식물로 10만 카운트를 올린 격이다.

하긴, 어제 처리한 3단계 변종과 알집만 합쳐도 8만 카운트는 거뜬히 넘을 것이다.

카운트를 환전하고, 머릿속으로 오늘 일정을 생각했다.

스타필드부터 확인하고, 설여원의 본가로 이동.

깔끔한 일정이지만 언제나 변수는 준비해야 한다.

이에 하남 전도를 바닥에 펼치고 유심히 살피자, 옆에 있던 김희연이 물었다.

“뭐 봐요?”

“이동 루트 다시 확인하려고.”

김희연은 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오빠는…… 안 지쳐요?”

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자, 김희연은 다소 경직된 표정으로 내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거 참, 또 동굴 파고 들어가려고 하네.

이에 모르는 척, 지도를 살피며 대답했다.

“앉아서 지도 보는데 지칠 게 뭐 있어.”

“그 말이 아니잖아요.”

“…….”

“이렇게 매일매일 계획 짜고, 움직이고, 변수 생각하고, 이런 생활 안 지치냐고요.”

보아하니 김희연이 지친 모양이다.

이에 한숨을 내쉬며 김희연을 쳐다봤다.

김희연은 나와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바닥을 바라보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지쳐.”

솔직하게 대답하자, 김희연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내 얼굴을 쳐다봤다.

“진짜요?”

“그럼 가짜겠니?”

싱겁게 웃으며 대답하자, 김희연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오빠는 지칠 때 무슨 생각해요? 아니, 어떻게 이겨내요?”

“글쎄, 이겨내는 게 되나? 매일 피곤해 죽겠는데.”

“오빠는 안 지치는 줄 알았어요.”

“로봇도 아니고 사람이 어떻게 안 지쳐.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니 하는 거지.”

“…….”

김희연의 표정을 슬쩍 쳐다보자, 생각에 잠긴 것으로 보였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반복할까 봐,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예전에, 우리 학교 졸업생 선배가 동아리방에 놀러 온 적이 있어.”

“소리결이요?”

“어, 정기공연할 때 졸업생 선배들 공연 보러오라고 메시지 돌리거든.”

“그래서요?”

“공연 끝나고 다 같이 술 마시면서 이런저런 대화 나누는데, 한 선배가 했던 말이 지금도 머릿속에 남아 있어.”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자,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다.

이제는 돌아오지도, 돌아갈 수도 없는 추억이었다.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선배가 했던 말을 김희연에게 들려주었다.

“그 선배는 프리랜서였어. 쉬는 날에 뭐하냐고 물었더니, 오히려 나한테 쉬는 날이 뭐야? 이러더라고.”

“주말도 없고, 공휴일도 없어요?”

“어. 365일 출근상태야.”

“와…… 어떻게 그러고 살아요?”

“심지어 몸도 안 좋아. 허리 디스크, 목디스크, 손목터널증후군, 안구건조증, 별별 잔병치레는 다 가지고 있어.”

“아…….”

“그래서 물었지. 무슨 낙으로 사냐고. 그랬더니 그 선배가 뭐라는 줄 알아?”

김희연은 궁금증 가득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쳐다봤다.

이에 싱겁게 웃으며 얘기했다.

“죽지 않길 잘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무언가를, 늦지 않게 만날 수 있다는 희망. 그거 하나 보고 산대.”

“…….”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은 나도 알 것 같아. 언젠가는 이 게임을 클리어하고, 예전처럼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 나도 그거 하나 보고 움직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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