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부 21화
감마3의 폭발은 상상을 초월했다.
감마3의 주변에 있던 좀비들은 사지가 찢기며 동서남북 사방으로 흩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이곳으로도 좀비들의 살점이 날아들었다.
양팔로 얼굴을 가리자, 질척한 살점과 핏물이 머리 위로 쏟아졌다.
쒜엑-!
뒤이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번뜩이는 무언가가 내 뺨을 스쳐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감마3의 배꼽에 박혀 있던 카타나와 볼트들이 이곳으로 날아왔다.
뺨에서 피가 흐르고, 놀란 표정으로 뒤를 돌아봤다.
아파트 외벽에 박힌 카타나와 바닥에 널브러진 볼트들.
일행은 바닥에 주저앉은 채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전완수는 입술을 벙긋거리더니, 곧 입꼬리를 올리며 얘기했다.
“보, 볼트 회수하기 편하고 좋네. 하하!”
“네 머리로 날아왔으면 즉사야 인마.”
최현은 전완수의 천진난만함을 질책했다.
감마3의 폭발 반경이 대략 100m는 될 것 같다.
설여원은 품에 안고 있던 독 안개 제거기의 상태를 살피며 얘기했다.
“독 안개 제거기는 안전해. 그보다 방금 그거…… 그냥 터진 게 끝이야?”
맞네?
감마 변종이 터지면 플레이어의 신체는 마비되고 좀비들의 신체 능력은 증가하는 효과가 발생한다.
하지만 감마3은 다른 모양이다.
폭발력이 워낙 강해서, 반경 100m에 살아 있는 존재는 아무것도 없었다.
폭발의 여파가 200m 밖에 있는 여기까지 퍼질 정도였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다들 놀란 건 알겠는데, 계속 몰려온다. 정신 차려.”
정진영의 말에 수색대는 마른침을 삼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멀리, 북서쪽 방면에서 달려오는 좀비와 변종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에 아파트 외벽에 박힌 카타나를 뽑으며 허공을 쳐다봤다.
이미 해는 떨어졌고, 세상은 저녁 어스름에 잠겼다.
전투가 시작된 지 20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피로가 몰려왔다.
좀 더 압도적인 힘이.
보다 강한 힘이 필요하다.
이에 일행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다들 시간 좀 끌어줘.”
“시간? 왜, 뭐 하려고.”
“포인트 좀 써야겠어.”
전완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지만, 설여원은 카타나를 뽑으며 얘기했다.
“얼마나 걸려?”
“3분만.”
“알았어.”
설여원은 카타나를 고쳐 쥐며 좀비들에게 달려들었다.
그 뒤로 정진영과 최현, 전완수가 따라붙었다.
멀어지는 일행을 확인하고, 황급히 플레이어 정보를 열었다.
[플레이어 정보]
-캐릭터 이름: 에덤 화이트
-능력: 강화
-한계 돌파 7단계
*세 번째 에피소드 클리어 시 한계가 해금됩니다.
-현재 처리한 좀비의 수: 420/100000
-남은 포인트: 30287
-스킬: 좀비화, 급가속 Lv.MAX, 감지 Lv.MAX, 하울링 Lv.6, 광폭화 Lv.MAX
-패시브 스킬: 재생, 광란(5/10)
-특수 스킬: 연격, 난동
-보유 중인 칭호: 4
-보유 중인 성물: 3
한계 돌파는 세 번째 에피소드가 끝나면 해금되기에, 당장 포인트를 사용할 곳은 하울링뿐이었다.
지금껏 포인트를 사용하며 느낀 게 하나 있었다.
기본 스탯을 계속 높여야 하는 순간이 있었고, 어느 시점을 넘어서면 스킬 레벨을 높여야 하는 순간이 있었다.
에스파디아가 한계 돌파에 제약을 만들어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스킬 의존도를 높이라는 뜻이다.
6레벨 하울링을 MAX레벨까지 높이는데 필요한 포인트는 25,680.
그럼 모든 스킬이 MAX레벨이 되기에, 스킬 목록에 변화가 생길 것이다.
이런 유추가 가능한 이유는 하나였다.
에스파디아는 내게 정체되어 있지 말라고 했으니까.
분명 새로운 길을 열어줄 것이다.
이에 망설임 없이 25,680포인트를 소모하며 하울링을 MAX레벨까지 올렸다.
띠링-!
-스킬 ‘하울링’이 최고 레벨에 도달했습니다.
[하울링 Lv.MAX]
-포효를 내질러 반경 500m 내의 적에게 두려움을 각인시킵니다.
-두려움이 각인된 적은 10분간 이동속도 30% 감소 효과가 적용됩니다.
-모든 감염된 생물체는 하울링에 저항할 수 없습니다.
-하울링의 재사용 대기시간은 10분입니다.
*‘집념’ 효과가 생성됩니다.
*하울링의 반경 내에 있는 좀비, 혹은 변종 사이에서 가장 강력한 적에게 집념을 보입니다. 집념의 대상이 된 적은 받는 피해가 20% 증가합니다.
하울링의 반경이 150m에서 500m로 증가하고, 디버프 지속 시간은 6분에서 10분으로 증가했다.
눈에 띄는 변화는 하울링의 적중률과 집념 효과의 변화였다.
나보다 강한 적은 하울링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젠 저항할 수 없다.
또한 집념 효과는 10%에서 20%로 증가했다.
띠링-!
뒤이어 또 다른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모든 스킬이 최고 레벨에 도달했습니다.
-선택지가 제공됩니다.
-기존 스킬의 강화 or 새로운 스킬 습득.
-새로 터득하는 스킬은 패시브, 액티브, 특수 스킬 등 무작위로 주어집니다.
눈앞의 홀로그램을 보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역시, 예상이 맞았다.
특수 스킬이라면 조건부 스킬인 연격과 난동을 말한다.
싸움이 길어질수록 유리한 조건부 스킬도 배울 수 있다니.
한동안 정체되어 있는 기분이었는데, 수문이 열린 기분이었다.
띠링-!
-새로운 스킬 터득에 필요한 포인트: 50000
-기존 스킬 강화에 필요한 포인트: 100000
하지만 요구 포인트를 보고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10만 카운트도 아니고 10만 포인트를 소모하라고?
이건 좀비 100만 마리를 잡아야 얻을 수 있는 포인트였다.
아무리 감염된 식물이나 변종이 주는 카운트가 높아졌다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과하다.
그러다 문득, 머릿속으로 잊고 있던 아이템이 떠올랐다.
빠르게 홀로그램을 열고 스킬 목록을 살폈다.
[에덤 화이트의 스킬 강화권] X 3
-에덤 화이트는 레이첼의 버프를 받을 수 없기에, 제작자가 특별 제작한 에덤 화이트 전용 스킬 강화권입니다.
-선택한 스킬의 레벨이 몇이든, 강제로 높여줍니다.
있다.
에덤 화이트 전용 스킬 강화권.
그것도 3장이나.
지금도 사용할 수 있으려나?
스킬 목록을 살피며, 가장 먼저 좀비화를 눌렀다.
-포인트가 부족합니다.
-스킬 강화권을 사용하시겠습니까?
-기존 능력: 재사용 대기시간 12시간
-추후 변화: 재사용 대기시간 6시간
12시간의 재사용 대기시간이 6시간으로 줄어든다는 말이 아닌가?
수락을 누르기 위해 손가락을 옮기는 찰나,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이성을 되찾았다.
재사용 대기시간 감소는 지금 당장 필요한 게 아니다.
지금 당장 필요한 건 압도적인 힘이다.
이에 취소를 누르고, 이번엔 광폭화를 확인했다.
-포인트가 부족합니다.
-스킬 강화권을 사용하시겠습니까?
-기존 성능: 좀비화의 능력이 2.5배 증가합니다.
-추후 변화: 좀비화의 능력이 3배 증가합니다.
현재 근력은 대략 1905.
광폭화를 강화하면 순식간에 2290이 된다.
찰나의 고민 끝에, 스킬 광폭화에 스킬 강화권을 사용했다.
-스킬 ‘광폭화’를 강화합니다.
[강화된 광폭화]
-아드레날린 분비를 촉진합니다.
-광폭화가 유지되는 동안 좀비화의 능력이 3배 증가합니다.
-광폭화 사용 시, 좀비화가 끝날 때까지 유지됩니다.
그러자 스킬 광폭화의 테두리를 따라 은은한 감빛이 맴돌고, 레벨 표시가 사라지고 ‘강화된’이란 글자가 추가되었다.
동시에 전신으로 퍼져 나가는 아드레날린을 느낄 수 있었다.
심호흡을 통해 들뜬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시 한번 스킬 광폭화를 클릭했다.
띠링-
-이미 강화된 스킬입니다.
한번 강화한 스킬은 다시 강화할 수 없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다음은…… 광란.
-패시브 스킬과 특수 스킬은 강화할 수 없습니다.
아쉽게도 패시브 스킬인 재생과 광란, 특수 스킬인 연격과 난동은 강화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액티브 스킬 중에서 사용해야 한다는 말인데…….
새로운 스킬을 배우고 싶은 욕망이 차오른다.
하지만 요구 포인트만 놓고 보면 기존 스킬부터 강화하는 게 옳다.
찰나의 고민 끝에, 이번엔 스킬 급가속을 눌렀다.
-포인트가 부족합니다.
-스킬 강화권을 사용하시겠습니까?
-기존 능력: 5분간 이동 속도 대폭 증가, ‘일격’ 효과 20초 유지, 2단 뛰기.
-추후 변화: 8분간 이동 속도 대폭 증가, ‘일격’ 효과 60초 유지, 3단 뛰기.
“미친?”
이건 대박인데?
3단 뛰기가 가능하다고?
고민할 필요도 없이 스킬 급가속을 강화했다.
[강화된 급가속]
-8분간 이동 속도가 대폭 증가합니다.
-급가속의 재사용 대기시간은 10분입니다.
-‘일격’ 효과가 60초간 지속됩니다.
*급가속의 지속시간 동안 3단 뛰기가 가능합니다.
마지막 남은 스킬 강화권은 아껴둬야겠다.
추후 좀비화를 강화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눈앞의 홀로그램을 닫고, 250m 앞에서 좀비들을 상대하는 일행을 쳐다봤다.
3분이 넘은 것 같으니, 더 늦기 전에 도와야지.
“가속.”
후우웅-
스킬 급가속을 사용하자, 기이한 기류가 전신을 맴돌기 시작했다.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는 새하얀 기류를 보고, 반사적으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지속시간만 늘어난 게 아니라, 이동속도와 일격 효과도 더욱 증가한 것 같다.
치지직- 치직-
-박재형! 3분 옛날에 지났어!
뒤이어 무전기로 들려오는 설여원의 목소리.
이에 천천히 하체를 접고, 250m 앞에 있는 일행을 응시했다.
-전방 50m 앞에 알파3 네 마리!!
설여원의 목소리를 듣고 300m 전방에 있는 알파3들의 위치를 살폈다.
드드드득- 드드드득-
하체를 접고 있을 뿐인데, 아스팔트 바닥으로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전신을 감싸고 있던 기류가 하체로 이동하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힘이 집중된 부위를 아는 건가?
“후…….”
긴장되는 마음에 폐부에 들어찬 숨을 내쉬고, 정면을 응시하며 있는 힘껏 박차를 가했다.
떵-
“어?”
진공터널을 관통하는 하이퍼루프가 개발되면 이런 기분일까?
눈 한 번 깜박였을 뿐인데, 응시하고 있던 알파3이 코앞으로 나타났다.
깜짝 놀라서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찰나.
-변종을 처리했습니다. 카운트 3000점이 주어집니다.
콰아앙-!!!!
한 박자 늦게 들려오는 굉음과 후폭풍.
이미 내 육신은…… 알파3의 상체를 뚫고 나온 상태였다.
사방으로 흩날리는 알파3의 내장과 살점.
주변에 있던 좀비들은 강풍에 못 이겨 기우뚱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주체할 수 없는 속도였다.
놀란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자, 내가 웅크렸던 자세 그대로 알파3의 몸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커다란 구멍 사이로, 넋이 나간 일행의 표정이 눈에 들어온다.
“미, 미친…… 쟤 지금 마하 돌파한 거 아니야?”
전완수가 말까지 더듬으며 묻자, 옆에 있던 최현은 상체를 부르르 떨며 얘기했다.
“소리보다 빠르게 움직인 것 같은데? 진짜 음속 돌파한 거냐?”
“인간의 몸으로 어떻게 그래.”
설여원이 애써 반박하자, 최현은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
“우리 중에 순수한 인간이 어디 있어. 다 괴물이지.”
“…….”
최현의 말이 맞다.
플레이어는 인간을 초월한 존재.
난 얼떨떨한 정신을 다잡으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자 석고상처럼 굳은 알파3 세 마리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손에 쥐고 있던 카타나를 칼집에 넣고, 건틀릿을 말아쥐었다.
지금은…… 굳이 칼을 들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두 눈 부릅뜨고 다시 한번 지면을 박차며 튀어 나갔다.
떵-!
콰아앙!!!!
망원경이라도 들여다본 것처럼, 순식간에 알파3의 얼굴이 바로 앞에 나타났다.
주체할 수 없는 속도는 원근감을 상실하게 만들었다.
주먹을 뻗을 자세가 안 나와서, 그대로 박치기를 가했다.
-변종을 처리했습니다. 카운트 3000점이 주어집니다.
알파3의 두개골이 으깨지며 순식간에 머리가 터져나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급가속을 사용했을 때 발생하는 기류.
즉, 일격 효과.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는 새하얀 기운 덕분에, 머릿속으로 초읽기를 하지 않아도 일격의 남은 시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일격이 유지되는 동안 충격이 크게 느껴지지 않기에, 박치기를 해도 큰 타격이 없었다.
급가속 사용 중에 정확히 얼마나 강해지는지 모르겠지만, 이건 상상을 초월한다.
반사적으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질주본능을 자극한다고 해야 좋을까?
적응할 수 없는 속도에, 심박이 빨라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