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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271화 (271/373)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부 17화

수술대를 뽑아버리고 뒤를 돌아보자, 안개 속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패 들어!”

최현과 윤혜리, 김희연이 좌우에서 날아드는 수술대를 카타나와 손도끼로 처리하고 있었다.

설여원과 이정우, 정진영, 황덕록은 방패를 앞세워 쏟아지는 염산을 받아내고, 각자의 무기를 이용해 날아드는 수술대를 쳐내고 있었다.

아직 남은 수술대만 8개.

단번에 잘리지 않으면 몇 번이고 내려치며, 염산에 팔뚝이 익어가는 것도 잊은 채 맹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월! 월월!

장군이가 짖기 시작했다.

옆을 쳐다보자, 장군이의 머리 위로 말풍선이 떠오른 상태였다.

[안 돼, 내 친구들 아파.]

겁에 질린 표정과 달리, 염산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일행을 걱정하고 있었다.

[괴롭히지 마. 내 친구들 괴롭…… 괴롭히지…….]

뜨득- 떡! 떠드득-

장군이의 몸집이 비대해지고, 송곳니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분노-]

머리 위의 말풍선으로 분노라는 감정이 표시되고, 붉게 충혈된 장군이의 안구가 거대식물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크어어어어!!

장군이는 포효를 내지르며 일직선으로 달려들었다.

“장군아 진정해, 장군아!”

[-분노-]

“야 인마!”

장군이는 물불 가리지 않고 일직선으로 곧장 나아갔다.

황급히 그 뒤를 따르자, 장군이는 지면을 박차며 거대식물의 암술대를 향해 뛰어올랐다.

그러자 좌우로 일렁이던 암술대가 움직임을 멈추고, 장군이를 응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눈도 없는데 어떻게 아는 거지?

공기의 흐름을 간파하는 건가?

아니면 위압감을 인지하는 능력이 있는 건가?

쒜엑-!

암술대는 장군이의 복부를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들었다.

“장군아!”

콰득!

그 순간, 장군이는 공중에서 상체를 틀며 날아드는 암술대를 이빨로 씹어먹는 모습을 보였다.

고양이처럼 공중에서 회전하는 모습을 보고 벌어지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저 정도면…… 나보다 반사신경이 높은 것 같은데?

문득, 홀로그램에서 봤던 문구가 떠올랐다.

-동물의 경우 개체에 따라 신체 능력이 판이합니다.

멧돼지는 골밀도와 표피가 유독 발달한 모습을 보였다.

장군이는 반사신경이 굉장히 높은 게 아닐까?

치이이이익-!

뜯어진 암술대에서 염산이 쏟아지자, 장군이는 씹고 있던 암술대를 뱉으며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머리 위의 감정이 바뀌었다.

[-짜증-]

띠링-

-스킬 ‘투견’을 사용한 반려견의 감정에 변화가 발생합니다.

-새로운 스킬이 생성됩니다.

-스킬 ‘속전속결’이 생성됩니다.

[속전속결]

-반려견이 통증으로 인해 짜증을 일으킵니다.

-더 다치기 전에 적을 처리하려는 마음이 강해집니다.

-움직임이 2배 증가하며, 치악력이 2배 증가합니다.

크어어어어!!

장군이는 포효를 내지르더니, 곧장 거대식물의 꽃받침으로 뛰어들었다.

이에 황급히 그 뒤를 따라가자, 장군이는 꽃받침을 물어뜯고 찢어발기며 난동을 피우기 시작했다.

평범한 식물과 달리, 거대식물의 꽃받침은 고무줄처럼 늘어나는 모습을 보였다.

장군이가 악어처럼 머리를 흔들며 뜯어내자, 그곳에서 묽은 액체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보랏빛이 아니었다.

다른 감염된 식물들처럼, 투명한 액체가 쏟아지고 있었다.

장군이는 끈끈한 액체에 면역이지만, 나는 아니다.

쏴아아아아아아-

이에 살수차가 내뿜은 물줄기로 달려가 온몸을 적시고, 지면을 박차며 꽃받침으로 뛰어올랐다.

장군이와 함께 꽃받침을 찢으며, 거대식물의 약점을 찾기 위해 분주히 눈을 굴렸다.

“재형이 도와! 옆으로 산개해!”

모든 수술대를 잘라난 일행이 내 곁으로 달려왔다.

일행은 일제히 꽃받침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거대식물을 처리했다는 메시지는 출력되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꽃받침 중앙에 위치한 거대한 구멍이 눈에 들어왔다.

암술대와 수술대가 저 속에서 나왔다.

그렇다면…… 씨방이 약점이지 않을까?

성인 남자가 들어가고도 남는 크기.

저 속에 뭐가 있는지 몰라도, 남은 부위라면 저곳뿐이다.

훅, 하고 숨을 뱉으며 단숨에 그곳으로 들어갔다.

치이이이익-

뜨거운 열기와 함께 발목까지 올라오는 염산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서 액체를 만드는 건가?

지체할 시간이 없기에, 카타나를 말아쥐고 내부를 휘저었다.

촤좌좌좌좌좍!!

사정없이 난도질을 가하자, 발밑으로 동그란 구슬 같은 게 눈에 들어왔다.

밑씨인가?

양손으로 칼자루를 쥐고, 있는 힘껏 내려찍었다.

뚜둑-!

그러자 단단한 바위를 뚫고 들어가는 느낌과 함께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거대식물을 처리했습니다. 카운트 4000점이 주어집니다.

눈앞의 홀로그램을 확인하고, 단숨에 구덩이를 빠져나왔다.

“우웩!”

밖으로 나오자마자 구역질이 올라왔다.

구덩이 속의 악취는 지독한 암모니아 냄새도 한 수 접고 들어갈 정도로 역했다.

구역질과 함께 바닥에 쓰러지자, 일행이 달려와 내 상태를 살폈다.

“저기가 어디라고 들어가!”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

“시간 좀 걸리더라도 꽃받침 잘라내고 들어가면 되잖아!”

일행은 대뜸 내 등짝을 때리며 성을 냈다.

일행의 말이 옳다.

하지만…… 다들 양손에 염산을 뒤집어 쓴 상태였기에, 치료가 시급하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이에 괜찮다고 손사래 치며 심호흡을 반복했다.

악취가 얼마나 고약하면, 아무리 숨을 쉬어도 뇌에 산소공급이 안 되는 기분이었다.

“정우 형, 진영이 형, 일단 치료부터 해주세요.”

“다들 심각한 화상은 아니야. 우리 표피 스탯도 높고, 보호대 덕에 심하게 다치진 않았어.”

말은 이렇게 하지만, 모든 일행의 손가락이 빨갛게 익은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멍한 정신을 다잡기 위해 허공을 쳐다보는 찰나, 머리 위로 물줄기가 쏟아졌다.

“어?”

촤아아아아악-!!

둥글게 모여 있던 일행의 머리 위로 물줄기가 쏟아졌다.

폭포수 같은 수압에 고개 숙이자, 5초간 이어지던 물줄기가 사라지고 전완수의 호쾌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하! 다들 시원하지?”

최현은 양손으로 얼굴을 비비며 전완수를 노려보더니, 카타나를 뽑으며 얘기했다.

“죽여도 되지?”

최현이 덤덤한 목소리로 묻자, 설여원은 젖은 머리를 털며 얘기했다.

“여태 안 죽이고 뭐 했어?”

“귀신은 뭐하나 몰라. 쟤 안 잡아가고.”

황덕록마저 고개를 저으며 얘기했다.

그러자 이정우는 일행을 진정시키며 얘기했다.

“다들 나쁘게 생각하지 마. 염산 뒤집어쓴 거 닦아주려고 뿌린 거야.”

“물을 뿌릴 거면 졸졸졸 흐르게 해야지, 누가 살수차로 염산을 씻어? 살가죽 벗겨질 일 있냐?”

정진영마저 눈살을 찌푸리며 반박하자, 이정우는 헛기침과 함께 얘기했다.

“우린 표피 스탯이 높잖아. 이 정도로 안 찢어져. 완수도 직선으로 쏘지 않고 포물선으로 뿌렸고.”

“이 상황을 실드친다고?”

다들 반대 의견을 제시하자, 이정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얘기했다.

“역시…… 실드치긴 어려운 행동이지?”

“자, 다들 멍석 말자.”

일행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전완수에게 달려갔다.

전완수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옆 차량의 호스를 들고 있던 박재우는 양손을 번쩍 들며 얘기했다.

“나 아니야.”

“전완수 저 새끼 잡아!”

“오케이.”

일행의 활기찬 모습을 보고, 그제야 안도감이 들었다.

다들 표피 스탯이 높아져서 그런지, 액체에 양팔이 익었음에도 멀쩡한 모습을 보였다.

이에 콧방귀를 뀌며 바닥에 대(大)자로 누웠다.

그러자 옆에 있던 설여원이 한숨을 내쉬며 얘기했다.

“옷 갈아입고 누워. 감기 걸려.”

“피곤해. 5분만 쉬자.”

“쓰읍! 빨리 안 일어나?”

설여원이 팔뚝을 때리기에,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상체를 일으켰다.

월! 월월!

[나도! 나도!]

어느새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장군이는 일행을 따라 전완수를 쫓기 시작했다.

뭐가 그리도 재밌는지, 다들 웃음꽃을 피우며 술래잡기를 시작했다.

단, 잡히면 멍석말이를 당하는 술래잡기지만 말이다.

* * *

살수차를 타고 풍기IC로 향했다.

전완수는 퉁퉁 부은 얼굴로 정면을 응시하며 구시렁거렸다.

“이 자식들…… 진심으로 때렸어…….”

“진심으로 때렸으면 눈도 못 뜰 걸?”

설여원이 팔짱을 끼며 얘기하자, 전완수는 투덜거리며 얘기했다.

“물 좀 쐈다고 사람을 이렇게 때려도 되는 거야?”

“그러게 누가 이불 밖으로 나오래? 갑자기 튀어나오니까 얼굴 맞은 거 아니야.”

최현마저 싱겁게 웃으며 얘기하자, 전완수는 투덜거리며 운전을 이어나갔다.

문수로를 따라 이동하자, 오래 지나지 않아 사거리가 눈에 들어왔다.

설여원이 지도를 펼치려고 하자, 뒤에 있던 오혜선이 입을 열었다.

“여기서 저쪽으로, 소백로 방면으로 가면 풍기IC 나와요.”

오혜선의 말대로 우회전을 하고, 소백로를 따라 한참을 내려갔다.

오래 지나지 않아 풍기IC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도로변에 정차된 좀비카 두 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살수차에 비좁게 타고 있던 일행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내리며 기지개를 켰다.

이정우는 차량에서 내리자마자 설여원의 곁으로 다가와 지도를 달라고 했다.

지도를 통해 우리가 나아가야 하는 길을 확인하고, 현재 시각을 살피며 얘기했다.

“지금이 오전 10시니까…… 오늘 서울까지 갈 수 있겠는데?”

“경기도 진입하면 쉽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서울 들어가기 전에 하남부터 가야죠.”

“아, 맞다.”

설여원의 본가가 하남이었다.

마침내 본가에 간다는 생각에 긴장되는지, 설여원은 마른침을 삼키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에 태연한 목소리로 물었다.

“여원아, 정확한 위치가 어디야?”

“스타필드 근처야.”

스타필드면…… 하남IC에서 내리면 금방이다.

이에 이정우가 들고 있는 지도를 같이 살폈다.

봉화군 지도라서 전체적인 길은 파악할 수 없었다.

곤란한데…….

고속도로에 있는 표지판만 보고 찾아갈 수 있을까?

부모님 세대까지는 표지판에 익숙하지만, 우린 내비게이션이 익숙한 세대였다.

그러자 오혜선과 한민욱이 다가왔다.

“또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

아, 그래.

오혜선의 나이는 마흔하나.

가는 길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오 실장님, 여기서 하남으로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하는지 혹시 아세요?”

“고속도로 타고 가야죠.”

“직진만 하면 돼요?”

“그건 나도 모르죠. 내가 국토부 소속도 아닌데.”

오혜선은 어깨를 으쓱이더니, 곧 손가락을 튕기며 옆에 있는 한민욱을 쳐다봤다.

“민욱 씨 고향이 서울 아니야?”

“네? 아, 네. 맞아요.”

“하남 가는 길 알아?”

“하남이면…… 송파구 옆에요?”

“어어.”

한민욱은 팔짱을 끼며 고심에 잠긴 모습을 보이더니,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얘기했다.

“하남이면…… 아마 중앙고속도로 타고 쭉 올라가다가, 신평 분기점에서 광주원주고속도로로 갈아타야 할 거예요.”

“확실한 거야?”

“휴가받았을 때 하남 스타필드 놀러 간 적 있거든요. 그때 그렇게 갔던 것 같아요.”

다행히 경험자가 있었다.

설여원을 쳐다보자, 이전보다 더욱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혹여나 부모님이 돌아가셨으면 어쩌나, 걱정하는 것으로 보였다.

괜찮을 거라는 말이 쉽사리 입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솔직히 하남에서 여의도는 너무 머니까.

이에 말없이 손을 잡아주었다.

설여원이 내 얼굴을 슬쩍 쳐다보기에, 대답 대신 엷은 미소를 지었다.

* * *

-새벽 1시. 노량진역으로.

“시위대가 밖으로 나온다고? 무슨 말로 현혹한 거야?”

-플레이어가 될 수 있다고 했어.

“그걸 믿어?”

-그렇게 플레이어 욕하고 깎아내리더니, 정작 본인들이 갈망하고 있었어.

대장 좀비는 조소를 터뜨렸다.

시위대는 본인이 플레이어가 될 수 없으니, 그 원성을 다른 플레이어에게 쏟아낸 것이다.

본인이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갈망이, 피해의식이 되어 그들을 병들게 했다.

“그래서.”

-플레이어로 만들어주는 아이템이 있다고 했지. 아크의 자기장이 아이템 반입을 금하고 있어서 플레이어가 되려면 직접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했어.

“그걸 순순히 믿어?”

-일반인에서 플레이어가 된 사람들이 있잖아? 물론 특별한 사례지만, 그걸 미끼로 던졌지.

“밖으로 나간 시위대가 돌아오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의심할 텐데?”

-좋은 건 남한테 안 주는 게 사람 심리야. 아이템이 20개뿐이라고 얘기했지. 그걸 남한테 얘기하겠어?

“시위 주동자부터 처리하자는 거지?”

-맞아.

여자의 대답을 듣고, 대장 좀비는 입꼬리를 올리며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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