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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266화 (266/373)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부 12화

좀비화의 지속 시간이 끝나자, 아찔한 현기증이 일어났다.

하지만 기절할 만큼 격하게 몸을 쓰지 않았기에, 몇 차례 심호흡을 통해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괜찮아?”

설여원이 묻기에,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시드볼트 입구로 향했다.

입구는 굳게 잠겨 있었다.

부수고 들어갈까 하다가, 투명한 유리문에 얼굴을 바짝 갖다 대고 실내를 살폈다.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바닥에 선명하게 찍힌 발자국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안에 사람이든 뭐든 있는 것 같은데?”

“나도 볼래.”

설여원은 유리문에 바짝 붙으며 실내를 살폈다.

뒤이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흙 묻은 발자국도 그렇고, 먼지가 없는 것도 그렇고, 최근까지 사람이 있었던 것 같아.”

그러자 전완수도 내부를 살피며 얘기했다.

“발자국 간격도 일정해. 좀비라면 불규칙적이겠지.”

“어떻게 할래. 부수고 들어갈까, 노크라도 해볼까.”

다들 쉽사리 입을 열지 않았다.

이정우의 의견을 듣기 위해 그를 쳐다보자, 이정우는 대답 대신 가만히 턱을 매만졌다.

뒤이어 무언가를 발견한 듯 움찔거리더니, 양손을 들고 좌우로 흔들기 시작했다.

“형 뭐해요.”

“저거 봐.”

이정우가 가리키는 방향을 살피자, 좌측 벽에 설치된 CCTV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정진영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야, 그런다고 문을 열어주겠냐? 지금 전기도 끊긴…….”

우우웅-

순간, 결인들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유리문을 쳐다봤다.

잠겨 있던 유리문이…… 너무나 부드럽게 열렸다.

“이거 들어가도 되는 거 맞아?”

최현의 긴장한 목소리에, 이마를 긁적이며 이정우를 쳐다봤다.

그러자 이정우는 훅, 하고 숨을 뱉으며 얘기했다.

“정상적인 사람이길 바라는 수밖에.”

이정우는 마른침을 삼키며 실내로 들어섰다.

그 뒤로 모든 결인이 따라붙었다.

복도를 따라 이동하자, 건물 중앙에 설치된 승강기를 발견할 수 있었다.

심지어 정상작동하는 승강기.

-정지.

그 순간, 정체 모를 목소리가 건물 내부에 울려 퍼졌다.

일동 정지한 채,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당신들, 어떻게 멀쩡한 거죠?

이름 모를 여자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고 있었다.

이정우는 실내에 설치된 CCTV를 쳐다보며 대답했다.

“구조댑니다!”

-소속이 어디예요.

소속을 묻는 말에, 이정우는 잠시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태연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지금 어디 계십니까? 만나서 얘기하죠.”

-대답부터 하세요. 거긴 독 안개가 퍼져서 올라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당신들은…… 어째서 멀쩡한 거죠?

“지금도 독 안개가 퍼진 거로 보입니가?”

여자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동안 CCTV를 통해 옥빛의 세상만 보다가, 희뿌연 안개를 보고 당황한 모양이다.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자, 곧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서 기다리세요.

어차피 할 것도 없기에, 기지개를 켜며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아침부터 바삐 움직여서 그런지, 피로가 몰려오고 있었다.

바닥에 앉아 휴식을 취하며 기다리자, 승가기의 문이 열리며 방제복과 방독면을 착용한 사람이 나타났다.

예상치 못한 모습에 멍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여자는 우리의 얼굴을 훑으며 물었다.

“여러분이 전부에요?”

“네.”

“독 안개가 사라진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 아직 바깥은 독 안개가 자욱해요.”

여자의 표정으로 여러 감정이 엿보였다.

사람을 만났다는 반가움과 경계심, 의심과 궁금증이 공존하고 있었다.

구구절절 설명해 봐야 의심만 살 것 같아서, 여자가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렸다.

여자는 잠시나마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더니, 승강기에 타라고 손짓하며 얘기했다.

“일단 들어가서 얘기하죠.”

* * *

승강기를 타고 얼마나 내려갔는지 모르겠다.

일반인은 지하층을 눌러도 내려갈 수 없지만, 여자에게 마스터키가 있기에 지하 수십 미터를 내려갈 수 있었다.

대략 50m가량 내려갔을까?

승강기의 문이 열리자, 에어샤워부스가 눈에 들어왔다.

그곳으로 한 사람씩 들어가 혹시 모를 추가 감염 우려를 불식시키고 나왔다.

에어샤워부스 너머로 넓고 기다란 터널이 이어졌다.

여자는 방제복과 방독면을 벗고, 땀에 젖은 머리를 털며 얘기했다.

“사람이 찾아올 줄은 몰랐네요. 반가워요. 오혜선이에요.”

오른손을 내밀기에, 우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윤혜리를 쳐다봤다.

윤혜리는 아, 하는 탄성을 뱉으며 오혜선의 손을 잡았다.

“반갑습니다. 저는 윤혜리고, 여기 있는 분들은…….”

짧은 통성명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나이도 알게 되었다.

오혜선의 나이는 마흔하나.

나이에 비해 동안이었다.

오혜선은 쓴웃음을 지으며 얘기했다.

“지금 당장 여러분 이름은 다 못 외우겠고, 차차 알아가죠.”

“네.”

“그럼, 따라오세요.”

오혜선을 따라 기다란 터널을 나아갔다.

콕콕.

옆구리를 찌르는 느낌에 뒤를 돌아보자, 윤혜리가 내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상체를 기울이며 귀를 갖다 대자, 윤혜리는 속삭이는 목소리로 얘기했다.

“현 상황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분이에요. 악의는 없고, 순수한 의도로 우릴 들여보내 줬어요.”

“그럴 수가 있어? 그동안 혼자 지내서 심심했던 건가?”

“그건 아니에요. 오혜선 씨 포함해서 총 4명이 있거든요.”

“사람들 상태는?”

“오혜선 씨 기억만 봐서는 다들 좋은 사람 같아요. 그런데 두 명이 좀…… 몸이 안 좋아요.”

“좀비한테 물린 거야?”

“그건 아니에요. 오빠가 직접 보면 알 거예요.”

오혜선을 따라 한참을 이동하자, 터널 끝에서 갈림길이 나왔다.

오혜선은 우측을 가리키며 들어가라고 했다.

여러 개의 방문이 눈에 들어온다.

그중 가장 먼저 나오는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은은한 빛이 맴도는 안락한 공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략 20평 크기의 탕비실 겸 숙직실처럼 생겼다.

곧 침대에 누워 있는 30대 초반의 남자와 40대 후반의 남자, 그리고 그들의 옆에 있는 중년 여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중년 여자는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누, 누구세요?”

여자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자 오혜선이 싱겁게 웃으며 얘기했다.

“구조대래요.”

“구조대요?”

여자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오혜선은 어깨를 으쓱이며 얘기했다.

“구조대 아닌 거 알아요. 하지만 어린 친구들 같아서, 내버려 둘 수 없더라고요.”

구조대가 아니라는 걸 뻔히 알면서, 그저 어리다는 이유로 받아주었다고?

착하다고 해야 좋을지, 둔감하다고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멋쩍은 마음에 머리를 긁적이자, 오혜선은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

“자, 어떻게 저 안개 속을 헤치고 왔는지 들어볼까요?”

오혜선의 말에 이정우는 결인들의 표정을 살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얘기해야 좋을지, 나도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라스트아크에 대해 전혀 모르는 것 같은데, 우리의 얘기를 믿어주려나?

시도는 해봐야 하기에, 이정우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정우는 훅, 하고 숨을 뱉으며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제가 하는 얘기는 전부 사실입니다. 믿든 말든, 그건 오혜선 씨 자유고요.”

“그렇게 얘기하니 괜히 긴장되네요. 얘기해요.”

오혜선은 구석에 놓인 의자에 앉으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이정우는 생각을 정리한 뒤, 라스트아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 * *

모든 설명을 마치자, 오혜선은 넋이 나간 표정을 지었다.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표정.

아니면 쏟아지는 정보에 머릿속이 혼란스러운 모양이다.

“잠깐, 아니 그러니까…… 이 모든 게 라스트아크라는 게임 때문이라는 거예요?”

“그렇습니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좋을지 모르겠네.”

오혜선은 실소를 터뜨리며 앞머리를 쓸어넘겼다.

입맛을 다시며 생각을 정리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오래 지나지 않아 입을 열었다.

“좋아요, 학생들이 수백만의 좀비를 처리하고, 부산에 있는 아크를 안전지대로 돌려보냈다고 치죠. 하지만…… 허점이 있는데요?”

“무슨 허점이요?”

이정우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오혜선은 목을 가다듬으며 물었다.

“게임에서는 아크에 들어가면서 끝났다고 그랬죠? 그런데 지금은 왜 안 끝나요?”

“그건 저희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세 번째 에피소드에 발생하는 독 안개에 그 비밀이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상합니다.”

“비밀? 무슨 비밀이요.”

오혜선의 질문에 이정우는 내 얼굴을 쳐다봤다.

내가 설명하라고?

이에 헛기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아까 정우 형이 에스파디아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 들으셨죠?”

“SF소설 같은 내용이요? 외계인들이 지구를 공격한다는?”

“저희도 눈으로 확인하지 못했지만, 주어진 단서들을 조합하면 불가능한 일도 아닙니다.”

“…….”

한순간에 지상을 뒤덮은 안개만 봐도, 이미 현실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외계의 존재가 나온다고 해서 혼비백산할 정도로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오혜선은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르며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더니,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본론이 뭐예요.”

“외계의 존재들과 싸울 때, 세 번째 에피소드에 나오는 독 안개가 필요하다는 거죠. 그래서 게임이 끝나지 않는 겁니다.”

“독에 내성을 지닌 사람이 아니면…… 어차피 죽는다?”

“맞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세 번째 에피소드가 끝나면 게임이 끝날 가능성이 커요. 물론 그렇게 된다면…….”

“아까 얘기한 외계인들이 침공하는 거고?”

에스파디아를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그는 내게 이러한 말을 했다.

이 모든 것이 사전 연습이라고.

이는 세 번째 에피소드에 발생하는 독 안개 역시, 외계의 존재들로부터 면역력을 키우는 과정의 하나일 것이다.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오혜선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저기…….”

그러자 또 다른 40대 여자가 입을 열었다.

“듣자 하니, 사람들을 치료하는 힘을 가진 캐릭터가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맞습니다. 레이첼이요.”

“그럼…… 우리 남편 좀 봐줘요. 도저히 일어날 생각을 안 해요.”

침대에 누워 있는 두 명의 남자.

한 명은 오혜선과 이곳에서 일하는 직원이었고, 다른 한 명은 여자의 남편이었다.

이정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남자들의 상태를 살폈다.

“혹시 이분들, 독 안개 흡입하셨습니까?”

“네, 밖에 나가서 태양광 패널 확인하고 오는 길에, 갑자기 안개의 색깔이 변하는 바람에…….”

“얼마나 밖에 있었죠? 독 안개 흡입한 시간이 얼마나 돼요.”

“엄청 짧았어요. 길어봐야 5분?”

5분이면 전신 마비가 시작됐을 것이다.

길어봐야 5분이라고 했으니, 5분보다 짧게 있었다는 건데…… 플레이어가 아닌 일반인에게는 더욱 치명적인 건가?

“형, 치료할 수 있겠어요?”

“모르겠어. 해봐야지.”

이정우는 두 눈을 지그시 감고 남자들의 가슴에 양손을 얹었다.

우웅-

그러자 이정우의 양손에서 은은한 빛이 맴돌며 남자들의 몸에 흘러들어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혜선은 그 모습을 보고 입을 떡하니 벌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석고상처럼 굳은 표정으로, 이정우의 행동을 지켜봤다.

40대 여자는 초조한 눈빛으로 이정우를 쳐다보며 물었다.

“우리 남편 괜찮은 거예요?”

이정우는 천천히 눈을 뜨며 옆에 있는 여자를 쳐다봤다.

“아까 성함이…… 구현희 씨라고 하셨죠?”

“예? 아, 예.”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보아하니 쉬지도 못하고 계속 간호하신 것 같은데, 들어가서 쉬세요.”

“괜찮은 거예요?”

“괜찮을 겁니다.”

구현희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희망을 보고, 감격한 나머지 다리에 힘이 풀린 것으로 보였다.

뒤에 있던 정진영은 씁쓸한 표정으로 구현희를 쳐다보더니, 이마를 긁적이며 물었다.

“식사는 하셨어요?”

구현희는 대답 대신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정진영은 홀로그램을 열고, 5코인을 소모하여 포만감 알약을 구매했다.

“드세요. 한결 편해지실 겁니다.”

구현희가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자, 정진영은 우리 모두에게 포만감 알약을 배분하며 얘기했다.

“오늘 점심은 알약으로 대신하자.”

“네.”

이들의 불안감을 해소시키기 위해, 우리도 포만감 알약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멀뚱멀뚱 서서 상황을 지켜보던 오혜선은, 이정우를 쳐다보며 물었다.

“아까 그러셨죠. 씨앗을 구하러 왔다고.”

“네, 그렇습니다.”

“저기 있는 롱패딩 입고 따라오세요. 보여드릴 게 있습니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마법 같은 일에, 우리를 믿기로 한 모양이다.

이정우는 내 얼굴을 흘깃 쳐다보더니, 오혜선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재형이랑 같이 다녀오세요. 보시다시피 저는 할 일이 있어서.”

아직 남자들의 치료가 한창이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옆에 있던 설여원과 전완수, 최현, 정진영까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재형이가 움직이면 수색대도 같이 움직여야지.”

정진영은 싱겁게 웃으며 내게 어깨동무를 했다.

우린 오혜선을 따라 다시금 터널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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