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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265화 (265/373)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부 11화

“희연아, 총 몇 마리야?”

“새끼 멧돼지가 세 마리, 성체는 한 마리요.”

김희연의 브리핑을 듣고 눈꼬리가 올라갔다.

독 안개를 흡입한 뒤로 내 감각은 대폭 증가했다.

시각, 청각, 후각뿐만 아니라 지반의 울림을 감지하는 능력도 생겼다.

그 범위가 600m에 달하기에, 350m 전방에 있는 멧돼지들의 발소리는 충분히 감지할 수 있었다.

“확실해?”

“눈에 보이는 건 네 마리가 전부에요.”

이상하다.

멧돼지의 다리가 4개라서 감지하기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한 마리가 더 있다.

그것도 성체와 비슷한 무게를 지닌 녀석이.

설여원은 카타나를 손에 쥐며 물었다.

“어차피 지나가야 하는 길이야. 빨리 처리하자.”

“기다려. 묵직한 발소리가 있는데…… 눈에 안 보여. 위치만 파악하고 움직이자.”

설여원을 진정시키며 얘기하자, 뒤에 있던 황덕록이 입을 열었다.

“드론으로 확인하는 건 어때? 위에서 내려다보면 되잖아.”

“동물들도 독 안개를 흡입했으니 감각이 발달했을 거야. 드론 소리를 듣고 어떻게 나올지 예상이 안 돼.”

“동물이니까 도망치지 않을까? 동물들은 낯선 소리를 들으면 본능적으로 도망치거든.”

“새끼가 있잖아.”

어미 멧돼지 혼자라면 낯선 소리를 듣고 도망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새끼들이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분명 경계심이 극도로 높아질 테고, 우리에게 달려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아무리 새끼가 있어도, 우리가 어디 있는 줄 알고 달려들어?”

“이미 눈치챈 것 같은데?”

어미 멧돼지의 행동이 예사롭지 않았다.

푸르르- 킁, 킁!

350m나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미 멧돼지는 벌써 경계에 들어간 것으로 보였다.

우리의 체취를 맡은 건가?

투레질 소리가 거칠고, 연신 콧잔등을 찡그리고 있었다.

새끼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좀비 시체를 뜯어먹고 있지만, 성체의 노련한 감각은 무시할 수 없었다.

또한 장군이가 소리결 파티에 포함될 때 이런 문구가 있지 않았는가?

-동물의 경우 개체에 따라 신체 능력이 판이합니다.

감염된 멧돼지의 특징을 예상조차 할 수 없었다.

우리의 힘만 믿고 덤볐다가는 역으로 당할지도 모른다.

좀비화의 남은 시간은 35분.

선택을 내려야 한다.

난 두 눈을 지그시 감고, 모든 감각을 청각에 집중시켰다.

쿵- 뜨드득-

들린다.

새끼들의 뒤편에서 또 다른 시체를 뜯어먹고 있는 건가?

움직임은 많지 않지만, 무언가를 으적으적 씹는 소리가 귓가를 간질였다.

또 다른 성체가 새끼들과 함께 있다면…… 뒤를 잡힐 일은 없다.

“내가 정면으로 들어갈게. 다른 사람들은 우측 건물 뒤로 돌아서 이동해 줘.”

“그게 더 위험한 거 아니야? 건물 뒤편에 변종이라도 있으면 어떡해.”

“근방에 감지되는 인기척은 저기 있는 멧돼지들뿐이야. 변종은 없어.”

전완수는 어깨를 으쓱이며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움직이자.”

반대의견이 없기에, 손가락으로 하나, 둘, 셋 하는 신호와 함께 도로로 나섰다.

“가속.”

쾅-!!

지면을 박차며 노도와 같이 달려들었다.

성체 멧돼지의 감각은 새끼에 비해 월등히 좋을 것이다.

성체들의 시선이 내게 쏠리도록 만들고, 일행이 새끼부터 처리하면 된다.

뀌에에에엑-!!

어미 멧돼지는 멱따는 소리를 내지르며 성난 코뿔소처럼 달려들기 시작했다.

이마로 들이받으려는 움직임.

약점을 먼저 보이다니, 역시 짐승인가?

칼자루 밑동을 왼손으로 받치며, 양손으로 카타나를 내질렀다.

뿌드득-! 뜨득-!

‘무슨 말도 안 되는……!’

콰과과과과곽-!

양손으로 묵직한 압력이 느껴지고, 두 다리가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5레벨 카타나는 신체 능력이 2배나 증가한 2성 변종도 손쉽게 뚫어버리는 무기였다.

그런데, 고작 멧돼지의 두개골을 일격에 뚫지 못했다.

이건…… 평범한 몬스터를 풀링하려고 했는데, 필드 네임드를 건드린 꼴인가?

넘어지지 않기 위해 하체에 힘을 싣자, 멧돼지의 압력이 서서히 가라앉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근력이 그리 뛰어나진 않은 것 같다.

뀌이이……!

두개골을 단번에 꿰뚫지는 못했지만, 충격은 있는 모양.

이마에서 이슬처럼 흐르던 핏물이 점점 샘물처럼 솟아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양손에 힘을 주어 있는 힘껏 칼끝을 찔러넣었다.

뚜둑-!!

단단한 벽이 뚫리는 느낌과 함께 멧돼지의 이마에 카타나가 박혔다.

이제 됐…….

훅-!

“어?”

전신이 공중으로 솟구치며 중력을 거스르는 부유감이 느껴졌다.

분명 이마가 뚫렸는데, 놈은 죽지 않고 고개를 치켜들었다.

난 카타나와 함께 허공으로 치솟고 말았다.

꾸에에에에에엑!!!

이마에서 피를 흘리며 광분한 모습을 보이는 멧돼지.

놈의 쩍 벌어진 입이 두 눈에 들어온다.

이빨의 크기부터 압도적이었다.

저 이빨에 물리면…… 피부는 보호대가 보호해 주더라도, 뼈는 못 버틸 것 같은데?

훙-!

황급히 공기를 박차며 멧돼지와 거리를 벌렸다.

뇌가 뚫려도 죽지 않는다면, 으깨버리면 그만.

들고 있던 카타나를 칼집에 넣고, 간만에 건틀릿을 말아쥐었다.

그건 그렇고, 또 다른 성체는 왜 달려들지 않는 거지?

설마 새끼들을 지키고 있는 건가?

쿵- 쿵, 쿵쿵쿵쿵!!

뀌에에에에에에엑!!!

지금은 눈앞의 멧돼지부터 처리하는 게 급선무.

광분한 어미 멧돼지는 포효를 내지르며 일직선으로 달려들었다.

5레벨 카타나를 버틸 정도의 표피와 골밀도.

당황한 건 사실이지만, 두렵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놈과 첫 합을 주고받으며 확실하게 느꼈다.

내가 우위에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번 기회에 감염된 동물의 힘을 측정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좀비화와 광폭화를 사용한 내 근력은 1905.

멧돼지의 근력이 얼마나 되든,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

“후…….”

폐부에 들어찬 탁한 숨을 내쉬며 주먹을 말아쥐었다.

이윽고 어미 멧돼지가 내 리치에 들어온 순간, 발목과 허리, 어깨를 쏜살같이 비틀어 일직선으로 주먹을 내질렀다.

콰앙-!!!!

손끝으로 느껴지는 묵직한 타격감.

어깨로 전해지는 압력과 손목이 뒤틀릴 것 같은 중압감으로 인해, 반사적으로 두 눈에 힘이 들어갔다.

이 악물고 버티며 어깨와 팔꿈치에 힘을 더했다.

콰직!!!

그와 동시에 어미 멧돼지의 두개골이 으스러지며 거대한 해머에 찍힌 바위처럼 쪼개지는 모습을 보였다.

-감염된 짐승(성체)을 처리했습니다. 카운트 3000점이 주어집니다.

동시에 눈앞으로 떠오르는 홀로그램.

카운트를 3000이나 준다고?

근력만 봐서는 절대 3000이나 줄 녀석이 아닌데?

혹시 표피와 골밀도 때문인가?

합을 주고받으며 느낀 바로는, 성체 멧돼지의 근력은 대략 600대일 가능성이 높다.

다만 표피와 골밀도가 지나치게 높고, 몸무게가 주는 압력도 상당했다.

공격력보다 방어력이 지나치게 뛰어난 전형적인 탱커.

표피와 골밀도를 수치로 나타낸다면…… 대략 1800 정도 되려나?

잠깐, 이런 놈이 하나 더 있을 텐데?

얼얼한 손목을 털며 정면을 살피자, 저 멀리 300m 앞에서 멧돼지를 사냥하는 일행을 발견할 수 있었다.

윤혜리와 박재우, 황덕록이 새끼 멧돼지의 시선을 돌리고, 나머지 일행이 성체를 상대하고 있었다.

알파 변종처럼 예상할 수 없는 각도에서 공격을 가하는 게 아니라서, 일행의 합이 더욱 빛을 발하고 있었다.

멧돼지의 신체 구조상, 측면 방어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전완수가 꼬리 부분에서 시선을 끌고, 설여원이 앞에서 알짱거리며 시선을 유도했다.

그동안 이정우와 정진영, 최현과 김희연이 측면에서 난도질을 가하고 있었다.

멧돼지가 방향을 틀면 그에 맞춰 일행도 담당 부위를 바꾸며 상대하고 있었다.

쉴 새 없이 카타나를 휘두르며 멧돼지의 근육조직부터 노리고, 움직임에 제약을 걸며 효과적으로 피해를 주는 모습.

멧돼지는 변종처럼 움직임이 빠르지 않기에, 유효타 한 번 날리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계는 분명했다.

겉보기엔 일행이 유리한 것 같지만, 문제는 일행도 멧돼지를 죽이지 못한다는 것.

일행의 근력으로는 성체 멧돼지의 뼈대를 뚫을 수 없었다.

잠깐, 장군이는 어디 있는 거지?

낑- 끼잉, 낑.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찰나, 좌측 건물 외벽에서 낑낑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꼬리를 축 늘어뜨린 채 미동도 하지 않는 장군이.

[나 무서워]

머리 위에는 이러한 말풍선이 떠다니고 있었다.

멧돼지의 덩치를 보고 겁에 질렸는지,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장군이는 안전한 것 같으니, 다시금 멧돼지를 쳐다보며 하체를 접었다.

쾅-!!!

“비켜!”

목소리를 들은 이정우가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본다.

쏜살같이 접근하는 내 모습을 보고, 그는 황급히 상체를 비틀었다.

가속이 유지되는 상태였고, 성물의 효과로 인해 일행에게 달려가는 속도가 1.5배 증가했다.

거기에 좀비화와 광폭화까지.

100m를 돌파하는 데 1초도 걸리지 않았다.

물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멧돼지의 옆구리를 직시하며, 그대로 날아 차기를 가했다.

뻑-!!!!

두꺼운 무언가가 내부에서부터 터지는 소리가 울리고, 멧돼지는 기겁하는 모습을 보였다.

장기가 터졌는지, 놈은 피를 토하며 발악에 가까운 몸짓을 보였다.

이에 카타나를 뽑아 들고 단숨에 등을 타고 올랐다.

온몸을 비트는 멧돼지에게 정확한 타격을 입히는 건 쉽지 않기에, 카타나를 말아쥐고 쉴 새 없이 등과 목에 칼을 꽂았다.

뚫리지 않으면 뚫릴 때까지.

죽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양옆에 있던 일행이 멧돼지의 목에 칼끝을 내지르자, 발악에 가까운 몸짓이 조금은 둔해지는 모습을 보였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정수리만 집요하게 찔렀다.

푹! 푹! 뚝! 뚜둑! 콱!

-감염된 짐승(성체)을 처리했습니다. 카운트 3000점이 주어집니다.

그러자 눈앞으로 떠오르는 홀로그램.

뀌에에에엑!!

그러자 새끼 멧돼지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띠링!

-부모를 잃은 새끼 멧돼지들이 혼란에 빠집니다.

-전의를 상실하고 도주합니다.

눈앞의 홀로그램을 보고, 마음 한편이 착잡해지는 것을 느꼈다.

미안하지만…… 감염된 짐승과 인간은 공존할 수 없다.

이에 폐부 깊숙이 숨을 들이쉬며 멀어지는 새끼 멧돼지들에게 소리쳤다.

“크어어어어어어!!”

-포효를 내질러 반경 150m 내의 적에게 두려움을 각인시킵니다.

-두려움이 각인된 적은 6분간 이동속도 30% 감소 효과가 적용됩니다.

-‘집념’ 효과가 발동됩니다.

현저히 느려진 새끼 멧돼지들의 모습을 보고, 일행을 돌아보며 얘기했다.

“여기 있어. 내가 처리하고 올 테니.”

결인들의 표정도 썩 좋지 않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세상.

안일한 대응은 훗날 화를 부를 수밖에 없다.

씁쓸한 마음을 삼키며, 새끼 멧돼지들을 뒤쫓았다.

* * *

새끼 멧돼지들은 각각 400카운트를 주었다.

고작 1m 크기의 새끼 멧돼지가, 2배나 강해진 2성 변종보다 잡기 어렵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우린 잠깐의 정비 시간을 가지고, 다시금 수목원 깊숙한 곳으로 이동했다.

정비하는 동안 입을 여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전완수는 일행의 눈치를 보더니, 한숨을 내쉬며 얘기했다.

“멧돼지 가족한테는 미안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먹힐 수는 없잖아?”

“그걸 누가 몰라. 알지만 찝찝하잖아.”

최현이 입맛을 다시며 얘기하자, 뒤에 있던 윤혜리도 한마디 거들었다.

“이미 지난 일 그만 생각해요.”

“맞아요. 그거 잡느라 우리 강화제 알약 먹은 것도 생각해야죠.”

김희연이 맞장구치기에, 난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너희 강화제 알약 먹었어?”

“다들 다섯 알씩 먹었어요.”

“다섯 알이나?”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묻자, 맞은편에 있던 이정우가 입을 열었다.

“재형이 넌 어땠는지 몰라도, 우린 쉽지 않았어. 다섯 알은 먹어야 상대할 만하더라.”

하긴, 멧돼지의 가죽과 근육은 카타나의 예리함으로 어떻게 하더라도, 뼈를 뚫기 위해선 그에 상응하는 힘이 필요했다.

또한 멧돼지의 움직임이 내겐 느리게 보였지만, 일행에겐 달랐을 것이다.

지금의 난 좀비화와 광폭화를 사용한 상태니까.

그러자 뒤에 있던 정진영이 입을 열었다.

“그래도 감염된 동물의 신체 능력은 얼추 알게 됐잖아? 다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고.”

정진영의 말에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 지나지 않아 서서히 나타나는 건물의 윤곽.

타원형의 건물이었다.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글자와 함께 차단봉이 내려가 있는 건물.

따로 글자가 적혀 있는 건 아니지만, 건물의 외관을 보고 벌어지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놀란 눈으로 이정우를 쳐다보자, 그도 놀란 눈으로 내 얼굴을 쳐다봤다.

“형, 저거 맞죠?”

“맞아, 뉴스에서 봤던 건물.”

건물에 이름이 적혀 있는 건 아니지만, 기억 속에 선명히 남아 있는 외관이었다.

전 세계 단 두 곳뿐인, 인류 최후의 날을 위한 종자저장고.

마침내 도착했다.

대한민국 시드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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