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부 9화
장군이는 힘차게 걷는 모습을 보였다.
아침에 산책했음에도 불구하고, 체력이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장군이 또 산책하는 줄 아나봐.”
“왜?”
“머리 위에 말풍선 봐봐.”
최현의 말에 장군이를 쳐다보자, 머리 위에 음표가 떠다니고 있었다.
이 상황이 마냥 즐거운 모양이다.
하긴, 이전에는 수비팀의 그늘을 벗어날 수 없었으니 많이 답답했을 것이다.
대낮에 낯선 길을 걷는 게 정말 오랜만일 것이다.
그동안 장군이에게 잘해주지 못해서, 장군이의 들뜬 모습이 더욱 안쓰럽게 느껴졌다.
선두에서 지도를 살피며 나아가는 전완수와 설여원.
두 사람은 의견을 조율하며 열심히 나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난관이 발생하고 말았다.
“그러니까, 여기서 좌측으로 꺾으라는 거야?”
설여원이 묻자, 전완수는 머리를 긁적이며 얘기했다.
“잠깐만. 지도에는 두 갈래 길인데 왜 여긴 사거리야?”
“업데이트가 늦나 보지.”
“이게 컴퓨터냐? 종이 지도에 업데이트가 어디 있어.”
“아니 내 말은, 회관에 있던 분들이 지도 교체를 안 했다는 거지.”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자, 후방에서 따라오던 김희연이 선두로 나섰다.
“왜 또 이상한 거로 싸워요.”
“…….”
김희연의 말에 설여원과 전완수는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이젠 후배에게도 한 소리 듣는 동기들.
김희연은 지도를 유심히 살피더니, 좌측 대각선 방향을 가리키며 얘기했다.
“저쪽이네요.”
“확실해?”
전완수가 되묻자, 김희연은 어깨를 으쓱이며 얘기했다.
“지도 방향이랑 맞잖아요. 그리고 오른쪽은 딱 봐도 새로 깔린 길이고, 왼쪽은 노후된 길이고.”
“아.”
“옛날 지도면 옛날 길만 표시되어 있지 않겠어요?”
김희연은 깔끔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정진영은 그 모습을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역시 소리결은 이런 게 좋아.”
선배와 후배의 구분이 없는 구조.
모두를 친구처럼 대하는 결인들이었다.
최현은 일행의 표정을 보고 농담조로 얘기했다.
“사람이 말이야. 으잉? 위아래가 없어. 으잉?”
“위아래 만들어 줄까?”
이정우가 눈꼬리를 치켜뜨며 묻자, 최현은 배시시 웃으며 얘기했다.
“에이 형님, 농담이죠.”
“서로 하고 싶은 말 편히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좋아.”
“아이유, 그럼요, 그럼요.”
“아이유, 좋은 날, 좋은 날.”
근본이 없는 대화.
상황을 지켜보던 박재우와 황덕록은 실소를 터뜨리며 고개를 저었다.
의식의 흐름에 가까운 대화지만, 예전 소리결의 분위기가 되살아나고 있었다.
가볍고 즐거운 분위기.
참…… 그리운 모습이었다.
김희연의 안내에 따라 한참을 나아가자, 곧 비포장도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차량이 지나다니기도 힘든 좁은 길.
“두고 오길 잘했네.”
이정우의 말대로 좀비카를 두고 오길 잘했다.
끌고 왔으면 여기서 후진으로 나가는 것도 일이었다.
그 뒤로는 산행이나 다름없었다.
설여원과 전완수, 김희연은 수풀이 우거진 산을 가로지르며 뚫어지게 지도를 살폈다.
“정지.”
그 순간, 선두에 있던 설여원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읊조리며 오른손으로 주먹을 쥐었다.
모두가 걸음을 멈추자, 설여원은 상체를 숙이며 얘기했다.
“전방 500m 앞에 감염된 식물들.”
“숫자는.”
설여원의 곁으로 다가가자, 그녀는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얘기했다.
“지나가면 안 될 것 같아. 어제 봤던 식물도 있고, 이상하게 생긴 나무도 있어.”
“범위는.”
“완전히 감염된 숲이야. 끝이 안 보여.”
그러자 설여원의 옆에 있던 전완수가 입을 열었다.
“예전에 라스트아크 플레이할 때, 퀘스트에 이런 내용 있었어.”
“저번에 얘기했던 거? 숲을 피해서 이동하라는 퀘스트?”
“어, 이쪽은 위험하니 크게 돌아서 이동해야 할 것 같은데?”
식물 자체의 공격력은 뛰어나지 않지만, 점액이 문제였다.
또한 여기서 돌아가면…… 제대로 찾아갈 수 있을까?
보통 산도 아니고, 여긴 봉화군이다.
해발 1000m가 넘는 산과 숲이 우거진 지역이다.
낙오되기 딱 좋은 조건.
생각을 마치고 일행에게 얘기했다.
“여기 있어. 가서 정리하고 올 테니.”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뚫을 거면 같이 뚫어.”
“…….”
“우리 신체 능력 무시해?”
설여원이 한쪽 눈꼬리를 치켜뜨며 묻자, 뒤에 있던 결인들도 덩달아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하긴, 더는 예전의 결인들이 아니다.
근력 수치만 268에 달하는 결인들.
이에 싱겁게 웃으며 얘기했다.
“다들 옷 젖어도 괜찮겠어?”
“남아도는 게 옷이랑 물이야.”
설여원은 인베토리를 열고 양손에 생수를 하나씩 쥐었다.
식물의 점액은 물에 닿으면 사라지기에, 손에 쥐고 있는 생수를 머리 위에 부었다.
뒤에 있던 일행도 똑같이 옷을 적시고, 장군이의 몸에도 물을 뿌려주었다.
[물놀이 좋아!]
물놀이에 환장하는 래브라도 리트리버.
장군이는 제자리에서 껑충껑충 뛰며 좋아했다.
나도 전신에 물을 뿌린 뒤, 이정우를 쳐다보며 물었다.
“형, 장군이 목줄 쥐고 싸울 수 있겠어요?”
“할 수 있어. 진영이가 왼쪽 막아줄 거야.”
“그럼 여원이랑 완수, 희연이가 정면에서 길 뚫고, 현이랑 제가 중간에서 상황 조율할게요.”
“진영이랑 내가 너희 뒤에서 따라가고, 혜리랑 재우, 덕록이가 후방 담당해 줘.”
빠르게 대열을 정리하고, 앞에 있는 설여원을 쳐다봤다.
설여원은 식물의 위치를 살피며 얘기했다.
“저것들 조금씩 움직이고 있어.”
“어디로.”
“이쪽으로.”
식물에 청각이나 후각이 있는 것도 아니니, 지면의 진동으로 움직임을 감지하는 모양이다.
현재 500m 이상 떨어진 상태니, 이는 감지 범위가 500m를 넘어간다는 뜻.
설여원은 칼자루를 손에 쥐며 얘기했다.
“그럼, 간다.”
고개를 끄덕이자, 선두에 있던 세 사람이 쏜살같이 달려나갔다.
최현과 함께 그 뒤를 따라붙고, 결인들도 줄줄이 따라붙었다.
희뿌연 안개를 뚫고 나아가자, 질퍽한 지면과 함께 식물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무의 색깔이 이상하다.
밑동이 갈색이 아니라, 불에 그을린 것처럼 검은 빛을 띠고 있었다.
촤악-!!
설여원이 카타나를 휘두르자, 눈앞의 식물이 반으로 갈라지며 세차게 발악하기 시작했다.
징그럽게 꿈틀거리는 줄기를 내가 처리하고, 뒤따라오는 정진영이 꽃받침을 잘라냈다.
후방에 있던 황덕록이 뿌리를 자르는 식으로 길을 뚫었다.
결인들이 전속력으로 달리면 100m 돌파에 2초가 걸리지 않기에, 식물들은 반응조차 못 하고 잘려나갔다.
빠르게 카운트를 높이며, 각자 맡은 부위를 처리하며 산행을 이어나갔다.
월! 월월!
하지만 변수는 언제나 가까운 곳에 있는 법.
전속력으로 달리던 장군이가 기괴한 식물들을 보고 당황했는지, 꼬리를 축 늘어뜨리며 짖기 시작했다.
이정우가 왼팔에 힘을 주어 강제로 줄을 당기자, 팽팽하게 당겨진 줄이 끊어져 버리는 모습을 보였다.
“장군아!”
이정우가 소리치자, 선두에서 길을 뚫던 설여원이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전완수와 김희연도 걸음을 멈추자, 그 틈을 놓치지 않은 식물들이 덤벼들기 시작했다.
식물들끼리 서로 교감이라도 하는 건가?
시냅스가 연결이라도 된 것처럼, 수십 구의 나무와 파리지옥이 일제히 줄기와 가지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수비 대형!”
정진영이 소리치자, 일행은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접근하는 식물들을 저지했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점액과 그에 따라 질퍽해지는 지면.
치이이이-
뒤이어 양팔에서 후끈거리는 열기와 함께 연기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이에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외쳤다.
“재우랑 덕록이! 혜리는 인벤토리에서 물병 꺼내! 사방에 물 뿌려!”
“이거 산성이란 말은 없었잖아!”
전완수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나도 몰랐으니까.
끈적한 점액인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산성의 성질을 보였다.
파리지옥이 끈끈이로 파리를 붙잡은 뒤, 서서히 녹여서 섭취하는 것과 동일한 구조인가?
촤라락-!!
그 순간, 지반을 뚫고 나오는 굵직한 뿌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지름 20㎝에 달하는 뿌리가 발목을 타고 전신을 휘감기 시작했다.
빠르다.
세차게 몸을 비틀었지만, 부러지긴커녕 땅속에서 쭉쭉 뽑혀 나오기 시작했다.
끊어질 생각은 하지 않고, 빠르게 몸을 타고 오르는 뿌리.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하는 찰나.
촤학-!
옆에 있던 전완수가 지면에 칼질을 하기 시작했다.
밑동이 잘려나가자, 전신을 칭칭 감고 있던 압력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전완수는 눈살을 찌푸리며 외쳤다.
“X발! 이건 또 뭐야? 칡이야?”
정확히 무슨 식물인지 몰라도, 시간을 끌어서 좋을 게 없다.
띠링-
그 순간, 눈앞으로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반려견이 상황을 인지합니다.
-주인을 향한 충성도가 100%에 도달한 상태입니다.
-주인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웁니다.
-스킬 ‘투견’이 생성됩니다.
[투견]
-반려견이 분노를 느낄 시 발동됩니다.
-전투에 적합하도록 신체를 변환합니다.
-소리결 파티의 신체 능력을 고려하여, 300의 근력을 부여받습니다.
-후각과 청각이 예민해지며, 분노가 가라앉을 때까지 유지됩니다.
홀로그램을 확인하고 뒤를 돌아보자, 벌벌 떨고 있던 장군이가 이상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르르르르…….
으드득- 드득- 드득.
날카로운 송곳니가 자라나고, 털끝이 빳빳하게 서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또한 뼈가 뒤틀리는 소리와 함께 전신이 비대해지기 시작했다.
수사자와 맞먹을 정도로 거대해지더니, 붉게 충혈된 눈으로 감염된 식물들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크어어!!
짖는 소리도 달라졌다.
맹수처럼 포효를 내지르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근육질로 변한 네 개의 다리와 총알처럼 튀어 나가는 움직임.
장군이의 근력이…… 일행보다 높다.
쩌적-!!
장군이가 앞발을 휘두르자, 시꺼먼 나무가 반으로 쪼개지는 모습을 보였다.
[분노]
머리 위에는 이러한 말풍선이 떠오른 상태였다.
결인들은 장군이의 모습을 보고 벌어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전완수는 마른침을 삼키더니, 장군이를 쳐다보며 읊조렸다.
“가, 가라 장군이. 모, 몸통 박치기!”
“지랄하지 말고 싸워!”
최현이 소리치자, 전완수는 다시금 상황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장군이는 쏟아지는 점액을 온몸으로 받고 있지만, 털에 방수 처리라도 된 것처럼 흘러내리는 모습을 보였다.
소리결의 반려견은 독 안개에 내성을 지닌다더니, 감염된 식물의 점액에도 저항하는 모습을 보였다.
날카로운 발톱으로 식물이든 나무든 할 것 없이 모조리 잘라버리고, 돋아난 송곳니로 물어뜯는 모습.
장군이의 폭력성에 나도 모르게 마른침이 넘어갔다.
촤라라락-!!
하지만 지반을 뚫고 나온 뿌리가 장군이의 뒷발을 붙잡자, 제아무리 장군이라도 주춤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장군이는 재빨리 허리를 접어 뿌리를 물어뜯었지만, 잘려 나가는 뿌리보다 전신을 옥죄는 뿌리의 숫자가 더욱 많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재빨리 인벤토리에서 물통을 꺼낸 뒤, 머리 위에 쏟아붓고 일행에게 얘기했다.
“다들 여기 있어.”
“뭐?”
설여원은 눈앞의 식물을 처리하더니, 놀란 눈으로 내 얼굴을 쳐다봤다.
이에 일행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땅에 물 뿌려, 뿌리들 솟아나지 못하도록.”
“넌 어쩌려고.”
“벌초할 때가 된 것 같아서.”
장군이도 구출해야 하고, 이 지긋지긋한 숲도 빨리 벗어나려면 다른 수가 없다.
“다이브.”
두근-
심장의 고동을 느끼며, 연달아 스킬을 사용했다.
“광폭화, 감지, 가속.”
감지를 사용하자, 온 세상이 푸른색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감염된 식물도 좀비로 분류되는 건가?
그렇다면 하울링도 통하겠지.
폐부 깊숙이 숨을 들이쉬고, 눈앞의 푸른 숲을 향해 포효를 내질렀다.
“크어어어어어어!!!”
-150m 이내에 감정을 지닌 적이 없습니다.
-두려움이 각인되지 않습니다.
이건 안 되는구나.
아쉬운 건 사실이지만…… 뭐 어때?
전부 베어버리면 그만.
쾅-!!!
섬광처럼 나아가며, 눈앞의 모든 식물을 갈가리 찢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