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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262화 (262/373)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부 8화

설여원을 따라 회관 밖으로 나가자, 귓가를 간질이는 다수의 발소리를 인지할 수 있었다.

대략 120m 거리.

숫자는 200마리 이상으로 추정된다.

설여원은 좌우를 번갈아 살피더니, 눈살을 찌푸리며 얘기했다.

“……어디였지?”

그 잠깐 사이에, 세상은 어둠에 덮였다.

초행길이기도 하고, 수비팀이 손전등을 켜지 않는 한 차량의 위치를 확인할 수 없었다.

이에 무전기를 손에 쥐며 얘기했다.

“정우 형, 차량 상향등 켜줘요.”

번-쩍!

대답 대신 눈부신 상향등이 이곳으로 날아들었다.

대략 150m 거리에 차량이 정차된 상태였다.

그러자 이곳으로 달려오던 좀비들은 좌우로 나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카타나를 말아쥐며 읊조렸다.

“가속.”

쾅-!!

지면을 박차며 튀어 나가자, 순식간에 좀비들의 얼굴이 두 눈에 들어왔다.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카타나를 휘두르자, 좀비들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지기 시작했다.

훨씬 예리해진 칼끝으로, 좀비들의 육신을 사정없이 절단 냈다.

브르릅- 르르르릅.

그 순간, 귓가를 스치는 이질적인 음성에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좌측 30m 거리.

예민해진 감각 속으로 변종의 위치가 선명하게 그려진다.

“감지.”

-3분 동안 500m 내의 좀비와 변종의 움직임을 감지합니다.

-움직임이 포착된 적은 감지의 지속 시간이 끝나도 10초간 위치를 추적할 수 있습니다.

좌측 30m 거리에 위치한 두꺼비 모양의 자주색 변종.

베타2.

‘온다.’

놈의 위치를 인지한 순간, 잔뜩 당겨진 혓바닥이 빗금을 그으며 날아들었다.

텅-!

날아드는 혓바닥을 칼등으로 가볍게 쳐낸 뒤, 어깨와 팔꿈치를 비틀어 다시 한번 카타나를 휘둘렀다.

촤악-!

사선으로 휘두른 카타나가 베타2의 혓바닥 끝을 잘라버리고, 그곳에서 붉은 핏물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르르릅- 르릅-

혓바닥을 다시 감으려고 하기에, 왼손으로 놈의 혓바닥을 붙잡았다.

혓바닥을 당기는 힘을 이용해서, 순식간에 놈의 코앞으로 접근했다.

훙-!

브르릅?

놈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혓바닥에 매달린 내 얼굴을 응시했다.

“혀를 함부로 놀리면 안 되지.”

나지막이 읊조리며 베타2의 미간에 카타나를 찔러넣었다.

-변종을 처리했습니다. 카운트 200점이 주어집니다.

일단 하나.

시선을 돌리자, 공단 방면에서 달려오는 자주색 덩어리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눈에 보이는 건 베타 둘, 감마 셋.

변종의 숫자는 많지 않았다.

이에 돌아볼 새도 없이, 뒤에 있는 설여원을 불렀다.

“여원아! 쇠…….”

“봤어.”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설여원.

설여원은 쇠뇌를 견착하며 공단 방면을 직시했다.

퉁! 퉁퉁! 퉁! 퉁! 퉁퉁!

뒤이어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쇠뇌를 발사했다.

펑-! 퍼펑! 펑-!

-변종을 처리했습니다. 카운트 200점이 주어집니다.

-변종을 처리했습니다. 카운트 200점이 주어집니다.

-변종을 처리했습니다. 카운트 200점이 주어집니다.

고막을 울리는 폭음과 함께 자주색으로 보이던 감마변종들이 사라졌다.

정확히 감마변종들을 노린 사격.

문득, 설여원이 처음 쇠뇌를 사용하던 순간이 떠오른다.

대장 좀비를 조준하라고 하자, 단 한 번도 쏴본 적 없다며 당황하던 모습이 말이다.

그런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방아쇠를 당기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

멍한 표정으로 설여원을 쳐다보자, 들고 있던 쇠뇌를 어깨에 둘러메고 다시금 카타나를 손에 쥐었다.

“좀비는 우리한테 맡겨. 베타는 네가 처리해.”

“……알았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대답이 먼저 나왔다.

멀어지는 설여원을 바라보며, 괜스레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래, 결인들은 내가 지켜줘야 하는 대상이 아니다.

등을 맞대고 싸울 수 있는, 둘도 없는 동료였다.

카각-! 카하아아아악!!

크어어어어!!

감마 변종의 가스를 흡입한 좀비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신체 능력이 1.3배 증가한 좀비들이지만, 지금의 결인들에겐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다.

걱정은 뒤로 미루고, 하체를 접으며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쾅-!!

허공에서 베타 변종들의 위치를 파악한 뒤, 있는 힘껏 공기를 박차며 날아들었다.

훙-!

좌측 40m 거리에 있던 베타 변종이 한 박자 늦게 내 위치를 발견하고 혓바닥을 굴리기 시작했다.

“늦어.”

푹-!

-변종을 처리했습니다. 카운트 200점이 주어집니다.

혓바닥이 날아들기 직전에, 베타 변종의 두개골을 꿰뚫을 수 있었다.

잔뜩 말려 들어갔던 혓바닥이 축 처지는 걸 보고, 그 축축하고 거북한 혓바닥을 왼손으로 붙잡았다.

악력을 가하자, 말랑말랑한 혓바닥을 뚫고 들어가는 오지의 촉감이 느껴졌다.

혓바닥을 꽉 쥐고, 있는 힘껏 휘둘렀다.

근력이 381이나 되는데, 어깨에 부하가 걸린다.

무게가 상당한데?

한 손으로 휘두르는 건 무리였나?

하지만 무게가 상당한 만큼, 근방 50m 내의 좀비들이 베타 변종의 시체에 부딪혀 힘없이 나가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슉-!

동시에 베타의 시체를 말아쥐는 무언가.

우측 대각선 70m 거리에 있던 또 다른 베타 변종이 동료의 시체를 혓바닥으로 말아쥐는 모습을 보였다.

동시에 시체를 잡아끄는 힘이 느껴졌다.

시체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나도 왼팔을 옆구리에 붙이고 있는 힘껏 잡아당겼다.

뜨드득- 쯔득! 촤학-!!

양쪽에서 잡아당기는 힘을 버티지 못하고, 시체의 혓바닥이 뽑히고 말았다.

70m 거리에 있는 베타 변종이 뒤뚱거리는 모습을 보이기에,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노도와 같이 달려들었다.

쾅!!

순식간에 좁혀지는 거리.

브르릅-!

놈은 재빨리 혓바닥을 굴리며 채찍처럼 휘두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내 오른손이 베타의 콧잔등까지 도달한 상태.

촥-!!

-변종을 처리했습니다. 카운트 200점이 주어집니다.

카타나로 두개골을 꿰뚫은 뒤, 놈의 기다란 혓바닥을 쥐고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베타의 시체에 부딪힌 좀비들은 대형 트럭에 받힌 고라니처럼 퍽퍽 쓰러져 나가는 모습을 보였다.

좀비들의 공세가 한풀 꺾이는 걸 확인하고, 다시금 카타나를 말아쥐며 정리에 나섰다.

* * *

좀비와 변종의 숫자가 많지 않기에, 정리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좀비들의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을 즈음, 뒤를 돌아보며 일행을 불렀다.

“다들 괜찮아?”

“거뜬해!”

“여기도 정리 완료!”

수색대의 대답을 듣고, 다 같이 수비팀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곳엔 좀비들의 혈액을 뒤집어쓴 이정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피부에 수포 생긴 놈들이 있던데, 그것들은 좀 까다롭네.”

“감마 변종의 가스를 흡입한 놈들이에요. 그래 봐야 근력 31 아니에요?”

“냄새 때문에 까다로워.”

“아.”

감마 변종의 냄새는 지독했다.

가스를 흡입하고 강화된 좀비들도, 이와 비슷한 악취를 풍겼다.

고등어 썩은 내라고 해야 좋을지, 음식물 쓰레기 냄새라고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놈들의 혈액을 뒤집어쓴 이정우의 몸에서 역한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옆에 있는 윤혜리는 구역질을 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웬만한 악취는 다 맡아봤는데, 이렇게 저돌적인 악취는 처음이에요.”

“저돌적인 악취는 또 뭐야.”

윤혜리의 표현에 웃음이 터졌다.

주변에 있던 일행도 웃음을 터뜨렸지만, 다들 콧잔등을 찌푸리거나 몇 차례 숨을 가다듬는 모습을 보였다.

뒤이어 이정우의 질문이 들려왔다.

“지도는 찾았어?”

“네, 찾긴 찾았는데……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의 위치는 표기되어 있지 않아요.”

“곤란하네. 늦기 전에 찾아야 하는데.”

이정우가 씁쓸한 표정을 짓자, 뒤에 있던 정진영이 훅, 하고 숨을 뱉으며 얘기했다.

“지금 네 냄새가 더 곤란해. 마을회관에 화장실 있던데, 거기서 씻고 가자.”

길도 모르는데 마당에 어둠까지 내려앉았으니, 수목원을 찾아 나서는 건 내일로 미루어야 할 것 같다.

결국 마을회관에서 간단하게 샤워하고, 인벤토리에 넣어둔 텐트를 설치했다.

언제 챙겼는지 몰라도, 최현은 인벤토리에 넣어둔 방향제를 꺼내어 깨끗하게 빨아둔 보호대에 뿌렸다.

* * *

다음 날 아침, 무언가가 내 얼굴을 핥는 촉감에 잠에서 깨어났다.

헥헥헥, 월, 월!

게슴츠레 눈을 뜨며 일어나자, 콧바람이 상당히 강한 장군이의 얼굴이 두 눈에 들어왔다.

“아으…… 장군아, 지지. 지지야.”

“네 얼굴이 지지야?”

살짝 열린 텐트 사이로 설여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맞네?

내 얼굴이 지지는 아니지.

장군이를 보면 반사적으로 안 돼, 지지, 하지 마, 이런 말을 반복하다 보니 무의식적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이에 장군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정정했다.

“지지는 아니지만, 그렇게 핥으면 안 돼. 장군이 알겠어?”

헥헥헥, 월!

띠링-

-번역기를 사용하시겠습니까?

순간, 눈앞의 홀로그램을 보고 눈코입이 떡 벌어졌다.

번역기?

설마, 장군이가 하는 얘기를 번역할 수 있다는 건가?

당혹감에 입술을 벙긋거리자, 텐트 밖에서 설여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빨리 나와서 밥 먹어. 혜리가 간만에 실력 발휘했어.”

“여, 여원아. 설여원!”

“왜.”

“여기, 여기 이것 좀 봐봐!”

곧 텐트의 입구가 열리고, 설여원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설여원은 내 얼굴을 멀뚱멀뚱 쳐다보더니, 홀로그램을 발견하고 두 눈을 휘둥그레 뜨는 모습을 보였다.

“번역기?”

“이거, 이거 나만 보이는 거 아니지? 장군이가 하는 얘기 번역해 준다는 거지?”

“빨리 수락 안 누르고 뭐해!”

이에 얼떨떨한 정신을 다잡고 황급히 수락을 눌렀다.

[밥! 밥 먹자!]

그러자 장군이의 머리 위로 이러한 말풍선이 생성되었다.

말풍선을 발견한 설여원은 양손으로 입을 가리더니, 눈물까지 글썽이며 장군이를 와락 안았다.

“장군아!!!”

[???]

뒤이어 텐트 앞으로 모이는 결인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침부터 뭔 소란이야.”

근엄한 표정과 달리, 박재우는 분홍색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하지만 장군이의 머리 위에 놓인 말풍선을 발견하고, 박재우는 들고 있던 국자를 떨어뜨리며 벌어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장군아!”

박재우도 장군이를 부르더니, 장군이의 머리를 쉴 새 없이 쓰다듬었다.

[밥? 밥 먹는 거야? 냄새 좋아!]

“장군이가 말을 해!”

물론 말을 하는 건 아니지만, 생각이 말풍선으로 표시되니 대화가 되는 느낌이 들었다.

이건…… 전 세계 모든 견주들의 소망이 아닐까?

본인의 반려견과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다니.

기적이었다.

곧 너도나도 장군이를 껴안고 쓰다듬으며 기쁨을 만끽했다.

장군이는 일행의 표정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금세 꼬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영문은 모르겠지만, 모두의 관심에 즐거운 모양이다.

뒤이어 장군이의 머리 위로 말풍선이 떠올랐다.

[좋아, 나도 좋아.]

* * *

윤혜리가 차려준 이른 아침으로 허기를 달래고, 주차장에서 장군이를 산책시켰다.

예전 실개천 너머의 생존자들이 매일같이 해주던 일이, 이렇게 수고스러운 일인 줄 몰랐다.

요리와 설거지, 빨래, 장군이 산책까지, 무엇 하나 쉬운 게 없었다.

아침부터 진을 뺀 뒤에야, 우린 지도 앞에 모일 수 있었다.

“일단 내 생각부터 얘기할게.”

정진영은 지난밤 수색대가 지도를 살피며 생각한 방향을 제시했다.

이정우는 팔짱을 낀 채 뚫어져라 지도를 쳐다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지도에 보면 연두색으로 표시된 장소가 하나 더 있어. 그건 알고 하는 소리지?”

“어차피 다른 선택지는 없잖아? 일단 가까운 곳부터 확인하고, 그 뒤에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게 좋지 않겠어?”

“하긴, 그건 그렇지.”

전완수는 이정우와 정진영의 대화를 유심히 듣더니, 입맛을 다시며 얘기했다.

“정했으면 지체할 필요 없이 바로 움직이죠?”

“차량은 여기 두고 이동하자.”

“안 타고 가요? 산길인데?”

“산길이니까 두고 가야지. 어제 잡은 식물 기억 안 나? 차 타고 가다가 그놈들 만나면 곤란해져.”

“…….”

“나중에 빠져나오는 것도 생각하면, 좀비카는 여기 두고 이동하는 게 맞아.”

“만약 왔던 길로 빠져나올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좀비카 버리고 가는 거죠?”

“그래야지.”

이정우의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전완수만 씁쓸한 표정으로 중형차와 중형트럭을 쳐다봤다.

이정우는 지도 위에 가는 길을 표시하며 얘기했다.

“도로 이름은 몰라도, 이 길이 제일 빠른 것 같아.”

설여원은 이정우가 표시한 길을 유심히 살피더니, 주변 지형을 살피며 물었다.

“저쪽이 북쪽이죠?”

“맞아.”

“장군이는 어떡하죠? 저희가 도보로 이동하면 차에 두고 갈 수도 없는데.”

이정우는 장군이를 유심히 쳐다보더니, 장군이에게 목줄을 채우며 얘기했다.

“같이 가야지. 우리 파티원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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