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부 4화
전완수가 운전하는 버스에 올라 뒤따라오는 차량을 확인했다.
줄줄이 따라오는 중형차와 중형 트럭, 승합차까지.
사람이 줄어들면서 차량에 여유 공간이 많아졌다.
또한 인벤토리가 생기면서 짐칸도 넉넉했다.
“차가 너무 가벼운데? 안이 텅 비었다는 게 느껴질 정도로.”
전완수의 말에,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방지턱을 넘을 때 이전보다 통통 튀는 느낌이 들었다.
뒤에 있는 최현을 쳐다보자, 그는 홀로그램으로 무언가를 확인하고 있었다.
“뭘 그렇게 심각하게 보고 있어?”
“상점 보고 있었어.”
“상점?”
“이용권 4장 있는데, 살 게 없어서.”
일전에 황금동에서 좀비들을 처리한 뒤에 얻은 상점 이용권이 있었다.
[단결된 의지]라는 퀘스트를 완료하고 받은 이용권이었다.
윤혜리와 김희연, 박재우와 황덕록은 상점 이용권으로 보호대를 구매했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사용하지 않고 적립해 둔 상태였다.
난 최현의 옆에 앉아 상점에 있는 아이템을 확인했다.
대부분이 근접무기였고, 무기의 레벨도 1이었다.
5레벨 카타나를 지니고 있는 우리에겐 상점의 무기들은 별로 메리트가 없었다.
상점 이용권 4장을 소모해야 하는 석궁은 이미 쇠뇌가 있기에 구매할 필요가 없었다.
그나마 눈에 들어오는 무기라면 상점 이용권 3장을 소모해야 하는 방패.
가로 60㎝, 세로 1m 20㎝에 달하는 거대한 방패였다.
하지만 이 또한 함선에서 5개나 얻었기에, 당장 구매할 필요는 없었다.
윤혜리는 양손에 손도끼를 들고 다니기에 방패가 필요 없다고 했다.
김희연과 박재우는 방패가 시야를 가려서 싫다고 했고, 최현은 방패를 사용하면 검을 휘두르기 불편하다며 거절했다.
그래서 설여원과 전완수, 이정우, 정진영, 황덕록이 자연스레 방패를 소유하게 되었다.
최현은 한참이나 상점을 살피더니, 한숨을 내쉬며 얘기했다.
“그냥 5장 모을 때까지 기다려야겠는데?”
“5장이 제일 좋은 무기지?”
“어. 1장으로 살 수 있는 건 보호대랑 응급 키트 정도고, 2장부터 근접무기, 3장이 방패, 4장부터 원거리.”
“5장이 소총이었나?”
“맞아. 중력장 소총.”
중력장 소총.
탄알 소모 없이 충전식으로 사용하는 무기였다.
라스트아크를 플레이할 때도 딱 한 번 사용해 본 게 전부였다.
긴급 퀘스트를 진행하며 만져볼 기회가 있었고, 퀘스트 완료와 동시에 무기를 반납해야 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게임처럼 NPC가 있는 것도 아니기에, 소총을 빌리고 반납하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최현은 홀로그램을 닫으며 얘기했다.
“좀 더 모아서 생각해야겠다.”
“그래, 이동하는 길에 긴급 퀘스트 생성될지도 모르니까.”
“S급 퀘스트가 생성될까? S급 아니면 상점 이용권 안 주잖아.”
“지켜봐야지.”
최현은 두 눈을 게슴츠레 뜨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를 마치고 전완수의 옆으로 다가가자, 그는 하품하며 입을 열었다.
“어우, 심심해.”
“심심한 게 좋은 거지.”
“대공습 때 좀비들이 전부 몰려와서 그런지, 최소한 2시간은 아무 일도 없을 것 같은데?”
“혹시 모르니 집중해. 쓰러졌던 좀비들이 시체 먹기로 회복했을 가능성도 있으니까.”
전완수는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버스의 앞면 유리 너머로 새하얀 안개가 보이는 것으로 보아, 독 안개 제거기도 이상 없이 작동하는 모양이다.
혹여나 독 안개 제거기가 버스를 따라오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현재 110㎞의 속도로 이동하는 버스를 따라올 정도면, 속도에 영향을 받지 않는 모양이다.
고속도로에 올라선 버스는 한참이나 무탈하게 나아갔다.
* * *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한참을 올라갔다.
대구까지는 아무런 위협이 없었고, 칠곡을 지날 때 몇몇 좀비들이 고속도로로 달려오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좀비들의 신체 능력이 아무리 증가했다고 한들, 120㎞로 달리는 버스는 따라오지 못했다.
또한 핸들을 쥐고 있는 전완수의 말에 따르면 개구리처럼 생긴 변종도 육안으로 확인했다고 한다.
공명 좀비들이 베타, 감마, 델타로 변이됐기에, 앞으로는 변종의 등장 빈도도 높아질 것이다.
지금은 씨앗 종자를 확보하는 게 우선이기에, 좀비들을 무시하고 곧장 봉화군으로 이동했다.
포만감 자판기의 남은 시간은 67일.
아직 여유롭지만,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려면 길에서 시간을 허비해선 안 된다.
혹시 모를 상황이라면 하나뿐.
한국에 있는 씨드 볼트에 씨앗 종자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다.
60%가 안 되면 노르웨이까지 가야 하기에, 느긋하게 움직일 수 없었다.
치지직- 치직-
뒤이어 무전기에서 신호가 들어왔다.
-중형차 휘발유 고갈. 근처에 휴게소 없어?
무전기로 들려오는 설여원의 목소리.
전완수를 쳐다보자, 그는 안개 속을 응시하며 무전기를 들었다.
“조금만 더 가면 동명 휴게소 나와. 거기서 주유하고 가자.”
-확인.
오래 지나지 않아 핸들을 쥐고 있던 전완수는 서서히 속도를 줄이며 휴게소로 진입했다.
이전의 기억이 떠올라서, 차내의 일행은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끄르르르…… 까각…….
동시에 귓가를 간질이는 기묘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전완수는 좌우를 살피더니, 눈살을 찌푸리며 얘기했다.
“좌측에 좀비 30마리. 우측에 알파2.”
“알파2 몇 마리.”
“눈에 보이는 건 네 마리.”
“문 열어.”
전완수가 앞문을 열자, 코를 찌르는 악취가 차내로 들어왔다.
이에 미간을 찌푸리며 카타나를 쥐고 뛰어내렸다.
40㎞로 달리는 버스에서 뛰어내려도 아무런 부담이 없었다.
착지와 동시에 곧장 우측으로 달렸다.
끼리릭- 키릭-
자욱한 안개 너머로 건물의 테두리가 눈에 들어오고, 그 속에서 알파2의 음성이 들려왔다.
음성이 들려오는 곳으로 박차를 가하자, 3m 크기의 알파2 네 마리가 일제히 안개 속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또한 좌측 주차장에 있던 좀비들도 목젖을 갈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까각……! 깍!
좀비들의 울음소리가 이전과 달라졌다.
쇳소리만 들리던 좀비들의 입에서, 짧은 탄성에 가까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훙-!
뒤이어 안개 속에서 나타나는 알파2의 오른팔.
이에 손에 쥐고 있던 카타나를 사선으로 그었다.
촤악-!
칼날에 닿자마자 깔끔하게 잘려나가는 알파2의 오른팔.
예전 알파1을 처리할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5레벨에 도달한 카타나는 신체 능력이 2배나 증가한 알파2마저 깔끔하게 잘라버릴 수 있었다.
키에에에엑!!
팔이 잘려나간 녀석이 비명을 지르자, 양옆에 있던 알파2는 주춤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혹여나 도주할 가능성이 있기에, 하체를 접으며 읊조렸다.
“가속.”
쾅-!!!
지면을 박차며 전광석화처럼 달려드는 찰나, 우측 건물 옥상에서 쏜살같이 날아드는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재빨리 공기를 박차며 방향을 비틀자, 지름 50㎝에 달하는 두꺼운 혓바닥이 간발의 차로 빗나가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
‘혓바닥?’
베타 변종이다.
착지와 동시에 옥상을 쳐다보자, 개구리처럼 앉아있는 베타의 형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대략 4m에 달하는 크기.
베타, 감타, 델타는 시작부터 2성이라더니, 기억 속의 모습보다 2배는 거대했다.
르르릅- 르릅-
베타의 혓바닥이 스프링처럼 접히더니, 다시금 쏜살같이 뻗어져 나왔다.
이에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좌측으로 몸을 굴렸다.
쾅!!
놈의 혓바닥은 아스팔트 바닥을 뚫고 들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움푹 파인 지면을 보고 반사적으로 눈꼬리가 올라갔다.
이거 혓바닥 맞아?
라스트아크에서는 밧줄처럼 흐느적거렸는데, 이건 탄력부터 남다르다.
몸체의 움직임은 느리지만, 혓바닥을 뻗는 속도는 가공할 만한 속도와 파괴력을 지녔다.
놈이 2성이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브르르릅- 르르릅-
르르릅-
르르릅- 트륵-
뒤이어 옥상에서 들리는 기이한 소리.
4마리의 베타 변종이 나타나고, 놈들은 일제히 혓바닥을 당기며 내 위치를 조준했다.
회피? 공격?
찰나의 고민 끝에, 카타나를 말아쥐며 상황에 집중했다.
5레벨 카타나의 성능을 확인할 기회다.
훙! 후훅-! 훙!
빗금을 그으며 쏜살같이 날아드는 50㎝ 두께의 혓바닥들.
두 눈 부릅뜬 채 쉴 새 없이 카타나를 휘둘렀다.
촤좌좌좍! 촤악!
깔끔하게 잘려나가는 혓바닥들이 차디찬 아스팔트 바닥에 떨어진다.
절단면에서 검붉은 핏물이 분수처럼 쏟아지고, 바닥에 떨어진 덩어리들은 거대한 애벌레처럼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밟힌 지렁이처럼 격하게 꿈틀거리는 혓바닥 중 하나가 내 발목을 핥았다.
그 질척하고 불길한 촉감에,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아으 썅…….”
징그러워서 못 봐주겠네.
올라오는 구역질을 참으며 하체를 접었다.
쾅!!!
옥상으로 뛰어오르자마자 베타 변종의 안면에 칼질을 가했다.
지금 보니 이것들…… 목이 없다.
얼굴과 상체의 구분이 없기에, 모조리 잘라버린다는 각오로 난도질을 가했다.
-변종을 처리했습니다. 카운트 200점이 주어집니다.
알파2보다 2배는 많이 준다.
아니지, 알파2도 신체 능력이 2배 증가했으니 200카운트 주려나?
옥상에 있는 베타 변종들을 빠르게 정리하고 있는데, 한 놈이 지면으로 뛰어내리는 모습을 보였다.
도망치는 모습조차 개구리처럼 펄쩍펄쩍 뛰어다니는 놈들.
추격하려 하자, 어느새 옥상으로 기어 올라온 알파2들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키에에에엑!
비명을 지르며 달려들기에, 미간을 찌푸리며 알파2의 가슴에 발길질을 가했다.
뻐걱-!!
갈비뼈가 으스러지며 알파2의 입에서 핏물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카타나를 휘둘러 머리를 잘라내자, 눈앞으로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변종을 처리했습니다. 카운트 200점이 주어집니다.
역시, 이제 알파2도 200카운트를 준다.
베타 변종이 도망친 방면을 살피자, 어느새 좀비들을 처리하고 베타2에게 달려가는 일행을 발견할 수 있었다.
위협은 느껴지지 않았다.
일행의 현재 신체 능력은 268.
2배 강해진 알파2의 신체 능력이 250 정도인 걸 생각했을 때, 2성 변종은 일행의 적수가 되지 않았다.
도주하는 베타 변종은 일행에게 맡기고, 난 알파2를 처리하는 일에 집중했다.
* * *
휴게소 정리를 마치고 결인들의 곁으로 다가가자, 다들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들 표정이 왜 그래?”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옆에 있던 설여원이 입꼬리를 올리며 얘기했다.
“다들 놀라서 그래. 너무 강해져서.”
전완수는 어깨를 으쓱이며 얘기했다.
“며칠 전만 해도 강화제 알약 10개 먹어야 근력 200이었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안 먹은 상태가 268이잖아. 당연히 놀랄 수밖에 없지.”
깃털처럼 가벼워진 육체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오감에, 일행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이정우는 가장 먼저 정신을 다잡고, 모두를 쳐다보며 얘기했다.
“다들 정신 차려. 괜히 들떠서 실수하지 말고.”
“정우 말이 맞아. 시가전에서는 지금처럼 못 싸우는 거 잊지 마.”
정진영까지 거들자,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들뜬 마음을 가라앉혔다.
뒤이어 설여원은 내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다.
“여기 있던 베타 변종들, 전부 2성이지?”
“어, 이제 1성 변종은 없어. 변이되면 곧장 2성이야.”
“3성 변종은 2성보다 4배 강하다고 했으니, 3성의 근력이 1,000이겠네?”
“맞아.”
“강화제 알약 먹고 싸우면 충분하겠네.”
“강화제 알약 10중첩하면 근력 얼마나 되는데?”
설여원은 눈썹을 긁적이며 산수에 집중하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얘기했다.
“대략 850?”
“150이면 꽤 큰 차이잖아.”
“지금은 예전이랑 다르잖아. 충분히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설여원은 손에 쥐고 있는 카타나를 보여주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하긴, 지금은 신체 능력만 증가한 게 아니라, 장비도 좋아졌다.
충격을 30%나 흡수하는 보호대까지 있으니, 강화제 알약을 10중첩 하지 않아도 3성 변종과 비등하게 싸울지도 모른다.
“야 잠깐만.”
그 순간, 뒤에 있던 최현이 오른손을 들며 모두의 시선을 모았다.
결인들이 최현을 쳐다보자,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홀로그램에 변종의 진화 한계가 몇이라고 했지?”
“……?”
순간, 일행의 사이로 정적이 내려앉았다.
나도 머릿속이 멍해지는 것을 느꼈다.
한계점에 관한 내용은…… 홀로그램에 표시되지 않았다.
뒤이어 팔짱을 끼고 있던 박재우가 콧방귀 뀌며 얘기했다.
“허, 왠지. 이렇게 쉽게 갈 리가 없지.”
제한이 없다는 건 4성 변종도 나올 수 있다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