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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256화 (256/373)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부 2화

난 플레이어 정보를 열고 현재 스탯을 살폈다.

근력과 체력은 381, 반사신경과 동체 시력은 300, 정신력은 900, 골밀도와 표피강화는 322가 되었다.

일행처럼 레이첼 버프는 받을 수 없지만, 버프를 받지 않아도 월등한 신체 능력을 지녔다.

뒤이어 옆에 있던 전완수가 내 홀로그램을 살피며 물었다.

“야, 그런데 칭호 밑에 있는 건 뭐야?”

“응?”

다시금 플레이어 정보를 살피자, 나도 모르는 무언가가 적혀 있다.

-보유 중인 성물: 3

성물이 뭐지?

손가락으로 성물이라 적힌 부분을 누르자, 그에 따른 정보가 떠올랐다.

[성물]

-대공습이 종료될 때까지 귀하가 소중히 여긴 물건에 특수 능력이 부여됩니다.

너도나도 내 곁으로 다가와 홀로그램에 적힌 글자를 읽어내려갔다.

설여원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재형이가 소중하게 여긴 물건이면 카타나랑 건틀릿 말고 더 있어?”

홀로그램을 쭉쭉 밑으로 내리자, 내가 소지하고 있는 성물의 종류가 적혀 있었다.

[끊어진 에코백]

-끊어진 에코백을 보고 망설임의 결과를 깨달았습니다.

-반경 50㎞ 이내의 아군에게 이동할 시, 이동 속도가 1.5배 증가합니다.

구미에서 찾은 끊어진 에코백.

변종이 씹고 있던 이름 모를 생존자의 팔.

죽는 순간까지 놓지 못한 미련이자, 희망이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수색이 늦어졌고, 그로 인해 식량 조달팀을 구출하지 못했다.

누군가에겐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에코백 끈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겐 아니었다.

죽는 순간까지 자식을 향한 부모님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고, 내 망설임의 결과라는 걸 절실히 느꼈다.

불안의 고리를 끊고, 망설임의 결과를 마음에 새기기 위해 끊어진 에코백 끈을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그게 성물이 될 줄이야.

“재형아, 사과 구슬은 뭐냐?”

전완수의 물음에 다시금 홀로그램을 살폈다.

[사과 구슬]

-아이의 간절한 소망이 담긴 구슬.

-귀하의 노고로 아이의 부모님이 가정으로 돌아왔습니다.

-구슬을 선물한 아이의 마지막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추후 적합한 상황에 소망이 이루어집니다.

구미를 떠나 포항으로 이동할 무렵, 버스에 있던 아이가 부모님을 구해줘서 고맙다며 내게 건네준 구슬.

끊어진 에코백과 달리, 구슬에는 별다른 능력이 없었다.

적합한 상황에 소망이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무슨 소망이 담겨 있는지 알아낼 방도가 없었다.

난 전완수를 쳐다보며 대답했다.

“예전에 받았어. 구미 생존자들 사이에 있던 아이가 선물로 준 구슬이야.”

“그런 것도 챙겨두고 있었어?”

“그냥…… 어쩌다 보니.”

뒤이어 홀로그램을 살피던 설여원이 눈꼬리를 치켜뜨며 물었다.

“성물 중에 불길한 게 있는데?”

“어디?”

“여기 밑에. 성물 이름이 좀…….”

불길하다고?

이에 목록을 살피는 순간, 나도 모르게 움찔거리고 말았다.

[유서]

-은인을 기억합니다.

-유서에 적힌 물건을 그의 부모님께 전달하세요.

-전달 완료 시 특혜가 주어집니다.

내 가방 속 깊은 곳에 고이 간직하고 있는 장병철의 유서.

기숙사 방형이자, 내 목숨을 구해준 은인.

유서와 함께 챙겨둔 2개의 손목시계.

그의 희생 덕에 지옥 같은 기숙사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고, 그의 유서 덕에 밖으로 나올 원동력이 생겼다.

울컥하는 마음에, 아랫입술을 깨물며 홀로그램을 닫았다.

천장을 바라보며 한 차례 심호흡하자, 옆에 있던 전완수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내 등을 토닥여주었다.

설여원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장병철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없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괜히 민망한 마음에, 난 목덜미를 주무르며 얘기했다.

“다른 사람들, 데니랑 로즈는 어떤 스킬 생겼어? 확인해야지.”

화제를 돌리자, 팔짱을 끼고 있던 박재우가 입을 열었다.

“예상대로야.”

“예상? 혹시 업그레이드?”

“어, 우리가 소지하고 있는 카타나랑 보호대, 이제 업그레이드할 수 있어.”

“또 다른 변화는 없어?”

“큰 변화는 없고, 대신 프린트의 성능이 향상했어.”

“어떤 식으로.”

“프린트 설치, 회수가 즉시 시전으로 변했어. 재설치 쿨타임도 24시간으로 줄었고. 아이템도 더 빨리 뽑아낼 수 있는 것 같아.”

박재우의 설명을 듣고 일행을 쳐다보며 물었다.

“다들 보호대부터 강화하고 이동하자.”

“전원 강화하려면 시간 좀 걸리는데, 괜찮겠어?”

“안전보다 중요한 건 없잖아.”

박재우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황덕록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대한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지금 당장 프린트를 설치하고 강화를 시작하려는 모양이다.

일행은 입고 있던 보호대와 들고 있던 무기를 박재우와 황덕록에게 건네주었다.

나 또한 두 사람에게 보호대와 카타나, 건틀릿을 건네주었다.

두 사람이 옥상으로 올라가고, 마지막으로 최현과 윤혜리에게 물었다.

“둘은 어떤 스킬 생겼어?”

“착란이라는 스킬인데, 난 이미 구매했어.”

“벌써?”

“패시브 스킬이거든. 그런데 이게 좀 이상해.”

최현은 스킬 목록을 내게 보여주었다.

[마리오네트 Lv.MAX]

-5초 이내에 명령어를 말씀하세요.

-입력이 완료되면 대상은 5분간 명령에 복종합니다.

-오전, 오후 12시마다 초기화됩니다.

[인형극 Lv.MAX]

-반경 500m 내의 좀비들을 1분간 조종할 수 있습니다.

-오전, 오후 12시마다 초기화됩니다.

-7단계 대장 좀비의 수하들까지 조종할 수 있습니다.

[착란]

-스킬 적중률이 50% 증가합니다.

새로 생긴 착란이란 스킬을 보고, 난 눈꼬리를 치켜뜨며 물었다.

“스킬 적중률? 저게 뭐야.”

“나도 그 부분이 마음에 걸려. 무려 10만 코인이나 하는 스킬이야. 패시브 스킬이라 비싼 건 이해하는데, 스킬 적중률이라니?”

최현의 말을 듣고 가만히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마리오네트도 그렇고 인형극도 그렇고, 지금껏 스킬에 저항하는 좀비는 없었다.

그렇다면…… 설마 독 안개 때문인가?

대공습이 끝나며 이러한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좀비들의 능력을 재설정합니다.

-독 안개에 저항한 좀비들은 강화되고, 내성이 없는 좀비들은 사망합니다.

-좀비 플레이어 및 알파 변종도 위의 조건과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강화된 좀비들은 데니의 스킬에 저항하는 힘이 생긴 모양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착란이라는 패시브 스킬이 생긴 것 아닐까?

충분히 가능한 얘기다.

내가 지닌 하울링이란 스킬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스킬 하울링의 설명에도 적이 저항할 수 있다는 얘기가 없지만, 나보다 강한 적은 둔화 효과조차 적용되지 않았다.

내가 생각한 가설을 얘기하자, 윤혜리는 곧장 홀로그램을 열고 착란부터 구매했다.

스킬 착란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로 배워야 하는 스킬이었다.

최현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이제 인형극으로 마음 편히 코인 올리는 건 불가능하다는 거야?”

“그건 지켜봐야지.”

“씁쓸하네. 괜찮은 스킬 생겼다고 좋아했는데.”

최현은 싱겁게 웃으며 입맛을 다셨다.

이에 그의 등을 토닥이며 위로했다.

일행에게 일어난 모든 변화를 확인하고, 앞으로 해야 하는 일을 설명했다.

“업데이트가 끝나면 세상에 독 안개가 퍼질 거야. 게임처럼 흘러간다는 가정하에, 세 번째 에피소드의 목표는 하나야.”

“씨앗 확보?”

설여원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자,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정우가 입을 열었다.

“저번에 재형이 네가 그랬지? 전 세계 씨앗의 60%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고. 그게 세 번째 에피소드의 클리어 목표야?”

“맞아요.”

“식물들이 제 기능을 못 해서 독 안개가 퍼지니, 병들지 않은 씨앗을 확보하라는 건가?”

“네, 제가 기억하는 설정은 안개가 지속되면서 식물들이 내성을 잃은 거로 알아요.”

“…….”

“내성을 잃은 식물들이 DNA 변이를 일으키고, 그로 인해 독성 물질이 뿜어져 나오는 거죠.”

그러자 옆에 있던 최현이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그럼 모든 식물이 독을 뿜어내는 거야? 독초가 아니더라도?”

“사실 우리가 아는 모든 식물이 독초야. 그저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인가, 아니냐의 차이지.”

“응?”

“동물은 위험을 느끼면 도망칠 수 있지만, 식물은 어때?”

“못 움직이지.”

“그래서 모든 식물에는 독이 있어. 인간에게 해가 되지 않는 수준의 식물은 독초가 아니라고 알고 있을 뿐이지.”

“그럼 업데이트가 끝나면…… 식물이 내뿜는 독소가 치사량을 넘어간다는 거야?”

“맞아. DNA 요소 하나만 비틀어져도, 우리가 아는 식물은 전혀 다른 무언가가 되는 거야.”

최현은 아랫입술을 삐죽 내밀며 눈썹을 긁적였다.

얼추 이해는 되지만, 머릿속으로 상황이 그려지지 않는 모양이다.

뒤이어 최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씨앗을 확보하라는 건…… 전 세계 동식물이 앞으로 맛이 간다는 뜻이네?”

“그렇지.”

“그렇게 되면 좀비 식물이나 좀비 들짐승이 나올 수도 있는 거 아니야?”

“…….”

아, 최현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불가능한 얘기는 아니다.

라스트아크는 기본적으로 로그라이크 게임.

상상을 초월하는 해괴망측한 일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전완수가 입을 열었다.

“야, 맞아. 게임 설정에서 봤어. 사람이 사라지는 숲.”

“플레이할 때는 못 봤는데?”

눈꼬리를 치켜뜨며 묻자, 전완수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넌 게임 설정 거의 안 읽었잖아. 캐릭터 배경도 몰랐으면서.”

차마 반박할 수 없었다.

내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전완수는 기억을 되새기며 얘기했다.

“라스트아크 플레이할 때, 긴급 퀘스트에 이런 설명이 있었어. 인간이 사라지는 숲이 있으니 피해서 이동하라는 내용이.”

“그래서 못 본 건가? 게임 플레이할 때 돌아가서?”

“그렇겠지.”

거실에 모인 일행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반면에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설여원은 앞머리를 쓸어넘기더니,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그건 나중에 생각해도 돼.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

“각 아크의 알약 자판기는 70일 추가됐어. 두 달이 조금 넘는 시간인데, 그 안에 전 세계 씨앗의 60% 이상을 어떻게 확보할 생각이야?”

설여원의 물음에 난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생각이 있어. 전 세계에 딱 두 곳, 인류 최후의 날을 대비한 씨앗 저장고가 있거든.”

그러자 맞은편에 있던 이정우가 손가락을 튕기며 두 눈을 빛내기 시작했다.

“씨드 볼트 얘기하는 거야?”

이정우도 알고 있는 모양이다.

이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에 이정우의 옆에 있던 정진영은 입맛을 다시며 물었다.

“씨드 볼트? 씨드 뱅크는 들어봤어도 볼트는 뭐야?”

“종자저장고. 핵전쟁이나 자연재해, 재난 등으로 식물 자원이 고갈될 경우를 대비해서 식물 종자를 쌓아둔 곳이야. 인류 최후의 날을 위한 저장고지.”

“허허…… 사람들 참 대단해. 별의별 희한한 걸 다 준비했네.”

“그걸 꺼내는 날이 오다니.”

이정우는 상상만으로도 설레는지, 내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다.

“위치는 알아?”

“스발바르 제도에 하나 있고, 다른 하나는 한국에 있습니다.”

그러자 설여원은 대뜸 내 등짝을 때렸다.

깜짝 놀라서 설여원을 쳐다보자, 그녀도 화등잔만 해진 눈으로 내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놀라서 때린 거야?

거참…… 손버릇은 여전하다.

“그런 곳이 한국에 있어? 전 세계 두 곳뿐인데?”

“노르웨이에 먼저 생겼고, 한국은 그 뒤에 생겼어.”

“한국에 있다는 씨드 볼트, 정확한 위치도 알아?”

“예전에 들어서 정확하게는 모르겠는데, 경북 봉화군 어디에 있다고…….”

“국립백두대간수목원.”

내가 말끝을 흐리자, 맞은편에 있던 이정우가 입을 열었다.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쳐다보자, 이정우는 싱겁게 웃으며 얘기했다.

“나도 잊고 있었는데, 봉화군이라고 하니까 생각나네.”

정진영은 입꼬리를 올리더니, 내 얼굴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재형이 넌 계획이 다 있구나?”

“어차피 서울로 가야 하니, 올라가는 길에 씨드 볼트 찾아서 씨앗 가져가면 됩니다.”

“씨앗 보관은 어떻게 하려고? 들고 가는 것도 일이고, 혹시라도 씨앗이 죽을지도 모르잖아.”

“에스파디아가 인벤토리를 준 이유가 뭐겠어요?”

싱겁게 웃으며 얘기하자, 다들 짧은 탄성을 뱉으며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막연하던 앞날에 정확한 목표가 생기자, 다들 활력을 되찾았다.

이정우는 결인들의 표정을 살피며 얘기했다.

“그럼 목표도 생겼으니 얘기는 이쯤하고, 다들 씻자. 거실에 비린내가 진동하네.”

좀비들을 정리한 뒤에 씻지도 않고 거실에 모였다.

남아도는 게 화장실이고, 좀비들의 위협도 없었다.

간만에 욕조에 물을 받고, 마음 편히 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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