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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254화 (254/373)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54화

눈앞의 홀로그램을 보고 다들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띠링-

하지만 홀로그램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진행하지 않은 에피소드가 남았습니다.

-게임을 포기하고 함선으로 이동하시겠습니까?

게임을 포기할 수 있다고?

이에 마른침을 삼키며 물었다.

“게임을 포기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모든 능력을 상실하고 안전지대로 이동합니다.

“그럼 탑승권이 없는 플레이어도 탈 수 있는 거야?”

-함선에 탑승할 수 있는 플레이어만 중도 포기가 가능합니다.

설여원과 나는 중도 포기도 할 수 없다는 거네.

멋쩍은 마음에 입맛을 다시며 물었다.

“게임을 포기하고 안전지대로 이동하면…… 그 사람은 플레이어가 아니라, 일반인이 된다는 거지?”

-보유 중인 포인트와 코인은 사라지며, 지상에 남은 플레이어들이 게임을 클리어할 때까지 올라올 수 없습니다.

올라올 수 없다고?

그럼…… 다른 국가의 플레이어들이 모든 에피소드를 클리어할 때까지 해저 도시에서 꼼짝도 할 수 없다는 말이 아닌가?

난 콧잔등을 긁적이며 질문을 이어나갔다.

“출발 조건에 공격대 전원이 탑승해야 한다는 말은 없는데, 일부는 에피소드를 진행해도 되는 거야?”

-공격대에 속한 파티 중 일부가 에피소드 진행 시, 함선에 탑승한 파티의 능력이 전이됩니다.

“전이? 그게 무슨 말이야.”

-현재 귀하의 공격대는 6개의 파티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제1파티인 소리결이 에피소드 진행 시, 함선에 탑승한 파티의 숫자에 따라 능력치를 부여받습니다.

“그게 얼마나 되는데.”

-각성 파티의 경우 40스탯을 부여하며, 일반 파티의 경우 10스탯을 부여합니다.

-파티 소리결을 제외한 모든 파티가 함선에 탑승할 경우, 소리결 파티원들에겐 110의 스탯이 부여됩니다.

-단, 에덤 화이트는 위의 효과를 받을 수 없습니다.

-에덤 화이트는 스탯 증대를 받을 수 없는 대신, 칭호 시스템이 개방됩니다.

언제나 버프에서 제외되는 에덤 화이트.

이젠 익숙해져서 화도 나지 않았다.

그보다 칭호 시스템은 뭐지?

라스트아크에는 칭호 시스템이 없었다.

의구심이 들지만, 이내 생각을 포기했다.

에스파디아의 숨겨둔 수를 내가 어찌 알겠는가?

따지고 보면 공격대 시스템도 본래 없는 시스템이었다.

난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물었다.

“안전지대로 가면…… 정말 안전한 거야?”

-안락한 생활이 가능합니다.

-단, 게임 클리어 실패 시 산소공급이 차단됩니다.

산소공급이 차단된다는 말에 주변에 있던 모든 일행이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입을 열었다.

“해저에서 죽으라는 거야?”

“미친 거 아니야.”

“이러면 누가 안전지대로 이동해? 차라리 지상에서 싸우다 죽지.”

다들 열을 내기에, 일행을 진정시키며 홀로그램에 물었다.

“산소공급이 차단되면, 해저에서 익사하는 거야?”

-선택지가 제공됩니다.

“어떤 선택지.”

-해저에서 익사하거나, 지상으로 올라와 독 안개에 사망할 수 있습니다.

눈앞의 홀로그램을 보고 멍한 표정을 짓자, 옆에 있던 전완수가 눈살을 찌푸리며 얘기했다.

“씨X 이걸 선택지라고 제공해? 뭘 선택하든 죽는 거잖아.”

“죽기 전에 광합성이나 하고 죽으라는 거야 뭐야.”

최현까지 맞장구치기에, 흥분을 가라앉히라는 말과 함께 사람들의 표정을 살폈다.

다들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대공습의 남은 시간은 25분.

25분 이내에 결정을 내려야 한다.

“우리도 싸울게!”

“같이 갑시다!”

“주야장천 죽는 날만 기다리는 것보다 뭐라도 해보는 게 마음 편하지!”

이전에는 의리로 함께 하길 청했다면, 이젠 억울해서 함께 싸우겠다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생존자들의 아우성이 들불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곤란한 마음에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르자, 상황을 지켜보던 이정우가 폐부 깊숙이 숨을 들이쉬며 소리쳤다.

“그마안!!”

이정우가 소리치자, 시끌벅적하던 오륙도선착장으로 침묵이 내려앉았다.

이정우는 사람들의 표정을 가만히 살피더니, 진지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여러분이 불안하다는 거, 저도 잘 압니다.”

“…….”

“저희도 부담스럽고 두려운 게 사실입니다.”

“어떻게 하겠다는 겁니까?”

생존자들 사이에서 질문이 들려오자, 이정우는 훅, 하고 숨을 뱉으며 얘기했다.

“저희를 믿고 함선에 탑승해 주세요.”

이정우의 말을 달리 해석하면, 본인의 목숨을 소리결에 맡기라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생존자들의 표정으로 당혹감이 묻어났다.

하지만 반박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이번 대공습도, 소리결이 없었다면 실패나 마찬가지였다.

상황을 지켜보던 곽찬혁은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한참이나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감았던 눈을 뜨며 얘기했다.

“파티 황금동은…… 함선에 탑승한다.”

“네? 아니, 형님 상의라도 하고…….”

강요한이 놀란 표정을 짓자, 곽찬혁은 덤덤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자그마치 40스탯이야. 우리가 함선에 탑승하는 게 도와주는 거라고.”

그러자 파티 자사모의 파티장, 송하윤도 팔짱을 끼며 얘기했다.

“황금동의 뜻이 그렇다면, 우리도 탑승해야지.”

자사모의 파티원들은 순순히 따르는 모습을 보였다.

각성 파티들이 함선에 탑승하겠다고 하자, 파티 영일대와 돼지국밥, 밤바다도 거들었다.

“우린 각성을 못해서 10스탯밖에 못 드리지만, 이렇게라도 도움이 된다면 함선에 탑승하겠습니다.”

안전지대에 가면서 뻔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본인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일이었다.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이정우는 생존자들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반대하는 분 계십니까?”

“만약 탑승하지 않고 소리결과 함께 하겠다고 하면, 그땐 어떻게 되는 겁니까?”

생존자들 사이에서 지금의 불안한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정우는 이마를 긁적이더니, 두 눈을 게슴츠레 뜨며 얘기했다.

“생존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다음 에피소드부터는…… 누군가를 지키면서 싸울 만큼의 여력이 안 될 겁니다.”

“…….”

생존자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다.

뒤이어 이덕배가 소리쳤다.

“탑시다!”

“예?”

“함선 타자고! 우리가 안 가면 짐밖에 더 돼?”

“…….”

다들 섣불리 않았다.

이덕배는 사람들의 표정을 유심히 살피더니, 목에 힘을 주어 얘기했다.

“난 안개가 퍼진 초기부터 소리결이랑 같이 행동했고, 저 친구들이라면 믿을 수 있어!”

“…….”

“젊은 친구들 부담 주지 말고 갑시다!”

이덕배가 가장 먼저 함선에 탑승하자, 생존자들은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함선에 오른 이덕배는 눈살을 찌푸리며 얘기했다.

“다들 뭐해! 빨리 와!”

그의 발걸음도 무거울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뜻을 이해하고,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제야 생존자들은 함선에 탑승하기 시작해다.

사람들이 탑승하는 동안, 난 곽찬혁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함선에 로그나이트나 덤프, 그 외에 쓸 만한 무기 있으면 전부 밖으로 던져주세요.”

“알았어.”

“그리고 보유 중인 코인은 전부 아이템 구매하고, 저희한테 양도해 주세요.”

곽찬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코인 상점부터 확인했다.

포인트와 코인은 파티원끼리도 교환할 수 없지만, 아이템은 가능했다.

대공습의 남은 시간은 20분.

최대한 뽑을 수 있는 건 전부 뽑아내고, 사람들을 안전지대로 보내는 것이 최선이었다.

* * *

다가올 세 번째 에피소드를 준비하는 동안, 결인들은 가족과 작별의 시간을 가졌다.

이정우와 정진영, 전완수, 최현, 윤혜리, 김희연, 황덕록은 애써 밝은 미소를 지었지만, 그들의 가족은 아니었다.

자식, 형제, 동생을 다시금 전장으로 보내야 하기에,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박재우는 멀찍이서 그들의 뒷모습을 쳐다보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혈혈단신이 되어버린 박재우.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서, 쓸데없는 위로 대신 박재우 곁으로 다가가 어깨동무를 했다.

박재우는 콧잔등을 긁적이며 코를 훌쩍이더니, 내 얼굴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저기 있는 가족들, 살아서 다시 만날 수 있겠지?”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야지.”

“저쪽에 로즈는 충분해? 함선 움직이려면 2명 있어야 한다며.”

“한지현 씨도 있고, 영일대랑 돼지국밥에도 로즈가 있어.”

“각성 못 한 로즈도 상관없나?”

“2명만 있으면 된다고 적혀 있었으니, 각성 여부는 상관없을 거야.”

박재우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본인의 두 볼을 찹! 소리가 나도록 때리며 얘기했다.

“농땡이는 이쯤 피우고, 가서 여원이 돕자.”

울적할 법도 한데,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행동하는 박재우를 보고 마음 한편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참…… 소리결에는 멋진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박재우와 함께 선착장 앞으로 향하자, 설여원은 수첩을 들고 아이템을 정리하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양의 아이템이 선착장에 쌓였다.

로그나이트의 무게만 212㎏, 덤프는 148㎏이나 되었다.

또한 강화제 알약은 680개가 상자에 들어 있었다.

또한 함선의 무기고에서 방패를 찾았다고 하는데, 이는 상점 이용권 3장을 소모해야 살 수 있는 장비였다.

일반적인 방패가 아니었다.

적의 공격 일부를 흡수, 반사할 수 있고, 앞면에는 전류가 흐르는 라스트아크의 무기였다.

향후 이 장비들을 어떻게 사용하는 게 좋을지, 머리를 맞대고 생각했다.

* * *

이윽고 대공습의 남은 시간이 3분을 가리킬 무렵, 아직 함선에 탑승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외쳤다.

“3분 남았습니다! 어서 탑승하세요!”

결인들의 가족은 마지막으로 서로를 품에 안으며 작별을 고했다.

함선에 오르는 황덕록의 부모님, 이정우의 부모님, 정진영의 부모님, 윤혜리의 부모님 등, 모두가 내 손을 잡으며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겼다.

이에 엶은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걱정하실 필요 없다고, 내가 더 열심히 하겠다고, 그들을 안심시켰다.

곧 입구에 있던 한슬기가 내 곁으로 다가오며 얘기했다.

“박재형 씨.”

“네 한슬기 씨.”

“그동안…… 정말 감사했어요. 감사하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한슬기는 눈물을 훔치며 분홍색 도시락통을 내게 건네주었다.

“제가 할 수 있는 게 이것뿐이라…… 죄송해요.”

“…….”

“민정 언니랑 만든 거예요.”

조심스레 뚜껑을 열자, 이민정과 한슬기의 특제 김밥이 들어 있었다.

그 밑에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따뜻한 미역국이 들어 있었다.

“에에, 으에엥…….”

한슬기의 등에 있던 갓난아기가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한슬기는 아기를 어화둥둥 하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난 아기의 볼을 조심스레 쓰다듬으며 얘기했다.

“엄마 고생시키지 말고, 잘 지내야 한다?”

“으에에…… 으아앙……!”

대뜸 울음을 터뜨리는 녀석.

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한슬기에게 어서 들어가라고 했다.

뿌우우웅-! 부우우우웅-!

뒤이어 뱃고동 소리가 들려오고, 탑승구가 닫히기 시작했다.

탑승구가 닫히자, 거대한 함선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갑판으로 나타나는 수백, 수천 명의 생존자.

“몸조심하고! 꼭 살아서 다시 만납시다!”

“소리결! 무운(武運)을 빕니다!”

“당신들을 위해 기도할게요!”

우리를 위해 기도하겠다는 사람들.

그 뒤로 이덕배와 이현배, 최만석, 천호진, 이민정, 박성훈의 얼굴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은 응원의 말 대신, 눈물을 삼키며 양손을 흔들었다.

마지막으로 함교에 있던 곽찬혁이 창문을 열고 소리쳤다.

“너희들 도착하면 곧장 쉴 수 있도록! 이번에도 미리 정리해 둘게! 꼭 다시 만나자!”

선착장에 남은 결인들은 양손을 흔들며 조심히 가라고 소리쳤다.

지금은 비록 이별이지만, 언젠가 다시 만날 그날을 기대하며, 나도 환한 웃음으로 그들을 배웅했다.

수평선 너머로 나아가는 함선.

곧 함선 전체에 불투명한 막이 생성되며 서서히 잠수하기 시작했다.

시원섭섭하다고 해야 좋을까.

짧은 시간이지만, 정든 사람들과의 이별은 언제나 마음 한편을 아리게 만들었다.

그러자 설여원이 다가와 말없이 내 등을 토닥여주었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함선이 사라지자, 뒤에서부터 자욱한 안개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안개 제거기가 사라지자, 세상은 다시금 희뿌연 안개에 잠식되었다.

띠링-

-대공습이 종료되었습니다.

-두 번째 에피소드 ‘방랑자’를 클리어하셨습니다.

-두 번째 에피소드를 클리어한 파티 ‘소리결’에게 인벤토리 효과가 적용됩니다.

-최초의 클리어팀에게 특전이 주어집니다.

-상점 이용권 3장이 지급됩니다.

상점 이용권 3장이 특전이라니.

이전에 비하면 특전치고 상당히 빈약하다.

그건 그렇고 인벤토리?

이제 가방을 들고 다닐 필요 없이, 인벤토리에 물건을 넣을 수 있는 건가?

“어? 야, 잠깐만.”

뒤이어 수평선을 바라보던 전완수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얘기했다.

이에 전완수를 쳐다보자,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얘기했다.

“미친……!”

전완수는 대뜸 상의를 탈의하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행동에 당황하는 찰나, 옆에 있던 설여원이 이마를 탁! 치며 얘기했다.

“아…….”

“왜, 무슨 일인데 그래.”

“월! 월월!”

순간, 내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거…… 개 짖는 소리 아니야?

설마 하는 마음에 안개 속을 응시하자, 옆에 있던 설여원이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얘기했다.

“장군이가 뛰어내린 것 같아.”

“뭐?!”

그동안 말 잘 듣던 장군이가, 케이지를 열고 탈출을 감행한 모양이다.

대체 언제 뛰어내린 거지?

멀어지는 함선을 보느라, 장군이가 뛰어내린 것도 몰랐다.

띠링-!

-세 번째 에피소드: ‘생명의 씨앗’을 시작합니다.

-업데이트까지 24시간이 소요됩니다.

* * *

-파티 ‘소리결’이 두 번째 에피소드를 클리어했습니다.

-24시간 뒤, 세 번째 에피소드 ‘생명의 씨앗’이 시작됩니다.

-좀비들의 능력치를 재설정합니다.

-독 안개에 저항한 좀비들은 강화되고, 내성이 없는 좀비들은 사망합니다.

-좀비 플레이어 및 알파 변종도 위의 조건과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포만감 알약 자판기의 유지 시간이 70일 증가합니다.

-아크의 외벽에 흐르는 전류가 강화됩니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잠실의 어느 고층 건물 전망대.

창밖을 바라보던 남자는 눈앞으로 떠오른 홀로그램을 보고 눈꼬리를 치켜떴다.

“소리결이라…….”

그러자 소파에 앉아 있던 여자가 홀로그램을 살피며 얘기했다.

“랭킹 1위 소리결. 아직 파티 목록에 뜨는 거로 봐서는 계속 플레이하는 모양인데?”

“다른 파티는? 황금동이랑 자사모는 없어졌어?”

“어, 목록에서 사라졌어.”

“대단한 놈들이네, 단독 파티로 게임을 클리어하겠다? 세 번째 에피소드에 대한 정보가 있는 건가?”

“그건 알 수 없지. 어떻게, 직접 찾아갈 거야?”

소파에 앉아 있는 여자가 묻자, 창가의 남자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뒷짐 지고 있는 손가락을 까딱거리는 것으로 보아, 생각을 정리하는 것으로 보였다.

뒤이어 천천히 상체를 틀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굳이?”

그의 눈빛은 다른 대장 좀비들과 달랐다.

붉게 충혈된 안구가 아니라, 보랏빛이 맴돌고 있었다.

대장 좀비는 양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넣으며 얘기했다.

“어차피 알아서 올라올 거야. 굳이 내가 찾아 나설 필요는 없지.”

그러자 소파에 앉아 있던 여자는 어깨를 으쓱이며 물었다.

“대공습을 버텨냈다는 건 에덤이 있다는 거야. 산전수전 다 겪은 놈들일 텐데, 과연 대화가 통할까?”

“데니만 조심해. 혹시라도 살결 닿지 않도록.”

“부담스럽네.”

“걱정 마. 만약 실패한다면…… 전부 내 탓으로 돌려.”

“…….”

여자는 대답 대신 대장 좀비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러자 창가에 있던 대장 좀비는 현재 시각을 살피며 얘기했다.

“더 늦기 전에 아크로 돌아가. 너무 오랫동안 자리 비우면 네 동료들이 의심할 수도 있으니.”

“어휴, 난 모르겠다. 9성 된 뒤로 너무 천하태평이야.”

여자가 콧방귀 뀌며 얘기하자, 대장 좀비는 어깨를 으쓱이며 얘기했다.

“보름 전에 9성이었지. 지금은 10성인데?”

“9성이든 10성이든.”

“그렇게 얘기하면 나 서운하다? 하늘과 땅 차이라고.”

여자는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뒤이어 무전기를 들고 얘기했다.

“여긴 안전해. 돌아가자.”

치지직- 치직-

-빨리 와! 주변에 좀비들 보인다!

“간다, 가.”

여자가 대장 좀비를 쳐다보자, 대장 좀비는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목젖을 갈았다.

큰 소리를 내지 않아도 수하들을 조종할 수 있는 것으로 보였다.

뒤이어 감았던 두 눈을 게슴츠레 뜨며 얘기했다.

“수하들한테 길 열어두라고 했으니, 돌아가는 길은 안전할 거야.”

“또 보자고.”

“또 봐야지.”

여자가 비상구로 향하자, 대장 좀비는 다시금 창밖을 바라보며 읊조렸다.

“소리결이라…….”

그는 싱겁게 웃으며 혼잣말을 읊조렸다.

“고지식한 놈들만 아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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