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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253화 (253/373)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53화

설여원은 이정우의 치료를 받으며 전황을 살폈다.

변종 에덤을 처리한 박재형은 곧장 김희연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홀로 정진영과 전완수, 최현을 지키고 있는 김희연.

알파1 수십 마리가 김희연을 둘러싸고 있었다.

쾅!! 떠걱-! 펑!! 콰직, 팡!!

하지만 박재형의 도착과 동시에 풍선처럼 터져 나가는 알파1.

김희연은 멍한 표정으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학살의 현장을 관망했다.

강화제 알약의 힘을 빌려 근력을 200까지 높였으니, 그에 상응하는 동체 시력을 지니게 되었다.

하지만 박재형의 위치를 도저히 눈으로 좇을 수 없었다.

광란을 사용한 박재형은 절대적이었다.

* * *

스킬 급가속과 감지를 쿨타임마다 사용하며 알파 변종들을 처리했다.

그렇게 좀비화의 남은 시간이 7분을 가리킬 무렵, 3차 바리케이드로 들어온 모든 변종을 처리할 수 있었다.

“후…….”

폐부에 들어찬 탁한 숨을 내쉬며 주변을 살피자, 내 곁으로 달려오는 결인들과 공격대원들, 생존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마, 말도 안 돼.”

“전부 머리가 터졌어.”

“이게 변종의 시체야?”

수백 명의 생존자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

“박재형 씨!”

곧 윤성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선을 돌리자, 전신이 땀에 젖은 윤성민이 대뜸 내 손을 잡았다.

뒤이어 고개를 숙인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의 어깨가 잔잔하게 떨리고 있었다.

멋쩍은 마음에 시선을 돌리자, 고개를 숙이고 있던 윤성민이 떨리는 목소리로 얘기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생존자들도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함묵하는 모습을 보였다.

감사하다는 말로는 지금의 심정을 표현할 수 없는지, 다들 말 대신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마치 교주 앞에 무릎 꿇는 신도처럼, 내게 큰절을 올리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동안 나와 함께 했던 실개천 너머의 생존자들, 구미, 포항 생존자들만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어색하다.

민망하다고 해야 좋을까.

난 구레나룻을 긁적이며 얘기했다.

“다들 왜 그래요. 어서 일어나세요.”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무사하면 됐습니다. 어서 일어나요.”

그러자 생존자들 사이에 있던 이덕배가 소리쳤다.

“지금은 이럴 게 아니라 이렇게 해야지!”

이덕배는 사람들을 뚫고 다가오더니, 내 두 다리를 잡고 번쩍 들어 올렸다.

“이겼다!!”

이덕배가 승리를 확신하는 외침을 내뱉자, 수백 명의 생존자가 우르르 모여들어서 헹가래를 시작했다.

“박! 재! 형! 박! 재! 형!”

수백 명이 내 이름을 외치며, 환희의 함성을 내질렀다.

반면에 난…… 얼굴이 붉어졌다.

감동이나 슬픔이 아니라, 민망함 때문이었다.

이런 분위기는 익숙하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안 해줘도 되는데.

나도 살려고 최선을 다해 싸웠을 뿐이기에, 서로 수고했다고 덕담 한마디 던지는 게 차라리 마음 편했다.

뒤이어 설여원이 다가오더니, 사람들을 진정시키며 얘기했다.

“여러분! 아직 안 끝났어요! 함선 도착할 때까지 집중하셔야 합니다!”

난 좀비화의 남은 시간을 확인하며 설여원에게 얘기했다.

“좀비화 4분 남았어.”

“몸 상태는 어때. 기절할 것 같아?”

“아무래도.”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지만, 상당히 지친 상태였다.

체력적인 부담은 없지만, 뇌가 과부하에 걸린 것처럼 지끈거렸다.

패시브 스킬 재생도 수십 번 사용한 탓에, 좀비화가 풀리면 몸에 쌓인 피로가 몰려올 것이다.

설여원은 이마를 문지르며 곤란한 표정을 짓더니, 뒤에 있는 결인들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다들 강화제 알약 몇 분 남았어?”

“우린 9분.”

“저희는 18분이요.”

앞서 강화제 알약을 먹은 결인들은 9분 남았고, 뒤에 먹은 결인들은 18분 남은 상황.

이정우는 생존자들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다들 3차 바리케이드 복구하고, 남은 좀비들 처리에 집중해 주시기 바랍니다!”

“예!!”

생존자들은 흔쾌히 승낙하며 각자의 무기를 들고 바리케이드로 향했다.

마지막 웨이브가 시작된 순간부터 체력을 비축했기에, 다들 힘이 넘치는 모습을 보였다.

혹은 승기가 넘어왔다는 확신에, 전의를 불태우는 것으로 보였다.

반면에 현 상황을 파악한 공격대원들의 표정은 달랐다.

윤성민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좀비화가 끝나면…… 또 정신을 잃는 겁니까?”

“아마도요.”

“다른 분들은요?”

윤성민의 물음에 옆에 있던 설여원이 뻐근한 어깨를 주무르며 대답했다.

“저희도 기절할 가능성이 커요. 이미 뼈마디가 비명을 지르고 있어요. 머리도 울리고.”

다들 알약의 힘을 빌려 신체 능력을 극대화시켰다.

또한 뼈가 부러졌다 붙기를 반복했다.

강화 효과가 사라지면 리바운드 증상이 몰려올 것이고, 육체와 정신이 버티지 못할 것이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곽찬혁은 훅, 하고 숨을 뱉으며 얘기했다.

“뒷일은 우리한테 맡겨.”

“괜찮겠어요?”

“안 괜찮아도 해야지. 너희 덕에 변종 웨이브도 막았는데.”

곽찬혁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곽찬혁의 옆에 있던 한지현이 입을 열었다.

“너희가 기절한다고 해서 욕할 사람 없어. 걱정 말고 쉬어.”

“그래도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런 사람들은 아크 도착하기 전에 다 죽었어. 우리도 염치는 챙겨야지.”

한지현의 말에, 반사적으로 엷은 미소가 번졌다.

걱정을 덜어주려는 마음이 느껴졌다.

핑-!

뒤이어 관자놀이를 관통하는 찌릿한 기운이 느껴졌다.

눈살을 찌푸리며 이마를 짚자, 설여원이 나를 부축하며 얘기했다.

“걱정하지 마.”

“…….”

시야가 점점 흐려진다.

전신에 전류가 흐르는 것처럼 덜덜 떨리고, 오한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런 나를 위로하기 위해, 설여원은 환하게 웃으며 얘기했다.

“우리 믿고 쉬어. 자고 일어나면…… 다 끝나있을 거야.”

모두의 위안을 얻으며, 쏟아지는 졸음을 받아들였다.

* * *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지끈거리는 두통으로 인해 눈살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긴…….”

눈을 떴지만 보이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사방이 칠흑 같은 공간이었다.

바닥을 더듬으며 이동하자, 뒤늦게 문고리가 손에 잡혔다.

조심스레 문고리를 열자, 눈부신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왼손으로 이마 위에 챙을 만들자, 마비되었던 감각들이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

코끝을 스치는 바다 냄새와 두 볼을 스치는 선선한 바람.

노을이 지는 수평선 너머로 잔잔하게 일렁이는 물비늘까지.

잠깐, 물비늘?

안개 때문에 물비늘은 안 보여야 정상인데?

얼떨떨한 정신을 다잡으며 좌우를 두리번거리자, 뒤늦게 귓가를 간질이는 기묘한 소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우웅- 우우웅- 우웅.

이 소리…… 낯설지 않았다.

라스트아크를 플레이할 때, 아크에 있는 안개 제거기가 돌아가면 이런 소리가 들렸다.

“재형 학생!”

뒤이어 저 위에서 들리는 이덕배의 목소리.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시선을 돌리자, 거대한 함선의 갑판 위에 있는 이덕배를 발견할 수 있었다.

“덕배 아저씨?”

“거기 있어! 내가 그리로 갈게!”

그제야 내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오륙도선착장에 있는 자그마한 건물.

매표소였다.

기절한 나를 오륙도선착장으로 옮긴 모양이다.

그렇다면 저 거대한 함선은…….

저게 생존자들을 해저 도시로 안내하는 함선인가?

게임에서는 부서진 잔해만 봐서 건물인 줄 알았는데, 그게 파괴된 함선의 잔해였을 줄이야.

길이만 족히 500m는 될 것 같았다.

너비도 200m는 될 법한 크기.

그 웅장한 크기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재형 학생!”

뒤이어 함선에서 내리는 이덕배의 얼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왜 안개가 안 보여요?”

“함선에 있는 안개 제거기가 안개 자체를 지워버리더라고!”

“네? 게임에서는 독 안개만 제거됐는데…….”

“그보다 어서 탑승하자고!”

얼떨결에 이덕배를 따라 함선의 입구로 향했다.

퉁-!

동시에 불투명한 막이 내 앞을 가로막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탑승권이 없는 플레이어는 아크에 탑승할 수 없습니다.

눈앞으로 떠오르는 홀로그램.

내가 들어가지 못하자, 앞서가던 이덕배가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설마…… 못 들어오는 거야?”

“네.”

이덕배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어찌해야 좋을지 감을 잡지 못했다.

“재형아!”

뒤이어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갑판에서 들려왔다.

이현배와 최만석, 천호진의 얼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뒤이어 갑판으로 올라서는 수십 명의 생존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민정과 한슬기, 이신혜, 이예정, 최지혜, 전수연, 박성하, 김서연, 방현우, 이규리, 10대 미만의 아이들까지.

모두가 내 얼굴을 발견하고는 함선의 출입구로 달려왔다.

그들은 나와 달리, 손쉽게 통과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제 괜찮은 거야?”

“다친 곳은 없어?”

“몸은 어때, 괜찮아?”

그들의 걱정 어린 목소리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난 3차 바리케이드 방면을 쳐다보며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디 있어요?”

“생존자들은 30분 전에 탑승 완료했고, 이제 플레이어들도 올 거야.”

이덕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저 멀리 이곳으로 달려오는 플레이어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느새 결인들도 정신을 차린 상태였다.

이정우는 도착하자마자 내 전신을 위아래로 훑으며 물었다.

“괜찮아? 불편한 곳은 없고?”

“괜찮아요.”

그러자 뒤따라온 정진영이 싱겁게 웃으며 얘기했다.

“7시간이나 기절해서 죽은 줄 알았다, 야.”

“7시간이요?”

“노을 지는 거 안 보여?”

아, 왠지 햇살이 강하다 싶더니.

난 일행을 쳐다보며 물었다.

“다들 언제 정신 차린 거예요? 저만 기절한 거예요?”

“우리도 3시간 전에 정신 차렸어.”

결인들이 3시간 전에 정신을 차렸다는 건…… 4시간 가까이 공격대원들과 생존자들이 좀비들을 처리했다는 말이 된다.

미안한 마음에 공격대원들을 쳐다보자, 윤성민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괜찮아요. 마지막 웨이브 끝난 뒤로는 잔존 좀비들 처리하는 게 전부였으니까.”

“다친 사람은 없어요?”

“다들 무사합니다. 물론 1차와 2차 바리케이드에서 사망한 사람들은…….”

윤성민은 말끝을 흐리며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살아남은 생존자는 총 1,200명이라고 한다.

그중 태반이 20세 미만의 아이들이었다.

어른들의 숭고한 희생 덕에, 아이들은 무사할 수 있었다.

출입구에 모인 사람들은 잠시나마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우르르르-

“왔다! 플레이어들이 왔어!”

“와아아아아!”

뒤이어 함선에 타고 있던 모든 생존자가 오륙도선착장으로 나왔다.

24시간에 걸친 전투가 마침내 종료되었다.

선착장은 승전을 축하하는 환희의 함성으로 가득 찼다.

반면에 이정우는 남은 시간을 확인하며 얘기했다.

“34분 뒤에 대공습 끝나.”

“지금 출발하는 건 안 돼요?”

“그 부분 때문에 상의할 게 남았어.”

이정우는 공격대원들을 쳐다보며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그러자 곽찬혁이 대표로 입을 열었다.

“재형이랑 여원이는 탑승권이 없다고 들었어. 정말 탑승권 없이는 함선에 못 타는 거야?”

“괜찮아요. 먼저 가세요.”

“어떻게 그래.”

곽찬혁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생존자들도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박재형 씨랑 설여원 씨는 함선을 못 탄다고?”

“아니 왜?”

“그게 무슨 소리야.”

사람들이 수군거리자, 윤성민은 생존자들을 진정시키며 차근차근 이유를 설명했다.

특별한 능력을 지닌 플레이어들.

특별한 힘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이었다.

모든 설명을 들은 생존자들은 너도나도 성을 내기 시작했다.

“그런 법이 어디 있어?”

“제일 고생한 사람들을 여기 두고 가야 한다고?”

“그건 너무한 거 아니야?”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무슨 방법이 있겠지!”

“다 같이 방안을 생각해 봅시다!”

우리를 위해 언성을 높여주는 생존자들.

하지만 에스파디아가 설정한 시스템을 거스르는 건 불가능하다.

곽찬혁은 가만히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긴 모습을 보이더니, 이내 결심을 내린 듯이 얘기했다.

“서울로 간다고 그랬지? 나도 같이 가자. 각성 파티는 많을수록 좋을 거야.”

그러자 곽찬혁의 옆에 있던 한지현이 곽찬혁의 손을 잡으며 얘기했다.

“나도 같이 가.”

한지현까지 합류 의사를 밝히자, 강요한도 오른손을 들며 함께하기를 청했다.

그러자 송하윤도 팔짱을 끼며 앞으로 나왔다.

“파티 자사모도 각성 파티야. 받은 만큼 갚아야지. 우리도 도울게.”

파티 영일대와 돼지국밥, 밤바다의 파티장들도 한 마디씩 거들었다.

“우리도 같이 가. 지금은 힘이 없지만…… 가는 길에 각성 기회가 있겠지.”

너도나도 함께하기를 청했다.

이들을 데려가는 게 옳을까?

손이 많으면 여러모로 편하기야 하겠지만, 반대로 짐이 될 수도 있다.

세 번째 에피소드부터는…… 개개인의 전투능력에 따라 생존율이 달라질 테니까.

사실상 결인들을 데려가는 것도 고민되는 마당에, 이 많은 플레이어와 함께 움직이는 건 부담스러웠다.

띠링-

그 순간, 눈앞으로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30분 뒤에 대공습이 종료됩니다.

-대공습 종료 시, 함선은 자동으로 출발합니다.

-단, 조건을 충족시키지 않을 경우 이동할 수 없습니다.

(함선을 움직이기 위해선 두 명의 로즈가 필요합니다.)

-30분 이내에 로즈는 함교로 이동하고, 모든 생존자와 플레이어는 탑승을 완료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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