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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233화 (233/373)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33화

한계 돌파도 마쳤으니, 변화한 스탯을 계산했다.

근력과 체력의 기본 스탯은 122.

체력은 추가 스탯 +50이 붙으니 172가 된다.

반사신경과 동체 시력은 73, 골밀도와 표피강화는 88.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정신력 스탯은 430이나 된다.

광폭화를 사용하더라도 이성을 유지하기 수월할 것이다.

이제 좀비화를 사용하지 않아도 근력과 체력 수치가 100을 넘었다.

불가능이라 생각했던 일이 현실로 다가왔다.

구미에서 알파3이라 생각한 변종 에덤을 상대하던 당시, 내 근력은 55였다.

지금이라면 변종 에덤을 손쉽게 제압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자신감을 보이자, 옆에 있던 설여원이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

“뭐야 그 표정?”

“이제 대공습 해볼 만해.”

반면에 전완수는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저었다.

“조금 전까지 저체온증으로 덜덜 떨던 사람 어디 갔냐?”

“그만큼 열심히 했으니 지금 이러는 거지.”

“하긴, 그래. 네가 이겼다.”

전완수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모닥불에 장작을 던졌다.

여기서 장작은 좀비 시체를 뜻한다.

설여원은 엉덩이를 털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얘기했다.

“그럼…… 이제 시체 정리할까?”

박재우는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며 얘기했다.

“10만 구가 넘는 시체를 어느 세월에 치우냐.”

“건물 내부에 있는 시체는 두고, 밖에 있는 좀비만 정리하자.”

좀비를 처리하는 것도 일이지만, 시체를 정리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날 밤, 우린 자정이 넘어서야 정리를 마칠 수 있었다.

* * *

다음 날 아침, 찌뿌드드한 몸 상태로 인해 활동에 제약이 많았다.

아무래도 감기에 걸린 것 같다.

또한 근육통까지 겹치는 바람에, 좀비들 정리에 속도가 붙지 않았다.

자판기의 남은 시간은 점점 줄어드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 여간 답답한 게 한둘이 아니었다.

윤혜리와 최현, 설여원과 전완수가 지원에 나섰지만, 좀비들 처리에 진전이 없었다.

전완수는 내 상태를 가만히 지켜보더니, 한숨을 내쉬며 얘기했다.

“야, 안 되겠다. 오늘은 쉬어.”

“안 돼. 시간 없어.”

“오기 부리지 마. 너 지금 안색이 영정사진이야. 곧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무슨 싸움을 하겠다고 그래?”

전완수의 의견에 모두가 동의를 표했다.

하지만 오늘을 버리면…… 자판기의 남은 시간이 50시간도 남지 않을 것이다.

이건 타격이 너무 크다.

뜻을 굽히지 않자, 설여원은 대뜸 내 등짝을 때리며 얘기했다.

“그러게 누가 어제 무리하래! 그러다 대공습 시작하고 쓰러지면 어쩌려고? 지금은 완수 말 들어.”

“…….”

다들 내게 쉬라고 하기에, 말없이 이마를 짚으며 온도를 확인했다.

열이 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 대공습이 시작되고 앓아누우면 낭패다.

그러니 적당한 선에서 정리해야겠다.

생각을 마치고,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얘기했다.

“그럼 이렇게 하자. 12시마다 인형극으로 좀비들 정리하고, 재사용 대기시간에는 쉬고.”

“그게 쉬는 거냐?”

“더는 양보 못 해.”

게슴츠레 풀린 눈으로 일행을 쳐다보자, 다들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합의 아닌 합의를 마치고, 인형극을 이용해서 안전하게 좀비들을 정리했다.

우리가 좀비들을 정리하는 동안, 아크에 있는 플레이어들과 생존자들도 분주히 움직였다.

전완수의 말에 따르면 모든 생존자가 2차, 3차 바리케이드 공사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가용할 수 있는 모든 노동력이 힘을 합쳐 대공습을 대비하고 있는 것이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어린아이와 노약자 할 것 없이 살아남기 위한 마지막 싸움을 준비하고 있었다.

* * *

자판기의 남은 시간은 무던히 흘러, 어느새 8시간을 앞두고 있었다.

그동안 아크에도 격변에 가까운 변화가 찾아왔다.

아크의 바리케이드를 1차 방어선으로 두고, 대략 1.5㎞ 뒤에 5m 높이의 2차 바리케이드를 설치했다.

1, 2차 바리케이드를 설치한 뒤, 오륙도 아파트 앞에 최후의 보루로 사용할 3차 방어선까지 완성되었다.

3차 방어선의 높이는 최종 방어선답게 높이가 6m나 되었다.

모든 생존자가 힘을 합쳐 잠시도 쉬지 않고 쌓아 올린 결과물이었다.

밤낮 가리지 않고 움직인 탓에, 다들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결국 남은 8시간은 체력을 비축하기 위해 휴식시간을 가졌다.

대부분은 기다렸다는 듯이 숙면에 빠져들었다.

설여원과 나는 기숙사 옥상에서 완성된 바리케이드의 모습을 살폈다.

설여원은 들고 있던 망원경을 내려놓고, 내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다.

“지금 몇 시지?”

“오후 2시.”

“이제 자판기 유지시간 8시간도 안 남았어. 대공습 레버 언제 당길 거야?”

설여원의 물음에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다들 지쳐 있을 텐데, 생존자들에게 최소한 6시간은 휴식시간을 줘야 하지 않을까?

이러한 의견을 얘기하자, 설여원은 홀로그램을 살피며 내게 물었다.

“지금 포인트 얼마나 모았어?”

“환전 두 번 했으니 20,207포인트. 좀비 카운트는 2,044.”

광안리 해수욕장을 정리한 뒤, 우린 감만동과 우암동, 대연동 순으로 정리했다.

대도시라는 명성답게 좀비들의 숫자는 보통이 아니었다.

최현과 윤혜리의 인형극을 쿨타임마다 사용하며 정리했지만, 3개의 동을 정리하는 게 한계였다.

대연동만 해도 대연1동부터 6동까지 있었고, 감면동도 1동과 2동으로 나뉘어 있었다.

스킬 좀비화를 적극적으로 사용했다면 더 많은 동네를 정리할 수 있었겠지만, 이는 리스크가 상당했다.

내 신체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결국은 사람이었다.

광안리 해수욕장을 정리한 다음 날, 근육통으로 인해 온종일 기운을 내지 못했다.

저체온증의 후유증 때문인지, 감기몸살에 시달렸다.

그나마 다음 날부터 몸 상태가 돌아왔기에, 20만의 좀비 카운트를 올린 것이다.

좀비들 정리에 진을 빼면 정작 대공습 때 전력을 다할 수 없기에,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좀비들을 정리했다.

그동안 최현과 윤혜리는 인형극의 레벨을 하나 더 높였다.

16,000코인이나 소모해야 하는 극악의 조건이었지만, 이미 두 사람이 보유 중인 코인이 42,000코인을 넘은 상태였다.

16,000코인을 투자해도 코인이 26,000이나 남는 상황.

[인형극 Lv.6]

-반경 500m 내의 좀비들을 40초간 조종할 수 있습니다.

-오전, 오후 12시마다 초기화됩니다.

-5단계 대장 좀비의 수하들까지 조종할 수 있습니다.

최현에게 들은 6레벨 인형극의 능력은 이러했다.

5단계 대장 좀비의 수하들까지 조종할 수 있게 되었고, 유지시간도 10초 증가했다.

아쉬운 점이라면 더는 범위가 증가하지 않았다.

범위 증가 대신 유지시간이 대폭 증가하는 방식으로 변했다.

물론 소리결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파티 자사모에도 각성 데니가 있었다.

송하윤과 붙어 다니는 이진호의 직업이 데니였다.

이진호에게 인형극을 배우고 레벨을 높이라고 했다.

파티 자사모는 통도사 휴게소에서 각성했기에, 소리결에 비하면 보유 코인이 많지 않았다.

또한 공격대에 속한 파티는 소리결이 획득하는 코인의 절반을 습득하기에, 큰 효과를 바랄 수 없었다.

때문에 이진호의 인형극은 레벨 3에서 그치고 말았다.

그래도 그게 어디인가?

뭐든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낫다.

이정우와 정진영은 모든 파티원들에게 강화제 알약을 배분했다.

문제는 파티 영일대와 돼지국밥, 밤바다의 플레이어들은 각성을 못 한 탓에 강화제 알약의 효과를 받을 수 없었다.

부산에 40명 이상의 살인귀가 살아남은 쉘터가 없었다.

살인귀가 없다는 건 각성도 할 수 없다는 뜻.

부산 전체가 좀비 소굴이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3개의 파티가 알약 효과를 받을 수 없으니, 각성 파티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이에 이정우와 정진영은 각각 세 알씩 배분했다.

이정우와 정진영은 한 알에 500코인이나 하는 강화제 알약을 16명에게 세 알씩 배분한 것이다.

신기한 건 세 알씩 배분하고도 남은 코인이 3만이 넘는다고 했다.

남은 코인은 추후 상황을 보고 어떻게 사용할지 결정하겠다고 한다.

그동안 데니와 로즈를 제외하고는 다들 코인을 사용하지 않은 탓에, 정말 어마어마하게 코인을 쌓아둔 상태였다.

천리안을 구매한 뒤에 단 한 번도 코인을 사용하지 않은 가브리엘은 보유 코인이 58,000에 달한다고 한다.

언젠가 독 안개 제거의 레벨을 높여야 하는 순간이 오면, 단숨에 최고 레벨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박재우와 황덕록은 로그나이트로 만든 쇠뇌와 볼트를 설여원과 전완수, 김희연, 곽찬혁에게 배분했다.

이렇게 보면 왜 소리결만 코인을 쓰느냐고 물을 수 있다.

다른 각성 파티의 플레이어들도 열심히 코인을 사용했다.

다만 결인들에 비해 여유롭지 못할 뿐이었다.

한지현은 곽찬혁과 강요한, 그리고 본인이 무장하는 데 대부분의 코인을 사용했고, 이는 송하윤과 자사모 파티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당장에 로그나이트로 만든 무기와 보호대가 없기에, 장비를 갖추는데 많은 시간과 물자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뒤이어 망원경을 들고 있던 설여원이 입을 열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기다려야지.”

“마냥 기다려?”

알약 자판기의 남은 시간이 촉박해지자, 설여원도 초조한 모양이다.

이에 싱겁게 웃으며 얘기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 충분히 준비했고, 최선을 다했어.”

“…….”

“초조하게 기다리지 말고 겸허히 받아들여. 마음 가다듬으면서.”

“너무 천하태평 아니야?”

“이건 네가 알려준 거야. 기억 안 나? 나 광안리 정리하고 다음 날에 골골거릴 때.”

설여원은 움찔거리는 모습을 보이더니, 대답 대신 입맛을 다셨다.

이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내가 시간 촉박하다고 그랬더니 네가 그랬잖아? 대공습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지금 쉬라고.”

“그건…… 그렇지.”

“마찬가지야. 아직 8시간 남았으니, 6시간 정도는 쉬어야지.”

“너는 진짜…… 사람 할 말 없게 만든다니까.”

설여원은 뚱한 표정을 지으며 팔짱을 끼더니, 옥상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곧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뭐해?”

“마음 가다듬으라며? 진정 좀 하려고.”

“긴장했어?”

“당연히 긴장되지! 수십만 좀비랑 싸워야 하는데. 거기에 변종까지 있고.”

설여원의 투덜거림에 웃음이 터졌다.

설여원은 불안한 나머지 퉁명스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난 설여원의 옆에 앉으며 얘기했다.

“다 잘 될 거야. 걱정하지 마.”

“…….”

“할 수 있어.”

설여원은 입술을 다문 채 앞머리를 만지작거리더니, 오래 지나지 않아 고개를 끄덕였다.

폭풍 전야의 고요함은 결인들 마저 긴장하게 만들었다.

* * *

천지에 어둠이 깔리고, 시침이 오후 8시를 지날 무렵, 무전기에서 전완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재형아, 여원아, 들리냐?

“얘기해.”

-1차 바리케이드에 생존자 1,700명 도착했어. 생존자 대부분은 광안대교 방면 담당할 거고, 네가 중간에서 조율하면 돼.

“플레이어들은?”

-남쪽에 북항대교 방면부터 중간지점까지 담당할 거야.

“이름은 북항인데 남쪽에 있어?”

-부산항대교 인마.

전완수의 목소리에 가시가 돋아 있었다.

긴장 풀어주려고 농담한 건데, 거 참 예민하게 반응하기는.

난 싱겁게 웃으며 얘기했다.

“자기장 없어지면 여원이도 들여보낼 거야. 완수 너 지금 입구 밖이지?”

-어, 안개 속에서 대기 중. 여원이는 슬슬 보내. 자기장 없어지면 바로 들어가게.

“그래, 정우 형한테 레버 당기라고 해줘.”

-오케이.

무전을 마치고 설여원을 쳐다보자, 그녀는 대답 대신 내 손목을 잡았다.

곧 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진지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몸조심해.”

엷은 미소를 지으며 어서 이동하라고 했다.

멀어지는 설여원을 바라보며 몇 차례 심호흡을 반복했다.

고대하던 아크에 도착했지만, 세상은 순순히 길을 열어줄 생각이 없었다.

언제나 그래왔다.

안도감이 들 때면, 더욱 큰 시련이 다가왔다.

한두 번 겪어본 기복이 아니기에, 대공습이라는 고행을 앞두고도 마음이 평온했다.

아니, 떨림이 설렘으로 느껴지는 기이한 현상을 경험했다.

나의 처절한 생존 이야기가 누군가에겐 하찮은 발버둥으로 여겨질지도 모른다.

그래도 상관없다.

누가 뭐라 하든 끝까지 발버둥 치고 살아남을 테니까.

아무리 하찮은 모래성이라도, 무너지고 쌓아 올리길 반복하다 보면 그 무엇보다 튼튼한 지반이 완성된다.

지난날의 고행은 내게 탄탄한 지반을 선사했고, 지금의 난 탄탄한 지반 위에 서 있다.

더는 무너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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