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30화
이정우가 단호하게 얘기하자, 윤성민은 멋쩍은 표정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살폈다.
곧 생존자들 사이에서 질문이 들려왔다.
“건드리지 말라니? 밖에 있는 좀비들을 벌써 정리하고 있다는 겁니까?”
“네.”
“혼자서?”
“저희 파티원들과 함께 정리하고 있어요.”
“파티원들은 여기 있잖아요. 파티원 누구요?”
“설여원과 최현, 박재형, 이렇게 셋이서 정리하고 있습니다.”
셋이서 좀비를 정리하고 있다는 말에 생존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곧 구석에 있던 여자가 오른손을 들며 얘기했다.
“셋이서 좀비를 어떻게 잡아요? 말이 되는 소리를 해요! 우리가 바본 줄 알아?”
“진실만을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내 눈으로 봐야겠어. 안 그러면 못 믿어!”
여자가 소리치자, 생존자들 사이에서 너도나도 옳소! 옳소!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굳이 두 눈으로 보겠다는 이유가 뭘까.
박재형에 대한 이야기가 진실인지, 내심 확인하고 싶은 모양이다.
이정우가 못마땅한 표정을 짓자, 자리에 앉아 있던 전완수가 입을 열었다.
“형, 어차피 저도 나가야 되는데, 까짓거 나가서 확인하죠?”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마. 사람을 데리고 나갔다가 무슨 일이 생길 줄 알고.”
“어차피 가는 길인데 눈으로 확인시켜주는 게 좋지 않겠어요? 직접 봐야 믿겠다는데, 어쩌겠어요.”
“벌써 해 떨어지고 있어. 여기 있는 사람들 전부 데리고 나가는 건 무리야.”
이정우가 덤덤하게 얘기하자, 생존자들 사이에서 몇몇이 손을 들며 외쳤다.
“사람 많은 게 문제라면 우리 대표들만 갔다 옵시다!”
“그렇게 합시다!”
“그래요! 궁금해서 못 참겠습니다!”
사람들이 아우성치자, 윤성민은 한숨을 내쉬며 이정우를 쳐다봤다.
“죄송합니다, 이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괜찮아요. 대신 밖에 나가는 사람들은 무기 챙기라고 해주세요.”
“정말 데려가려고요?”
“직접 봐야 믿겠다잖아요.”
“……알겠습니다.”
전설처럼 내려오는 영웅담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는 생존자들.
윤성민이 생존자들에게 무기를 보급하는 동안 이정우와 전완수, 박재우, 황덕록은 필요한 물자를 챙겨서 바리케이드 앞으로 향했다.
바리케이드 앞에서 얼마나 기다렸을까.
대략 1시간이 지나서야 윤성민과 수색팀, 경비팀, 시설팀 등의 생존자 대표가 모였다.
그들은 이정우의 뒤에 있는 버스를 쳐다보며 물었다.
“우리 차 타고 갑니까?”
차로 이동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이에 이정우는 싱겁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이 버스는 목적지가 달라요. 우리는 걸어갑니다.”
이정우는 버스에 있는 전완수를 쳐다보며 얘기했다.
“완수, 재우, 덕록이, 너희는 곧장 대학교로 이동해서 텐트 설치하고 좀비들 정리해 줘.”
“만약 좀비들 많으면 어떻게 해요? 저희가 다 잡아요? 아니면 돌아와요?”
“재형이랑 여원이 돌아오면 바로 쉴 수 있도록 텐트 설치하는 거니, 무리할 필요는 없어. 좀비들 많으면 다른 곳에 설치해도 되니, 적당히 상황보고 움직여.”
“좀비들 적당히 있으면 저희가 잡을게요.”
“그래.”
전완수는 버스에 시동을 걸고 곧장 대로 맞은편의 대학교로 향했다.
이정우는 버스가 이동하는 걸 바라보며 주머니에 넣어둔 무전기를 꺼냈다.
“재형아, 들려?”
치지직- 치직-
-말씀하세요.
“여원이니?”
-재형이 지금 바빠요. 왜요?
이정우는 뒤에 있는 사람들을 눈으로 훑은 뒤, 설여원에게 물었다.
“지금 그쪽으로 이동하려고 하는데, 우리 가도 돼?”
-여기요? 상관은 없는데…… 재형이는 지금 없어요.
“응? 재형이 어디 갔어.”
-재형이 광안리 해수욕장 정리하러 갔어요.
“뭐?”
이정우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되물었다.
그러자 무전기로 너머로 설여원은 한숨과 함께 대답이 들려왔다.
-광안리 테두리 따라서 정찰 다녀오더니, 지금은 밀어도 안전하다면서 갔어요.
“혼자?”
-제가 같이 가자고 안 했겠어요? 재형이가 다른 사람 말을 들어야지…….
이정우는 곤란한 마음에 뒤에 있는 사람들을 쳐다봤다.
그러자 윤성민이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광안리를 혼자 정리하러 갔다고요?”
“아무래도 그런 것 같네요.”
“말도 안 돼. 당장 말려야 합니다! 광안리는 좀비들이 득실거리는 곳이에요! 저희도 보름 전에 식수 구하러 갔다가 죽을 뻔했다고요!”
윤성민이 언성을 높이며 얘기하자, 의기양양하게 따라나선 생존자들도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박재형의 실력을 보고 돌아올 생각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광안리를 가게 생겼다.
이정우는 입맛을 다시며 설여원에게 물었다.
“너는 어디야?”
-저는 남천2동이요. 정확한 위치는 모르겠어요.
“근처에 특이한 건물 없어?”
-어…… 항만청 기숙사라고 있어요.
“거기 있어. 그리로 갈게.”
-지금 온다고요? 아직 정리 좀 해야 되는데.
정리라는 말에 이정우는 눈꼬리를 치켜뜨며 물었다.
“재형이는 광안리 해수욕장으로 가고, 현이랑 네가 남천2동 정리하고 있는 거야?”
-아, 좀비들 정리가 아니라 시체 정리요.
“……자세한 건 만나서 얘기하자.”
-네.
무전을 마친 이정우는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더니, 혼잣말을 읊조렸다.
“하…… 무리하지 말라고 그렇게 얘기했는데…….”
이정우가 눈살을 찌푸리자, 뒤에 있는 생존자들은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괜히 따라나섰다는 생각이 그들의 머릿속을 헤집고 있었다.
이정우는 양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으며 얘기했다.
“윤성민 씨, 항만청 기숙사가 어딥니까?”
“가깝습니다. 따라오세요.”
이정우는 로그나이트로 만든 창을 손에 쥐며 윤성민의 뒤로 붙었다.
그 뒤로 12명의 부서별 대표와 부대표가 따라붙었다.
* * *
항만청 기숙사에 다다르자, 생존자들은 코를 움켜쥐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게 무슨 냄새야?”
“어후, 너무 지독한데?”
인상을 찌푸린 채 계속해서 나아가자, 생존자들의 발끝으로 무언가가 걸리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은 반사적으로 시선을 내렸고, 그곳에서 머리가 잘려나간 좀비들의 시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히익!”
그들은 기겁하며 뒷걸음질 쳤다.
찰박-
신발 밑창을 적시는 액체.
노면에 흩뿌려진 좀비들의 선혈이 웅덩이를 형성하고 있었다.
생존자들은 눈앞으로 펼쳐진 참혹한 광경에 전신이 석고상처럼 굳어버렸다.
뒤이어 항만청 기숙사에서 걸어 나오는 여자.
“정우 오빠!”
“여원아.”
이정우가 다가가자, 설여원은 콧잔등을 긁적이며 얘기했다.
“냄새 지독하죠?”
“언제 이렇게 많이 잡은 거야?”
“인형극으로 이 동네부터 정리했어요.”
“재형이 좀비화는 안 썼어?”
“광안리 정리할 때 쓰지 않을까요? 광안리에 좀비들이 적당히 많아야죠.”
이정우는 한숨을 내쉬며 앞머리를 쓸어넘겼다.
이걸 어느 세월에 정리하나, 하는 표정이었다.
뒤이어 시체를 옮기던 최현이 이정우와 설여원의 곁으로 다가왔다.
“형도 빨리 도와요.”
“어?”
“이것들 다 태워야죠. 냄새 맡고 다른 곳에 있는 좀비들까지 몰려들면 곤란해요.”
이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뒤에 있는 생존자들에게 얘기했다.
“여러분도 이리 와서 도와요.”
“예? 우리도?”
“보고 싶다면서요. 셋이서 좀비를 잡을 수 있는지.”
생존자들은 얼떨결에 시체 정리를 돕게 되었다.
소매를 걷어붙이고 열심히 시체를 옮겼지만, 당최 끝이 보이지 않았다.
걸쭉한 혈액이 뚝뚝 떨어지는 시체들은 점점 산처럼 쌓여갔다.
“웁! 우웩!”
생존자들 사이에서 구토를 하는 사람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량의 시체를 치우는 건 처음인지, 다들 안색이 좋지 않았다.
윤성민도 오만상을 찌푸리며 이정우에게 물었다.
“이렇게 많은 좀비를 한 시간도 안 돼서 처리했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네요.”
“재형이라서 가능한 겁니다.”
“아무리 그래도요. 시체만 3만 구는 될 것 같은데.”
이정우는 옆에 있는 설여원을 쳐다보며 물었다.
“여원아, 여기서 몇 마리나 잡은 거야?”
“31,024마리요.”
“구체적으로도 잡았네.”
“물론 전부 재형이가 처리했어요. 좀비 카운트 때문에.”
박재형이 처리했다는 말에 이정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잠깐만, 3만? 그럼 재형이 한계 돌파할 수 있는 거 아니야? 저번에 3만 카운트 안 남았다고 그랬는데.”
“안 그래도 한계 돌파하고 엄청 놀란 표정 짓더니, 혼자 광안리 정리하러 간 거예요.”
그러자 옆에 있던 최현이 입을 열었다.
“뻔하지. 한계 돌파하고 얼마나 강해졌나 실험하고 싶어서 광안리 간 거야.”
“지금 재형이 근력이 얼마나 되지?”
이정우가 묻자, 최현은 옷소매로 인중을 닦으며 얘기했다.
“90대라고 그랬던 것 같은데, 정확한 수치는 모르겠어요.”
90이란 말에 열심히 시체를 옮기던 윤성민이 떡하니 입을 벌리며 그들의 곁으로 다가왔다.
“자, 잠깐만요. 박재형 씨의 근력이 90대라고요?”
“네, 왜요?”
“그게 가능한 겁니까?”
“네?”
최현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일행의 얼굴을 쳐다봤다.
윤성민은 말까지 더듬으며 얘기했다.
“아니…… 제 일행에도 에덤이 있습니다. 그 친구는 40대 후반이 한계라고 그랬어요.”
“홍성범 씨요?”
최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윤성민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옆에 있던 설여원이 입을 열었다.
“그게 한계라고요? 아닐 텐데? 한계 돌파 있지 않아요?”
“있긴 있습니다만…… 사실상 불가능해요. 에덤이란 캐릭터 자체가 어시스트 포인트는 기대하기 어렵고, 본인 손으로 처리해야 카운트가 올라가거든요.”
“…….”
“홀로 몇만의 좀비를 잡아야 간신히 한계 돌파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한계 돌파를 하면 할수록 요구 포인트가 대폭 증가하죠.”
“그게 왜 한계라는 거예요?”
“예?”
설여원이 눈꼬리를 치켜뜨며 묻자, 윤성민은 말을 버벅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파티 소리결은 그게 왜 안 되냐고 묻고, 윤성민은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묻는 상황.
설여원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재형이는 했어요.”
“……그 친구 사람 맞아요? 겁도 없대요?”
사람 맞냐는 질문에 설여원의 눈꼬리가 꿈틀거렸다.
하지만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며 대답했다.
“무섭겠죠. 무서워도 싸워야지 어떡해요.”
“한 번입니다. 딱 한 번 물리면 거기서 끝이에요. 그런데도 좀비랑 계속 싸웠다고요? 그게 기계지 사람이에요? 혹시 다른 방법이라도 있는 겁니까?”
윤성민이 선 넘는 질문을 하자, 설여원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하고 싶은 말이 뭐예요.”
설여원의 표정이 싸늘하게 변했다.
갑작스러운 온도 차에 윤성민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윤성민이 입에서 나온 말은…… 그동안의 노력과 처절했던 나날을 무시하는 발언이었다.
다른 방법이라니.
꼼수라도 부렸다고 생각하는 게 아닌가?
윤성민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설여원은 윤성민과 생존자들을 노려보며 얘기했다.
“여기 왜 온 거예요?”
“네?”
“저 사람들 왜 데리고 나왔냐고.”
설여원이 미간을 찌푸리며 얘기하자, 윤성민은 마른침을 삼키며 한 걸음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상황을 지켜보던 이정우가 쓴웃음을 지으며 얘기했다.
“여원아, 그런 게 아니라…….”
“오빠도 이러면 안 되죠. 누군 목숨 걸고 싸우고 있는데, 여기 있는 사람들은 우리 제대로 싸우고 있는지 확인하러 나온 거잖아요. 아니에요?”
설여원이 생존자들을 가리키며 얘기하자, 시체를 옮기던 생존자들은 아무런 반박도 못하고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이에 설여원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다들 재형이 보러 나온 거죠? 재형이가 좀비들 때려잡는다고 소문이 자자하다던데, 재형이가 동물원 원숭이예요?”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아님 뭐냐고!”
설여원이 윤성민의 앞으로 성큼 다가서며 묻자, 그는 마른침을 삼키며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설여원의 표정이 살 떨리게 무서워서, 윤성민은 시선조차 마주치지 못했다.
지금껏 안전한 아크에서 살아남은 사람과, 바깥에서 치열하게 살아남은 사람은 눈빛부터 달랐다.
설여원은 냉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윤성민 씨, 바리케이드 밖에서 얼마나 지내봤어요.”
“네?”
“아크에 있는 바리케이드요. 그거 없이 얼마나 살아봤냐고요.”
“…….”
윤성민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설여원은 치가 떨린다는 듯이 얘기했다.
“당신들이 처절하게 살아남았다고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어?”
“…….”
“강해지는 방법이라도 있냐고? 진짜 어이가 없어서…… 당신이 처절함이 뭔지는 알아?”
“…….”
“자는 동안 좀비한테 목덜미 물어뜯길까 봐 불안했던 적 있어? 불침번서는 동료가 내일 아침에 눈 뜨면 없을까 봐 불안한 적은 있었고?”
“…….”
“무서워 죽겠는데, 다른 방법이 없어서 좀비들 득실거리는 곳으로 직접 뛰어든 적은 있어?”
“죄송합니다. 제가 경솔했습니다. 근력이 90대라는 말에 놀라서…….”
윤성민은 곧장 사과부터 했다.
설여원은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었다.
뒤이어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얘기했다.
“당신들 착한 사람인 거 알아. 하지만 박재형을 저울질하는 건 내가 못 참아. 매일, 매 순간, 1분 1초 목숨 걸고 살아남은 친구야.”
“정말 죄송합니다.”
“시험하려고 하지 마. 선생도 아니면서 검사하려고 하지 말고, 궁금해하지도 마. 각자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그냥 닥치고 박재형 믿어. 그게 도와주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