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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229화 (229/373)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29화

부산은 좀비들이 정리되지 않았기에, 차를 타고 이동하는 건 무리였다.

숫자라도 적으면 상관없지만, 350만에 달하는 인구가 살아가는 대도시였다.

지도만 봐도 붉은 점으로 표시된 지역이 많기에, 우린 도보로 이동했다.

발소리를 죽인 채 설여원을 선두로 남천2동에 도착했다.

크르르르르…….

귓가를 간질이는 좀비들의 음성에, 난 설여원의 옷자락을 잡으며 얘기했다.

“그만.”

“왜.”

“좌측에서 좀비들 소리 들려.”

“소리? 난 아무것도 안 들리는데.”

구불구불한 지형과 각종 건물 때문에 시야에 포착되지 않는 모양이다.

반면에 난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발달한 청각으로 인해 100m 밖의 발소리까지 감지할 수 있었다.

설여원은 좌측 외벽에 등을 붙이고, 조심스레 벽 너머의 상황을 살폈다.

“와…… 재형이 말이 맞아. 90m 밖에 좀비들 뭉쳐 있어.”

최현은 신기하다는 듯이 내 등을 치며 물었다.

“90m 거리에서 목젖을 가는 게 들려? 어떻게 한 거야?”

“나도 몰라. 그냥 들려.”

현재 반사신경과 동체 시력을 수치로 나타내면 42.

반사신경을 높이면 모든 감각이 발달하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설여원은 좀비들의 숫자와 지형을 살피며 얘기했다.

“좀비들 뒤로 아파트 단지 있어.”

“주변에 다른 아파트는 없어?”

“아파트 엄청 많아.”

설여원의 말을 듣고, 난 칼자루를 말아쥐며 얘기했다.

“둘 다 여기 있어.”

“어쩌려고.”

“12시간에 한 번 쓸 수 있는데, 최대한 많이 모아서 써야지.”

“몰이하려고? 저것들 전부 다?”

설여원은 마른침을 삼키며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좀비 1천 마리를 봐도 긴장하지 않는 설여원이지만, 사냥할 때는 다르다.

내가 사냥에 나서면 최소 만 단위로 끌고 오기에, 아무리 결인들이라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최현은 좌측 건물을 가리키며 얘기했다.

“여원이랑 나는 여기 있을 테니까, 좀비들 끌고 이 건물로 와.”

“알았어.”

3층 높이의 건물.

설여원과 최현이 건물로 진입하는 걸 확인한 뒤, 한 차례 심호흡과 함께 좀비들에게 달려들었다.

카가가가가각!!

카타나로 외벽을 긁으며 달려들자, 고막을 찌르는 파찰음에 좀비들이 돌아보기 시작했다.

크어어어어어!!

뭉쳐 있던 좀비들은 활활 타는 장작을 마주한 불나방처럼, 거침없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어어어어…….

인기척을 느낀 공명 좀비도 허공을 바라보며 울기 시작했다.

공명 좀비는 되도록 미리 처리하는 게 안전하다.

저것들을 내버려 두면 광안리에 있는 좀비들까지 달려올 테니까.

광안리에 있는 10만이 넘는 좀비, 그리고 변종들.

이에 하체를 접으며 읊조렸다.

“가속.”

쾅!!

지면을 박차며 안개 밖으로 뛰어올랐다.

공명 좀비와의 거리는 90m.

2단 뛰기를 배운 이상, 단 한 번의 도약으로 100m를 돌파할 수 있다.

안개 표면에 발판이 있다고 생각하며, 다시 한번 박차를 가했다.

훙-!

눅눅하고 습한 안개를 벗어나, 서쪽 하늘 너머로 기우는 노을을 등지며 공명 좀비의 머리 위로 날아들었다.

뻑!!

일격에 공명 좀비의 두개골을 으스러뜨리고, 착지와 동시에 카타나를 휘둘렀다.

시간이 촉박한 건 사실이지만, 그럴수록 침착하게 좀비 카운트를 높여야 한다.

인형극의 최대 범위를 생각하며, 달려드는 좀비들의 숫자를 계산했다.

* * *

아크 내부에 있는 생존자들의 쉼터이자 주거공간으로 사용되는 오륙도 아파트.

3,000세대에 달하는 대단지 아파트의 중앙광장으로 2,000명의 생존자가 모였다.

그리고 생존자들의 시선은 플레이어들에게 쏠려 있었다.

슬슬 회의를 시작해야 하는데, 가장 앞줄에 있는 플레이어들이 너도나도 넋이 나간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에 몇몇 생존자가 윤성민을 불렀다.

“윤성민 씨, 회의 시작 안 해요?”

“아, 죄송합니다.”

“오늘따라 너무 넋이 나가 있는데?”

생존자들의 농담 섞인 말에, 윤성민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 전 좀비들을 휩쓸던 박재형의 모습이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생소한 광경에, 잡다한 생각이 머릿속을 배회했다.

아크의 생존자들은 하루에 한 번씩, 저녁을 먹기 전에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서로의 일과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윤성민은 임의로 설치한 중앙 무대에 오르며 얘기했다.

“이미 들으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오늘 새로운 생존자들이 왔습니다.”

생존자가 왔다는 말에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윤성민이 이정우를 중앙 무대로 부르자, 이정우는 헛기침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동그랗게 둘러앉아 있던 생존자들 사이에서 탄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정우 씨?”

“정우 학생!”

“소리결 아니야?”

“어머! 어머 어머!”

“재형이는 어디 있어?”

금호강 건너에서 구출한 생존자들과 쉘터 황금동 출신의 생존자들이 이정우를 알아봤다.

수백 명의 사람이 이정우를 알아보자, 아크에 있던 기존 생존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아는 사람이야?”

“내가 얘기했잖아! 우리 구해주신 분들이야!”

“1만이 넘는 좀비를 처리했다는 그 사람들?”

“그래!”

아크의 생존자들 사이로 소리결의 영웅담은 전설처럼 내려오고 있었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지자, 윤성민이 사람들을 진정시키며 얘기했다.

“여러분 진정하세요.”

“진짜 소리결 사람들이에요?”

“맞습니다. 저희가 항상 얘기했던 바로 그분들입니다.”

윤성민은 사람들을 진정시킨 뒤, 이정우가 편히 얘기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유도했다.

이정우는 한차례 목을 가다듬더니,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목에 힘을 주어 얘기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파티 소리결의 파티장, 이정우라고 합니다!”

“와아아아!”

반가운 얼굴들이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덕분에 어색한 분위기가 환기되고, 이정우의 떨림도 사라졌다.

이정우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반가운 마음에 한껏 들뜬 사람들이 진정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여기저기서 불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용히 좀 해요! 우리도 좀 듣자!”

“그래! 우리도 궁금하다고!”

사람들의 원성에 황금동 사람들과 금호강 생존자들은 반가워서 그랬다고, 미안하다고 인사하며 자리에 앉았다.

분위기가 험악한 건 아니었다.

그만큼 소리결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가 많다는 방증이었다.

이정우는 숨을 가다듬으며 소리결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함께 온 생존자의 규모와 출발지, 그동안 어떻게 생존했는지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교내에서 지낸 이야기, 실개천 너머에서 겪은 일화, 금호강 건너의 일화, 대구, 구미, 포항을 지나 부산에 도착하기까지의 여정은 많은 사람의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귀감이 되는 이야기였다.

사람들이 흥미를 보이자, 소대장 박성훈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얘기했다.

“금호강 건너, 거기에 있던 사람이 접니다. 저!”

“오오오.”

그러자 곽찬혁도 손을 들며 얘기했다.

“대구 황금동 이야기는 제 얘기에요! 하하!”

소리결과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 우쭐거리며 얘기했다.

유치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세상이 망한 마당에 강자와 연이 있다는 건 크나큰 메리트가 되었다.

기존에 있던 생존자들은 겉으로 티 내지 않았지만, 내심 부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뒤이어 아크의 생존자들이 손을 들고 질문을 이어나갔다.

“소리결 사람들은 일당백이라던데, 진짜 혼자서 100마리 잡을 수 있어요?”

“괴물 같은 사람이 있다던데, 그 사람은 어디 있습니까?”

“박재형이란 사람은 어디 있어요?”

사람들의 질문에 이정우가 곤란한 표정을 짓자, 옆에 있던 윤성민이 입을 열었다.

“여러분, 박재형 씨는 아크로 들어올 수 없습니다.”

“예? 이유가 뭡니까!”

“제가 얘기했죠? 라스트아크를 플레이했던 사람들은 퀘스트를 클리어해야 들어올 수 있다고. 박재형 씨는 퀘스트를 클리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또다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뒤이어 한 남자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들려왔다.

“그 사람은 엄청나게 강하다고 들었는데, 왜 클리어를 못 한 겁니까? 강하다는 거 거짓말 아닙니까?”

남자의 질문에 사람들의 시선이 윤성민에게 쏠렸다.

그러자 윤성민은 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박재형 씨가 강하다는 건 사실입니다.”

“그걸 우리가 어떻게 믿습니까!”

언성은 높지만, 따지는 느낌은 아니었다.

알약 자판기의 유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초조함이 그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확실한 근거를 제시해 달라는 바람이었다.

윤성민은 남자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얘기했다.

“조금 전 모든 파티원과 함께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고 왔습니다.”

“파티원들? 파티 영일대랑 밤바다도 확인했습니까?”

“예, 다 같이 확인했습니다.”

그러자 생존자들 사이에 있던 남자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 우리 살아남을 수 있는 거예요?”

남자의 물음에 사람들의 눈빛에 실낱같은 기대감이 엿보였다.

윤성민은 한 차례 심호흡과 함께 입을 열었다.

“대공습 때문에 여러분이 불안하다는 거, 저도 압니다. 저 역시 하루도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

이미 대공습에 대해서 생존자들에게 얘기한 모양이다.

매일같이 회의를 진행하다 보니, 마땅한 방안이 없다는 것도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들이 소리결의 영웅담에 더욱 집중한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소리결의 이야기는 모든 생존자에게 희망, 그 자체였다.

윤성민이 뜸을 들이자, 사람들은 숨죽인 채 귀 기울이는 모습을 보였다.

윤성민은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확신에 찬 목소리로 얘기했다.

“소리결의 이야기에 거짓은 없었습니다. 아니, 그 이상입니다.”

“오오!”

“그리고 소리결의 이야기는 박재형 씨 홀로 만든 게 아닙니다.”

윤성민은 이정우와 결인들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여기 계신 소리결 분들은, 저희와 급이 다릅니다. 같은 플레이어가 봐도 무서울 정도로 강해요.”

“…….”

“소리결의 이야기는 소리결이 만든 거지. 한 사람이 만든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러자 가만히 앉아 있던 정진영이 싱겁게 웃으며 콧잔등을 긁적였다.

뒤이어 속삭이는 목소리로 결인들에게 얘기했다.

“야, 솔직히 재형이가 절반은 쓴 거 아니냐?”

“그건 그렇죠.”

박재우가 싱겁게 웃으며 대답하자, 황덕록은 팔짱을 끼며 얘기했다.

“절반도 아니죠. 태반은 썼지.”

반면에 윤혜리와 김희연은 다소 불편한 안색을 내비쳤다.

윤성민의 말에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다.

2,000명의 사람이 보내는 무한 신뢰와 기대는 20살의 윤혜리와 김희연에게는 버거운 압박감이었다.

가만히 앉아 있던 전완수는 윤혜리와 김희연의 표정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더니, 윤성민을 향해 외쳤다.

“거 참, 너무 미화하는 거 아닙니까? 다 같이 싸워야지, 이건 뭐 우리더러 방패 역할 하라는 것도 아니고!”

전완수가 필터 없이 얘기하자, 윤성민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나쁜 뜻은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느끼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전완수는 생존자들의 시선에 뚱한 표정을 지으며 팔짱을 꼈다.

윤성민은 황급히 말을 이었다.

“저희는…… 그저 든든한 동료가 필요했을 뿐입니다.”

“…….”

“대공습이 시작되면 어떻게 싸울지, 이미 대비책도 만들었습니다. 다만 아무리 대비해도 승리를 가늠할 수 없었을 뿐입니다.”

“우리가 있으면 달라진다는 겁니까?”

“훨씬 힘이 된다는 거죠.”

전완수의 말이 심기를 건드렸는지, 생존자들 사이에서 굵직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성민이! 우리도 보여주자고! 우리가 싸울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 저 사람들도 우리를 신뢰하지!”

“옳소!”

“대공습 시작하기 전에 좀비들 숫자부터 줄이자! 가자!”

“그래! 가자!”

500명의 남자가 소리치자, 윤성민은 그들을 진정시키며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이정우는 갑작스러운 남자들의 반응에 윤성민을 쳐다보며 물었다.

“저분들은 누굽니까? 엄청 열정적이네요.”

“저희 쉘터의 경비대, 수색대예요. 식수를 구하러 나갈 때 저희는 다 같이 나가서 싸우지, 플레이어만 움직이지 않습니다.”

윤성민의 대답에 이정우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최소한 이곳에 있는 생존자들은 뒤에 숨어서 목숨을 구걸하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윤성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존자들에게 얘기했다.

“좋습니다! 저희도 싸울 수 있다는 걸 소리결 분들에게 보여…….”

“아니요, 다들 수비 강화에 집중해 주세요.”

이정우가 윤성민의 말을 자르며 얘기하자, 윤성민은 입술을 벙긋거리며 어벙한 표정을 지었다.

뒤이어 다소 불편한 안색을 내비치며 물었다.

“저희가 못 미덥습니까?”

윤성민의 목소리는 이곳 생존자들의 의견을 대변한다.

생존자들은 숨죽인 채 이정우의 대답을 기다렸다.

소리결이 대단하다는 건 알겠지만, 무시하는 건 못 참는 것으로 보였다.

이에 이정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얘기했다.

“못 미더운 게 아니라, 재형이가 나오지 말라고 했으니까요.”

“……예?”

“재형이가 시키는 대로 해요. 그래야 모두가 삽니다.”

“아니 저희는 돕고 싶어서…….”

“재형이가 나오지 말라고 하면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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