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228화 (228/373)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28화

바리케이드 앞으로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마땅한 방안이 없어서, 다들 함묵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구석에 있던 낯선 남자가 입을 열었다.

“상황 안 좋은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보다 공격대 구성하려고 다 같이 나온 거 아닙니까?”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

그는 내 옆으로 성큼성큼 다가오며 오른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난 여수에서 온 구창진이요.”

“아, 반갑습니다.”

“파티명은 밤바다, 파티원은 7명. 각성은 못 했고.”

파티가 더 있었다.

그럼…… 소리결을 포함해서 총 6팀이 아크에 있는 건가?

구창진은 헛기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우린 뭘 하면 됩니까?”

“예?”

“랭킹 1위 파티가 왔으니 이제 뭐라도 해야지. 남은 시간도 별로 없는데 할 거 없어요?”

다소 건들거리는 말투.

하지만 비꼬는 느낌은 아니었다.

급하니까 빨리빨리 움직이자는 것으로 보였다.

곽찬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물었다.

“재형아, 여기 있는 파티들 전부 공격대에 초대해 줘.”

“아니…… 소리결 파티장은 정우 형이에요.”

그러자 플레이어들의 시선이 이정우에게 쏠렸다.

이정우는 사람들의 시선에 움찔거리는 모습을 보이더니, 곧 목덜미를 주무르며 얘기했다.

“초대 시스템은 없습니다.”

“초대가 없어? 그럼 어떻게 공격대에 들어가?”

구창진이 얼빠진 표정을 지으며 묻자, 이정우는 플레이어들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저도 확신은 없지만, 저희랑 같이 좀비들을 잡거나 퀘스트를 클리어해야 합니다. 그래야 홀로그램이 떠요.”

“무슨 홀로그램.”

“공격대에 합류할 수 있는 조건이 충족되었다는 홀로그램이요.”

파티 황금동과 자사모가 공격대에 들어온 건 조건을 충족시켰기 때문이다.

그들과 한바탕 좀비를 처리한 뒤에, 공격대에 합류할 수 있는 조건이 충족되었다는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구창진은 덤덤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그럼 지체하지 말고 빨리 움직이자고. 공격대에 들어가야 우리도 버프를 받든 말든 하지.”

그러자 구창진의 뒤에 있던 여자가 물었다.

“야, 눈치 챙겨. 여기 있는 분들 동의부터 얻어야지. 우린 각성도 못 했잖아.”

여자는 내 앞으로 다가오며 얘기했다.

“반가워. 난 이예선.”

“아, 반갑습니다.”

같은 파티 소속인 것 같다.

이예선이 구창진에게 눈치를 주자, 구창진은 머리를 긁적이며 주변 플레이어들에게 물었다.

“대공습 버티려면 한 명이라도 더 힘써야 하는데, 우리 각성 못 했다고 공격대 안 넣어주는 거 아니죠?”

구창진의 말투에 나도 모르게 실웃음이 터졌다.

저것도 능력이다.

거만한 말투지만,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감정에 솔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난 현재 시각을 살피며 곽찬혁에게 물었다.

“근처에 좀비들 적당히 많은 장소 없습니까?”

“저 앞에 아파트 단지 있어. 평소 이동 루트가 아니라서 좀비들 좀 있을 거야.”

곽찬혁의 말을 듣고, 바리케이드 앞에 모인 플레이어들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지금이 오후 4시니까, 앞으로 1시간 동안 좀비들 처리하면서 공격대 메시지 뜨는지 확인하죠.”

바로 전투를 시작한다는 말에, 다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반면에 결인들은 각자의 무기를 챙기며 태연하게 행동했다.

곽찬혁은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파티 황금동 일행에게 얘기했다.

“지현아, 요한아, 무기 들고 나왔지?”

“당연하지.”

한지현은 카타나를 손에 쥐며 가볍게 몸을 풀었다.

강요한은 길이 2m에 달하는 창을 손에 쥐며 훅, 하고 숨을 뱉었다.

두 사람의 무기도 로그나이트로 제작한 무기였다.

그동안 아크에서 열심히 프린트를 가동한 모양이다.

이에 질세라, 송하윤도 뒤에 있는 파티원들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각성도 했으니, 라이딩하러 가볼까?”

“옙!”

이진호는 힘차게 대답하며 화살집을 챙겼다.

파티 황금동과 자사모가 결인들의 옆으로 붙자, 그럴싸한 그림이 나왔다.

17명의 각성 플레이어.

파티 영일대와 돼지국밥, 밤바다도 각자의 무기를 챙기며 내 뒤로 붙었다.

원래 계획은 이게 아니지만, 최대한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선 이곳에 있는 파티를 공격대로 포섭하는 게 옳다.

난 뻐근한 어깨를 풀며 모두에게 얘기했다.

“공격대 조건만 충족시키고 빠질 거예요. 다들 무리하지 마세요.”

카타나를 손에 쥐고 곽찬혁을 쳐다보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파트 단지로 안내했다.

* * *

단지 정리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좀비들의 숫자는 예상보다 많았지만, 그만큼 플레이어도 많아서 버거운 수준은 아니었다.

크어어어어!!

사방에서 들려오는 좀비들의 육성에,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읊조렸다.

“감지.”

-25초간 전방 90m 내의 좀비와 변종의 움직임을 감지합니다.

푸른빛의 물결이 사방에서 파도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변종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지금은 사냥이 주된 목적이 아니기에, 무리하게 싸워선 안 된다.

이곳의 좀비들을 정리하고, 공격대를 구성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크어어어어!!

좌측 언덕에서 달려오는 좀비들.

“파티 자사모는 좌측 담당하세요!”

“알았어!”

자사모의 플레이어들은 일사불란하게 좌측으로 이동했다.

피융! 피융! 피융!

좀비들의 미간에 정확하게 꽂히는 화살촉.

송하윤과 이진호가 좀비들의 대열을 흔들자, 다른 파티원들이 근접무기를 들고 달려들었다.

이곳에 있는 플레이어들은 산전수전을 겪고 살아남은 이들이었다.

약한 모습을 보이거나, 공포에 질려 도망가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를 경쟁상대로 여기며 더 많은 좀비를 처리하기 위해 안달이었다.

카학! 카하악!!

배후에서 들리는 좀비들의 육성에, 난 시선을 돌리며 지시를 내렸다.

“김윤기 씨! 윤성민 씨! 후방에서 200마리 접근합니다!”

파티 영일대와 돼지국밥은 아직 각성하지 않은 플레이어들이었다.

열심히 싸우는 건 좋지만, 고작 10분 만에 상당히 지친 기색을 보였다.

이에 곽찬혁을 쳐다보며 외쳤다.

“황금동이 후방 도와줘요!”

“오케이!”

곽찬혁과 한지현, 강요한이 힘을 보태며 대열이 무너지지 않도록 조절했다.

그어어어…… 그어어어…….

뒤이어 공명 좀비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공명이 들리는 방향을 응시하자, 옆에 있던 설여원이 소리쳤다.

“우측 300m 거리에 공명 좀비!”

설여원의 외침에 빠르게 방향을 틀어 좀비들의 위치를 살폈다.

스킬 감지의 지속시간이 끝나는 바람에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수 없었다.

공명 좀비를 내버려 두면 안 된다.

지금은 사냥하러 나온 게 아니니, 공명 좀비는 미리 처리하는 게 이롭다.

안개 너머로 보이는 다수의 인영을 확인하고, 뒤에 있는 일행에게 얘기했다.

“다들 대형 유지해!”

지시를 내리고 칼자루를 말아쥐며 읊조렸다.

“가속.”

쾅!!

지면을 박차며 쏜살같이 달려나갔다.

* * *

“뭐야 방금.”

구창진은 갑작스러운 굉음에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뒤를 돌아봤다.

조금 전까지 박재형이 있었는데, 지금은 깨진 아스팔트 조각만이 공기 중에 흩날리고 있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구창진의 파티원이 얼빠진 표정으로 읊조렸다.

“미친…….”

“변종이야?”

구창진이 초조한 목소리로 묻자, 그의 파티원은 마른침을 삼키며 얘기했다.

“아니 박재형이란 사람…… 사람 맞아?”

“응?”

“저건…… 완전 괴물이잖아.”

그들의 옆에 있던 곽찬혁은 싱겁게 웃으며 이정우에게 물었다.

“정우야! 못 본 새 재형이 더 강해진 것 같다?”

“그때랑 비교도 할 수 없죠!”

곽찬혁은 다소 격양된 표정으로 박재형을 응시하더니, 아랫입술을 핥으며 얘기했다.

“와 씨…… 너무 빨라서 카타나가 눈에 안 보여!”

그러자 곽찬혁의 옆에 있던 설여원이 눈살을 찌푸리며 외쳤다.

“재형이 볼 시간에 좀비부터 처리해요!”

안개 속에서 시야 확보가 가능한 가브리엘.

각 파티의 가브리엘들은 좀비를 처리하는 것도 잊은 채 박재형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감탄이 절로 나오는 움직임.

급이 다르다는 게 무엇인지, 박재형은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윤성민은 박재형의 모습을 응시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얘기했다.

“거짓말이 아니었어.”

“예? 뭐가요?”

홍성범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되묻자, 윤성민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얘기했다.

“변종으로 변한 에덤을 처리했다는 말, 거짓말이 아니라고.”

윤성민은 박재형의 싸움을 보고 전율을 느꼈다.

그동안 자판기의 남은 시간을 확인하며 매 순간 초조하고, 불안했다.

위협이 다가오는 걸 알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황금동 파티가 도착하며 작은 기대를 품을 수 있었다.

랭킹 1위의 파티 소리결과 공격대를 맺은 파티 황금동.

곽찬혁을 통해 매일같이 소리결의 위치를 확인했다.

구미와 포항을 지나, 그들이 통도사 휴게소에 도착했다는 알람을 확인했을 때는…… 점점 부풀어 오르는 기대감으로 인해 심장이 터져 버릴 것 같았다.

자판기의 남은 시간이 75시간에 접어들 무렵, 그토록 기다렸던 소리결이 도착했다.

솔직하게 얘기하면…… 윤성민은 소리결을 마주하고 내심 실망했다.

예상과 달리 너무나 어린 학생들.

고작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소리결 플레이어들을 보고, 부풀었던 기대감은 불안감으로 변모했다.

10명의 대학생에게 2,000명의 목숨이 달려 있다는 생각에, 머릿속으로 무수히 많은 잡념이 떠올랐다.

하지만 눈앞의 광경을 목도하고, 내면의 불안감이 말끔히 사라지는 걸 느꼈다.

곽찬혁의 말대로였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박재형은…… 이들에게 등불과도 같았다.

지금껏 생존의 시간이었다면, 박재형의 등장은 사냥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 * *

아파트 정리를 마치자, 예상대로 공격대 합류 조건이 충족되었다는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이정우는 파티 영일대와 돼지국밥, 밤바다를 공격대에 추가하고, 내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다.

“재형이 넌 어떻게 할 거야? 더 정리할 거야?”

“그래야죠. 시간도 없는데.”

“텐트는 우리가 설치해둘게.”

“감사합니다.”

그러자 뒤에 있던 전완수가 입을 열었다.

“난 아크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을게.”

“괜찮아. 들어가서 쉬어도 돼.”

“내부로 들어가면 무전기 안 터지잖아. 무슨 일 생기면 지원 나올 사람은 있어야지.”

표정만 봐도, 전완수는 뜻을 굽힐 생각이 없었다.

그러자 곽찬혁도 입을 열었다.

“우리도 완수랑 같이 있을게. 마음 같아선 도와주고 싶지만…… 우리가 없는 게 더 편한 거지?”

“네, 마음 편히 싸우려면 사람 적은 게 좋아요.”

플레이어가 많으면 싸움의 초반에는 유리하지만, 뒤로 갈수록 내가 신경 써야 하는 일이 많아진다.

플레이어들이 체력적으로 한계를 느끼기 때문이다.

이를 느꼈는지, 김윤기과 윤성민, 구창진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미안합니다, 우리가 도움이 안 되는 것 같네요.”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본 싸움은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위축되면 안 된다.

난 파티장들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어디까지나 제 좀비 카운트를 높이려는 의도니, 부정적인 생각은 하지 마세요.”

파티장들을 위로하고, 말없이 이정우를 쳐다봤다.

이정우는 내 의도를 파악하고, 엷은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다들 돌아갑시다. 자리를 오래 비우면 아크에 있는 생존자들이 불안할 거예요.”

이정우는 모든 플레이어를 데리고 아크로 돌아갔다.

반면에 윤혜리는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혜리 너도 어서 돌아가.”

“저 진짜 없어도 돼요?”

“부모님 걱정하셔. 오늘은 부모님이랑 같이 있고, 내일 도와줘.”

윤혜리는 잠시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결국 알겠다는 대답과 함께 이정우를 따라갔다.

난 곽찬혁에게 받은 부산 전도를 펼치며 설여원과 최현을 불렀다.

“어디부터 정리할래?”

“변종은 최대한 피할 거지?”

설여원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좀비를 처리하고 한계 돌파를 시도하는 게 옳다.

무리하게 변종을 처리하는 건…… 다소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지도에는 다수의 좀비가 분포된 지역과 변종이 발견된 지역이 붉은색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이에 지도를 짚으며 얘기했다.

“여기, 남천2동. 되도록 아크랑 가까운 장소부터 정리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거긴 아파트가 너무 많은데?”

“괜찮아, 현이 있잖아. 좀비들 몰려들면 인형극으로 처리하면 되고, 만약 변종이 있더라도 내가 처리하면 돼.”

“변종이 다수면 어쩌려고.”

“아파트가 많다는 건 그만큼 숨을 장소도 많다는 거야. 최대한 지형 이용해서 싸워보자.”

설여원과 최현은 유심히 지도를 살피더니, 오래 지나지 않아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젠 반박하는 대신, 내 의견에 순순히 따라주는 모습을 보였다.

난 카타나를 손에 쥐며 얘기했다.

“가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