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24화
놀란 마음에 말까지 더듬으며 물었다.
“찬혁이 형? 진짜 찬혁이 형이에요?”
치지직- 치직.
-그래 인마! 너희 어디야?
“저희, 저희 광안대교 위예요.”
-광안대교? 거기서 기다려! 움직이지 말고!
“네? 아니 잠깐, 다들 괜찮아요? 형도 다친 곳 없어요?”
-멀쩡하지! 거기서 꼼짝하지 말고 있어. 내가 그리로 갈 테니까.
곽찬혁의 대답에 멍한 표정으로 이정우를 쳐다봤다.
이정우도 놀란 표정으로 붕어처럼 입만 벙긋거렸다.
뒤이어 정진영이 다가오며 물었다.
“방금 뭐야? 진짜 찬혁이 형이야?”
“도착한 거예요. 황금동 생존자들 무사히 아크에 도착한 거라고요!”
나도 모르게 양손이 번쩍 올라갔다.
입가로 번지는 미소를 숨길 수 없었다.
그동안 광안리에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끝으로 다른 메시지가 출력되지 않아서 내심 걱정이었다.
하지만 곽찬혁의 목소리를 들으니, 그가 잘 지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윤혜리는 감격스러운지, 눈물까지 글썽이며 오른손으로 입을 가렸다.
박재우과 황덕록도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뒤이어 천리안을 마친 전완수와 설여원, 김희연은 고개를 저으며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지금의 기쁜 소식을 알리기 위해 일행을 쳐다보자, 그들의 표정이 두 눈에 들어왔다.
안색이 좋지 않았다.
이에 한층 차분해진 목소리로 물었다.
“왜 그래, 문제라도 있어?”
“야, 여기 아크 있는 거 맞아?”
전완수는 눈꼬리를 치켜뜨며 물었다.
이에 고개를 갸웃거리자, 옆에 있던 설여원이 입을 열었다.
“해수욕장에 좀비밖에 안 보여.”
“얼마나 되는데.”
“못해도 수십만. 온통 좀비뿐이야.”
설여원의 대답에 일행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김희연은 양손을 마주잡은 채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얘기했다.
“심지어 변종도 있어요.”
“좀비들이 저렇게 많은데 변종이 있다고?”
“건물들 사이에…… 변종이 지나가는 걸 봤어요.”
김희연의 대답에 옆에 있던 이정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게 말이 돼? 변종은 좀비를 잡아먹잖아.”
이정우의 말에 난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생존자가 있다는 거 아닐까요?”
“아크에 있는 생존자들을 먹는 건가?”
“거기까진 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찬혁이 형 목소리는 밝았는데…….”
그러자 옆에 있던 설여원이 입을 열었다.
“아니면 아크로 이동하는 생존자를 노리는 건지도 모르지.”
“아.”
“생존자든 플레이어든, 결국 아크를 목적지로 하잖아? 변종 입장에선 유입되는 먹이가 많은데, 굳이 좀비를 먹을 필요는 없으니까.”
설여원의 대답에 이정우는 가만히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뒤이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럼 아크는 안전하다는 거야?”
“그렇지 않을까요? 아크에 도착한 사람과 아닌 사람의 확연한 차이가 있겠죠. 그렇지 않고서야, 좀비랑 변종이 저렇게 많은데 아크를 공격하지 않았다는 게 더 이상하잖아요.”
설여원의 대답에 반박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부우우웅-
그 순간, 귓가를 간질이는 엔진 소리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고개를 돌렸다.
광안대교의 끝에서, 하나의 점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두 눈을 가늘게 뜨고 확인하자, 이곳으로 접근하는 차량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전완수는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차량을 응시하더니, 곧 화들짝 놀라며 얘기했다.
“어? 저, 저거, 저거.”
“저거 뭐.”
“찬혁이 형인데?”
무전 내용을 못 들었나?
얼마나 집중하면 바로 옆에서 하는 대화를 못 들을 수 있지?
덤덤하게 쳐다보자, 전완수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천리안을 사용하면 시각과 청각이 좌표 지점에 집중되다 보니, 옆에서 하는 소리와 좌표 지점의 소리가 뒤섞여서 들린다고 한다.
좀비들의 음성에 우리의 대화가 묻힌 모양이다.
치지직- 치직-
뒤이어 무전기에서 신호가 들어오고, 또 다른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보입니다. 보여요! 박재형 씨!
낯설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목소리.
머릿속을 스치는 한 남자의 얼굴에, 난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설마, 소대장님?”
-예 맞아요! 저 박성훈입니다!
금호강 건너에서 헤어진 박성훈 소대장.
우리에게 소총과 수류탄을 건네주고, 살아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던 바로 그 사람.
살아 있었다.
너무 놀라서 말문이 막혔다.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서, 그 자리에 석고상처럼 굳어버렸다.
뒤이어 버스 앞으로 중형차가 정차하고, 차량에서 내리는 황금동 파티원들과 소대장 박성훈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곽찬혁은 한걸음에 달려와 나를 와락 안았다.
“살아 있었구나, 살아 있었어!”
난 얼떨떨한 마음에 곽찬혁의 등을 토닥이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곽찬혁의 뒤로 한지현과 강요한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상봉의 기쁨을 만끽하는 것도 잠시, 곽찬혁은 내 뒤에 있는 차량과 생존자들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일단…… 아크로 가자. 아크로 가서 회포를 풀자고.”
“아크가 있어요?”
“당연히 있지. 눈으로 보면 바로 느껴질 거야. 저기가 아크구나, 하고.”
“아, 네.”
부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차차 알아봐야겠다.
서둘러 곽찬혁을 따라 아크로 이동했다.
* * *
광안대교를 지나 신선대로에 진입하자, 다시금 자욱한 안개가 눈앞으로 펼쳐졌다.
족히 13차선은 되는 드넓은 대로의 우측으로 수풀이 우거져 있었다.
그리고 좌측에는, 5m에 달하는 높다란 벽이 설치되어 있었다.
바리케이드 같은데, 저게 인간의 기술이 맞나?
길을 따라 끝도 없이 이어지는 바리케이드.
규모도 규모지만, 벽의 재질이 특이하다.
전완수도 이를 느꼈는지, 신기하다는 듯이 얘기했다.
“와…… 저게 뭐야? 평범한 철판이 아닌데?”
“완수 너도 처음보는 거야?”
“어, 벽에 줄눈 같은 게 있는데, 그게 푸른색이야. 그리고 물처럼 흐르는 것 같아.”
“물처럼 흐르다니?”
“아, 밑으로 흐르는 게 아니고, 줄눈 따라서 좌우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여. 전류처럼.”
전완수도 모르는 재질이라면…… 저건 지구상의 광물이 아니다.
라스트아크에 존재하는 로그나이트와 덤프처럼, 또 다른 무언가라 예상된다.
뒤이어 선두에 있던 곽찬혁의 차량이 중앙차선을 무시하고 좌회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완수도 덩달아 핸들을 돌리더니, 감탄사를 터뜨리며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
자욱한 안개 너머로 나타나는 거대한 문.
5m 높이의 바리케이드만 설치된 게 아니라, 300m 간격으로 입구가 존재했다.
곽찬혁이 바리케이드 앞에서 상향등을 점멸하자,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좌우로 열리기 시작했다.
황금동 파티가 먼저 아크로 들어서고, 전완수는 마른침을 삼키며 천천히 입구로 향했다.
퉁!
그 순간, 버스의 삼각뿔이 물컹거리는 무언가에 닿으며 시동이 꺼졌다.
“뭐야, 이거 왜 이래.”
전완수가 시동을 걸려고 하자, 출입문의 앞으로 불투명한 유리막이 생성되며 경고 메시지가 떠올랐다.
[입장권을 소지하지 않은 플레이어가 있었습니다.]
눈앞의 홀로그램을 보고,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아직 메인 퀘스트를 완료하지 않았다.
차내의 일행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내 얼굴을 쳐다봤다.
난 찰나의 고민 끝에, 전완수를 쳐다보며 얘기했다.
“먼저 들어가.”
“야, 어쩌려고.”
“내가 있으면 못 들어가잖아. 어쩔 수 없지.”
“아이 씨…… 너 안 들어가면 우리도 안 들어가.”
전완수는 핸들에서 손을 놓으며 뒤에 있는 사람들을 쳐다봤다.
다들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곧 다짐을 굳히며 얘기했다.
“재형이가 못 들어가면 우리도 안 가.”
이민정의 말에 여기저기서 동의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싱겁게 웃으며 얘기했다.
“마음만 받을게요.”
“마음 좀 그만 받아! 재형 학생, 우리가 미안해서 인정 못 해.”
이덕배가 눈살을 찌푸리며 얘기하자, 이현배도 고개를 끄덕였다.
최만석은 팔짱을 끼며 의자 등받이에 상체를 기울이더니, 훅, 하고 숨을 뱉으며 얘기했다.
“여태 재형이 네 덕에 살아남았는데, 아크 도착했다고 입 싹 씻을 만큼 우리가 개새끼는 아니라서 말이야.”
다들 의기양양한 모습을 보이지만, 그들보다 아이들의 얼굴이 눈에 밟혔다.
10세 미만의 아이들.
아이들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이민정과 이신혜, 한슬기를 쳐다보며 물었다.
심지어 한슬기에게는 갓난아기까지 있었다.
지금껏 아기가 울 때마다 이신혜와 한슬기 수고해 주었다.
울음소리가 진정될 때까지 모든 생존자가 경계 태세를 강화했다.
다들 내색하지 않았지만,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처럼, 이들은 그런 생활에 익숙해졌다.
그런 생활을 그만둘 수 있다면, 그만두는 게 옳지 않을까?
굳이 안전한 흙길을 두고, 살얼음판을 걸어갈 필요는 없다.
“이모, 우리 왜 안 움직여요?”
“우리 못 들어가요?”
“우리 뭐 기다리는 거예요?”
아이들의 물음에 이민정은 쓴웃음을 지었다.
대답 대신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안아주었다.
이에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들어가 주세요. 그래야 제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 그래요.”
“아이들은 들여보내고 우린 같이 있자고. 따로 바리케이드 만들면 돼. 재형 학생도 자질구레한 거 해주는 사람은 있어야 할 것 아냐.”
“…….”
“재형이 너 밥도 못 하잖아.”
이덕배는 뜻을 굽힐 생각이 없었다.
치지직- 치직.
뒤이어 무전기에서 신호가 들어왔다.
-왜 그래, 안 들어가?
이정우의 목소리에, 전완수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현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자 이정우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생존자들은 들여보내고, 결인들은 밖에 바리케이드 설치하자.
그러자 이덕배가 다가와 무전기를 낚아채며 얘기했다.
“정우 학생, 우리도 남을 거야.”
-여러분이 아크로 들어가는 게 도와주는 겁니다.
이정우의 냉정한 대답에, 이덕배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뒤이어 섭섭하다는 듯이 얘기했다.
“아니…… 우리가 짐짝도 아니고, 사라지는 게 도와주는 거라니?”
-부산은 좀비랑 변종이 득실거려요. 수비에 집중하면서 싸울 만큼 여유가 없습니다.
“…….”
-먼저 아크로 들어가서 내부 상황 파악해 주시고, 무전으로 알려주세요.
무전기로 들려오는 덤덤한 대답에, 이덕배는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차내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그동안 동고동락하며 정이 많이 들었다.
이정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를 알기에, 더욱 강하게 얘기하는 것으로 보였다.
강하게 얘기하지 않으면 함께 있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을 테니까.
다들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기에, 난 전완수를 쳐다보며 얘기했다.
“문 열어.”
“…….”
“다른 선택지 없는 거 너도 알잖아.”
전완수는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한숨을 내쉬더니, 결국 차량 문을 열어주었다.
“사람들 내려주고 상황 정리되면 다시 나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나오지 말라고 하면 오기를 부릴 것 같아서, 알겠다는 대답과 함께 차량에서 내렸다.
뒤이어 승합차에 있던 설여원도, 정진영도, 윤혜리도 차량에서 내렸다.
어깨를 으쓱이며 일행을 쳐다보자, 일행도 싱겁게 웃으며 내 옆으로 다가왔다.
난 전완수를 쳐다보며 얘기했다.
“완수야. 진영이 형이랑 혜리 부모님부터 찾아.”
“알았어.”
“그래, 들어가.”
버스의 측면을 텅텅! 소리가 나도록 치며 얘기했다.
“오라이!”
버스를 시작으로 모든 차량이 아크로 들어섰다.
멀어지는 일행의 모습을 바라보며 양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넣었다.
“잘한 거야.”
설여원의 말에 싱겁게 웃으며 대답했다.
“알아.”
“이제 어떻게 할 거야?”
“글쎄, 생존보다는 다른 게 걱정이야.”
“다른 거?”
“아크의 비밀.”
아크를 들어가야 비밀을 밝히든 말든 하는데, 이러면 낙동강 오리 알 신세다.
설여원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우측으로 보이는 수풀을 가리키며 얘기했다.
“일단 우리도 어디 숨자.”
“여기 있는 게 안전하지 않겠어? 아크에 있는 사람들이 이쪽 도로는 정리해 둔 것 같은데.”
“길에서 자려고?”
“완수가 상황 정리하고 나온다고 했어. 그리고 진영이 형이랑 혜리 부모님이 살아 계시면 여기로 나오실 거야.”
정진영과 윤혜리를 쳐다보자, 두 사람은 대답 대신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문득, 완수에게 전하지 않은 말이 떠올랐다.
텐트랑 식량은 다시 들고나와야 한다.
우리도 먹을 건 있어야 하니 말이다.
난 무전기를 들고 전완수를 불렀다.
“완수야, 나올 때 혹시…….”
치이이이익-
무전기에서 시끄러운 잡음만이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