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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223화 (223/373)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23화

식사를 마치고 모든 생존자들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누군가는 임시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누군가는 식량을, 또 누군가는 재고를 정리했다.

결인들은 주유소로 이동해 차량을 주유하고, 남은 휘발유와 경유를 챙겼다.

뒤이어 주차장에 있던 박재형이 일행의 곁으로 다가왔다.

이정우는 박재형의 모습을 위아래로 훑으며 얘기했다.

“생각보다 멀쩡하네? 어디 부러진 줄 알았다 야.”

박재형은 뭐가 그리도 좋은지,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이에 설여원이 물었다.

“완전히 익숙해진 거야?”

“완벽해.”

박재형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자, 옆에 있던 최현이 얘기했다.

“이거 봐, 내가 그랬지? 본인이 만족해야 그만둔다고.”

“내 얘기 하고 있었어?”

박재형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전완수는 싱겁게 웃으며 얘기했다.

“어, 다 같이 네 욕하고 있었지.”

“왠지, 귀가 가렵더라니.”

결인들은 호쾌하게 웃어젖혔다.

계획에도 없던 통도사 휴게소에서, 잠깐의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 * *

맞은편은 산, 배후도 산.

통도사 휴게소는 지금껏 경험한 세상과 동 떨어진 풍경이었다.

코앞의 고속도로를 제외하면 섬이나 다름없는 형태.

물론 살인귀들과 대장 좀비를 처리한 덕이지만 말이다.

저녁 어스름이 내려앉을 무렵, 차량의 창문에 묻은 검은색 액체를 전부 벗겨내고 중형 트럭과 중형차의 범퍼 수리까지 마칠 수 있었다.

안개 속으로 퍼지는 구수한 김치찌개 냄새에, 바삐 움직이던 생존자들의 마음에 안정감이 날아들었다.

“다들 저녁 드세요!”

휴게소 입구에서 들리는 윤혜리의 목소리에, 밖에 있던 모든 생존자가 우르르 식당으로 향했다.

예상대로 오늘 저녁은 김치찌개.

간만에 맛보는 매콤달콤한 맛에, 입안에서 축제가 열렸다.

너나 할 것 없이 허겁지겁 배를 채웠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까지 끝낸 뒤, 이정우는 내 어깨를 톡톡 건드리며 물었다.

“간만에 캠파나 할까?”

“캠프파이어요? 해도 돼요?”

“이 근처에 사람이나 좀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오늘 아니면 쉬겠어. 그리고 생존자들끼리 친해질 겸?”

이정우의 말에 모두가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긴, 지금이 아니면 언제 즐기겠는가.

설여원과 전완수, 김희연이 장작을 구해오고, 그 위에 약간의 휘발유를 부어 불을 지폈다.

모두가 둥글게 둘러앉아 불멍을 때렸다.

타들어 가는 장작처럼, 생존자들 사이의 어색한 기운도 사라졌다.

서로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며, 평온한 시간을 보냈다.

정진영은 이정우를 쳐다보더니, 버스가 있는 방향을 가리키며 턱짓했다.

이정우는 싱겁게 웃으며 버스로 이동했다.

한동안 잊고 있었다.

우리에게 어쿠스틱 통기타가 있다는 걸.

두 사람은 간만에 기타를 들고,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기타도 쳐?”

송하윤이 이정우의 옆에 앉으며 묻자, 그는 싱겁게 웃으며 얘기했다.

“저희 파티 이름이 소리결이잖아요.”

“아, 통기타 동아리였어?”

“안 어울려요?”

“아니 그건 아닌데…… 기타를 들고 다닐 줄은 몰랐지.”

송하윤은 흥미롭다는 듯이 두 사람을 쳐다봤다.

구미에서 구출한 생존자들도 이정우와 정진영의 모습에 집중했다.

이정우와 정진영은 기타를 조율하더니, 곧 시선을 주고받으며 연주를 시작했다.

첫 곡은 데파페페의 One.

잔잔한 선율로 시작하여 신명 나는 박자감을 지닌 곡이었다.

두 사람의 예상치 못한 실력에 구미 생존자들과 영일만항의 생존자들은 연신 감탄을 연발했다.

가장 좋아하는 건 아이들이었다.

몇몇 아이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추며 온몸으로 기쁨을 표현했다.

아이들의 재롱에 이덕배와 이현배, 최만석과 이민정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렇게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게 황금동 이후로 처음인가?

먼 옛날 일도 아닌데, 왜 이리 아련하게 느껴질까.

이정우와 정진영의 연주를 들을 때면…… 마치 추억으로 가득한 사진을 한 장, 한 장, 꺼내보는 기분이었다.

이정우와 정진영은 연달아 네 곡을 연주한 뒤, 내게 기타를 건네며 얘기했다.

“너도 한 곡 뽑아야지?”

무슨 곡이 좋을까.

우린…… 수많은 사람의 희생으로 여기까지 왔다.

파티 소리결도, 우리의 힘만으로 여기까지 온 게 아니다.

많은 사람의 도움과 희생이 있었다.

기타에 카포를 꼽고, 생존자들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먼저 떠난 사람들을 위해 한 곡 연주하겠습니다.”

난 앤디 맥키의 라일린을 연주했다.

휴대폰 광고에 나오며 유명해진 곡이지만, 사실 이 곡은…… 추모곡이었다.

연주를 끝내자, 영일만항의 생존자 중 한 명이 내 얼굴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추모곡 뒤에 이런 얘기해도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여러분 파티 이름이 소리결이라고 했죠?”

“네. 소리결이요.”

“제가 여러분을 주제로 한 곡 만들어도 될까요?”

“곡을 만든다고요?”

“세상이 이렇게 되기 전에는 싱어송라이터였거든요.”

남자의 말에 결인들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를 위해 곡을 만들어준다면 당연히 감사하지.

그는 몇 번 흥얼거리더니, 공책에 음표와 코드를 그리기 시작했다.

뒤이어 기타를 달라고 하기에, 들고 있던 기타를 건네주었다.

그는 몇 차례 목을 가다듬더니, 생존자들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제목, 소리결입니다.”

“벌써 다 만들었어요?”

“1절만요. 나중에 더 손봐서 완성하겠습니다.”

“아, 네.”

결인들은 기대 어린 표정으로 남자를 쳐다봤다.

뒤이어 감미로운 선율과 함께, 파티 소리결을 위한 헌정곡이 들려왔다.

노래를 들으면 들을수록, 지난날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쩌면 추억은…… 그때로 돌아갈 수 없기에 애틋하고, 지울 수 없는 향수를 지닌 게 아닐까 싶다.

어쩌다 들어온 통도사 휴게소에서, 우린 또 다른 추억을 만들었다.

* * *

밝아오는 여명에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다.

평안했던 저녁의 여운이 여전히 통도사 휴게소에 남아 있었다.

조금 더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제 다시 현실을 마주해야 한다.

일찍 일어난 이민정과 식량팀은 분주히 아침을 준비하고, 다른 사람들은 이동준비에 나섰다.

사람이 많아진 뒤로 텐트와 이불, 라꾸라꾸, 식기, 무기, 옷가지를 정리하는 것도 일이었다.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하고, 마트에 있는 간장과 소금, 설탕만 챙겨서 버스로 이동했다.

이곳에 있던 살인귀들이 간장과 소금, 설탕을 제외하고 모조리 먹어치운 탓에, 다른 건 챙길 만한 게 없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생존자들은 순서대로 차량에 올랐다.

전완수는 벌써부터 운전석에 앉아 있었다.

“다시 완수 네가 하는 거야?”

“푹 쉬었으니 다시 내가 해야지.”

전완수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핸들을 말아쥐었다.

운전석에 앉으니 설레는 모양이다.

버스가 비상등을 점멸하자, 모든 차량이 순서대로 비상등을 점멸했다.

버스 3대, 승합차 3대, 중형차, 중형 트럭까지.

모든 차량의 비상등을 확인하고, 전완수는 기어를 바꾸며 얘기했다.

“갑시다! 부산으로!”

아직 새벽 공기가 가시지 않은 이른 시각, 우린 아크가 있는 부산을 향해 액셀을 밟았다.

* * *

1시간 정도 이동했을까?

어느새 장안IC와 기장IC, 해운대IC, 동부산IC를 지났다.

부산에 들어서자 귓가를 간질이는 좀비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관광도시이자 항구도시 부산.

전완수는 우측을 살피며 얘기했다.

“저건가?”

“벌써 광안리야?”

“아니 벡스코. 나 부산 벡스코 처음 보거든.”

각종 행사개최와 국제전시회, 국제회의가 열리는 벡스코.

아시아 최고 전시컨벤션 허브로 알려져 있었다.

나도 두 눈으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안개 때문에 건물의 외관을 전부 확인할 순 없지만, 형체만 봐도 규모가 상당한 것으로 보였다.

전완수는 서서히 속도를 줄이더니, 차량을 정차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전완수를 쳐다보며 물었다.

“왜 그래. 좀비야?”

“아니, 표지판 좀 보려고.”

전완수는 고개를 삐죽 내민 채 한참이나 표지판을 보더니,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왼쪽으로 가면 광안대교라고 적혀 있고 오른쪽은 도로 이름이 광안대로야. 이거 어디로 가야 하는 거냐?”

“광안리 해수욕장이란 글자는 없어?”

“없어.”

부산이 운전자들의 무덤이라 불리는 건 익히 들어서 알고 있지만, 시작도 하기 전에 갈림길에 갇혔다.

이에 무전기를 들었다.

“혹시 이쪽 지리 잘 아는 사람 없어요?”

치지직- 치직-

-왜, 무슨 일인데.

무전기로 들려오는 이정우의 목소리.

이에 현 상황을 설명하자, 또 다른 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상황인지 말씀해 주세요.

“누구세요?”

-저 이진호요.

이진호?

이진호가 누구야.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무전기로 씁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파티 자사모에 하윤 누나랑 같이 다니는…….

“아, 미안해요, 말씀하세요.”

영일만항의 생존자들이 워낙 많다 보니, 이름을 전부 외우지 못했다.

뒤이어 이진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좌측으로 가면 바로 광안대교로 이어지고, 우측으로 빠지면 도심 지나서 광남로로 이어질 거예요.

“무슨 차이에요?”

-광남로는 수영2호교로 이어지는데, 광안리 해수욕장이 목적지면 오른쪽으로 빠지고, 부산항이 목적지면 왼쪽으로 가요.

무전 내용을 듣고 전완수를 쳐다보자, 그는 구레나룻을 긁적이며 물었다.

“우리 광안리 해수욕장으로 가야 되는 거지?”

“아니야, 왼쪽으로 가자.”

“왼쪽? 왼쪽은 부산항으로 이어진다며.”

“광안대교는 바다 위에 있잖아. 조금 돌아가더라도, 거기서 광안리 해수욕장 상태 확인하고 들어가는 게 안전해.”

내겐 안개 때문에 보이는 게 없지만, 전완수와 설여원, 김희연은 시야 확보가 가능하다.

부산은 인구 350만에 달하는 대도시.

이는 예상할 수 없는 변수가 가득하다는 뜻이다.

몇 분 단축하려고 무작정 도심으로 들어가는 건 미친짓이다.

전완수는 잠시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오래 지나지 않아 어깨를 으쓱이며 얘기했다.

“그러지 뭐.”

부우우웅-

우린 광안대교를 향해 나아갔다.

도로의 좌우에 설치된 방음벽으로 인해 시야 확보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도 중간마다 부서진 방음벽이 있어서, 도심의 상황을 얼추 파악하는 건 가능했다.

크르르르르…….

먼발치서 들려오는 좀비들의 울음소리.

전완수도 이를 파악하고, 입맛을 다시며 얘기했다.

“오른쪽으로 갔으면 위험했을지도?”

도심으로 내려갔다면 좀비들에게 꼼짝없이 둘러싸였을 것이다.

물론 결인들의 차량은 문제없지만, 영일만항의 생존자들은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차량은 가브리엘이 없는 만큼, 시야 확보가 가능하도록 LED조명을 잔뜩 달아둔 상태였다.

그만큼 방어에 취약했다.

좀비들의 육성을 무시한 채 계속해서 나아가자, 뒤이어 방음벽이 사라지고 커다란 다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면과의 거리가 멀어지자, 버스는 서서히 안개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였다.

뒤이어 우측으로 휘어진 곡선의 끝으로, 광안대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전완수는 입을 떡하니 벌리며 얘기했다.

“와…… 미쳤네. X나 예쁘다.”

전완수는 광안대교의 모습을 보고 연신 감탄을 터뜨렸다.

항상 사진으로만 봤던 광안대교를 직접 올라타니, 감회가 새로운 모양이다.

나도 멍하니 입을 벌린 채 광안대교의 모습을 살폈다.

다리 밑으로 안개가 깔려 있고, 그 위를 가로지르는 다리.

마치 구름 위에 떠 있는 기분이었다.

이런 걸 인간의 손으로 만들었다니.

내가 봐도 감탄이 절로 나오는 풍경이었다.

귓가를 간질이는 파도 소리에, 전완수는 창문을 열고 바닷바람을 만끽했다.

코끝을 간질이는 바다 냄새에, 괜스레 설레는 마음이 들었다.

이윽고 광안대교의 중앙에 도달하자, 전완수는 속도를 줄이며 얘기했다.

“여기서 광안리 해수욕장 확인하고 가자.”

버스가 정차하자, 뒤따라오던 차량도 덩달아 정차하는 모습을 보였다.

내게는 광안리 해수욕장의 모습이 보이지 않지만, 전완수와 설여원, 김희연은 해수욕장 방면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세 사람의 동공이 하얗게 변한 것으로 보아, 스킬 천리안을 사용한 것으로 보였다.

난 좌우를 살피며 광안대교의 상태를 살폈다.

좀비는 고사하고, 도로 위에 정차된 차량도 보이지 않았다.

치지직- 치직-

그 순간, 레그홀스터에 넣어둔 무전기에서 신호가 들어왔다.

이에 무전기를 들며 얘기했다.

“말씀하세요, 정우 형.”

“나 여기 있는데?”

어라? 이정우는 내 옆에 있었다.

그럼 무전을 보낼 사람이 없는데…….

-들리세요? 들려? 재형이니?

무전기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난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이정우를 쳐다봤다.

이정우도 놀란 표정을 짓더니, 황급히 본인의 무전기를 들었다.

“찬혁이 형?”

-정우야!

대구 황금동에서 헤어진 파티.

곽찬혁의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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