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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221화 (221/373)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21화

피떡이 된 시체를 뒤로하고, 옆에 있는 일행에게 얘기했다.

“대장 좀비 잡고 올게.”

“같이 가자.”

최현이 나서기에, 고개를 저으며 얘기했다.

“총성이 들렸으니, 부하들 돌려서 휴게소 공격할지도 몰라. 여기서 사람들 지켜줘.”

“길도 모르면서 학교 찾아갈 수 있겠어?”

“많이 멀어?”

“멀지는 않아. 길 따라서 나가면 초등학교 하나 보이고, 그 뒤에 고등학교 있거든? 고등학교에 대장 좀비 있어.”

“이것들 언제 마지막으로 교섭했어?”

“오늘 아침.”

그렇다면 장소를 옮겼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난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동네 넓어?”

“넓지는 않아. 휴게소 관계자들이 사는 동네 같아.”

“그럼 나 혼자 돌아보고 올게. 오늘은 여기서 묵을 거니까 방어선 구축하고 필요한 물자 확보하고 있어. 시체도 정리하고.”

최현이 이정우를 쳐다보자, 이정우는 양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으며 얘기했다.

“조심히 다녀와.”

이에 고개를 끄덕이며 휴게소 뒤편으로 이동했다.

차단봉을 무시하고 외길을 따라 이동하자, 동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오늘 부산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좀비화를 사용한 이상 무리하게 이동하는 건 부담스러웠다.

가는 길에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르기에, 변수에 대응하기 위해선 좀비화가 있어야 한다.

좀비화를 사용하지 않고 살인귀를 처리하는 방법은 없었을까?

아무리 생각도 없다.

총을 들고 있는 놈들이었다.

안일하게 대응했다가 일행 중 한 명이라도 사망했다면…… 분명 책임을 따지는 상황이 발생했을 것이다.

주변에 고층 건물은 없고, 대부분 단층이었다.

크르르르…….

인기척을 느낀 좀비들이 이곳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확실히 좀비들의 인지 범위가 예전보다 증가했다.

몇몇 좀비들은 이곳을 쳐다보더니, 목젖을 갈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좀비화가 유지되는 동안, 좀비들이 먼저 달려들면 내겐 희소식이나 다름없었다.

이에 좀비들의 안면을 으스러뜨리고, 주변에 다른 움직임이 없는지 살폈다.

두두두두두두두-

반대편 도로에서 다수의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정찰병을 처리했으니, 대장 좀비와 수하들이 달려오는 모양이다.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나아가자, 곧 수천 마리의 좀비가 시야에 포착됐다.

크어어어어!!

그 순간, 어디선가 들리는 포효와 함께 접근하던 좀비들이 걸음을 멈췄다.

좀비들 사이에서 걸어 나오는 한 남자.

파란색 운동복을 입고 있었다.

딱 봐도 내가 대장이요, 하는 꼴이었다.

놈은 내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더니, 눈살을 찌푸리며 혼잣말을 읊조렸다.

“뭐야 저거.”

“네가 대장이야?”

“너 뭐야, 사람이야 좀비야.”

대장 좀비는 하나.

주변을 에워싼 좀비는 대략 3천 이상.

동네의 규모로 보아, 내 앞에 있는 대장 좀비는 외부에서 왔을 가능성이 높다.

4단계 대장 좀비라면 최소한 생존자 300명과 좀비 500마리, 변종 10마리를 섭취했다는 뜻인데…… 이곳에서 위의 조건을 충족시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에 대장 좀비를 쳐다보며 물었다.

“어디서 왔어?”

“그러는 너야말로 어디서 굴러먹던 놈이냐?”

얼추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대장 좀비.

원하는 답을 얻기는 어려울 것 같으니, 방법을 바꾸는 수밖에.

“크어어어어어어!!”

-포효를 내질러 반경 100m 내의 적에게 두려움을 각인시킵니다.

-두려움이 각인된 적은 5분간 이동속도 30% 감소 효과가 적용됩니다.

전방을 향해 소리치자, 대장 좀비는 얼빠진 표정을 지으며 미동도 하지 않았다.

-‘집념’ 효과가 발동됩니다.

-좀비 플레이어의 받는 피해가 10% 증가합니다.

좀비들부터 빠르게 정리했다.

이동 속도가 현저히 느려진 좀비들은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뻑!! 펑!! 뜨득- 떵!!

좀비들의 안면에 주먹을 내지를 때마다 벽돌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한 방 한 방이 묵직하게 박히는 걸 보고, 대장 좀비는 황급히 방향을 틀어 도주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래 봐야 하울링의 디버프에 걸려 움직임이 현저히 느려진 상황.

주변을 에워싼 좀비들부터 빠르게 처리한 뒤, 도망가는 대장 좀비의 배후를 노렸다.

마음 같아선 지금 당장 처리하고 싶지만, 내겐 정보가 필요했다.

놈을 죽이는 대신, 두 다리를 부러뜨렸다.

우드득! 떠걱!

“끄아아악!!”

놈은 비명을 뱉으며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내게 주먹을 뻗지만, 안쓰러운 발악일 뿐이었다.

꿈틀거리지 못하도록 놈의 두 팔을 분지르고, 남은 좀비들을 처리했다.

4,000마리에 달하는 좀비가 달려들지만, 좀비화를 사용한 이상 버겁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예전보다 훨씬 수월해진 것 같은데, 한계 돌파를 해서 그런가?

모든 좀비를 처리하는 데 20분이 걸리지 않았다.

만약 카타나를 사용했다면 시간을 단축시켰을 것이다.

얼굴에 묻은 좀비들의 혈흔을 털어내며 대장 좀비의 곁으로 다가가자, 놈은 연거푸 신음과 앓는 소리를 토했다.

너무 시끄럽게 굴기에, 바로 옆에 있는 좀비의 옷을 찢어 입을 틀어막았다.

“자꾸 시끄럽게 울면, 턱 뽑아버린다?”

“흐으읍!”

놈은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전신을 파르르 떨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리가 끝났으니, 레그홀스터에 넣어둔 무전기를 들고 최현을 불렀다.

“현아, 여기 좀 와봐야겠다.”

치지직- 치직.

-어디야?

“여기…… 초등학교 지나서 100m 정도 들어온 것 같아.”

-안개 때문에 안 보이니까, 여원이랑 같이 갈게.

최현과 설여원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사지가 부러진 대장 좀비가 울먹임에 가까운 목소리로 외쳤다.

“너 뭐야, 대체 뭐 하는 놈이야!”

입에 넣어둔 천조각을 뱉으며 소리쳤다.

이에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뭐긴, 생존자지.”

“이 괴물 새끼! 네가 사람인 줄 알아?”

“글쎄, 그래도 난 최소한의 양심은 있거든.”

“양심? 사람을 이 꼴로 만들어 놓고 양심은 무슨 양…….”

“네가 사람이라는 거냐?”

눈꼬리를 치켜뜨며 묻자, 놈은 두 눈에 힘을 주며 소리쳤다.

“너나 나나 똑같은 괴물이야 이 병신아!”

“아니, 난 사람이고 넌 괴물이야.”

“이거 완전 또라이 새끼 아니야?”

두서없이 육두문자는 내뱉기에, 대장 좀비의 곁으로 한 걸음 다가가며 얘기했다.

“이윤을 챙기려고 타인을 위협하거나, 희생시킨 적이 단 한 번도 없어?”

“……뭐?”

“난 없거든. 그럼 내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 스스로 떳떳하게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

“넌 스스로에게 떳떳한가? 합리화하는 건 아니고?”

태연하게 묻자, 놈은 까드득 이를 갈며 얘기했다.

“다르잖아. 상황이 다르잖아! 난 생존자를 먹지 않으면 변종으로 변한다고!”

“그래서?”

“내가 자살이라도 해야 했다는 거냐?”

놈이 억울하다는 듯이 얘기하기에, 난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얘기했다.

“여기까지 오면서 많은 대장 좀비를 만났지만, 그 중엔 누구보다 인간다운 사람도 있었어.”

“…….”

“김민형이란 이름을 가진 대장 좀비는…… 나와 내 일행에게 위협을 알리기 위해 장대비를 뚫고 왔지.”

학생회관에 갇혀 있을 무렵, 김민형을 만났던 순간이 떠올랐다.

조성훈과 이하진의 친구였지만, 그들과 결이 다른 사람이었다.

우리에게 조성훈을 조심하라는 말을 남기기 위해, 조성훈과 이하진을 속이고 종합강의동과 학생회관으로 왔다.

또한 변종으로 변이될 기미가 보이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다.

난…… 그런 존재를 사람이라고 부르고 싶다.

본인이 어떤 모습이든, 어떤 상황이든,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거는 사람을 말이다.

씁쓸한 마음에 한숨을 내쉬자, 눈앞의 대장 좀비는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개소리! 위선자 같은 새끼!”

“……위선자?”

눈살을 찌푸리며 되묻자, 놈은 바득바득 이를 갈며 내 얼굴을 노려봤다.

이에 덤덤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타인에게 위선자라고 하는 놈들은 대부분 본인이 쓰레기라는 걸 모르더라? 착한 사람에게 위선자, 또는 호구라고 하더라고.”

“…….”

“반면에 스스로를 위선자가 아닐까, 생각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위선자가 아니더라고. 자가피드백이 빠른 거지.”

난 엷은 미소를 지으며 대장 좀비에게 얘기했다.

“몸소 느껴봐. 지금부터 네가 생각해 온 호구, 또는 위선자에게 죽여달라고 싹싹 빌게 될 테니까.”

대장 좀비의 어깻죽지를 붙잡고 서서히 악력을 가했다.

“크윽! 끄아아악!!”

뜨드득! 떡!!

안락한 죽음은 크나큰 선물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죽음의 순간은 고통이고, 절망이다.

난…… 이놈이 최대한 절망 속에서 죽었으면 좋겠다.

난 좀비를 싫어하는 게 아니고, 타인의 목숨을 우습게 여기는 놈들을 증오하는 거니까.

뚜둑- 뚝! 떠덕!

“끄아아아아악!!”

관절을 부러뜨리고, 뼈마디를 으스러뜨렸다.

놈은 사지가 부러진 탓에 저항조차 못 하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고통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였다.

“내가,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이래!”

“그건 스스로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나도 살고 싶었다고! 살고 싶었을 뿐이라고오!”

“네가 대장 좀비가 됐다는 건 플레이어였다는 거잖아? 누구보다 특별한 기회를 얻은 거야. 그리고 넌…… 그 기회를 놓친 거고.”

“끄아아악!”

“넌 100번의 기회를 주면 100명의 사람을 죽일 놈이야. 내 말이 틀려?”

뚜드득- 떡!

“으아아아악!!”

뒤이어 비명을 듣고 달려온 최현과 설여원이 황급히 내 팔을 붙잡으며 물었다.

“뭐 하는 거야!”

설여원이 놀란 표정으로 소리치기에, 태연하게 대답했다.

“보면 몰라? 벌주는 거야.”

“…….”

“이놈이 300명의 생존자를 먹었으니, 뼈를 300조각 내는 게 합당하지 않겠어?”

“진정해 박재형. 너 지금 좀비화 때문에 지나치게 폭력적이야.”

설여원의 말에 반사적으로 눈꼬리가 꿈틀거렸다.

좀비화를 사용하면 비인륜적인 행동에도 죄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내가 너무 잔혹했나?

스스로 판단이 서지 않아서, 옆에 있는 최현을 쳐다봤다.

최현은 씁쓸한 표정을 짓더니, 설여원과 내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며 얘기했다.

“용서가 안 되는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우리까지 잔인해질 필요는 없잖아.”

“…….”

“벌은…… 저승에 가서 받겠지.”

“살아생전에 즐길 거 다 즐기고, 벌은 저승에 가서 받는다고? 그건…… 착하게 산 사람들이 너무 억울하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최현은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그럼 이렇게 하자.”

“어떻게.”

“이놈 머릿속부터 확인하고, 그 뒤에 네 마음대로 해.”

최현의 말에 따라 고개를 끄덕였다.

최현은 대장 좀비의 복부에 오른손을 얹으며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뒤이어 그의 눈꼬리가 꿈틀거리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최현은 인상을 찌푸리더니, 오래 지나지 않아 내 얼굴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재형아.”

최현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고개를 갸웃거리자, 최현은 게슴츠레 풀린 눈으로 얘기했다.

“아까 300조각 내겠다고 그랬지?”

“어.”

“더 쪼개고 싶으면 더 쪼개서 죽여. 이 새끼…… 아주 개새끼야.”

“기꺼이.”

뚜드득- 뜨득- 떡! 떠걱!

“끄아아아아악!!”

* * *

최현의 말에 따르면, 놈은 영천에서 온 대장 좀비라고 한다.

영천시면…… 우리가 있던 경산시의 옆이었다.

차마 입에 담기도 어려운 악행을 저질렀고, 함께 있던 대장 좀비들을 모조리 죽인 이력도 있었다.

함께 있던 대장 좀비를 죽인 이유는 간단했다.

그들을 변종으로 변이되도록 만든 뒤, 변이가 시작되면 섭취해서 진화의 발판을 만든 것이다.

그렇게 4단계까지 성장한 뒤, 더 큰 판에서 놀기 위해 부산으로 이동하는 길이였다고 한다.

그 과정에 통도사 휴게소에 있는 살인귀들을 만났고, 그들과 손을 잡은 것이다.

그들을 보호해 주는 대가로 생존자는 살인귀에게 주고, 플레이어는 본인이 취한 것이다.

최현의 말에 따르면, 5단계 진화까지 3마리의 변종이 남은 상태였다고 한다.

모든 정황을 듣고, 최현을 쳐다보며 물었다.

“그럼 이놈 동료는 없는 거지?”

“없어. 그러니 이젠…… 보내줘도 되지 않을까?”

뇌와 심장을 제외한 모든 부위가 으스러진 대장 좀비.

좀비의 생명력이 어찌나 질긴지, 뇌와 심장을 파괴하지 않으면 죽지도 않았다.

난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그래, 우리도 일손 도와야지.”

자리에서 일어나 대장 좀비의 얼굴을 쳐다봤다.

쇳소리를 뱉으며 힘겹게 숨을 쉬고 있는 녀석.

말없이 오른발을 치켜들고, 그대로 놈의 두개골을 짓밟았다.

콰직!!

부디 마지막 순간까지, 지울 수 없는 후회와 고통 속에서 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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