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18화
중형 트럭을 타고 잠시도 쉬지 않고 쉘터로 향했다.
쉘터에 도착하자마자 모두를 불러모아 현 상황을 들려주었다.
들고 온 육아일기를 이정우에게 건네주자, 그는 일기를 확인하고 입을 열었다.
“지금 속도면 내일까지 정비 마치고 출발할 수 있어.”
“밖에 자동차 안 보이던데, 어디 있어요?”
“포항IC 근처에 정비소가 많더라고. 거기로 옮겨서 수리 중이야.”
하긴, 차를 고치려면 그에 적합한 정비소도 있어야 한다.
난 이정우를 쳐다보며 물었다.
“형, 그건 그렇고 광안리에 도착한 포항 생존자들 몇 명이라고 했죠?”
“잠시만.”
이정우는 홀로그램을 열고 공격대 정보를 확인했다.
뒤이어 파티 정보까지 확인한 뒤에 입을 열었다.
“포항에서 출발한 파티, 파티명 영남대. 생존자 81명을 데리고 광안리에 도착했다고 적혀 있어.”
포항 신항의 경우, 쉘터의 규모로 보아 최소 400명 이상이 지낸 것 같았다.
81명이면…… 정말 많은 사람이 죽었다.
이정우는 가만히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긴 모습을 보이더니, 내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다.
“너 파티 목록 확인했어?”
“파티 목록이요?”
“파티 목록이랑 공격대 목록 확인해 봐.”
난 이정우의 말에 따라 파티 목록과 공격대 목록을 살폈다.
목록을 확인하고 반사적으로 눈꼬리가 올라갔다.
소리결의 바로 밑에 있던 파티.
위저홍의 파티가 사라졌다.
이는 공격대 목록도 마찬가지였다.
중국 소속의 파티가 거짓말처럼 사라진 모습을 보였다.
이에 이정우를 쳐다보자, 그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2시간 20분 전에 갑자기 사라졌어.”
“갑자기 동시다발적으로 사라졌다고요?”
“두 번째 에피소드 클리어 목표 기억나?”
이정우의 물음에 두 번째 에피소드 클리어 조건을 확인했다.
40명 이상이 생존 중인 쉘터를 3개 찾아야 하고, 아크의 비밀을 밝혀야 한다.
우린 황금동 쉘터와 영일만항 쉘터를 발견하면서 2개의 수치가 올라갔지만, 아직 쉘터 하나를 더 찾아야 한다.
이는 광안리에 도착하면 완료될 것이다.
아크도 쉘터의 하나고, 그곳에는 수백 명의 생존자가 있을 테니까.
그렇다면 문제가 되는 조건은 하나.
아크의 비밀.
눈살을 찌푸리며 고심을 반복하자, 맞은편에 있던 이정우가 입을 열었다.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예전에 재형이 네가 했던 말 기억나?”
“어떤 거요?”
“네가 그랬잖아. 라스트아크에서 네 번째 에피소드에 들어서면 파괴된 아크를 발견하게 된다고.”
“……그랬죠. 원래 로그나이트도 거기서 처음 얻게 되고요.”
“네 번째 에피소드 이름, 알지?”
이정우의 말을 듣고 반사적으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네 번째 에피소드의 이름.
대공습.
좀비들의 포악함이 극으로 치달으며 모든 감각이 대폭 증가한다.
이정우는 이마를 긁적이며 얘기했다.
“아크의 비밀이 뭔지 몰라도, 그걸 건드리면 좀비들의 대공습이 시작되는 거 아닐까?”
“두 번째 에피소드를 끝내는 조건이 네 번째 에피소드라는 거예요?”
“그렇지. 게임에서는 사전 정보를 차단하고, 순차적으로 에피소드를 진행하면서 다섯 번째 에피소드에 접어들었지만…… 지금은 어때?”
“시작부터 아크의 위치를 알려줬죠. 변종의 등장 시기도 빨랐고.”
“그거야. 현실은 게임의 틀에 갇혀 있지 않아. 대장 좀비도 좀비 플레이어로 구분하고 있잖아? 즉 플레이어의 상황, 조건, 행동에 따라 달라지고 있어.”
“……논점이 뭐예요?”
“애초에 라스트아크는 다섯 개의 에피소드가 아니라 세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게임이라고.”
이정우의 말을 듣고 반사적으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게임에서는 플레이어를 성장시키기 위해 각 에피소드에 성장 발판을 만들고, 후반부에 가서야 아크가 2개라는 사실을 공개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크가 2개라는 것도 초반에 알려주었고, 플레이어의 성장과 관계없이 강한 적이 계속해서 나왔다.
문득, 에스파디아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광란은 방파제일 뿐이다.
라스트아크를 클리어한 내가 초반부에 사망하지 않도록 만들어둔 방파제.
멍한 표정을 짓자, 이정우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게임 할 때는 시나리오를 풀어나가야 하니 다섯 개의 에피소드로 나왔지만, 현실 배경이 되면서 구조가 달라진 거지.”
“그럼 아크의 비밀을 밝히고 두 번째 에피소드를 클리어하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나도 확신은 없지만…… 어쩌면 게임 클리어가 뜰지도 몰라.”
이정우의 말에 거실에 모인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이덕배는 말까지 더듬으며 되물었다.
“아, 아니 그러니까, 정우 학생 얘기가 사실이라면…… 아크에서 좀비들의 공습을 버티면 이 지긋지긋한 세상이 끝난다는 거야?”
“네, 그렇습니다.”
결인들도 들뜬 모습을 보였다.
일리 있는 가설이다.
아크의 비밀을 밝히고, 대공습을 버텨내면 아크가 파괴되지 않았다는 뜻이고, 이는 마지막 에피소드인 라스트아크에 도착했다는 말이 된다.
두 번째 에피소드를 사망하지 않고 클리어만 하면, 지금의 미쳐 버린 세상이 끝날지도 모른다.
그럼 베타, 델타, 감마 등의 변종과 마주칠 필요도 없고, 독 안개 속에서 힘겹게 나아갈 필요도 없는 것이다.
난 마른세수와 함께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했다.
이정우의 말대로 진행된다면, 세 번째 에피소드도 건너뛸 수 있다.
세 번째 에피소드의 이름.
생명의 씨앗.
세 번째 에피소드에 독 안개가 퍼지는 이유는 식물들이 안개에 대한 면역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식물의 씨앗을 50% 이상 모아야 한다.
게임에서도 세 번째 에피소드를 클리어하기 위해 개고생한 기억이 있었다.
이를 건너뛸 수 있다는 말이나 다름없으니, 들뜨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뒤이어 이정우의 말이 이어졌다.
“문제는 대공습을 우리가 버틸 수 있냐는 거야.”
“지금이라면 가능할 것 같아요. 현이랑 혜리가 있으니, 물량도 걱정 없습니다.”
“대공습 때 좀비들의 포악함이 극으로 치닫고 모든 감각이 발달한다고 했지?”
“네.”
“지금은 좀비들의 감각뿐만 아니라, 신체 능력까지 향상될지도 몰라.”
“갑자기요?”
“지금껏 살아남으면서 갑작스럽지 않은 게 있었어? 플레이어도 각성하면서 신체 능력이 증가했잖아. 원래 이런 설정은 라스트아크에도 없었고.”
이정우의 말에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입술을 핥으며 말을 이었다.
“일단 지금까지의 좀비들 성장 추이를 알아둘 필요가 있어서, 너희가 포항 신항에 다녀올 동안 알아봤어.”
이정우는 수첩을 꺼내며 말을 이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좀비들 감각 실험했을 때, 시계는 30m, 청각은 45m, 후각도 45m였어. 하지만 정비소에 남은 좀비들 정리하면서 실험했더니 다르더라고.”
예상은 했다.
변종과 좀비들의 감각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건 이곳에 있는 모두가 몸소 체감했으니까.
이정우는 수첩을 넘기며 얘기했다.
“좀비의 시계가 100m 정도 되더라.”
“그렇게 증가했다고요?”
“나도 놀랐어. 문제는 청각이랑 후각은 더 좋다는 거야.”
“얼마나 되는데요.”
“청각이랑 후각은 반경 140m까지 인지해. 물론 청각은 데시벨에 따라 범위가 달라지고.”
140m나 된다고?
좀비들의 인지 범위가 증가했다는 건 느꼈지만, 이렇게 몇 배나 증가한 줄은 몰랐다.
하긴, 어제 일만 생각해도 수긍이 되었다.
멧돼지를 따라온 1,500마리의 좀비가 6만이 넘는 좀비들을 불러모은 격이니 말이다.
좀비들의 감각이 발달했다는 건 공명이 더욱 멀리까지 퍼진다는 말이 된다.
증가한 공명 범위가 봉화대의 역할까지 하게 되니, 1,500마리로 시작한 싸움이 6만이 되는 것이다.
뒤이어 옆에 있던 설여원이 입을 열었다.
“그럼 구미에서 겪은 게 맞네. 구미에서 변종 잡을 때도 느꼈잖아.”
구미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200m 밖의 변종이 승합차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리는 모습을 보였으니 말이다.
감각이 발달했다는 건 그만큼 반사신경이 좋아졌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결인들은 각성도 하고, 레이첼의 버프까지 받아서 좀비를 처리하는 데 크게 어려움이 없지만, 일반인은 다를 것이다.
평범한 생존자의 입장에서, 지금의 좀비는 이길 수 없는 괴물이다.
어제처럼 똘똘 뭉쳐서 싸울 땐 인지할 수 없겠지만, 근접전에선 좀비의 능력에 압도될 것이다.
이정우는 들고 있던 수첩을 바지 주머니에 넣으며 얘기했다.
“결론은 중국 플레이어들이 대공습을 버티지 못하고 전멸했다는 거지.”
“플레이어들이 전멸했다는 건 그만큼 대장 좀비가 많아졌다는 거 아니에요?”
“그렇지. 그리고 생존자가 전멸했다는 건…… 당장 섭취할 생존자가 없으니 대장 좀비들은 변종으로 변할 거고.”
“그것들이 한국까지 올까요?”
“먹을 게 없어지면 오겠지. 그래도 지금 당장 걱정할 문제는 아닌 것 같아. 변종은 좀비도 먹으니까.”
하긴, 중국 인구를 생각하면 지금 당장 한국으로 오진 않을 것이다.
생각을 정리하고 주변 일행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좀비카 수리나 다른 부가적인 것들은 여러분이 담당해 주세요. 저는 밖에 좀 다녀오겠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정진영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왜 또, 이번엔 어디 가려고?”
“좀비 카운트 좀 높여야겠어요.”
“대공습 때문에?”
“네, 항상 제가 안도하면…… 더 강한 적이 나타났어요. 불안해서 안 되겠습니다.”
내가 만족하는 수준이 되면, 항상 그에 상응하는 적이 나타났다.
대공습 때 알파4가 나타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없으니, 도저히 가만히 앉아서 쉴 수 없었다.
그러자 정진영은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나도 말릴 생각은 없는데, 어디서 좀비를 찾으려고?”
“포항 전체를 돌아본 건 아니잖아요? 좀비들이 있는 곳을 찾아야죠.”
“안개 퍼진 지 넉 달이나 지났어. 그동안 여기 있는 생존자들은 놀았냐?”
정진영은 파티 자사모를 쳐다보며 얘기했다.
이에 송하윤에게 직접 물었다.
“송하윤 씨, 포항에 인구 밀집 지역 어디 없나요?”
“도심으로 들어가면 아직 많이 있겠지만…… 글쎄, 어제 너희가 다 잡아서 거의 없을걸? 외곽은 우리가 진즉에 정리했으니 없을 거고.”
하긴, 영일만항과 영일대 해수욕장, 포항 신항의 경우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영일만항은 송하윤의 파티가 주변 일대의 좀비들을 처리해둔 상태였고, 포항 신항도 좀비들의 시체가 사방에 널브러져 있었다.
단순하게 계산해도 포항 인구의 80%가 좀비로 변했다면…… 안개가 퍼진 초기에 40만의 좀비가 포항에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넉 달이란 시간이 지났고, 지금껏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좀비들과 사투를 벌였다.
포항 외곽의 좀비들은 씨가 말았으니, 남은 건 도심에 있는 좀비들.
우리가 어제 잡은 10만에 달하는 좀비가 거의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정진영은 지도를 펼치며 얘기했다.
“그럼 이렇게 하자. 어차피 내일 부산으로 이동하려면 여기, 남포항IC 타야 하거든? 용흥동부터 남포항IC 사이에 있는 좀비들 찾아봐.”
“저희가 확인하지 않은 동이 어디죠?”
“대이동이랑 효곡동인데. 어제 양학동 좀비들 죽일 때 대이동에 있던 좀비들도 상당수 올라와서 거의 없을 거야.”
“양학동 밑에 대이동, 대이동 밑에 효곡동이죠?”
“그렇지. 아마 좀비들이 남아 있다면…… 효곡동이 제일 많지 않겠어?”
생각을 정리하고 일행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여원이랑 저, 현이만 다녀올게요. 다른 분들은 일손 도와줘요.”
“셋이서 괜찮겠어? 나도 같이 가고 싶은데.”
정진영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이에 이정우를 쳐다봤다.
이정우는 팔짱을 끼며 한숨을 내쉬더니, 두 눈을 게슴츠레 뜨며 얘기했다.
“여기 일손 많아. 진영이도 재형이랑 같이 가.”
이정우가 그렇다고 하니, 반박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더 늦기 전에 지금 바로 출발할게요.”
“재형아.”
카타나를 챙기며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등 뒤로 이정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정우를 쳐다보자,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얘기했다.
“좀비 카운트 올리는 건 좋은데, 너무 늦지 않게 돌아와.”
더는 무리하지 말라거나, 가지 말라고 말리지 않았다.
대신 너무 늦지만 말라고, 몸조심하라는 말을 대신했다.
이에 싱겁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