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17화
스킬 급가속의 폭발적인 가속력과 모든 공격력을 대폭 증가시키는 일격 효과, 거기에 공격력을 1.5배 증가시키는 연격 효과까지.
알파2의 키가 3m나 되는 관계로, 균형을 깨뜨리기 위해 무릎 윗부분과 옆구리, 마지막으로 성대를 순차적으로 그었다.
카타나를 휘두를 때마다 알파2의 살점이 부드러운 살코기처럼 썰렸다.
또한 단단한 뼈까지 단숨에 잘려 나가는 모습을 보였다.
마치 무협 영화에서 검을 휘두르면 무형의 무언가가 일직선으로 뻗어 나가는 것처럼, 카타나를 휘두를 때마다 칼끝으로 무언가가 응축되는 느낌이 들더니, 일순간 폭발하는 느낌이 들었다.
연격과 일격 효과 때문인가?
단 네 차례 휘둘렀을 뿐인데, 눈앞으로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변종을 처리했습니다. 카운트 100점이 주어집니다.
키에에에에엑!!
그러자 옆에 있던 또 다른 알파2가 있는 힘껏 손을 뻗었다.
이에 손에 쥐고 있던 카타나를 사선으로 그었다.
그러자 알파2의 손목이 떨어져 나갔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순차적으로 카타나를 휘둘렀다.
손목을 시작으로 전완근, 팔꿈치, 어깻죽지까지 일도양단 내고, 숨통을 끊기 위해 목덜미를 향해 카타나를 휘둘렀다.
그러자 알파2는 황급히 고개를 비틀어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뭐지?
알파2의 움직임이…… 다소 느린 것 같은데?
한계 돌파를 통해 증가한 신체 능력과 감각 덕분인가?
아니면 급가속의 레벨이 8까지 올라가며 효과가 더 증가한 탓인가?
좀비화를 쓰지 않고도 알파2의 움직임을 쫓을 수 있었다.
일격의 남은 시간은 2초.
연격의 남은 횟수는 2회.
고민할 필요 없이, 지면을 박차며 알파2의 안면으로 뛰어올랐다.
알파2는 쏜살같이 날아드는 내 모습을 보고 황급히 상체를 비틀었다.
이 또한 예상한 바.
빗자루로 쓸 듯이 카타나를 휘둘렀다.
촥!!
알파2의 두개골이 반으로 쪼개지며 눈앞으로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변종을 처리했습니다. 카운트 100점이 주어집니다.
내 손으로 행하고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얼떨떨한 마음에 그 자리에 석고상처럼 굳었다.
알파2가…… 이렇게 쉽다고?
“재형아!”
뒤이어 알파1을 모조리 처리한 일행이 내 곁으로 다가왔다.
그들은 바닥에 엎어진 알파2의 시체를 보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
최현은 마른침을 삼키며 내 모습을 위아래로 훑더니, 말까지 더듬으며 물었다.
“조, 좀비화도 안 쓰고 잡은 거야?”
“……어.”
“벌써 다 죽였다고? 20초도 안 지났는데?”
제일 얼떨떨한 사람은 나다.
저번에는 좀비화를 쓰고도 꽤 걸렸는데, 지금은 너무나 손쉽게 처리했다.
그때와 다른 점이라면…… 한계 돌파를 했다는 것.
또한 건틀릿이 아니라 카타나를 이용했고, 연격과 일격 효과가 공격마다 적용되었다는 것.
열심히 신체 능력 높였더니, 스킬 레벨업과 함께 엄청난 시너지효과를 발휘했다.
포항에 와서 좀비 카운트를 올린 보람이 있었다.
정진영은 콧방귀를 뀌며 얘기했다.
“재형이 좀비 카운트 몰아주길 잘했네. 이젠 알파3 말고는 좀비화 쓸 필요도 없겠는데?”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서, 대답 대신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최현은 가만히 턱을 매만지며 얘기했다.
“그건 그렇고 여기 알파 변종이 있다는 건…… 최근까지 생존자가 있었다는 거 아니야?”
“그렇지.”
“밖에 있는 좀비들 시체는 여기 있는 변종들이 먹은 것 같은데, 이건 순서가 이상하지 않아?”
“무슨 소리야?”
“생존자들이 떠난 뒤에 여기 남은 좀비들을 알파 변종이 먹었다는 거잖아. 다수의 좀비가 모여들거나 공명 좀비가 울었다면 진즉에 알파 변종이 왔을 텐데, 전투가 끝난 뒤에 왔다는 게 이상하지 않아?”
최현의 물음에 다들 어벙한 표정을 지었다.
맞네?
순서가 이상하다.
대부분 변종이 먼저 나타나고 좀비가 뒤따라오기 마련이다.
좀비가 먼저 나타나더라도 전투가 끝나기 전에 변종이 도착해야 정상이다.
특히 포항 신항처럼 다수의 생존자가 있는 쉘터라면 더더욱 말이다.
그런데 생존자들이 떠난 뒤에 변종이 도착했고, 남은 좀비들을 변종이 먹고 있었다?
이건 순서가 이상…….
“플레이어.”
그 순간, 뒤에 있던 윤혜리가 입을 열었다.
윤혜리를 쳐다보자, 그녀는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여기 있던 플레이어의 일부가 대장 좀비로 변했고, 생존자들이 도망칠 때까지 시간을 끌어준 것 아닐까요?”
“…….”
“그렇게 모든 생존자가 떠나고, 여기 남은 대장 좀비들은…… 알파 변종으로 변한 거죠.”
“그럼 알파2는 어디서 나타난 거야?”
“여길 공격한 좀비들 사이에 알파1이 있었겠죠. 플레이어들이 알파1을 죽이고, 시체까지 처리할 여력은 없었을 테니까요.”
“네 말은 알파 변종으로 변한 플레이어들이 시체를 먹고 알파2로 진화했다는 거야?”
“그게 제일 가능성 있지 않아요?”
알파1과 좀비들의 공세를 막다가 플레이어들이 좀비에게 물리고, 대장 좀비가 되어서도 남은 생존자들이 탈출할 시간을 벌어주었다는 건가?
그리고 모두가 떠난 뒤에, 좀비에게 물린 플레이어들은 변종으로 변했고, 죽은 알파1의 시체와 살아 있는 좀비들을 섭취하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윤혜리의 설명에 다들 묵념하는 모습을 보였다.
목숨 걸고 이곳을 지킨 플레이어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에 마음이 먹먹해졌다.
곧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설여원이 입을 열었다.
“다수의 생존자가 이곳에 있었다면 흔적이 있을 거예요. 이동하죠.”
“어디로? 이 넓은 항구에서 어떻게 찾아.”
정진영이 묻자, 설여원은 바다를 가리키며 얘기했다.
“저쪽에 방파제처럼 휘어진 곳이 있어요. 제1 부두라고 적혀 있는데, 건물 외벽에 글자가 적혀 있는 것 같아요.”
정진영은 카타나를 말아쥐며 안내하라고 했다.
다들 이동하려고 하기에, 난 일행을 불렀다.
“가기 전에 시체 처리하고 가야지.”
알파2는 존재 자체도 위험하지만, 시체도 조심해야 한다.
다른 알파2가 시체를 먹고 알파3으로 진화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이곳 어딘가에 휘발유를 보관해둔 장소가 있겠지만, 일일이 찾아 나서는 건 무리였다.
그렇다고 땅에 묻어주는 것도 불안하다.
다른 알파2가 땅을 파서 시체를 섭취할지도 모르니까.
방도가 없기에, 시체에 묵직한 바위와 강철을 매달아 바다로 던졌다.
시신을 유기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그들의 뜻이 아무리 숭고했다고 한들, 지금은 알파 변종의 시체일 뿐.
산 사람은 살아야지.
시체들이 확실하게 가라앉은 것을 확인한 뒤, 다 같이 제1 부두로 이동했다.
설여원은 건물 외벽에 적힌 글자를 유심히 쳐다보더니, 곧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여기 있던 플레이어들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네.”
“왜.”
“외벽에 적어놨어. 생존자는 부산으로 가라고. 포항은 가망이 없다고.”
그 말을 듣고 구미에서 확인한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잠깐만, 공격대 정보에 포항 생존자들이 광안리에 도착했다는 내용 있지 않았어? 81명인가? 광안리에 도착했다는 내용 본 것 같은데.”
“어? 아 맞다.”
“공격대 메시지에 있나? 공격대 메시지는 정우 형만 확인할 수 있는 거지?”
설여원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난 정진영과 윤혜리를 쳐다보며 얘기했다.
“아직 메인 퀘스트 완료 메시지 안 떴죠?”
두 사람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얘기했다.
“생존자들 흔적이나 단서 조금만 찾아보고, 없으면 바로 쉘터로 돌아가죠.”
설여원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건물 내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얘기했다.
“저기 텐트.”
말 끝나기 무섭게 생존자들의 흔적이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제1 부두가 생존자들의 안식처로 사용된 모양이다.
챙길 만한 물건이 있으면 가져가는 게 좋다.
우린 제1 부두를 샅샅이 확인했다.
그러다 문득, 눈에 밟히는 물건이 나왔다.
흙과 먼지를 뒤집어쓴 젖병이었다.
또한 젖병의 옆으로 일기장이 놓여 있었다.
표지에는 육아일기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고, 그 위로 혈흔이 묻어 있었다.
씁쓸한 마음을 가라앉히며 조심스레 육아일기의 내용을 살폈다.
앞부분은 평범한 육아일기와 다를 바 없지만, 뒤로 갈수록 절박한 상황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상진 아저씨마저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상진 아저씨는 내 편을 들어주리라 생각했는데…… 슬슬 한계에 다다른 것 같다.
-오늘 다희네 아빠가 죽었다. 나 때문에, 나랑 나현이 때문에…… 제발…… 나현아 그만 울어.
-아기가 울면 다른 수가 없다. 어떻게든 젖병을 물리고,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있어야 한다. 죄인처럼, 난 이곳에서 살인자 취급을 받고 있다.
-욕심이라 생각해도 어쩔 수 없다. 난…… 나현이를 버릴 수 없다.
-모두가 떠났다. 유일하게 남아준 상진 아저씨에게 감사하고, 또 감사한다. 오늘 나현이가 뒤집기에 성공했다. 우리 딸, 너무 장하다.
-밤새 남쪽에서 사람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우리를 버리고 떠난 아파트 주민들이 이동한 방향이다.
-상진 아저씨가 더는 아파트에서 버틸 수 없다고, 대로 맞은편의 이마트로 이동하자고 한다. 무섭다, 좀비도 무섭고, 혹시라도 나현이가 또 울까 봐 무섭다.
가만히 앉아서 일기장을 확인하자, 정진영과 설여원이 내 곁으로 다가왔다.
그들은 내 옆에 서서 같이 일기장을 확인했다.
계속해서 일기를 읽다 보니, 육아일기보다 생존일기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진 아저씨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상진 아저씨는 우리 아파트에서 유명한 사람이었다. 말수가 적고, 항상 같은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으로 유명했다. 이러한 얘기를 하자, 아저씨는 싱겁게 웃으며 본인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40대 후반의 상진 아저씨는 아내와 딸이 있다고 한다. 기러기아빠냐고 물었더니, 아저씨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새벽에 목이 말라서 잠에서 깼다. 텐트 밖으로 나오자, 보초를 서던 상진 아저씨가 의자에 앉아 졸고 있었다. 가족사진을 손에 쥐고 졸고 있었다. 사진에 눈물 자국이 있다.
-상진 아저씨의 아내와 딸은 하늘에 있다고 한다. 5년 전, 아내와 딸이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가해자는 면허 취소 수준의 과음 상태였다고 한다.
-아저씨는 매일같이 분노에 치밀어 살았다고 한다. 그러다 안개가 퍼지고, 좀비들을 그날의 가해자라 생각하며 분풀이를 했다고 한다.
-굉장히 용감한 분이라 생각했는데, 세상을 향한 분노가 그를 용감하게 만들었다.
-상진 아저씨가 속 이야기를 들려주었으니, 나도 미혼모라는 사실을 밝혔다. 대부분은 뒤에서 숙덕거리거나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는데, 상진 아저씨는 호쾌하게 웃었다.
-나더러 용감하다고 했다.
-나현이가 상진 아저씨를 잘 따른다. 내가 안아주면 매번 우는데, 상진 아저씨가 안아주면 곤히 잠든다. 경험의 차이일까?
-낮에 남자들 4명이 다녀갔다. 초조해 보이는 모습으로, 식량을 챙기며 우리의 눈치를 봤다. 만약 상진 아저씨가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들이 순순히 식량만 챙겨서 나갔을까? 상진 아저씨가 없는 세상은 상상조차 하기 싫다.
-오늘도 사람들이 다녀갔다. 몇 주 전에 다녀간 남자들과 달리, 오늘 온 사람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했다. 라스트아크, 플레이어, 대장 좀비 등. 이 세상이 게임이라고 한다.
-그들을 따라 포항 신항으로 왔다. 생존자가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400명이나 되는 사람이 포항 신항에 있었다.
-플레이어들은 파티를 맺고 있었고, 그런 파티가 4개나 되었다. 각 파티별로 플레이어가 6명에서 7명씩 있다고 한다. 플레이어들은 모두 초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좋은 사람들이 세상에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세상이 망해서야, 사람들의 가면이 벗겨지는 것 같다.
-고마운 사람들이다. 이곳의 사람들은 나현이와 나를 짐처럼 생각하지 않고 따뜻하게 챙겨주었다.
-나현이가 엄마라고 했다. 다들 아니라고 하는데, 난 분명히 들은 것 같다. 나현이가 나더러 엄마, 라고 하는걸. 그치 나현아?
-사흘 만에 상진 아저씨가 돌아왔다. 수색대에 들어간 상진 아저씨는 예전보다 많이 수척해진 모습을 보였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얼마나 힘들까? 하지만 나현이를 볼 때면 함박웃음을 지으며 비행기를 태워주는 아저씨. 부디 무탈하게, 오래오래 함께 하고 싶다.
-이곳에 있는 생존자들에게 포항의 상황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이들은 영일대 해수욕장에서 왔다고 한다.
-영일대 해수욕장은 좀비들의 공격을 받았고, 책임감 없는 사람들은 대피소를 버리고 북쪽으로 도망쳤다고 한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끝까지 버텨서 살아남은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와서 다행이다. 덕분에 나랑 나현이, 상진 아저씨도 내일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점점 좀비들의 공습이 잦아지고 있다. 플레이어라는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수색대의 이동 경로를 좀비들이 추적하는 것 같다고 한다.
-오늘 1차 방어선이 무너졌다. 하늘도 울적한지, 한 차례 소나기를 몰고 왔다. 텐트 밖에서 들리는 빗물 소리 사이로, 사람들의 울음소리가 섞여 있다.
-상진 아저씨가 포함된 수색대가 돌아왔다. 그런데 상진 아저씨가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이상한 소리를 한다. 거미처럼 생긴 괴물을 봤다고 한다.
-모든 플레이어들이 보안을 강화하고, 불철주야 보초를 서고 있다. 거미처럼 생긴 괴물의 이름은 알파 변종이라고 한다. 그 괴물에게 들키면 죽거나 죽이지 않는 한, 절대로 도망칠 수 없다고 한다.
일기는 여기까지였다.
난 일기장을 덮으며 일행을 쳐다봤다.
그제야 머릿속으로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윤혜리와 정진영의 부모님은 안개가 퍼진 초기에 영일대 해수욕장으로 대피했고, 그곳은 좀비들의 공습으로 무너졌다.
선한 마음을 가진 생존자들은 똘똘 뭉쳐 포항 신항으로 이동했고, 악한 놈들은 살아남기 위해 북쪽의 영일만항으로 이동한 모양이다.
영일만항에 있던 송하윤의 일행은 영일대 해수욕장에서 온 악인들 때문에 큰 시련을 겪었고, 그 뒤에 우리와 만났다.
반면에 남쪽으로 이동한 선한 생존자들은 좀비들과 변종의 공습을 이겨내지 못하고, 살아남은 일부만이 부산으로 이동한 모양이다.
포항에서 있었던 모든 사건 사고의 인과과정을 파악하고, 일행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쉘터로 돌아가죠.”
정진영과 설여원도 같이 일기를 봤기에, 얼추 상황을 파악한 것으로 보였다.
우린 서둘러 트럭을 세워둔 형산대교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