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16화
최현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인형극의 설명을 확인하며 내게 얘기했다.
“야, 이거 봐봐. 재형이 너도 봐야 돼.”
최현의 홀로그램을 살피자, 인형극의 달라진 성능이 한눈에 들어왔다.
[인형극 Lv.5]
-반경 500m 내의 좀비들을 30초간 조종할 수 있습니다.
-오전, 오후 12시마다 초기화됩니다.
-4단계 대장 좀비의 수하들까지 조종할 수 있습니다.
범위 증가와 유지시간 증가는 기본이고, 4단계 대장 좀비의 수하들까지 조종할 수 있게 되었다.
4단계면…… 대명동 좀비들의 경우 부회장에 해당하는 대장 좀비.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라면 사용 횟수 증가였다.
하루 1회 제한에서 2회로 바뀌었다.
이는 윤혜리도 마찬가지였다.
8,000포인트를 투자한 보람이 있다.
최현과 윤혜리만 있다면…… 이제 길거리 좀비들은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다.
차 내의 일행은 너도나도 인형극의 변화를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설여원도 보고 싶다고 했지만, 운전 중이라서 내가 대신 스킬 설명을 읽어주었다.
설여원은 현재 시각을 확인하더니, 백미러를 쳐다보며 물었다.
“그럼 지금 인형극 쓸 수 있는 거야?”
“그렇지. 12시 넘었으니까.”
“다행이네, 안 그래도 필요했는데.”
고개를 갸웃거리며 쳐다보자, 설여원은 서서히 속도를 줄이며 정진영에게 물었다.
“오빠, 포스코대로 옆이 무슨 동이에요?”
설여원이 묻자, 정진영은 지도를 살피며 얘기했다.
“여기서 북쪽이 죽도동, 북동쪽이 해도동, 남쪽은 상대동이야.”
“저 끝에 바다 보이는데, 그럼 지금 해도동이랑 상대동 사이에 있는 거죠?”
“그렇지?”
“여기서 좀비들 정리하고 가죠.”
어젯밤 쉘터를 공격한 좀비는 양학동과 대이동, 죽도동의 좀비들이었다.
즉, 해도동과 상대동의 좀비들은 여전히 길거리를 활보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설여원은 대로변에 차량을 정차하며 카타나를 챙겼다.
뒤이어 차량 문을 열고, 한발 앞서 하차하며 내게 얘기했다.
“가자, 신상 카타나 개봉해야지.”
설여원의 말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따끈따끈한 신상 카타나를 챙기며 설여원을 따라 차량에서 내렸다.
뒤이어 모든 일행이 각자의 무기를 챙겨서 내리고, 난 칼자루를 말아쥐며 생각했다.
사냥의 시간이다.
* * *
내일은 부산으로 이동해야 하기에, 중형 트럭은 사용하지 않았다.
해도동과 상대동의 좀비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동마다 2만에 달하는 좀비가 있었는데, 무슨 영문인지 몰라도 해도동과 상대동은 몰려드는 좀비가 별로 없었다.
정진영은 칼날에 묻은 혈흔을 털어내며 얘기했다.
“여긴 아파트가 없어서 그런가? 좀비가 별로 없네.”
“그러게요. 인형극 쓸 필요도 없겠는데요?”
최현이 대수롭지 않게 얘기하자, 옆에 있던 윤혜리는 두 손을 쥐었다 펴며 얘기했다.
“좀비가 없으면 좋은 거죠.”
“왜, 무서워?”
최현이 싱겁게 웃으며 묻자, 윤혜리는 뚱한 표정을 지으며 반박했다.
“오빠가 안전불감증인 거죠.”
“하하! 딱 보니 혜리 겁먹었는데?”
“아니거든요! 로그나이트 카타나는 손에 힘도 별로 안 들어가서 편하겠지만, 손도끼로 좀비들 잡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알아요?”
손바닥이 얼얼해서 계속 주먹을 쥐었다 편 모양이다.
예전에 사용하던 손도끼를 아직도 사용하고 있으니, 날도 무디고 여러모로 불편했다.
최현이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윤혜리를 놀리자, 설여원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얘기했다.
“개구리 올챙이 시절 기억 못 한다더니.”
“……나?”
“그럼 너 말고 누구겠니?”
설여원의 한 마디에 최현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윤혜리가 배시시 웃으며 설여원의 팔을 잡자, 설여원은 귀여워하는 표정으로 윤혜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흐뭇한 표정으로 일행의 모습을 지켜봤다.
그러자 옆에 있던 정진영이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
“뭐야 그 표정?”
“네?”
“애늙은이야? 거의 아빠 미소였어. 자식들 재롱 쳐다보는 것처럼.”
“…….”
“내가 엄마 역할인가?”
정진영은 콧방귀를 뀌더니, 일행의 곁으로 다가가며 얘기했다.
“다들 그만하고 밥이나 먹자. 여긴 좀비들도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점심 먹고 바로 포항 신항으로 넘어가자고.”
정진영이 손뼉을 치며 얘기하자, 일행은 순순히 트럭으로 돌아왔다.
이민정이 만들어준 김밥으로 허기를 달래고, 다시금 포항 신항으로 향했다.
대략 700m 정도 이동했을까?
설여원은 속도를 줄이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에 칼자루에 손을 얹으며 물었다.
“좀비야?”
“아니 좀비는 아니고, 다리가 이상해.”
“다리가 왜.”
설여원의 다리를 쳐다보자, 그녀는 싱겁게 웃으며 얘기했다.
“내 다리 말고 포항 신항으로 이어지는 다리. 대교 말이야.”
민망한 마음에 콧잔등을 긁적이며 정면을 살피자, 거대한 대교의 형태가 안개 너머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은은한 파도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좌측과 정면으로 바다가 위치한 모양이다.
대교의 옆으로 비석이 세워져 있었다.
-형산큰다리.
그리고 다리 위에는…… 곳곳에 시신이 널브러져 있었다.
설여원은 곤란한 표정을 짓더니, 차량을 정차하며 얘기했다.
“걸어가야 할 것 같은데?”
“왜?”
“다리 끝에 바리케이드 같은 게 있어.”
바리케이드가 있다고?
이는 생존자가 있다는 뜻이다.
고개를 끄덕이며 뒤에 있는 정진영을 쳐다봤다.
정진영과 윤혜리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좀비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바리케이드 너머로 진입하면 메인 퀘스트가 완료될지도 모르기에 긴장한 것으로 보였다.
만약 바리케이드로 들어서자마자 완료 메시지가 뜬다면…… 이는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니까.
차량에서 내려 각자의 무기를 챙기고, 설여원을 따라서 안개 속을 나아갔다.
대교 위에 널브러진 시체들은 최소한 한 달 전에 죽은 시체로 보였다.
포항 신항에 있던 생존자들이 얼마나 처절하게 버텼는지, 좀비들의 숫자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설여원이 도보로 이동하자고 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대교 위의 시체만 합쳐도 몇 트럭은 나올 것 같다.
칼바람이 불어오는 대교를 건너자, 서서히 바리케이드의 모습이 두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낡은 철판이 듬성듬성 쌓여 있고, 곳곳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정진영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생존자는 없는 것 같은데?”
“안으로 들어가 보죠.”
3m 높이의 바리케이드를 훌쩍 뛰어넘어 내부를 살폈다.
대로를 따라 기다랗게 이어진 좀비들의 시체.
시체들의 절단면이 예리한 것으로 보아, 이곳에 있던 생존자들이 어떤 무기를 사용했는지 알 것 같았다.
설여원은 드럼통 속의 새까맣게 타들어간 장작을 살피며 얘기했다.
“이미 떠났거나, 전원 사망한 것 같아.”
차갑게 식어있는 드럼통.
발자국도 보이지 않고, 인기척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어쩌면 해도동과 상대동에 좀비들이 별로 없는 이유가 이곳에 있던 생존자들이 정리한 탓인지도 모르겠다.
난 정진영과 윤혜리를 쳐다보며 물었다.
“진영이 형이랑 혜리, 메인 퀘스트는 어때?”
“아직 반응 없어.”
“저도요.”
홀로그램이 잠잠하다는 건 부모님이 살아 있을 확률이 높다는 뜻.
좀 더 찾아봐야겠다.
“다들 이쪽으로 와봐!”
그 순간, 좌측에서 설여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선을 돌리자, 안개 속에서 손을 흔드는 설여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곳으로 걸음을 옮기자, 설여원은 좀비 시체를 가리키며 얘기했다.
“시체들이 여기서부터 저쪽으로 이어져 있어. 입구가 저 밑에 있나 봐.”
이에 정진영을 쳐다보며 물었다.
“진영이 형, 포항 신항 입구가 어디에요?”
“나도 몰라. 일반인은 못 들어가거든.”
“예?”
“직원들만 들어갈 수 있어.”
그럼…… 설여원이 찾은 길로 들어가는 게 최선이라는 건가?
설여원을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한발 앞서 좌측 계단으로 향했다.
계단을 따라 밑으로 내려가자, 4차선 차도가 나타났다.
그곳에도 좀비들의 시체가 사방에 널브러져 있었다.
시체들을 따라 이동하자, 차량 출입을 통제하는 차단봉과 함께 곡선 형태의 바리케이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미 반쯤 허물어진 바리케이드.
허물어진 바리케이드 너머에도 좀비들의 시체가 보였다.
꽤 많은 생존자가 이곳에서 지낸 모양이다.
방어선을 1차, 2차로 나누어서 만든 것만 봐도, 최소 300명 이상의 생존자가 이곳에서 지냈을 것이다.
하지만 좀비들의 시체가 이토록 많다는 건…… 결국 공습을 버티지 못했다는 증거.
설여원은 바리케이드 내부의 시체를 살피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이상해.”
“뭐가.”
“아까 대교에 있던 시체들은 죽은 지 한참은 지난 것 같았는데, 여기 있는 시체들은 피가 덜 굳었어.”
설여원의 말을 듣고 카타나부터 뽑았다.
그러자 옆에 있던 최현이 물었다.
“거긴 혈액이 뭉쳐 있어서 그런 거 아니야? 웅덩이처럼 파인 곳이잖아.”
“그건 그렇지만…… 혹시 모르니 주변 잘 살펴.”
우린 대열을 갖추고 포항 신항으로 들어갔다.
귓가로 들려오는 반복적인 파도 소리를 제외하면 아무런 소음도 존재하지 않았다.
인기척은 없는데, 죽은 지 이틀도 되지 않은 시체만이 가득했다.
머릿속으로 차오르는 불안감을 떨쳐낼 수 없었다.
모든 단서가 하나의 결론으로 통한다.
이런 경우라면…… 이곳 어딘가에 알파 변종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인기척을 지울 수 있는 존재는 알파 변종뿐이니까.
생각을 마치고 일행을 돌아보며 얘기했다.
“알파 변종 조심해.”
다들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일행은 알파 변종을 경계하고 있었다.
다시금 정면을 살피는 순간, 설여원은 정지 신호를 보내며 두 눈을 가늘게 떴다.
뒤이어 우측에 있는 건물 외벽을 가리키며 이동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신호에 따라 외벽으로 숨자, 마지막으로 도착한 설여원이 속삭이는 목소리로 얘기했다.
“예상대로야.”
“알파 변종이야?”
“알파1로 추정되는 놈이 다섯 마리. 알파2가 두 마리.”
“알파3은.”
“알파3은 안 보여. 없는 것 같아.”
알파2 두 마리라…….
좀비화를 쓰면 손쉽게 잡을 수 있지만, 두 마리 때문에 좀비화를?
이렇게 된 거, 연격과 급가속의 효과를 한 번 볼까?
결심을 굳히고 일행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알파2는 내가 상대할 테니, 알파1은 너희가 잡아줘.”
“좀비화 쓸 거야?”
최현이 묻기에,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 안 쓰고 잡아볼 거야.”
“그게 가능해?”
“해봐야지. 이번에 스킬 레벨도 높였고, 그동안 한계 돌파도 했으니 한번 시도해 보려고.”
“알파1 최대한 빨리 정리하고 지원할 테니 무리하지 마. 위험하면 좀비화 쓰고.”
고개를 끄덕이자, 설여원은 훅, 하고 숨을 뱉으며 얘기했다.
“알파2가 빠르니까 재형이 먼저 나가고, 그 뒤에 우리가 붙어서 알파1 잡자.”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내 얼굴을 쳐다봤다.
한 차례 심호흡으로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카타나를 말아쥐며 튀어나갔다.
타닷!
그 뒤로 따라나서는 결인들.
키리릭- 키릭.
저 멀리서 들려오는 알파 변종 특유의 낡은 수레바퀴 소리.
“감지.”
-25초간 전방 90m 내의 좀비와 변종의 움직임을 감지합니다.
내게 접근하는 알파 변종의 위치가 두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덩치가 커다란 녀석 둘이 선두에서 달려온다.
가까운 거리에서 확인하지 않아도, 저 둘이 알파2라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
키에에에엑!!
코앞으로 다가온 알파2는 대뜸 내 관자놀이를 향해 기다란 팔을 휘둘렀다.
날아드는 팔에 카타나를 휘두르자, 살점을 찢고 들어가는 예리한 칼날의 촉감이 손바닥으로 느껴졌다.
잠깐, 연격이 카타나로 공격해도 발동하려나?
확인해 보면 되지.
연격을 발동시키기 위해선 하나의 대상을 1초에 5회 이상 공격해야 한다.
난 칼자루를 말아쥐며 알파2의 팔과 가슴에 쉴 새 없이 난도질을 가했다.
키에에에에에엑!!
알파 변종의 몸에서 검붉은 핏물이 터져 나오지만, 단단한 뼈까지 뚫고 들어가지 못했다.
띠링!
-연격이 발동합니다.
-다음 10회의 공격은 공격력의 1.5배에 해당하는 피해를 줍니다.
역시, 급가속의 일격 효과가 카타나로 공격해도 적용되는 것처럼, 연격도 마찬가지였다.
애피타이저는 끝났으니,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들어간다.
칼자루를 말아쥐며 읊조렸다.
“가속.”
-‘일격’ 효과가 9초간 유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