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15화
늦은 아침으로 허기를 달래고, 이정우와 송하윤은 모든 플레이어를 단지 앞으로 불렀다.
대단지 아파트에 조성된 조경.
우린 공원 벤치에 둘러앉아 두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먼저 이정우가 입을 열었다.
“죽도동은 정리 끝났으니, 이제 양학동으로 이동할 사람 뽑을 거야.”
“형, 그럼 양학동 정리하고 포항 신항으로 들어가요?”
“어. 현재 계획은 그래. 수색대는 재형이랑 여원이, 현이, 진영이, 혜리, 이렇게 다섯 명이 움직여줘.”
그러자 옆에 있던 전완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저는 안 가요?”
“너는 좀비카 수리해야지.”
“아.”
“원래 포항 신항 확인하고 부산으로 이동하려고 했지만…… 지금 상태로는 이동 못 해. 남은 사람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일 아침까지 수리 마쳐야 돼.”
“그럼 진영이 형이랑 혜리는 왜 수색대로 들어가요?”
“혹시 모르잖아. 포항 신항에 도착했을 때 메인 퀘스트가 완료될지도.”
이정우가 덤덤하게 대답하자, 전완수도 일행의 눈치를 보며 함묵하는 모습을 보였다.
포항 신항에 도착했을 때 메인 퀘스트가 완료된다는 건…… 정진영과 윤혜리의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말이 된다.
정진영은 입술을 굳게 다문 채 함묵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팔짱을 끼며 물었다.
“그건 우리끼리 얘기해도 될 텐데, 이분들은 왜 불렀어? 다 같이 있을 때 할 얘기 있는 거 아니야?”
정진영이 논점을 잡자, 앞에 있던 송하윤이 입을 열었다.
“어젯밤에 좀비들 처리한 뒤에, 저랑 이정우 씨의 앞으로 홀로그램이 떠올랐어요.”
정진영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송하윤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공격대에 합류할 수 있는 조건이 충족되었다고, 모든 파티원의 동의를 얻으면 공격대에 합류할 수 있다는 메시지였습니다.”
송하윤의 말이 끝나자, 옆에 있던 이정우가 입을 열었다.
“송하윤 씨의 파티, 자사모는 레이첼이 3명이나 있어.”
송하윤의 파티 자사모.
파티명이 자전거를 사랑하는 모임이라고 했던가?
그건 그렇고 레이첼이 3명이라고?
난 자사모 플레이어들을 쳐다보며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에덤은 신체 능력 버프 효과는 받을 수 없지만, 어쩌면 스킬 강화권을 3장 더 얻을지도 모른다.
반면에 이정우와 송하윤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이에 의구심을 품는 찰나, 이정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자사모는 각성 파티가 아니야. 우리가 공격대를 맺어서 얻을 수 있는 효과는 없어.”
“코인은요? 코인도 안 들어와요?”
“코인은 받을 수 있지만, 자사모는 각성하지 않았으니 지급이 안 되지.”
이정우가 덤덤하게 대답하자, 그의 옆에 있던 송하윤이 대뜸 90도로 허리를 숙이며 얘기했다.
“부탁드립니다! 도움은 안 되겠지만…… 우리도 최선을 다할 테니까 받아주세요.”
쉽게 말해서 파티 소리결의 레이첼 버프를 받고 싶다는 건가?
이게 왜 고민할 문제지?
이정우를 쳐다보자,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얘기했다.
“나 혼자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는 없고, 모든 파티원의 동의가 필요하거든. 물론 재형이 네 의견도 궁금하고.”
이정우의 말에 난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공격대 맺어서 나쁠 게 없잖아요.”
그러자 허리를 숙이고 있던 송하윤이 놀란 눈으로 내 얼굴을 쳐다봤다.
뒤이어 마른침을 삼키며 물었다.
“무임승차하겠다는 말이나 마찬가진데, 정말 괜찮아?”
“뭐가 무임승차에요? 어제 잘만 싸우던데.”
“…….”
송하윤은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는지, 아랫입술을 파르르 떠는 모습을 보였다.
뒤이어 미간에 힘을 주며 물었다.
“나는…… 너를 죽이려고 했는데, 용서해 주는 거야?”
설마, 아직도 우리의 첫 만남을 마음에 두고 있는 건가?
그래서 내가 거절할 것이라 생각한 거야?
대뜸 활시위부터 당긴 걸 여태 마음에 두고 있었던 모양이다.
모기한테 물렸다고 증오심을 품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 순간에는 짜증 나겠지만, 그 이상으로 화를 내지 않는다.
내게 날아든 화살은 딱 그 정도 수준이었다.
송하윤은 털털한 성격인 줄 알았는데, 은근히 여린 부분이 많았다.
하긴, 상처를 쉽게 받는 사람일수록 타인에게 벽을 높게 치는 법.
그동안 당한 게 많아서, 강한 척 애쓰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안개 속에선 당연히 그래야죠.”
“…….”
“활시위 당긴 게 더 마음에 드는데요? 그만큼 사전에 위험을 방지하려고 한 거 아니에요?”
송하윤은 한 차례 심호흡을 하더니, 내게 진심을 담아 얘기했다.
“고마워.”
송하윤의 감사 인사에 결인들은 너도나도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 뒤로 파티 자사모는 소리결 공격대에 합류하게 되었다.
* * *
정비를 마친 수색대는 중형 트럭에 올라탔다.
승합차와 중형차, 버스는 수리가 시급해서 가용할 수 없었다.
난 조수석에 오르며 배웅을 나온 박재우와 황덕록에게 물었다.
“프린트는 계속 돌리고 있어?”
“어제 좀비들 공습 때문에 잠깐 정지시켰다가 다시 가동 중이야. 그리고 이거.”
박재우는 새로 만든 카타나를 내게 건네주었다.
“듣자 하니 지금 진영이 형 카타나 쓰고 있다며?”
“어…… 맞아.”
“방금 제작 완료한 따끈따끈한 녀석이야. 이거 써.”
박재우가 건네주는 카타나를 받고 절로 미소가 번졌다.
이제 나도 카타나가 생겼다.
“고맙다.”
“뭘, 내 일이 이건데.”
“카타나 다음엔 뭐 만들 거야?”
“일단 정우 형이 사용할 창이랑, 혜리는 손도끼 만들어 달라고 했지?”
박재우가 뒷좌석에 있는 윤혜리를 쳐다보며 묻자, 윤혜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네, 저는 손도끼가 편한 것 같아요.”
윤혜리는 작은 체구와 달리 저돌적인 무기를 선호했다.
박재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오늘 중으로 전부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때까진 불편해도 지금 쓰는 손도끼 써.”
윤혜리가 고개를 끄덕이자, 박재우는 윤혜리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봤다.
뒤이어 나지막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몸조심하고. 혜리야.”
“네.”
윤혜리의 입가로 엷은 미소가 번졌다.
뭐야 저 수줍은 미소는.
둘이 썸타다 끝난 줄 알았는데, 현재 진행형이었나?
그러자 윤혜리의 옆에 있던 최현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어휴, 나는 누가 걱정 안 해주나.”
“현이 너도 조심해서 다녀와.”
박재우가 싱겁게 웃으며 얘기하자, 최현은 옹졸한 표정을 지으며 눼눼, 하고 대답했다.
장난기 가득한 분위기에, 차 안에 맴돌던 긴장감이 말끔히 가셨다.
뒤이어 설여원은 기어를 변속하며 얘기했다.
“더 늦게 전에 출발한다. 재우도 어서 가서 프린트 돌려.”
“알았어. 우리 혜리 잘 봐줘.”
“으으, 닭살.”
박재우가 배시시 웃으며 얘기하자, 설여원은 치를 떨며 액셀을 밟았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길에, 잠깐의 여유를 이용해 홀로그램을 확인했다.
[플레이어 정보]
-캐릭터 이름: 에덤 화이트
-능력: 강화
-한계 돌파 3단계
*한계를 돌파할 때마다 기존 모든 스탯이 1.3배 증가합니다.
*다음 한계 돌파에 필요한 포인트는 6000입니다.
-현재 처리한 좀비의 수: 213/70000
-남은 포인트: 1207
-스킬: 좀비화, 급가속 Lv.8, 감지 Lv.5, 하울링 Lv.5, 광폭화 Lv.MAX
-패시브 스킬: 재생, 광란
-특수 스킬: 연격
아직 남은 포인트가 1207포인트나 되었다.
추후 좀비 카운트의 최대치가 한계 돌파의 요구 포인트보다 낮을 때를 대비해서, 남은 포인트는 아껴두는 게 좋겠다.
한참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데, 뒷자리에 있던 정진영이 입을 열었다.
“양학동 도착하면 현이랑 나, 재형이만 내려서 주변 확인하자. 여원이는 언제든 출발할 수 있도록 시동 걸고 차에서 대기해 줘. 혜리도.”
정진영의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덜컹- 덜컹, 텅.
좀비들의 시체가 널브러진 새천년대로를 지나 양학동에 도달하자, 어젯밤 인형극을 사용한 양학초 사거리의 모습이 서서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설여원은 브레이크를 밟으며 얘기했다.
“살아있는 좀비는 많은데, 신체 회복한 좀비는 없는 것 같아.”
“저것들 밤새 저기 누워서 버둥거리고 있었던 거야? 다른 동네에서 유입된 좀비는 없고?”
“그런 것 같아.”
하긴, 양학동의 옆에 위치한 대이동의 좀비들까지 어젯밤에 모여들었으니, 타 지역 좀비가 이곳에 유입될 확률은 희박하다.
설여원의 설명을 듣고 한발 앞서 차량에서 내리며 얘기했다.
“다들 여기 있어요. 감지로 숨어 있는 좀비는 없는지 한번 확인하고 올 테니.”
다들 고개를 끄덕이기에, 사거리를 두리번거리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감지.”
주변 지형을 살피자, 사방에 푸른빛의 좀비들이 널브러진 상태였다.
하나같이 신체 일부가 떨어져 나간 빈사지경의 좀비들.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상태로 차디찬 아스팔트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간신히 꿈틀거리는 게 한계인 듯, 놈들은 목젖조차 갈지 않았다.
상황을 확인하고 뒤에 있는 최현과 정진영에게 얘기했다.
“진영이 형이랑 현이도 차에서 대기해요.”
“왜? 카운트 때문에?”
최현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위험한 놈은 없어. 좀비 카운트도 올릴 겸, 나 혼자 정리할게.”
“최대한 빨리해. 포항 신항도 가야 돼.”
“알았어.”
최현과 정진영을 뒤로 한 채, 카타나를 손에 쥐고 바닥에 널브러진 좀비들을 응시했다.
아무런 희망도 없이 죽지 못해 살아가는 좀비들.
칼자루를 말아쥐고, 이승에 남은 미련의 끈을 끊어주었다.
* * *
양학동에 널브러진 빈사지경의 좀비만 1만 2천에 달했다.
모든 좀비를 처리하는 데 1시간 30분은 걸린 것 같다.
달려드는 좀비를 처리하는 것보다 빈사지경의 좀비를 처리하는 게 더 오래 걸렸다.
하나하나 내가 찾아 나서야 하다 보니, 일이 많았다.
그렇게 모든 좀비를 처리하고, 차량에 있는 일행을 불러 시체들을 한 곳으로 모았다.
혹시 모를 위협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중형 트럭의 짐칸에 있는 휘발유를 이용해 시체를 태웠다.
이렇게 해야 좀비들 간의 시체 먹기가 불가능하니 말이다.
모든 작업을 마치자, 태양은 중천에 떠올라 따스한 햇볕을 내리쬐고 있었다.
설여원은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으며 얘기했다.
“가을 맞아? 왜 이리 더워?”
“그러게. 오늘따라 상당히 덥네.”
더위로 인해 목부터 축이고, 설여원은 중형 트럭에 올라 에어컨을 틀었다.
정진영은 미리 지도부터 확인하더니, 밖에 있는 우리를 불렀다.
“다들 타! 슬슬 출발하자!”
우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중형 트럭에 올라탔다.
설여원이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천천히 출발하자, 정진영은 지도를 살피며 얘기했다.
“여기서 쭉 직진하다가 양학사거리 나오면 우회전해.”
“우회전한 다음은요?”
“바로 앞에 포스코대로로 올라가는 고가도로 보일 거야. 거기로 올라가.”
설여원은 정진영의 말에 따라 핸들을 틀었다.
주변으로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어젯밤의 여파인지, 도로는 깨끗하게 비워진 상태.
설여원은 한참이나 말없이 운전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백미러로 일행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그건 그렇고, 다들 코인 얼마나 모았어?”
설여원의 물음에 다들 홀로그램을 열고 보유 중인 코인을 확인했다.
정진영이 보유한 코인은 13,987이었고, 설여원이 보유한 코인은 15,487, 최현과 윤혜리는 8,487코인을 보유하고 있었다.
다들 상당히 많이 보았다.
레이첼과 가브리엘의 능력을 지닌 정진영과 설여원은 지금 당장 코인을 사용할 곳이 없지만, 최현과 윤혜리는 달랐다.
두 사람의 직업은 데니.
최현은 가만히 턱을 매만지며 내게 물었다.
“재형아, 인형극 레벨 5까지 올릴까?”
“4에서 5로 올리는데 코인 얼마나 들어?”
“8,000코인. 지금 보유 중인 코인 거의 몰빵해야 돼.”
8,000코인이나 한다고?
이는 좀비 8만 마리를 처리하는 것과 상응하는 수치였다.
하지만 인형극의 효과를 생각하면…… 8,000코인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자, 최현과 윤혜리는 망설임 없이 인형극의 레벨을 높였다.
-스킬 인형극의 레벨을 높입니다.
-인형극의 레벨이 5에 도달했습니다.
-성능이 대폭 증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