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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212화 (212/373)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12화

머리 위의 드론을 따라 쉬지 않고 달리자, 어느새 내리막길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 높지 않은 산인가?

아니면 증가한 신체 능력 때문에 금방 오른 걸까.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고비를 넘었으니 내리막을 질주하며 드론의 위치를 살폈다.

치지직- 치직.

-오빠! 근처에 뭐 보이는 거 있어요?

무전기로 들려오는 김희연의 목소리.

근처에 보이는 게 있냐고?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

당황스러운 마음에 무전기를 들고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네 위치에서 안 보여?”

-절벽이나 특별한 건축물은 안 보여요!

“그럼 이쪽으로 드론 날린 이유가 뭐야?”

-봉우리로 가면 뭐라도 있을까 싶어서…….

이걸 말이라고 해?

미리 찾아둔 줄 알았는데, 저 드론도 안전한 지형을 찾기 위해 돌아다녔다는 말이 아닌가?

어처구니없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물었다.

“거기서 내 위치 보이긴 보여?”

-안 보여요. 여기 아파트 옥상에선 봉우리 너머는 확인할 수 없어요.

아랫입술을 깨물며 눈살을 찌푸렸다.

안 돼, 침착하자.

화내서 좋을 게 없다.

괜히 성질내면 또 광란을 사용할 거냐는 홀로그램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난 폐부에 들어찬 숨을 내뱉으며 물었다.

“쉘터 쪽 좀비들은 어때? 지금도 단지로 이동하고 있어?”

-아니요! 전부 오빠 따라갔어요! 지금 남은 건 죽도동 좀비들뿐이에요!

“죽도동? 거긴 쉘터에서 동쪽 방면 아니야?”

-네, 근데 괜찮아요! 거기서 몰려오는 좀비는 그리 많지 않아요.

“너랑 덕록이도 이제 사람들 도와서 좀비들 정리해.”

-네? 브리핑 없어도 괜찮겠어요?

“어차피 내 위치도 안 보인다며? 너도 이쪽 지리 모르고.”

-아…… 넵!

무전을 마치자, 머리 위의 드론도 아파트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였다.

크어어어어어!!

저 멀리, 배후에서 들려오는 좀비들의 울음소리.

또한 내리막길의 끝에서도 좀비들의 포효가 들려오고 있었다.

진퇴양난의 상황.

어처구니없어서 콧방귀가 먼저 나왔다.

누굴 탓하겠는가.

김희연도 어둠 속에서 지형지물을 분간하는 건 어려울 것이다.

공명 좀비의 위치를 찾은 것도 기적에 가까운 일.

양학산으로 들어온 것도 내 의지니, 이젠 내가 알아서 해야지.

난 하체를 접으며 읊조렸다.

“가속, 감지.”

어둠이 내려앉은 세상으로 푸른빛의 반딧불이들이 내게 접근하고 있었다.

그 숫자가 워낙에 많다 보니, 굴곡진 지형을 미리 파악할 수 있었다.

쾅!!

지면을 박차며 내리막을 질주했다.

내리막으로 인해 속도가 붙으니 보폭은 점점 넓어지고, 지면을 디딜 때마다 두 다리로 저릿한 충격이 느껴졌다.

무섭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몸에서 전율이 흐르고, 발끝으로 느껴지는 거친 감각에 내가 살아 있음을 느꼈다.

두 눈 부릅뜨고 전방의 좀비들을 향해 난도질을 가했다.

촤악! 촤작- 촥! 촤악!

거칠게 카타나를 휘두르며 내리막의 끝에 다다르자, 눈앞으로 직사각형 형태의 거대한 벽이 나타났다.

이게 뭔가 싶어서 주변을 돌아보자, 외벽에 적힌 글자를 확인할 수 있었다.

용흥초등학교.

양학산 초입에 초등학교가 있었다.

아니 잠깐, 양학산을 지나면 양학동이 나와야 하는 거 아니야?

왜 초등학교 이름이 양학초가 아니고 용흥초야.

설마, 양학산을 넘은 게 아니라 산자락에 위치한 봉우리 하나를 지났을 뿐인가?

왠지, 높이가 너무 낮더라니.

치지직- 치직.

-재형아 들리냐!

무전기로 들려오는 정진영의 목소리.

이에 황급히 무전기를 들었다.

“말씀하세요.”

-무전 내용 들었다. 지금 쉘터 앞에 있는 언덕 지난 거야?

“네, 용흥초등학교 앞이에요.”

-그 주변에 고등학교랑 병원, 아파트 많을 거야. 혹시 보여?

“지금 아무것도 안 보여요. 4m 앞에 뭐가 있는지 분간하는 게 한계에요.”

-초등학교 정문으로 이동하면 큰길 보일 거야. 거기 지나면 고등학교 있어.

“고등학교요?”

-어, 초등학교 앞에 큰길 지나서 고등학교 쪽으로 이어지는 언덕길 보일 거야.

“거긴 안전해요?”

-외길이라서 수비하기 좋아.

역시 토박이가 있어야 돼.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단번에 지형을 설명해 준다.

난 정진영의 말에 따라 황급히 초등학교를 지나 큰길로 들어섰다.

크어어어어!!

배후에서 들려오는 좀비들의 울음소리.

좌우로 아파트가 있는 것 같은데, 아파트에서 튀어나오는 좀비는 없었다.

이미 공명 좀비의 울음소리를 듣고 진즉에 우리 쉘터로 왔겠지.

큰길을 지나 주변을 살피자, 눈앞으로 동지여자고등학교라는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난 무전기를 들고 정진영을 불렀다.

“진영이 형! 형이 얘기한 고등학교가 동지여자고등학교 맞아요?”

-어 맞아! 그쪽 언덕으로 올라가!

무전을 마치고 높다란 언덕길을 질주했다.

정진영의 말대로 수비에 좋은 지형이었다.

좌측과 정면은 족히 7m나 되는 거대한 벽이 있고, 우측은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언덕을 따라 위치한다.

길목을 막고 버틴다면 좀비화를 사용하지 않아도 다수의 좀비를 상대할 수 있는 지형.

난 양손으로 카타나를 쥐며 좀비들의 위치를 살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좀비들의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크어어어어어!!

그어어어…… 어어어…….

뒤이어 포효와 공명이 뒤섞인 음성이 내 귓바퀴를 간질였다.

“누가 이기나 해보자고.”

다짐을 굳히며 쉴 새 없이 카타나를 휘둘렀다.

* * *

“바닥 조심해!”

하악! 카하악!

이정우가 소리치자, 앞에 있던 최현은 황급히 뒷걸음질 치며 지면을 살폈다.

하체가 잘려 나간 좀비가 양팔을 뻗으며 최현의 종아리를 노리고 있었다.

최현은 손에 쥐고 있던 카타나로 유려한 호선을 그리며 좀비의 정수리를 찍었다.

담벼락을 넘어오는 좀비는 없지만, 윤혜리가 사용한 인형극으로 인해 빈사지경의 좀비들이 단지 내부에 널브러진 상황.

또한 죽도동 방면의 좀비들이 양학산으로 우회해서 들어오지 않고, 아파트 정문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이를 통해 대장 좀비가 없다는 걸 확신하게 되었다.

대장 좀비가 있다면 굳이 양학산으로 우회해서 좀비들을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양학산에 있던 공명 좀비들이 박재형의 손에 죽었으니, 더는 우회하지 않고 직선으로 길을 뚫는 것으로 보였다.

그 숫자는 많지 않았지만, 지칠 대로 지친 결인들에겐 버거운 상황.

전완수는 얼굴에 묻은 좀비들의 혈흔을 닦으며 외쳤다.

“벌써 11시 40분이야! 슬슬 이동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러자 전완수의 옆에 있던 황덕록이 대답했다.

“여긴 우리가 정리할 테니까 너희는 출발해!”

황덕록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이정우에게 쏠렸다.

이정우는 마른침을 삼키며 일행의 얼굴을 살피더니,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현이랑 혜리, 진영이, 완수, 여원이는 버스로 이동해. 나랑 희연이, 재우, 덕록이는 여기 정리한다.”

이정우의 말에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전완수는 버스의 운전석에 오르며 최현에게 물었다.

“인형극 진짜 12시 기준으로 초기화되는 거 맞아?”

“하루 1회 사용이니까 12시 기준이겠지.”

“안 되면 우리 다 죽는 거야.”

전완수의 말에 최현은 마른침을 삼키며 일행을 쳐다봤다.

다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적진으로 들어가는 상황이다 보니, 다들 생각이 많은 것으로 보였다.

그러자 뒤에 있던 정진영이 입을 열었다.

“부정적인 생각은 좀비한테 물린 다음에 해도 돼. 지금은 재형이만 생각하자.”

“네.”

부우우웅-

버스의 시동이 걸리고, 전완수는 무너진 바리케이드를 향해 핸들을 틀었다.

정진영은 지도를 살피며 얘기했다.

“양학동에서 넘어오는 좀비들은 재형이가 처리하고 있으니, 일단 죽도동 먼저 간다.”

“길 안내해 줘요.”

“내가 얘기하기 전까지 직진해.”

전완수는 빠르게 기어를 변속하며 액셀을 밟았다.

크어어어어!!

터덩- 텅! 콰직! 으드득!

아파트단지 정문으로 들어오는 좀비들을 삼각뿔로 밀어버리며, 곧장 죽도동으로 향했다.

* * *

버스에 탑승한 일행은 죽도동 오거리에 도달했다.

전완수는 액셀을 밟으며 소리쳤다.

“쉘터로 향하던 좀비들이 버스에 달라붙고 있어! 빨리 인형극 써!”

“12시 되려면 아직 2분 남았어!”

최현의 대답을 듣고, 전완수는 미간을 찌푸리며 세차게 핸들을 틀었다.

끼이이이익!!

기다란 스키드자국을 남기며 드넓은 오거리를 회전하는 버스.

크어어어어어어!!

콰곽! 쾅!! 떠덕- 뜨드득- 텅!

버스에 달려드는 좀비들은 삼각뿔과 칼날에 갈리며 사지가 떨어져 나갔다.

덜컹거리는 충격으로 인해 차내의 사람들은 손에 잡히는 아무거나 잡고 넘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마침내 12시가 되자, 최현은 기다렸다는 듯이 외쳤다.

“인형극!”

-반경 400m 내의 좀비들을 20초간 조종할 수 있습니다.

-명령어를 말씀하세요.

최현은 눈앞의 홀로그램을 보고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외쳤다.

“눈에 보이는 공명 좀비는 모조리 죽여! 서로 죽일 듯이 싸워라!”

-입력이 완료되었습니다.

-명령어: 아군 섬멸(공명 좀비 우선 공격)

크어어어어어어!!

오거리에 들어찬 좀비들은 허공을 향해 포효를 내지르더니, 서로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또한 공명 좀비 한 마리에 수십 마리씩 달라붙어 처리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완수는 난장판이 된 오거리의 모습을 보고 다급히 핸들을 틀었다.

끼이이익-! 끼긱!

고막을 찌르는 타이어 끌리는 소리.

“20초 안에 여기 벗어나야 돼요! 진영이 형 브리핑!”

“1시 방향으로 우회전!”

전완수는 정진영의 말에 따라 재빨리 기어를 변속하며 오거리를 빠져나왔다.

오거리에 모여 있던 1만에 가까운 좀비들은 순식간에 파국으로 치달았다.

정진영은 빠르게 지형을 살피며 얘기했다.

“앞에 대로 나오면 거기서 좌회전해!”

“대로 이름이 뭐예요. 새천년대로 맞아요?”

전완수가 전방의 표지판을 확인하며 묻자, 정진영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어! 거기서 좌회전해서 KCC 아파트 보일 때까지 직진!”

전완수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지형을 살피더니, 대로에 들어찬 좀비들을 발견하고 일행에게 소리쳤다.

“다들 꽉 잡아요!”

“이미 잡고 있어!”

콰과곽!! 쾅! 떠더덕- 떵!

대로에 들어찬 좀비들을 들이받으며 계속해서 속도를 높였다.

뒤이어 정진영이 얘기한 아파트가 우측에 나타나자, 전완수는 좌우를 살피며 물었다.

“갈림길! 여기서 어디로!”

“오른쪽!”

정진영이 기둥을 붙잡고 소리치자, 전완수는 까드득 이를 갈며 핸들을 틀었다.

터더덩! 끼이익!! 텅!

좀비들을 밀고 들어가자, 대단지 아파트가 가득한 양학동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정진영은 세차게 흔들리는 차내에서 지도를 살피며 외쳤다.

“경적 울리면서 계속 들어가!”

“경적은 왜요?”

“하루에 한 번밖에 못 쓰는 스킬인데 최대한 많이 죽여야지!”

빠아아앙!! 빵!! 빵!!

경적을 울리며 대단지 아파트를 가로지르자, 대이동에서 몰려온 좀비들과 양학동에 있던 좀비들이 소리를 듣고 몰려들기 시작했다.

양학산으로 올라가던 좀비들까지, 전부 버스가 있는 곳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전완수는 끝도 없이 몰려드는 좀비들을 보고 식은땀을 흘리며 물었다.

“지금 인형극 써야 되는 거 아니에요?”

“아직이야! 계속 올라가면 양학초 사거리 나와! 거기서 써야 최대효과 볼 수 있어!”

“아오 씨…….”

“최대한 버티면서 좀비들 모일 때까지 기다려!”

끼이익! 끼긱- 끼이익!!

전완수는 두 눈 부릅뜬 채 거침없이 핸들을 돌렸다.

이윽고 양학초 사거리에 도달하자, 주변 지형을 살피며 외쳤다.

“이 속도로 버스 못 돌려요! 차 엎어질 겁니다!”

“속도 줄이면 되잖아 인마!”

“형은 안 보이니까 그런 소리 하죠! 지금 속도 줄이면 좀비들한테 뒤집혀요!”

정진영은 눈살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긴 모습을 보이더니, 결국 윤혜리를 쳐다보며 외쳤다.

“혜리야! 지금 써!”

“인형극!

윤혜리는 양손으로 기둥을 붙잡은 채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소리쳤다.

-반경 400m 내의 좀비들을 20초간 조종할 수 있습니다.

-명령어를 말씀하세요.

윤혜리는 실눈을 뜨고 홀로그램을 확인하더니, 최현이 내렸던 명령과 똑같은 명령을 내렸다.

“눈에 보이는 모든 공명 좀비를 죽여! 서로 죽일 듯이 싸워!”

-입력이 완료되었습니다.

-명령어: 아군 섬멸(공명 좀비 우선 공격)

크어어어어어어!!

그러자 천지를 울리는 포효와 함께 좀비들이 서로를 죽이기 시작했다.

전완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다급히 핸들을 틀어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좀비 웨이브의 허리를 끊었으니, 이제 양학산을 넘어오는 좀비는 없을 것이다.

전완수는 다시금 새천년대로로 진입하며 정진영에게 물었다.

“재형이 있는 고등학교가 어디예요.”

“아까 KCC 아파트 지나왔지? 거기까지 일단 직진.”

전완수가 속도를 높이자, 정진영은 창밖을 두리번거리며 얘기했다.

“시꺼먼 게 X나게 안 보이네.”

“이런 상황에 과속운전하는 제 기분은 어떨 것 같아요?”

“……수고 많았다.”

뒤이어 사거리가 나타나자, 정진영은 좌측을 가리키며 얘기했다.

“저기, 저쪽 위로.”

“좌회전이요?”

“어, 좌회전해서 쭉 올라가면 왼쪽에 고등학교 보일 거야.”

전완수는 정진영의 말에 따라 핸들을 조작했다.

뒤이어 정진영은 호들갑을 떨며 얘기했다.

“속도 줄여. 속도 줄여!”

“왜요, 왜요!”

“여기서 좌회전해야 돼. 길 좁으니까 조심해.”

전완수는 입맛을 다시며 서서히 속도를 줄이고, 좌측으로 핸들을 틀었다.

그 순간, 전완수는 브레이크를 밟으며 넋을 잃은 표정을 지었다.

“빨리 안 들어가고 뭐해? 재형이 안 구할 거야?”

정진영이 눈살을 찌푸리며 묻자, 전완수는 마른침을 삼키며 얘기했다.

“차로 못 들어가요.”

“그게 무슨 말이야? 여기 길 있는 거 내가 뻔히 아는…….”

“아니, 좀비 시체가 벽처럼 쌓여서 못 들어간다고요.”

고등학교로 이어지는 비좁은 언덕길.

그곳으로 좀비들의 시체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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