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10화
전수연이 계단을 가리키자, 박재형은 황급히 난간으로 달려가 전완수의 위치를 살폈다.
1층에서 올라오는 좀비들을 쉴 새 없이 처리하는 전완수.
좁은 지형을 이용해 최대한 버티고 있지만, 움직임이 예전 같지 않았다.
체력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박재형은 황급히 계단을 내려가며 그를 불렀다.
“완수야!”
“박재형?”
전완수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금세 입꼬리를 올리며 얘기했다.
“여태 어디 있었어! 더럽게 반갑네!”
“단지가 넓어서 111동 찾는데 한참 걸렸어. 교대하자! 올라와서 애들이랑 같이 있어!”
전완수는 황급히 계단을 뛰어오르며 학생들과 함께 9층 복도로 향했다.
크어어어어!!
밑에서 들려오는 좀비들의 울음소리.
끝도 없이 몰려드는 좀비들을 보고, 박재형은 칼자루를 뽑으며 생각했다.
족히 2만 이상의 좀비가 남은 것 같은데…….
학생들을 데리고 이동하는 건 위험하고, 전완수도 체력적으로 지친 상태.
그러니 이곳에서 좀비들의 숫자부터 줄이고, 안전하게 108동으로 이동해야 한다.
“가속.”
쾅!!
박재형은 생각을 정리하자마자 좀비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 * *
10분, 20분, 30분, 그리고 40분에 접어들 무렵, 드디어 111동 주변의 모든 좀비를 처리할 수 있었다.
난 거친 숨을 몰아쉬며 무전기를 들었다.
“들리세요? 정우 형?”
치지직- 치직.
-너 어디야! 왜 여태 연락이 안 돼?
“좀비들 처리하느라 바빴어요. 그쪽 상황은 어때요?”
-오지 말고 거기 있어! 여긴 여전히 많아!
40분을 쉬지 않고 싸웠는데, 아직도 좀비들이 많이 남았다고?
여기서 나 혼자 처리한 좀비만 5,000마리는 될 텐데…….
계단을 이용해서 싸운 덕에, 체력적인 소모를 줄이며 안정적으로 좀비를 처리할 수 있었다.
외벽을 타고 올라온 좀비는 전완수가 담당해 준 덕에, 난 정면만 신경 쓰면 됐다.
108동도 우리와 비슷한 형태로 싸웠을 것이다.
최소 5,000마리 이상 잡았을 텐데, 여전히 많이 남았다니.
난 무전기를 들고 김희연을 불렀다.
“희연아 들려?”
치지직- 치직.
-말씀하세요!
“넌 어디야.”
-저 옥상이요! 좀비들 위치 확인하는 중입니다!
“좀비들 어디서 오고 있어?”
-계속 양학산 너머에서 몰려오고 있어요! 끝이 안 보여요!
김희연의 대답을 듣고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후문 쪽으로 몰려온 좀비만 5,000마리 이상.
공명을 듣고 뒤편의 초, 중, 고등학교, 빌라와 상가 지역에서 몰려왔을 것이다.
반면에 양학산 방면에서 좀비들이 계속 온다는 건…… 다른 동네에 있는 좀비들까지 공명을 듣고 몰려들었다는 얘기.
정확한 숫자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5만 이상의 좀비가 몰려온 것 같다.
1만은 윤혜리의 인형극으로 빈사 상태를 만들었다 쳐도, 내가 도착한 뒤에 111동과 108동에서 처리한 좀비의 합이 1만 이상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여전히 남은 좀비는 3만.
108동의 일행은 내가 도착하기 한참 전부터 싸우고 있었으니, 아무리 돌아가면서 싸워도 체력이 한계에 다다랐을 것이다.
난 좀비화의 재사용 대기 시간을 살폈다.
[좀비화]
-재사용 대기시간: 4시간 12분
여전히 쿨타임이 많이 남은 상황.
다시금 무전기를 들고 이정우를 불렀다.
“형, 그쪽 체력 회복제 얼마나 남았어요?”
-나랑 정우 빼고 다 있어!
“체력 회복제 다 쓴다고 생각하고 최대한 버텨요.”
-뭐? 얼마나 기다리라는…… 크어어어어!!
무전기 너머로 좀비들의 포효가 들려왔다.
울음소리만 들어도 규모가 보통이 아니라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
치지직- 치직-
-재형 학생!
무전기 너머로 이정우 대신 이덕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덕배 아저씨?”
-정우 학생 바쁘니까 나한테 얘기해! 계획이 뭐야?
“거기서 최대한 버텨주세요. 전 어디 좀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와? 어디를?
“그건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지금 얘기해 봐야 또 무리하지 말라고 난리를 칠 게 뻔하다.
무전기로 너머로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다들 좀비를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는 모양이다.
치지직- 치직-!
-야 박재형!
뒤이어 들려오는 최현의 목소리.
그는 다급함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물었다.
-내 동생은? 지혜는 찾았어?
“같이 있으니 걱정하지 마.”
-어후, 어휴…….
무전기 너머로 연거푸 들려오는 한숨 소리.
짜증이나 답답함이 아니라, 안도감이 담긴 한숨이었다.
뒤이어 최현이 말이 이어졌다.
-야 재형아! 지금은 절대 오지 마! 108동 들어오는 길 없으니까 그냥 거기 있어!
“알았다.”
-너는 괜찮은 거지?
“괜찮아. 일단…… 내가 어떻게든 해볼 테니 버티고 있어 봐.”
무전을 마치고 9층으로 향했다.
9층 바닥에 앉아 있던 전완수는 땀에 젖은 앞머리를 뒤로 넘기며 물었다.
“무전 내용 뭐야? 네가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완수야, 너는 애들이랑 여기 있어. 난 잠시 나갔다 올게.”
“계획이라도 얘기하고 가.”
“양학산으로 갈 거야.”
“……뭐?”
전완수는 눈살을 찌푸리더니,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말라며 나무랐다.
지금 양학산은 좀비들의 소굴이나 다름없었다.
이에 고개를 저으며 얘기했다.
“공명 좀비를 잡아야 돼.”
“공명 좀비?”
“그것들이 살아 있는 한 계속 모여들 거야. 곳곳에 있는 공명 좀비들이 봉화대 역할을 하는 것 같아.”
“…….”
“이대로 내버려 두면 포항 남부의 모든 좀비가 모여들지도 몰라.”
전완수는 마른침을 삼키며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았다.
좀비들의 숫자가 많다는 건 그만큼 공명 좀비도 많다는 뜻이고, 공명 좀비를 처리하지 않는 한 지금의 좀비 웨이브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중간 지점을 찾아 처리하고, 좀비들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야 한다.
전완수는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며 얘기했다.
“나도 같이 가.”
“여기 있어.”
“아무것도 안 보이면서 혼자 어쩌려고? 시야 확보 가능한 사람은 있어야 할 것 아냐.”
그러자 전완수의 동생, 전수연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의 팔을 잡았다.
전완수가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기에, 난 뻐근한 어깨를 풀며 얘기했다.
“괜찮으니 여기 있어. 애들 무기도 없는데 여기 두고 어딜 따라온다는 거야.”
“하지만…….”
“대신 체력 회복제 줘.”
“체력 회복제?”
“체력만 따라주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어.”
전완수는 가방 속을 뒤적이더니, 깊숙이 손을 넣어 체력 회복제를 꺼냈다.
전완수가 건네주는 체력 회복제를 바지 주머니에 넣고, 카타나를 손에 쥐며 얘기했다.
“다들 여기 있어. 절대 밖으로 나오지 말고.”
그길로 계단을 내려갔다.
현관은 좀비들의 시체로 꽉 막힌 상태라서, 3층에서 창밖으로 뛰어내렸다.
탓! 타닥!
안정적으로 착지한 뒤, 주변을 살피며 무전기를 들었다.
“희연아, 거기서 양학산 잘 보여?”
-네! 보여요.
“덕록이 드론 너한테 있어?”
치지직- 칙.
-드론 나한테 있어. 왜?
무전기로 들려오는 황덕록의 목소리.
난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덕록아, 희연이한테 드론 줘.”
-드론을 주라고?
“드론에 불빛 나오게 설정하고 내 머리 위를 비춰.”
-드론에 조명 기능 없는데? 아, 휴대폰 달고 조종하라고? 근데 드론은 갑자기 왜?
황덕록과 김희연은 내가 무슨 의도를 지녔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이에 간략하게 설명했다.
내 머리 위로 드론을 띄우고, 양학산 방면으로 길 안내를 해달라고 했다.
그러자 김희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양학산으로 간다고요? 오빠 혼자요?
“잔소리하지 말고 빨리.”
-정우 오빠랑 다른 사람들한테 얘기한 거예요?
치지직- 치직-
-그냥 재형이 말대로 해! 여기서 방안 떠올리는 사람 재형이 말고 더 있어?
무전기로 설여원의 대답이 들려오자, 더는 반박하는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그동안 난 쪽문을 지나 대로에 접어들고, 양학산의 위치를 찾기 위해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위이이잉- 위이이잉.
뒤이어 눈부신 불빛과 함께 내게 접근하는 드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무전기로 들려오는 황덕록의 목소리.
-희연이가 드론 조종하는 법을 몰라서 내가 조종하고 희연이가 브리핑할 거야. 양학산으로 안내하면 되나?
“어, 부탁할게.”
-간다.
위이이이잉-!
머리 위의 드론은 자욱한 안개를 뚫고 서쪽 방면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이에 칼자루를 손에 쥐고 드론을 따라갔다.
크어어어어어!!
크르르르르…… 카학!
산을 오르면 오를수록, 좀비들의 울음소리가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체취를 맡은 건지, 아니면 드론 소리 때문인지 몰라도, 아파트로 향하던 좀비의 일부가 내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수풀을 헤치며 이곳으로 접근하는 발소리.
‘왼쪽.’
소리의 근원지로 시선을 돌리자, 어둠 속에서 세차게 몸을 흔드는 수풀의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정확한 숫자는 파악할 수 없었다.
담벼락 너머에서 활활 타오르던 불꽃도 사그라들었고, 월광도 밝지 않았다.
빛이 없으니 좀비의 인영조차 확인할 수 없는 상황.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내가 의지할 수 있는 건 청각뿐이었다.
집중력을 끌어올리며 청각에 모든 것을 맡겼다.
크어어어어!!
발치까지 다가온 열댓 마리의 좀비를 빠르게 처리하고, 저 위에서 흐릿하게 빛나는 드론을 따라 계속해서 산을 올랐다.
뒤이어 레그홀스터에 넣어둔 무전기에서 김희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오른쪽 40m 거리에 공명 좀비 있는 거 같아요!
오른쪽 40m?
김희연은 망원경으로 좀비의 위치를 살피고 있는 모양이다.
김희연의 말에 따라 빠르게 산행을 감행했다.
안개로 인해 질퍽해진 땅을 박차며 올라가자, 김희연의 말대로 허공을 향해 울부짖는 좀비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어어어어…… 카하악!!
놈은 내 얼굴을 보고 공명을 멈추더니, 양팔을 휘저으며 다짜고짜 달려들었다.
이에 카타나를 사선으로 그으며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놈의 머리를 상체와 분리시켰다.
치지직- 치직.
-거기서 왼쪽으로 올라가면 좀비들 뭉쳐 있는 곳 있을 거예요! 거기에 공명 좀비 있을 가능성이 높아요!
무전기에서 들려오는 브리핑을 듣고 머리 위의 드론을 쳐다봤다.
위이이이잉-
드론이 이동하는 경로를 따라 이동했다.
어둠 속의 산행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바닥도 질퍽하고, 나무뿌리가 불룩 튀어나온 부분은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려웠다.
또한 굴곡진 곳도 많아서, 헛발을 딛고 균형을 잃을 때도 많았다.
크어어어어!!
카하악!! 하아악!!
넘어졌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좌측 100m가량 올라가자, 수풀을 헤치고 내려오는 좀비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마치 대장 좀비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좀비들처럼, 다수의 좀비가 밀물처럼 밀려들고 있었다.
하지만 좀비들의 근력과 움직임으로 보아, 대장 좀비의 수하는 아닌 것 같다.
길거리 좀비와 다를 바 없는 신체 능력.
그만큼 공명 좀비가 많다는 뜻이겠지.
난 칼자루를 말아쥐며 그 자리에 두 다리를 고정했다.
지면에 굴곡이 많기에, 변수를 생각해야 한다.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접근하는 좀비들부터 차근차근 처리하는 게 이롭다.
좀비들은 나무에 부딪치기도 하고, 뿌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했다.
크어어어어어!!
그럴 때마다 오뚝이처럼 일어나 괴성을 내지르며 달려드는 좀비들.
행동에 제약이 많은 건 피차 마찬가지.
난 하체에 힘을 주고 빠르게 카타나를 휘둘렀다.
회피기동이 어려운 만큼, 한 번 휘두를 때 확실하게 숨통을 끊었다.
어중간하게 공격해서 일격에 숨통을 끊지 못하면 언제든 내 종아리와 허리를 붙잡고 거머리처럼 늘어질 것이다.
내게 접근하는 좀비들은 방파제에 닿은 파도처럼 좌우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전부 목이 달아난 채, 붉은 선혈을 분수처럼 쏟으며 지면에 엎어졌다.
좀비들의 시체는 경사로를 따라 밑으로 굴러떨어지고, 잘려 나간 머리도 농구공처럼 저 밑으로 굴러떨어졌다.
이 자리에서 전부 죽인다는 각오로, 오른발을 앞으로 내디디며 접근하는 모든 좀비를 재빠르게 일도양단 냈다.
그어어어…… 어어어…….
어둠이 내려앉은 양학산에 메아리치는 공명 좀비의 울음소리.
뒤이어 곳곳에서 공명 좀비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아파트로 질주하던 좀비들이 방향을 틀어 이곳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