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09화
설여원은 있는 힘껏 액셀을 밟으며 외쳤다.
“꽉 잡아!”
부아아아아앙!!!
양손으로 핸들을 꽉 쥐고, 이 악물고 바리케이드를 들이받았다.
쾅!!!
떠덩-! 텅!
승합차의 정면부에 달아둔 뼈대가 떨어져 나갔다.
또한 왼쪽 바퀴에 문제가 생겼는지, 차량이 휘는 모습을 보였다.
설여원은 가뜩이나 커다란 눈을 튀어나올 듯이 휘둥그레 뜨더니, 황급히 핸들을 틀며 속도를 조절했다.
치지직- 치직-
-재형아! 115동! 115동으로 가!
무전기로 들려오는 이정우의 목소리.
이에 옆에 있는 설여원을 쳐다봤다.
설여원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에라 모르겠다는 식으로 좌측의 화단에 승합차를 정차시켰다.
급제동으로 인해 상체가 출렁이고, 목덜미로 짜르르 울리는 통증이 느껴졌다.
“여기가 115동이야?”
“걸어가야 돼. 타이어 터진 거 같아.”
설여원은 빠르게 좌우를 살피더니, 정면을 가리키며 얘기했다.
“20m 앞이 115동이야.”
“앞장 서.”
우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차량에서 내렸다.
크어어어어……! 카학!
바닥에 널브러진 좀비들이 설여원과 내 다리를 붙잡기 위해 양팔을 뻗었다.
스킬 인형극으로 인해 서로를 빈사 상태로 만든 놈들.
하나하나 처리하고 있을 여유가 없기에, 놈들의 두개골을 짓밟으며 115동으로 향했다.
타다닷- 타닷!
뒤이어 115동 입구로 흐릿한 인영이 나타났다.
카타나를 뽑아 들자, 옆에 있던 설여원이 내 팔을 잡으며 얘기했다.
“재우랑 혜리야.”
이에 115동 입구로 향하며 소리쳤다.
“박재우!”
“어디야, 어디야 박재형!”
“여기!”
양손을 머리 위로 들고 좌우로 흔들자, 제자리에서 방방 뛰는 자그마한 인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자세만 봐도 윤혜리였다.
115동 입구에 다다르자, 박재우와 황덕록, 윤혜리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
그들은 바닥에 널브러진 좀비들을 바퀴벌레처럼 짓밞으며 내게 얘기했다.
“108동으로 가야 돼. 거기에 다 같이 있을 거야.”
“한 명도 빠짐 없이 거기 있는 거지?”
“그건 아니야. 완수랑 지혜, 수연이, 성하는 111동.”
“111동? 111동이 어디야.”
“아파트 후문 쪽.”
고작 하룻밤 묵은 게 전부인데, 동호수를 어떻게 다 외워?
심지어 3000세대에 달하는 대단지 아파트의 지형은…… 내게 미로나 다름없었다.
그러자 박재우가 앞장서며 얘기했다.
“따라와. 108동까지 대각선으로 가는 길 알아.”
박재우의 옆으로 설여원이 붙고, 황덕록과 윤혜리가 그 뒤에 섰다.
난 후방에서 안전을 확보하며 일행을 뒤따랐다.
크어어어어어!!
카하아아아악!!
좌측에서 들리는 좀비들의 울음소리.
소리의 근원지로 시선을 돌리자, 저 멀리 붉게 타오르는 화염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담벼락 너머에 불을 지른 것 같다.
해가 떨어지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아야 정상인데, 화염 덕분에 좀비들의 인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숫자가 보통이 아니다.
보통?
아니, 두호동 좀비들을 마주했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었다.
인형극으로 최소한 1만의 좀비는 빈사 상태에 놓였을 텐데, 이곳으로 접근하는 좀비만 2배 이상 되는 것 같았다.
“감지.”
-25초간 전방 90m 내의 좀비와 변종의 움직임을 감지합니다.
어둠이 내려앉은 세상으로, 끝도 없이 담벼락을 넘어오는 푸른 물결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해일처럼 밀려드는 좀비들을 보고, 난 카타나를 말아쥐며 일행에게 외쳤다.
“더 빨리 뛰어!”
마음은 급한데, 박재우와 황덕록, 윤혜리는 이미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115동에서 쉬지 않고 좀비들과 싸웠을 테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결국 선두로 나서며 외쳤다.
“계속 가!”
크어어어어어!!
접근하는 좀비들을 처리하며 일행의 위치를 번갈아 살폈다.
이곳으로 접근하는 좀비들은 대부분 담벼락을 넘어온 좀비들.
담벼락을 넘어오는 과정에 살점이 눌어붙어 움직임에 제약이 생긴 것으로 보였다.
재빠르게 카타나를 휘두르며 발치까지 접근한 좀비들을 처리했다.
텁!
그 순간, 발목을 붙잡는 손길이 느껴졌다.
크르르르르…….
빈사 상태의 좀비가 내 발목을 붙잡았다.
이에 눈살을 찌푸리며 있는 힘껏 정수리에 발길질을 가했다.
떡!!
경추가 꺾이고 두개골이 깨지는 좀비.
두려움? 긴장감?
그런 감정은 들지 않았다.
몸에 구정물이 묻은 것처럼 불결한 기분이 들 뿐.
길거리 좀비 10마리가 붙어도 날 넘어뜨리는 건 불가능하다.
체력적으로 한계에 다다른 상태면 몰라도, 승합차를 타고 오며 완전히 회복한 상태였다.
두호동을 정리하고 한계 돌파를 했으니, 현재 내 근력은 72에 달한다.
이는 24에서 26 사이의 결인들 보다 2.5배가량 높은 수치.
“빨리 와!”
저 멀리, 108동 앞에서 손짓하는 설여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카하아학!!
좌측에서 달려드는 좀비의 팔을 붙잡고, 이곳으로 달려오는 좀비들을 향해 집어 던졌다.
야구공처럼 일직선으로 날아가는 좀비.
놈은 이곳으로 접근하는 좀비들을 도미노처럼 넘어뜨리며 빈틈을 만들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108동을 향해 달렸다.
현관으로 들어서자, 꽉 막힌 계단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박재우와 황덕록, 윤혜리가 다급히 시체들을 치우고 있지만, 도저히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난 좀비들과 일행의 위치를 살피며 얘기했다.
“외벽으로 올라가.”
“네?”
윤헤리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반면에 설여원은 탄성을 뱉으며 박재우와 황덕록의 어깨를 잡아끌었다.
박재우와 황덕록, 윤혜리도 각성 플레이어였다.
경험이 없을 뿐이지, 충분히 외벽을 타고 올라갈 수 있는 신체 능력을 지녔다.
설여원은 손에 쥐고 있던 카타나를 칼집에 넣으며 얘기했다.
“다들 따라와. 재형이는…….”
“시간 끌 테니 먼저 올라가.”
설여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108동 외벽으로 이동했다.
이미 좀비들의 시체로 둔덕이 형성된 상태.
3층 높이까지 쌓인 시체들을 보고, 설여원은 윤혜리를 쳐다보며 얘기했다.
“혜리부터 올라가. 빨리!”
윤혜리가 엉금엉금 기어서 시체로 형성된 둔덕을 오르자, 창가를 수비하고 있던 최현이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외쳤다.
“정우 형! 애들 왔어요!”
“엄호해!”
이정우의 외침에 4층에 있던 천호진과 이덕배, 이현배, 최만석은 TV와 전자레인지 등, 각종 물건을 창밖으로 집어 던졌다.
크어어어어!!
둔덕으로 접근하던 좀비들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건에 머리를 맞고 뒤로 엎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난 모두가 올라갈 동안 접근하는 좀비들을 저지했다.
“박재형! 너도 빨리 올라와!”
등 뒤로 들려오는 설여원이 목소리.
이에 시체들을 밟고 3층으로 올라가려다 문득, 잊고 있던 사람이 떠올랐다.
전완수와 10대 학생들.
난 시체로 이루어진 둔덕을 무너뜨리며 얘기했다.
“좀비들 막고 있어 봐!”
“어디가, 너 또 어디가! 어디 가는지 얘기라도 하고 가!”
“완수 혼자 못 버텨! 체력이 먼저 바닥날 거야!”
여긴 일행도 있고, 영일만항의 플레이어도 있다.
반면에 전완수는?
전수연과 최지혜, 박성하와 함께 있다.
이는 전완수가 지치면…… 학생들의 목숨도 보장할 수 없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난 좌우를 살피다 문득, 3층을 쳐다보며 외쳤다.
“여원아! 111동이 어디야!”
“바보야! 위치도 모르면서 가려고 했냐? 우상귀!”
설여원은 반박하는 대신, 111동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이에 엷은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버티고 있어 봐! 애들 데려올 테니까!”
애써 밝게 얘기하자, 108동 계단에서 최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동생 꼭 데려와!”
최현의 목소리에 초조함과 다급함이 묻어 있었다.
지금껏 내색하지 않았지만, 내심 친동생 최지혜가 걱정된 모양이다.
이에 하체를 접으며 읊조렸다.
“가속.”
쾅!!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111동으로 향했다.
여전히 108동으로 모여드는 좀비들이 걱정되지만, 지금은 일행을 믿고 전완수부터 돕는 게 시급했다.
* * *
“완수 형! 좀비들이 외벽 타고 올라와요!”
“올라가! 계속 올라가!”
크어어어어!!
전완수는 111동 3층에서 좀비들을 저지하고 있었다.
전수연과 최지혜, 박성하는 TV와 책상 등을 뜯어와 1층을 향해 쉴 새 없이 던지고 있었다.
하지만 입구가 막히자, 좀비들이 아파트 외벽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전완수는 학생들부터 위로 올려보내며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었다.
챙그랑!!
카하아악!!
“꺅!”
4층에서 들리는 전수연의 외마디 비명.
전완수는 놀란 눈으로 위를 쳐다봤다.
4층 창문을 깨부수고 들어온 좀비가 전수연을 향해 몸을 날렸다.
전완수는 그 찰나의 순간이 엿가락처럼 늘어지는 것을 느꼈다.
피가 거꾸로 솟고,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쾅!
전완수는 지면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순식간에 3층에서 4층으로.
하지만 계단 난간 때문에 완전히 올라서지 못하자, 난간 사이로 팔을 집어넣어 좀비의 다리를 붙잡았다.
좀비의 다리를 붙잡고 그대로 잡아당기더니, 좀비의 다리를 밧줄처럼 이용하며 계단 사이에 매달리는 모습을 보였다.
전수연을 덮치려던 좀비는 전완수의 근력과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기우뚱거리더니, 오른발이 난간 밖으로 삐져나왔다.
뜩! 드득- 떡!
좀비의 가랑이가 찢어지며 골반에서 듣기 거북한 소리가 들려왔다.
전완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반대편 손에 쥐고 있던 카타나로 좀비의 관자놀이를 꿰뚫었다.
뒤이어 축 늘어진 좀비의 다리를 밧줄처럼 이용해 4층으로 올라갔다.
“괜찮아? 안 물렸어?”
전수연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형! 도와줘요!”
5층에서 들리는 박성하의 목소리.
박성하는 5층으로 들어온 좀비와 혈투를 벌이고 있었다.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어떻게든 버티고 있지만, 좀비의 오른팔이 박성하의 팔꿈치를 비틀기 시작했다.
최지혜가 뒤에서 열심히 때리고 있지만, 좀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전완수는 동생의 손을 잡고 황급히 5층으로 올라갔다.
박성하가 상대하는 좀비를 일격에 처리하고, 학생들과 함께 계속해서 위로 올라갔다.
“윽, 으윽!”
대략 8층까지 올라갔을까?
뒤에 있던 박성하가 오른팔을 붙잡으며 고통을 호소했다.
전완수는 설마 하는 마음에 박성하의 상태를 확인했다.
옷소매를 걷어붙이자, 팔꿈치가 부러진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다행히 물린 흔적은 없었다.
“괜찮아, 안 물렸어.”
“흐흑…… 너무 아파요 혀엉.”
박성하는 눈물까지 찔끔 흘리며 통증을 호소했다.
크어어어어!!
숨이라도 돌리고 싶지만, 좀비들은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었다.
전완수는 등에 메고 있던 가방을 최지혜에게 건네며 얘기했다.
“안에 응급키트 있을 거야. 붕대처럼 생긴 거 성하 팔에 감아줘.”
“네!”
라스트아크의 응급키트.
안개가 퍼진 초기에 긴급 퀘스트를 완료하고 확보한 4개의 응급키트 중 하나였다.
그동안 수색대가 하나씩 들고 다녔기에, 전완수의 가방에 응급키트가 들어 있었다.
계단에서 올라오는 좀비를 전완수가 처리하는 동안, 최지혜는 응급키트를 열고 박성하의 오른팔에 붕대를 감아주었다.
뒤이어 은은한 빛이 박성하의 팔꿈치를 감싸더니, 새하얀 붕대가 눈처럼 녹아내리며 부러진 팔이 붙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최지혜와 전수연이 놀란 표정을 짓자, 박성하는 울다가 웃으며 얘기했다.
“붙었…… 붙었어? 붙었다!”
챙그랑!!
박성하가 오른팔을 빙빙 돌리며 웃음을 되찾은 찰나, 7층과 8층 사이의 창문이 깨지며 좀비의 오른팔이 불쑥 들어왔다.
카하아악!!
좀비는 유리에 살점이 찢어지든 말든, 창문으로 상체를 들이밀었다.
박성하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전수연과 최지혜를 쳐다봤다.
“쇠파이프, 쇠파이프!”
오른팔이 부러질 때 쇠파이프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최지혜와 전수연도 무기를 잃은 탓에, 꾸역꾸역 들어오는 좀비를 저지할 여력이 없었다.
좀비는 얼굴과 가슴, 등, 팔뚝의 살점이 찢어지는 와중에도 창문을 비집고 억지로 들어왔다.
박성하는 두 주먹을 불끈 쥐더니, 뒤에 있는 전수연과 최지혜에게 얘기했다.
“뒤로 가.”
“이미 뒤야.”
“……더 뒤로.”
박성하는 어디서 본 건 많아서, 양손으로 가드를 올리며 좀비를 응시했다.
하지만 박성하의 양손과 두 다리는 사시나무처럼 덜덜 떨리고 있었다.
무섭지만, 친구들에게 약한 모습은 보이기 싫어서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크어어어어!
“히익!”
좀비가 괴성을 내지르며 달려들자, 박성하는 상체를 웅크리며 신음을 토했다.
텁!
그 순간, 좀비가 들어온 창문에서 사람의 손이 불쑥 튀어나왔다.
불쑥 튀어나온 손은 좀비의 옷깃을 붙잡았고, 그대로 창밖으로 잡아당기는 모습을 보였다.
크어어어어…….
콰직!
창밖으로 떨어진 좀비의 음성이 점점 멀어지더니, 오래 지나지 않아 머리가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깨진 창문으로 들어오는 남자.
그의 얼굴을 보고 박성하와 최지혜, 전수연은 눈물까지 글썽이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혀어엉……!”
“오빠아아……!”
남자는 아이들의 상태부터 확인하고, 마른침을 삼키며 물었다.
“완수 어딨어.”
박재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