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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206화 (206/373)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06화

송하윤은 착잡한 표정을 짓더니,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며 얘기했다.

“남은 얘기는 가면서 하자. 나도…… 너한테 궁금한 게 있으니.”

“그러죠.”

송하윤은 좀비카에 오르며 물었다.

“안 타?”

“저희도 타고 온 차가 있어요.”

“어디 있는데.”

“환호공원 앞에 있습니다.”

“환호공원이면 걸어가기엔 멀잖아. 타, 안전한 길로 안내할 테니까.”

우린 그들의 차량에 올라 환호공원으로 향했다.

* * *

환호공원에서 전완수와 정진영, 천호진이 합류하고, 영일만항으로 이동하며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처음의 경계심이 사그라들고, 송하윤은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모든 이야기를 전해 듣자, 그녀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도…… 그동안 쉽지 않은 선택을 했구나.”

“지금 같은 세상에 쉬운 선택이 어딨겠어요.”

“앞으로의 계획은 뭐야?”

“부산으로 가는 거죠. 부산에 있는 아크로.”

“아크가 실제로 존재해?”

송하윤의 눈빛이 떨리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녀의 직업은 레이첼.

아크가 부산에 있다는 건 알지만, 정확한 위치는 모르는 모양이다.

이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저도 두 눈으로 보진 못했지만, 공격대에 속한 파티가 부산 광안리에 도착했어요. 거기에 아크가 있는 것 같아요.”

“…….”

“아 참, 그리고 포항에서 출발한 생존자 무리가 광안리에 도착했다는 메시지가 있었는데, 혹시 포항에 있으면서 다른 파티는 만난 적 없어요?”

송하윤을 쳐다보며 묻자, 그녀는 가만히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긴 모습을 보였다.

긴가민가한 표정을 짓더니, 뒤이어 고개를 갸웃거리며 얘기했다.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플레이어가 있다는 말은 들었어.”

“누구한테요?”

“영일대 해수욕장에서 넘어온 쓰레기들한테.”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영일대 해수욕장이 좀비들의 습격을 받았고, 이기적인 성향의 놈들은 남쪽으로 도망가고, 본인들은 북쪽으로 대피했다고 그랬지 아마?”

송하윤이 옆에 있는 동료들을 쳐다보며 묻자, 다들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였다.

송하윤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뭐, 결론적으론 우리 쉘터로 온 그 새끼들이 이기적인 놈들이었지만 말이지.”

“그럼 남쪽으로 이동한 생존자 무리에 플레이어가 있고, 그들의 생사는 모른다는 거죠?”

“그렇지. 하지만 네 말이 사실이라면, 광안리에 도착했다는 포항 출신의 생존자들, 그 사람들이 남쪽으로 이동한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지.”

솔직히 플레이어가 아니면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다.

광안리에 도착한 포항 생존자들도, 어쩌면 플레이어가 섞여 있기에 안전하게 대피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영일대 해수욕장에 좀비들의 습격을 받았을 당시, 포항의 플레이어들은 정상적인 생존자들을 데리고 남쪽으로 이동했을 가능성이 높다.

북쪽으로 이동한 인간들이 쓰레기라는 걸 진즉에 알아채고 말이다.

송하윤은 내 눈치를 보더니, 퍼석한 입술을 핥으며 물었다.

“너도 광안리로 가는 게 목표라는 거지?”

“가야죠. 안 가면 다 죽는데.”

“하긴…….”

“송하윤 씨는 왜 영일만항에 남아있던 거예요? 세 번째 에피소드에 독 안개가 퍼지는 걸 안다면, 당연히 부산으로 갔어야죠.”

“앞이 안 보이는데 어떻게 가.”

하긴, 그것도 맞지.

심지어 이들의 좀비카는 우리가 개조한 차량처럼 튼튼하지 않았다.

좀비를 처리하기 위한 좀비카가 아니라, 좀비들을 따돌리기 수월하도록 개조한 것 같았다.

차량에 많은 LED조명을 달아서 좀비들의 눈을 멀게 하고, 그 순간을 이용해서 도주하는 식으로 사용하는 것 같았다.

갑작스러운 섬광은 사람이든 좀비든, 순간적으로 시야를 차단하며 움찔거리게 만든다.

갑작스레 시야를 잃으면 공감각도 상실하기에,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다.

이를 이용하며 찰나의 빈틈을 만들고, 좀비들로부터 도주하며 생존한 것으로 보였다.

난 생각을 정리하고 송하윤을 쳐다보며 물었다.

“괜찮으시면 저희랑 같이 가죠.”

“…….”

송하윤은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눈빛은 함께 가고 싶다는 마음이 엿보이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오늘 처음 만난 생판 남이라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사람을 극도로 밀어내는 사람들의 특징이었다.

정말 사람이 싫어서 타인을 밀어내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폐 끼치기 싫어서, 실수할까 봐, 타인과의 접촉을 꺼리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싱겁게 웃으며 얘기했다.

“물론 영일만항에 있는 생존자들의 상태에 따라 우리도 생각이 바뀔 수 있습니다.”

“어떤 상태.”

“정신적인 문제요.”

다소 두루뭉술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송하윤이라면 충분히 알아들었을 것이다.

인간의 배신과 탐욕, 본능으로 인해 동료를 잃은 사람이니, 인간의 정신 건강과 서로간의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지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아니꼽게 들릴 수도 있지만, 송하윤은 곰곰이 생각에 잠긴 모습을 보였다.

내 말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영일만항 생존자들을 생각하는 것으로 보였다.

뒤이어 송하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좋아, 네가 보고 판단해. 나도 독단적으로 선택하는 건 질색이니까.”

송하윤의 대답을 듣고 얼추 그녀의 성향이 파악되었다.

말과 행동은 거칠지만, 본인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키려고 하는 성향.

마음에 드는 성격이다.

아부와 아첨, 기생충처럼 달라붙는 쓰레기들에 비하면 훨씬 인간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선두의 차량을 따라 10분 정도 이동하자, 조수석에 있던 설여원이 입을 열었다.

“와…… 대박이네.”

“왜?”

“바리케이드 높이가 6m는 될 것 같아.”

설여원의 말대로였다.

영일만항으로 들어서는 길목에 6m 높이의 바리케이드가 설치되어 있었다.

뒤이어 선두에 있던 좀비카가 일정한 간격으로 상향등을 점멸하자, 굳건하게 닫혀 있던 철문이 파찰음과 함께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천호진은 창가에 코를 박고 부모님과 이모의 모습을 찾기 위해 열심히 눈을 굴렸다.

현재 영일만항의 생존자들은 장량동의 생존자들이라고 했으니, 어쩌면 이곳에 천호진의 부모님이 계실지도 모른다.

“어? 어어! 엄마! 엄마아!”

곧 뒷좌리에 있던 천호진이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외쳤다.

창문을 내리면 되는데, 급한 나머지 유리를 두드리고 있었다.

운전석에 있던 전완수가 서서히 속도를 줄이자, 차량이 완전히 정차하기도 전에 천호진이 뛰어내렸다.

“엄마!”

“호진이? 호진아!”

천호진의 목소리가 쉘터를 울리자, 천호진의 어머니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그 자리에서 두 발을 동동 굴렀다.

초조함 때문이 아니었다.

기쁨과 놀라움, 예상치 못한 행복에 몸을 가누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다.

천호진의 어머니에게는…… 지금 이 순간이 꿈처럼 여겨질 것이다.

곧 두 사람은 서로를 끌어안고 목놓아 울음을 터뜨렸다.

천호진의 두 뺨을 쓰다듬으며 어디 다친 곳은 없느냐, 밥은 꼭꼭 챙겨 먹었느냐, 아픈 곳은 없느냐 등.

건강에 관련된 질문부터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천호진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대답 대신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모자 상봉의 현장에 근처에 있던 사람들까지 눈시울을 붉혔다.

뒤이어 천호진의 이모와 이모부, 아버지까지 그들의 곁으로 다가왔다.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가족 모두가 살아 있었다.

송하윤도 한 차례 코를 훌쩍이더니, 내 얼굴을 슬쩍 쳐다보며 물었다.

“이걸로 확실해졌네.”

“뭐가요?”

“네가 아군이라는 거.”

송하윤의 표정으로 지금껏 보지 못한 흐뭇한 미소가 담겨 있었다.

목소리도 상당히 온화해졌다.

이에 나 역시 입꼬리를 올리며 얘기했다.

“동감입니다.”

* * *

천호진이 감격의 상봉을 하는 동안, 우린 추후 계획을 정리했다.

설여원은 주머니에 넣어둔 쪽지를 꺼내며 얘기했다.

“이건 쓸모없어졌네.”

그게 뭐냐고 묻자, 천호진의 이모네에서 찾은 쪽지라고 한다.

-호진아, 만약 이 쪽지 찾으면 영일만항으로 와.

우리가 찾아오기 전에, 이들이 먼저 우리를 찾아왔다.

좀비들이 정리된 길로 왔기에, 시간도 단축할 수 있었다.

옆에 있던 송하윤은 설여원이 들고 있는 쪽지를 어깨너머로 슬쩍 확인하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어디서 찾은 쪽지야?”

송하윤에게 우리가 장량동까지 올라온 이유를 간략하게 설명하자, 그녀는 입꼬리를 올리며 얘기했다.

“대단하네. 플레이어도 아닌 일반인의 부모님까지 찾아주고.”

“플레이어든 일반인이든, 호진이가 제 일행인 건 변함없으니까요.”

송하윤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내 얼굴을 쳐다보더니, 곧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좋아, 정했다.”

“뭐를요?”

“우리도 같이 갈래. 부산.”

“언제는 물어보고 결정하겠다더니? 설마 다른 사람들 의견 물어보는 것보다, 우리 의심해서 그런 거예요?”

“내가 의심이 좀 많아.”

송하윤은 어깨를 으쓱이며 해맑게 웃었다.

이렇게 웃음이 많은 사람이 그동안 가시 돋은 것처럼 행동했다.

당한 게 있다 보니, 타인을 향한 경계심이 보통이 아니었다.

어쩌면 본래 쾌활한 성격인데, 좋지 못한 경험이 쌓여 그녀의 가면이 두꺼워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송하윤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좀비카에 앉아 꾸벅꾸벅 조는 남자를 불렀다.

“진호야, 이진호!”

그러자 운전석에 있던 남자는 두 눈을 번쩍 뜨며 후다닥 송하윤의 앞으로 달려왔다.

“네 누나. 불렀어요?”

“가서 사람들 데려와.”

“어떤 사람이요?”

“여기 있는 사람들 전부. 움직일 준비하자.”

송하윤의 말에 이진호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저 멀리 안개 속으로 들어갔다.

우측으로 보이는 단층의 건물.

그곳이 생존자들의 숙소로 사용되는 모양이다.

난 송하윤을 쳐다보며 물었다.

“준비 끝나려면 얼마나 걸릴까요?”

“언제든 떠날 수 있어.”

“지금 바로 이동하는 것도 가능해요?”

“52명 전원이 탈 수 있는 차량도 있고, 무기도 충분해.”

“왜 지금까지 여기 있었던 거예요?”

콧방귀를 뀌며 묻자, 송하윤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까 얘기했잖아, 시야 확보가 안 된다고.”

“…….”

“우린 너처럼 강하지 않아. 저 뒤에 있는 사람들, 전부 안전하게 데려가려면 가브리엘이 없으면 안 돼.”

송하윤의 말에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었다.

하긴, 나도 기숙사를 탈출할 무렵, 100m를 이동하기도 쉽지 않았다.

두 다리가 덜덜 떨리고, 호흡은 가빠지고,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다.

하물며 52명의 생명이 내 손에 달린 상황이었다면…… 학교를 벗어나는 건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이에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준비 끝나면 바로 이동하죠.”

“부산까지 바로 가는 거야? 곧 해가 질 텐데.”

“부산은 내일 출발할 거예요.”

“하긴, 밤에 이동하는 건 미친 짓이지.”

“그것도 그렇지만…… 포항에 아직 확인해야 하는 곳이 남았거든요.”

송하윤은 대답 대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송하윤에게 현 상황을 설명하기 전에, 뒤에 있는 정진영을 쳐다보며 물었다.

“진영이 형, 퀘스트 완료 안 됐죠?”

정진영은 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 정진영의 부모님이 계셨다면 바리케이드를 지나 쉘터에 들어온 순간 홀로그램이 떠올랐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런 변화도 없다는 건…… 이곳에 그의 부모님이 없다는 뜻이 된다.

그렇다면 남은 곳은 하나.

포항 신항까지 확인해야 한다.

난 송하윤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준비 끝나면 환호공원까지 안내해 주세요. 그 뒤에는 저희가 선두에 서겠습니다.”

“포항 지리 알아?”

송하윤의 물음에 싱겁게 웃으며 대답했다.

“환호공원까지 좀비들 정리하면서 왔어요. 쉘터까지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을 겁니다.”

“너는 같이 안 가는 것처럼 말한다?”

송하윤의 물음에 난 현재 시각부터 살폈다.

어느새 오후 4시 30분에 접어들었다.

오늘 포항 신항까지 확인하는 건 역부족이기에, 난 장량동 빌라 밀집구역에 있는 좀비들을 처리하고 쉘터로 돌아갈 생각이다.

이러한 생각을 솔직하게 얘기하자, 뒤에 있던 설여원이 내 팔뚝을 잡으며 얘기했다.

“나도 같이 가.”

혼자 가겠다고 하면 끝까지 반대할 것 같은 표정.

결국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정진영과 전완수, 최현이 곤란한 표정을 짓기에, 난 대수롭지 않게 얘기했다.

“저도 좀비화 없는 상황에 무턱대고 정면돌파는 안 해요. 건물 이용해서 안전하게 처리할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승합차는 네가 가져가.”

전완수가 승합차의 차키를 건네주기에,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내가 가져가도 돼?”

“안 가져가면 정리 끝내고 어떻게 오려고? 걸어오려고?”

“…….”

“우린 여기 있는 사람들이랑 같이 이동하면 되니까 걱정하지 마. 가는 길에 중형차도 우리가 가져갈게.”

전완수는 반박하는 대신, 내가 싸움에 집중할 수 있도록 부가적인 것들을 전부 담당해 주었다.

서로가 서로의 보조를 맞추는, 완벽한 팀처럼 느껴졌다.

이에 전완수의 어깨를 토닥이며 얘기했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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