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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204화 (204/373)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04화

지도에서 확인한 지형을 떠올리며, 곧장 빌라들이 밀집된 지역으로 이동했다.

계획도시답게 격자로 만들어진 동네라, 지도를 한 번 보고도 길을 외울 수 있었다.

크르르르르…….

빌라들이 밀집된 지역에 도달하자, 좀비들의 음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설여원은 소리의 근원지로 시선을 돌리더니,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얘기했다.

“200m 거리. 30마리.”

“무시하고 올라가자.”

승합차를 두고 오길 잘했다.

차로 왔으면 도로에 있는 좀비들을 필히 마주치는 위치.

저기 있는 놈들을 건드리면 빌라 지역에 있는 좀비들까지 전부 상대해야 할 수도 있다.

아파트에 도달하기 전에는 최대한 체력을 아껴야 한다.

설여원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우측 대각선 방향을 가리키며 얘기했다.

“저기로 가자.”

설여원을 따라 이동하자, 자욱한 안개 너머로 건물의 형태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입구는 오랫동안 사람의 발길이 없었는지, 티끌 먼지가 가득 내려앉아 있었다.

현관 유리를 부수면 좀비들이 몰려올지도 모르기에, 틈새를 잡고 사람 한 명이 간신히 들어갈 수 있는 틈만 확보했다.

뒤에 있던 설여원은 카타나를 손에 쥐고 한발 앞서 실내로 들어섰다.

오랫동안 나와 함께 전장을 누벼서 그런지, 긴장한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상황에 집중하며 사주경계 하는 모습에서 노련한 사냥꾼의 모습이 엿보였다.

설여원은 4층까지 쉬지 않고 올라가더니, 옥상으로 통하는 철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아…… 잠겼어.”

하여튼, 이놈의 옥상은 왜 그리 잠가두는지 모르겠다.

난 옆으로 비키라는 말과 함께 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있는 힘껏 철문을 밀었다.

뚝-

경첩이 틀어지는 소리는 들리는데, 쉽사리 열릴 기미가 없었다.

있는 힘껏 몇 대 갈기면 열리겠지만, 지금은 소란을 일으켜서 좋을 게 없다.

그러자 옆에 있던 최현이 계단을 가리키며 얘기했다.

“저기 창문 열고 올라가면 안 돼?”

“외벽 타고 올라가자고?”

“지금 우리 신체 능력이면 어려울 것도 없잖아.”

하긴, 그것도 맞지.

최현은 한발 앞서 창문 앞으로 이동하더니, 고개를 창밖으로 내밀며 좌우를 살폈다.

뒤이어 설여원과 내게 얘기했다.

“옆에 파이프 있는데, 저거 잡고 올라가면 될 거 같아.”

“창밖으로 나갈 수 있어? 틈이 좁은데.”

“기다려봐.”

최현은 창틀을 붙잡고 흡! 하는 기합 소리를 내더니, 그대로 창틀을 뽑아버렸다.

뒤이어 입꼬리를 올리며 얘기했다.

“좁으면 넓게 만들면 되지.”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먼저 나왔다.

이미 결인들은…… 인간의 사고를 벗어난 존재들이었다.

머리를 굴릴 필요 없이, 뛰어난 육체로 모든 걸 해결하는 존재.

알파2와 알파3만 아니라면, 지금의 결인들을 일대일로 저지할 수 있는 존재는 없을 것이다.

“여기서 기다려. 올라가서 문 열어줄게.”

최현은 건물 외벽에 설치된 파이프 관을 타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곧 옥상으로 통하는 철문을 열며 환영한다는 듯이 웃어 보였다.

이에 싱겁게 웃으며 들어갔다.

설여원은 목적지 방면을 응시하더니,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건물 간격이 상당한데?”

지금껏 우리가 마주한 빌라촌의 건물 간격은 2m에서 4m 사이였다.

하지만 여긴 건물 층수도 제각각이고, 간격도 5m 이상 되었다.

간격은 크게 걱정할 필요 없지만, 층고가 다른 건 문제였다.

낮은 건물은 3층, 높은 건물은 6층 정도 되었다.

설여원이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자, 최현은 맞은편 건물 옥상을 쳐다봤다.

3층 높이의 건물.

“그냥 뛰어. 우리 신체 능력이면 저 정도로 기스도 안 나. 슬슬 익숙해질 때도 됐잖아?”

최현이 대수롭지 않게 얘기하자, 설여원은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몸을 풀었다.

대명동 좀비들을 상대할 당시, 맞은편 건물의 창문을 깨부수며 이동한 설여원이 아닌가?

한동안 그 감각을 잊고 지낸 모양이다.

설여원은 훅, 하고 숨을 뱉으며 얘기했다.

“하긴, 죽기야 하겠어?”

최현은 싱겁게 웃으며 어깨와 발목을 풀었다.

뒤이어 설여원이 먼저 맞은편 건물로 뛰고, 난 그 뒤를 따랐다.

4층에서 3층으로, 3층에서 5층으로, 5층에서 4층으로, 4층에서 6층으로.

높낮이가 다른 각각의 건물을 뛰어넘으며 빠르게 이동했다.

확실히 5층에서 4층으로 뛰는 건 일도 아니지만, 4층에서 5층으로 뛰어오르는 건 아무리 우리의 신체 능력이 뛰어나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니, 나는 가능하지만 일행은 버거운 것으로 보였다.

그럴 때면 건물 외벽의 파이프 관이나 환풍기 등을 발판으로 이동하며 계속해서 이동했다.

크르르르르…….

지면에서 들리는 좀비들의 울음소리.

좀비들이 밀집된 구역은 머릿속에 따로 기억하며 빠르게 이동했다.

아파트 확인을 마치면, 추후 이곳에 있는 좀비들도 정리할 것이다.

저게 다 카운트니까.

마침내 빌라 밀집구역의 끝자락에 도달하자, 100m 앞으로 천호진이 얘기한 아파트가 눈에 들어왔다.

설여원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얘기했다.

“여기서 소란 일으키면 엄청 모여들겠는데?”

“그렇게 많아?”

“저쪽에서 저쪽까지 전부 아파트잖아. 길에 좀비도 많고.”

설여원의 말대로 사방이 아파트였다.

정확한 숫자를 파악할 수 있냐고 묻자, 설여원은 자신 없는 목소리로 얘기했다.

“대략 8,000마리는 넘을 거 같은데?”

좀비화 없이 8,000마리라…….

쉽지 않은데.

그러자 옆에 있던 최현이 입을 열었다.

“걱정할 필요 없어. 인형극은 반경 400m 이내의 좀비들을 조종할 수 있으니, 못해도 1만 마리는 조종할 수 있을 거야.”

“야, 스킬 너무 믿지 마.”

설여원이 눈살을 찌푸리며 얘기하자, 최현은 입꼬리를 올리며 반박했다.

“스킬은 믿으라고 있는 거야.”

최현은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건물 외벽을 타고 1층으로 내려갔다.

이에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황급히 최현을 따라갔다.

설여원은 내 뒤를 따라오는가 싶더니, 주춤거리며 무전기를 들었다.

-재형아, 내가 신호하면 스킬 쓰라고 해.

무전기에서 들려오는 설여원의 목소리.

고지대에서 좀비들의 숫자와 위치를 알려주려는 건가?

난 무전기를 들고 대답했다.

“근처에 넓은 광장 있어?”

-거기서 왼쪽으로 이동해. 그럼 사거리 보일 거야.

“사거리에서 한꺼번에 잡을 테니까, 위에서 브리핑해 줘.”

-그러려고 남은 거야.

크어어어어!

카하악! 카학!

노면에 다다르자, 체취를 맡은 좀비들이 최현과 내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선두에 있던 최현은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카타나를 휘둘렀다.

아무리 신체 능력이 좋아졌다 한들, 우리가 안개 속이라는 걸 망각해선 안 된다.

자칫 잘못하면 아군을 공격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난 최현의 쳐다보며 외쳤다.

“거리 유지해! 3m만 떨어져서 이동하자!”

아직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시간.

시야 확보가 아무리 어렵다 한들, 우리도 5m까지는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최현은 한 차례 고개를 끄덕이며 좌측으로 이동했다.

뒤이어 사거리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레그홀스터에 넣어둔 무전기에서 설여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란 일으켜. 좀비들 모여들도록.

그 말을 듣고 최현을 쳐다보자, 그는 폐부 깊숙이 숨을 들이쉬며 외쳤다.

“야 이 개새끼들아!!”

드넓은 사거리의 정중앙에서, 대뜸 욕설을 내뱉었다.

두두두두두두두-

뒤이어 좀비들의 발소리가 귓바퀴를 간질이기 시작하고, 좀비들의 육성이 먼발치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크어어어어어-!

카하아아악-! 카하악!

전신을 더듬는 좀비들의 울음소리에, 나도 카타나를 손에 쥐며 읊조렸다.

“감지.”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해일이 이곳으로 접근하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사방에서 달려드는 좀비들.

동시에 공명 좀비의 울음소리도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골목에 숨어 있던 좀비들까지 이곳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아파트 단지에서 튀어나오는 좀비들의 숫자도 보통이 아니었다.

챙그랑!

챙강- 챙그랑!

몇몇 좀비들은 공명 소리를 듣고 창밖으로 뛰어내리는 모습을 보였다.

계단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사고를 못하고, 무작정 밖으로 튀어나오는 모습.

난 칼자루를 말아쥐며 사방을 살폈다.

생각보다 좀비들의 숫자가 많았다.

8,000마리 더 되는 것 같은데?

최현을 믿고 여기까지 왔지만, 만약 스킬의 효력이 없다면…… 우린 이곳에서 생을 마감할지도 모른다.

카하아아악!!

발치에서 들려오는 목젖을 가는 소리.

돌아볼 새도 없이 두 눈을 부릅뜨고 카타나를 휘둘렀다.

촤악-!

좌측 겨드랑이에서 우측 목선까지 깔끔하게 잘려 나가는 좀비.

그 뒤로 보이는 수천 마리의 인영.

긴장감을 끌어올리며 오른발을 앞으로 내딛는 찰나, 무전기에서 설여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스킬 발동해!

설여원의 목소리를 듣고 최현을 돌아보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읊조렸다.

“인형극.”

-반경 400m 내의 좀비들을 20초간 조종할 수 있습니다.

-명령어를 말씀하세요.

최현은 좀비들의 모습을 똑바로 응시하며 명령을 내렸다.

“전원 자결.”

-수행할 수 없는 명령입니다.

-좀비들은 자결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명령어를 다시 말씀하세요.

최현의 눈앞으로 떠오르는 홀로그램.

크어어어어!!

뒤이어 광분한 좀비들이 내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난 최현을 쳐다볼 새도 없이 좀비들을 향해 카타나를 휘둘렀다.

그래,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는 대장 좀비처럼 사고가 가능한 생물이나 가능한 행위였다.

난 사정없이 좀비들을 도륙하며 외쳤다.

“빨리 다른 명령 내려!”

“지금부터 서로 죽여! 모조리 죽을 때까지!”

-입력이 완료되었습니다.

-명령어: 아군 섬멸

그러자 발치까지 접근한 좀비들이 멈칫거리기 시작했다.

뒤이어 허공을 향해 울부짖더니, 서로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크어어어어어어어!!

서로를 물고 뜯고, 사지를 부러뜨리며 뇌수를 헤집는 좀비들.

좀비가 좀비를 잡아먹는 충격적인 광경을 목도하고, 얼빠진 표정으로 최현을 쳐다봤다.

최현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내 얼굴을 쳐다봤다.

웃는지, 우는지 모를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X발…… 여기서 어떻게 나가지?”

“따라와.”

인형극의 효과가 유지되는 건 20초.

20초 내에 아파트에 도달해야 한다.

난 잠시도 쉬지 않고 아파트 방면의 좀비들을 처리하며 길을 뚫었다.

최현도 쉴 새 없이 카타나를 휘두르며 내 뒤를 따랐다.

우린 증가한 신체 능력 덕분에, 20초면 수백 미터를 이동할 수 있는 상태였다.

마침내 아파트 진입로에 다다르자, 저 뒤로 좀비들의 아우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크어어어…… 커걱!

마치 지옥 불에 타들어 가는 망령의 비명처럼 들렸다.

고작 20초라는 시간이, 수천 마리의 좀비를 전투불능으로 만들었다.

죽은 좀비도 많고, 사지가 절단된 채 죽지도 못하고 바닥을 뒹구는 좀비도 있었다.

서로를 죽을힘을 다해 공격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최현은 연신 감탄을 터뜨리며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7,000코인을 투자해서 인형극의 레벨을 4까지 올렸을 때는 불평불만만 가득하더니, 지금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내게 얘기했다.

“이 스킬 대박인데?”

“7,000코인 값을 하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도 스킬 설명을 보고 불만족스러운 경우는 많았지만, 막상 스킬의 효과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순간이 많았다.

최현도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뒤이어 안개 속에서 다가오는 흐릿한 인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카타나를 손에 쥐자, 안개 속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려, 나야.”

설여원의 목소리.

칼을 거두자, 설여원은 사거리 방면을 살피며 얘기했다.

“재형아, 너 먼저 올라가.”

“나 먼저? 너는 뭐 하려고.”

“난 현이랑 사거리에 있는 좀비들 처리할게. 저것들 시체 먹기로 회복하면 곤란해.”

아차, 좀비들의 스킬 시체 먹기.

절단된 신체도 재생할 수 있는 좀비들의 패시브 스킬이었다.

이에 고개를 저으며 얘기했다.

“그럼 내가 정리할 테니 너희가 올라가.”

“뭐?”

“공짜로 코인 좀 얻어보자.”

“아.”

설여원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최현과 함께 아파트로 향했다.

뒤이어 최현의 목소리가 무전기에서 들려왔다.

-재형아, 호진이 이모네 몇 층이라고 했지?

“607동 10층. 계단 올라가서 우측.”

-607동이 어디야.

“지도로 봤을 때 좌측 끝에 있는 동이었으니, 아파트 외곽 따라서 이동하면 될 거야.”

-이모네 특징은?

“벽지가 주황색이라고 했어.”

-오케이.

브리핑을 마치고 곧장 사거리로 돌아갔다.

크르르르…… 카학!

대부분의 좀비들이 아직 숨이 붙어있었다.

놈들이 내 모습을 발견하고 목젖을 갈기 시작했다.

숨은 붙어 있지만, 신체 일부가 떨어져 나간 빈사 직전의 좀비들.

하자가 있는 좀비들이라면, 몇천 마리든 상관 없다.

공짜 카운트나 다름없으니 말이다.

카타나를 고쳐 쥐며 길거리에 즐비한 좀비들을 빠르게 처리했다.

순식간에 올라가는 좀비 카운트를 보며 올라가는 입꼬리를 주체할 수 없었다.

최현 이 자식…… 아주 탐나는 스킬을 지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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