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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200화 (200/373)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200화

크어어어어!!

카하아아악!!

카타나를 휘두를 때마다 좀비들의 선혈이 낭자했다.

숫자가 얼마나 많으면 검은 장막 속을 나아가는 기분이었다.

초당 여섯 차례 이상 쉴 새 없이 칼날을 휘두르는데, 길을 뚫고 나아갈 수 없었다.

물량이 주는 압박이 이런 건가?

난생처음 느껴보는 압박감에, 반사적으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마치 엘리베이터에 갇힌 것처럼, 폐쇄 공포증이 올 것 같았다.

길거리의 좀비를 너무 낮잡아 본 건가?

대명동 좀비들을 상대할 때도 발 디딜 틈은 보였는데, 지금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한데 뭉쳐 구르고 넘어지면서도, 어떻게든 내 살점을 맛보기 위해 달려드는 좀비들.

체력이 소진될 때까지 좀비화를 아끼려고 했지만, 그건 오만한 생각이었다.

난 미간을 찌푸리며 읊조렸다.

“다이브.”

두근-

심박이 빨라지고, 아드레날린이 촉진되며 시야가 밝아지기 시작했다.

다짜고짜 좀비들에게 달려들 때는 몰랐는데, 막상 두 눈으로 보니 장관이었다.

전완수가 돌아오라고 목청껏 외친 이유를 알겠다.

시야가 닿는 모든 곳에 좀비가 있었다.

지뢰밭에 자진해서 들어온 꼴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떻게든 좀비들의 속도부터 줄여야 한다.

이에 좀비들을 향해 포효를 내질렀다.

“크어어어어어어어!!”

-하울링을 사용합니다.

-포효를 내질러 반경 50m 내의 적에게 두려움을 각인시킵니다.

-두려움이 각인된 적은 1분간 이동속도 30% 반감 효과가 적용됩니다.

그제야 발 디딜 틈이 보이기 시작했다.

흐름을 끊었으니, 이제 내 차례.

도끼눈을 뜨며 미치광이처럼 카타나를 휘둘렀다.

빠르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학살에 도취한 전쟁광처럼, 눈에 보이는 모든 걸 썰어버렸다.

* * *

“길목부터 막아!”

박재형이 좀비들의 시선을 유도했지만, 이미 따라붙은 좀비의 숫자도 상당했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2,000마리 이상.

치지직- 치직-

-여원아! 그냥 좀비카로 밀어!

무전기에서 정진영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설여원은 뒤에 있는 천호진에게 얘기했다.

“무전기 들고 대답해!”

“네? 아, 네!”

천호진은 황급히 무전기를 들며 얘기했다.

“여원 누나 운전 중이라서 제가 받았습니다!”

-호진아! 저 앞에 사거리 나오면 여원이한테 우측으로 빠지라고 전해줘! 우측 통행으로 서로 교차하게 밀어!

“네 알겠습니다!”

천호진은 무전을 마치고 설여원을 쳐다보며 물었다.

“누나 들었죠?”

“들었어.”

설여원은 사이드브레이크를 걸며 다급히 핸들을 틀었다.

천호진은 좌측으로 쏠리며 차내에서 뒹구는 모습을 보였다.

설여원은 황급히 중형차의 방향을 틀더니, 정진영의 지시대로 움직였다.

“꽉 잡아!”

“그런 건 미리 말해줘요!”

부아아아아앙!!

폭주하는 RPM과 거칠어지는 엔진소리.

설여원은 양손으로 핸들을 쥐며 정면으로 보이는 좀비들을 응시했다.

크어어어어어!!

수백 마리의 좀비가 중형차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설여원은 이 악물고 놈들의 모습을 직시하더니, 두 손에 힘을 주며 액셀을 끝까지 밟았다.

터더더덩! 텅-! 터덩!

퍼벅! 퍼버벅! 팍! 떠덕!

특수 제작한 전면부 범퍼에 깔리고 부러지며 아스팔트 바닥을 나뒹구는 좀비들.

또한 양옆의 좀비들은 바퀴 휠에 부착된 칼날에 정강이가 잘려나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앞 유리는 피범벅이 되고, 짓밟은 좀비들이 방지턱이 되어 차량은 쉴 새 없이 요동쳤다.

와이퍼가 좀비들의 혈흔을 닦아내지만, 시야를 완전히 회복하는 건 불가능한 상황.

쒸이이익-

뒤이어 설여원의 귓가로 날카로운 파공음이 들려왔다.

이에 설여원은 본능적으로 핸들을 우측으로 틀었다.

슈와아아아아악!!

간발의 차로 승합차와의 정면 추돌을 회피할 수 있었다.

설여원은 천호진이 들고 있는 무전기를 빼앗으며 소리쳤다.

“정신 안 차릴래 전완수!”

치지직- 치직-

-네가 중앙선 넘어왔잖아 인마!

전완수의 짜증 가득한 외침에 설여원은 움찔거리는 모습을 보이더니, 상향등을 켜며 얘기했다.

“상향등 켜고 운전해! 안 보여!”

-알았다!

2,000마리의 좀비가 결코 적은 숫자는 아니지만, 좀비카 2대가 힘을 합치면 불가능한 숫자도 아니었다.

결인들은 달라붙은 좀비들부터 처리하고 박재형을 도울 생각이었다.

짧은 무전을 마치고, 승합차와 중형차는 분노한 고속정처럼 파도를 헤치고 나아가기 시작했다.

* * *

크어어어어어!!

그어어어…… 어어어…….

좀비들의 포효와 공명이 사방에서 들려온다.

어디를 먼저 정리해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다른 방도가 없으니 무작정 숫자부터 줄이고 있지만, 10마리를 죽이면 20마리가 더 붙는 상황.

대체 이 동네에 아파트가 얼마나 많은 거야?

용흥동의 최소 2배는 많다더니, 더 되는 것 같은데?

정말 숨돌릴 틈도 없이 카타나를 휘둘렀다.

좀비화 상태에서 휘두르는 카타나는 평소보다 몇 배는 더 강력한 효과를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이 보이지 않았다.

평소 10분이면 얼추 각이 서는데, 지금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어느새 시체들이 쌓여 둔덕이 형성되고 있었다.

질퍽하고 물컹거리는 시체들을 짓밟고 고지대를 선점했지만, 오히려 역효과가 발생했다.

균형이 잡히지 않으니 똑바로 힘이 실리지 않았다.

다리에 제약이 걸리면 아무리 천하장사라도 제힘을 발휘할 수 없다.

인간의 힘은 결국 두 발 딛고 선 땅에서 나오니까.

늪지대 같은 시체 언덕 위에선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없으니, 황급히 둔덕 밑으로 뛰어내렸다.

카하악!!

텁!

그 순간, 둔덕 위에 있던 좀비 하나가 내 등으로 날아들었다.

이에 왼손을 뻗어 놈의 목덜미를 붙잡고, 그대로 바닥에 패대기쳤다.

놈은 바퀴벌레처럼 사지를 파르르 떨더니, 황급히 방향을 틀어 달려드는 모습을 보였다.

뻑!!!

놈의 안면에 발길질을 가하자, 두개골이 깨지고 경추가 기이하게 꺾이는 모습을 보였다.

날파리나 다름없는 놈들인데, 뭉치니까 버겁다.

아니, 버겁다기보단…… 짜증을 불러일으켰다.

불만이나 토하며 늑장 부릴 여유가 없기에, 계속해서 카타나를 휘두르며 숫자를 줄여나갔다.

빠아아아앙!! 빵!! 빵!!

그 순간, 배후에서 경적 소리가 들려왔다.

황급히 뒤를 돌아보자, 피로 얼룩진 좀비카 두 대가 좀비들의 시선을 유도하고 있었다.

설여원과 전완수.

내가 버거울 것이라 생각했는지, 좀비들의 시선을 유도하기 시작했다.

크어어어어어!!!

카하아악!! 카학!!

그러자 주변을 에워싸고 있던 좀비들의 일부가 좀비카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족히 6,000마리의 좀비가 좀비카를 따라간다.

중형차와 승합차는 비상등을 한 차례 점멸하더니, 다시금 공원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짜식들…….”

중형차와 승합차의 신호를 보고 반사적으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문제가 없을 때만 비상등을 한 차례 점멸하기로 했다.

문제가 있으면 세 번 점멸하기로 했는데, 이제 6,000마리 정도는 일도 아니라는 건가?

난 입꼬리를 올리며 다시금 좀비들을 응시했다.

나도 약한 모습 보일 수는 없지.

좀비들의 혈흔으로 인해 끈적해진 칼자루를 말아쥐었다.

이번 기회에 좀비화의 지속시간 동안 얼마나 처리할 수 있는지 확인해야겠다.

* * *

덜컹-!

쉴 새 없이 좀비들을 들이받고 있는데, 지면에 깔린 좀비 시체 하나가 문제를 일으켰다.

축간 거리에 문제가 생긴 건지, 아니면 바퀴 휠 사이에 사지가 말려들어간 건지 몰라도, 중형차의 바퀴가 헛도는 모습을 보였다.

좌측으로 핸들이 돌아간 채,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설여원은 어떻게든 핸들을 조작하기 위해 이 악물고 돌렸지만, 이미 틀어진 방향은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고개 숙여!”

설여원이 외치자, 천호진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황급히 상체를 숙였다.

쾅!!

전봇대를 들이받은 중형차.

천호진은 오른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앓는 소리를 냈다.

설여원은 사이드미러를 통해 달려드는 좀비를 확인하더니, 황급히 차량 문을 열고 내렸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충격으로 인해 초점이 흐려진 모양이다.

하지만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상체를 일으키더니, 뒷좌석 문을 열고 천호진에게 얘기했다.

“내려.”

천호진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설여원을 쳐다보자, 설여원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외쳤다.

“내리라고!”

천호진은 얼떨결에 설여원을 따라 내렸다.

설여원은 천호진의 팔을 잡고 근린공원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공원까지의 거리는 고작 100m.

공원의 좁은 입구과 언덕을 이용해서 좀비들의 추격을 따돌릴 생각이었다.

설여원은 천호진과 함게 달리며 무전기를 들었다.

“완수야! 전완수!”

치지직- 치직-

-왜!

“차 고장 났어! 밑에 뭐 낀 것 같아!”

-아니 운전을 어떻게 하면 차가 고장…….

“지금 잔소리할 때야?”

-에이 씨…… 조금만 기다려! 금방 간다.

“아니, 아니야! 거기서 좀비들 유인해 줘!”

-뭐? 넌 어쩌려고?

“따라오는 좀비는 내가 어떻게든 처리할 테니까, 몰려들지 못하게 저지해 줘. 호진이랑 공원에서 좀비들 막을게!”

그러자 300m는 떨어진 거리에서 승합차의 경적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빠아아앙! 빵!! 빵!!

대부분의 좀비는 승합차의 경적을 듣고 그리로 이동했지만, 여전히 700마리에 달하는 좀비가 설여원을 추격하고 있었다.

설여원은 후방을 살피며 눈살을 찌푸리더니, 빠르게 우측을 살피며 외쳤다.

“오른쪽 건물로 들어가!”

“네? 공원으로 간다면서요?”

설명할 겨를이 없었다.

설여원은 천호진의 팔을 잡아끌며 우측 빌딩으로 들어갔다.

이미 좀비들의 눈에 발각된 이상, 사방이 뻥뚫린 공원에서 700마리의 좀비를 상대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

그러니 바로 옆에 있는 빌딩으로 들어가서 숨바꼭질을 하며 버틸 셈이었다.

“윽!”

옆에 있던 천호진의 입에서 비명이 들리더니, 바닥에 쓰러지는 모습을 보였다.

다리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보였다.

전봇대를 들이받는 과정에 다리가 부러진 건가?

전봇대를 받기 전에 속도를 최대한 줄였지만, 평범한 인간인 천호진에겐 충격이 컸던 모양이다.

설여원은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천호진을 들어 올렸다.

“누, 누나?”

“말 걸지 마. 숨차.”

설여원은 천호진을 업고 계단을 뛰어올랐다.

5층까지 쉴 새 없이 오르자, 좌측으로 소호 오피스의 모습이 설여원의 눈에 들어왔다.

문이 열려 있기에, 설여원은 망설임 없이 그곳으로 들어갔다.

뒤이어 탕비실에 천호진을 눕히며 얘기했다.

“쇠뇌 챙겼어?”

“네? 아, 네!”

“볼트 몇 발이나 있어.”

“50발 정도 있어요.”

“쇠뇌 손에서 놓지 말고 여기서 기다려. 꼼짝 말고 있어.”

설여원의 말에 천호진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반박했다.

“네? 아니에요! 저도 도울게요.”

“다리도 불편하면서 어떻게 도우려고? 방해되니까 거기 있어.”

“아니 그래도…….”

“여기 있으라고 좀!”

설여원이 소리치자, 천호진은 멍한 표정을 지으며 입술만 벙긋거렸다.

설여원이 탕비실을 나서려고 하자, 천호진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뒤이어 손도끼를 건네주며 얘기했다.

“누나도 무기는 있어야죠.”

설여원의 카타나는 박재형이 가져간 상태였다.

설여원은 잠시나마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더니, 천호진이 건네주는 손도끼를 쥐고 탕비실을 빠져나갔다.

크어어어어…… 크어어어!

점점 가까워지는 좀비들의 울음소리.

‘오른쪽.’

설여원은 우측으로 시선을 돌리며 비상구를 향해 달려갔다.

두두두두두-

뒤이어 계단을 뛰어오르는 수백 마리의 좀비를 발견할 수 있었다.

사람 둘이 간신히 설 수 있는 비좁은 계단.

지형을 이용한다면 700마리의 좀비라도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길목만 잘 막으면 된다.

설여원은 이렇게 생각하며 긴장되는 마음에 채찍질을 가했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말처럼, 상황에 집중하며 좀비들의 움직임을 직시했다.

크어어어어어어!!

비상구를 울리는 좀비들의 포효와 함께, 설여원과 좀비들의 혈투가 시작되었다.

설여원은 눈도 깜박이지 않고 손도끼를 휘둘렀다.

700마리의 좀비가 밀물처럼 달려들지만, 단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가히 장판교를 막아선 장비와 다를 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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