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184화
난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뒤에 있는 윤혜리에게 얘기했다.
“빨리 생존자들 데리고 올라가.”
윤혜리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넋을 잃은 생존자들을 데리고 황급히 5층으로 올라갔다.
전완수와 최현은 카타나를 뽑으며 내 옆으로 붙었다.
덩치만 봐도 알파2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놈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기이하게 흔들며 혼잣말을 읊조렸다.
“내가 다…… 먹었어. 구조대…… 안 올 거야.”
섣불리 달려들지 않고, 전완수와 최현이 들고 있는 카타나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역시, 알파2는 알파1보다 지능이 발달했다.
수성 호텔에서도 사이코패스들을 농락하며 가지고 놀지 않았는가?
알파1이 상어라면, 알파2는 범고래.
먹잇감을 충분히 가지고 놀며 유흥을 즐긴 뒤, 흥미를 잃으면 잡아먹는 악질이었다.
난 알파2를 주시하며 의아함을 느꼈다.
‘한 마리라고?’
그럴 리가 없다.
알파2는 이규리의 일행을 따라 이곳으로 왔을 것이다.
방금 올라간 두 명의 생존자는 인동에서 왔다고 했으니, 그곳에 있는 알파 변종을 데려왔을 것이다.
난 마른침을 삼키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감지.”
온 세상이 흑백으로 변하는 순간, 수십 마리의 알파 변종이 두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자주색 인영들이 건물의 외벽을 타고 위로, 계속해서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감지의 레벨을 5까지 높인 뒤로 변종들은 자주색으로 표시되기에, 놈들의 위치를 더욱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난 옆에 있는 일행에게 얘기했다.
“전부 5층으로 올라가. 1관 입구랑 출구부터 막고, 알파 변종 막아.”
“알파 변종?”
설여원은 긴장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에 두 주먹을 말아쥐며 얘기했다.
“감지로 확인했어. 건물 외벽에 알파 변종만 20마리가 넘어. 빨리 올라가.”
20마리가 넘는다는 말에 설여원은 두 눈을 화등잔만 하게 뜨며 벌어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전완수는 상황파악을 마치고 옆에 있는 최현과 설여원에게 얘기했다.
“재형이 말대로 해야 돼. 우리 없으면 위에 있는 사람들 못 버텨.”
최현과 설여원, 전완수는 내게 조심하라는 말을 남기고 황급히 5층으로 올라갔다.
20마리가 넘는 알파 변종을 일행이 감당할 수 있을까?
수성못에 처음 진입했을 무렵, 당시 내 신체 능력이 지금의 일행과 비슷할 것이다.
주먹으로 잡을 수는 있지만 버거웠던 기억이 있다.
머릿속을 배회하는 불안감에 세차게 혀를 차며 좌측에 있는 창문을 쳐다봤다.
야외로 알파2를 유인하고, 건물 외벽에 붙어 있는 알파1의 시선을 유도해야 일행에게 승산이 생길 것이다.
껴어어어…….
알파2는 홀로 남은 나를 유심히 관찰하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입꼬리를 올리며 얘기했다.
“왜, 당돌한 인간 처음 보냐?”
껴어어어어억!
그러자 괴성을 내지르며 순식간에 접근하는 알파2.
난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황급히 좌측으로 몸을 날렸다.
수성 호텔에서도 느꼈지만, 역시 빠르다.
저 정도 속도면…… 100m를 5초 안팎으로 돌파할 것이다.
난 망설일 필요 없이 상체를 일으키며 읊조렸다.
“다이브.”
두근-
심장에서 아찔한 충격이 느껴지고, 전신의 혈액순환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놈은 재빨리 고개를 돌리더니, 기다란 오른팔을 채찍처럼 휘둘렀다.
관자놀이로 날아드는 알파2의 오른팔.
황급히 양손을 뻗어 놈의 오른팔을 붙잡고, 투포환을 하듯이 좌측 창문으로 집어 던졌다.
쾅!! 챙그랑!!
창문을 엉성하게 가려둔 나무판자를 뚫고 밖으로 추락하는 알파2.
문제는 놈의 악력으로 인해, 내 전신도 같이 딸려가고 있었다.
난 1층으로 추락하는 와중에도 알파2의 안면을 응시하며 주먹을 뻗었다.
뻑!
확실하게 타격을 입힐 것이라 예상했는데, 놈은 회피하지 않고 이마를 뻗어 내 주먹을 마중 나왔다.
팔을 쭉 뻗어야 힘이 실리는데, 지나치게 가까운 나머지 제대로 힘이 실리지 않았다.
카학!
방어와 동시에 기다란 목을 쭉 뻗어 내 목덜미를 노린다.
이에 황급히 양팔을 모아 목덜미를 방어했다.
[손목 보호대: 97%, 94%, 91%…….]
[팔꿈치 보호대: 98%, 95%, 93%…….]
말도 안 되는 치악력으로 인해 빠르게 줄어드는 내구도.
머리가 내 가슴만 하니, 주둥이의 크기도 보통이 아니다.
양팔이 이빨에 붙잡힌 상황.
저항할 수 없기에, 추락하는 힘을 이용해 놈의 머리를 아스팔트 바닥에 내리꽂았다.
쾅!!!
껴억!
놈의 입에서 짧은 탄성이 터지며 꽉 물고 있던 입이 열렸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코어 근육에 힘을 주어 상체를 일으켰다.
“가속.”
두 주먹 불끈 쥐고, 도끼눈을 뜨며 놈의 안면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꽝!!!
그 짧은 찰나에, 놈은 고개를 비틀어 내 공격을 회피했다.
아스팔트 바닥으로 거미줄 모양의 커다란 균열이 발생하며 수많은 파편이 흩날렸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두더지 잡기라도 하듯이, 쉴 새 없이 알파2의 안면을 향해 난타를 가했다.
콰과과과과광!!
지렁이처럼 좌우로 빠르게 움직이는 머리, 심지어 거북이처럼 짧아졌다 길어졌다 한다.
‘더럽게 안 맞네.’
절반은 맞고, 절반은 빗나가는 상황.
이에 왼손으로 몸의 턱주가리를 붙잡고, 오른손을 불끈 쥐며 수직으로 주먹을 내리꽂는 찰나.
뻑!!!
좌측 옆구리로 느껴지는 저릿한 충격과 함께 전신이 우측으로 쏠리는 걸 느꼈다.
중력을 거스르는 부유감과 함께 쏜살같이 회전하는 세상.
몇 바퀴를 나뒹굴었는지 모르겠다.
황급히 균형을 잡고 상체를 일으키자, 짜르르 울리는 갈비뼈의 통증이 느껴졌다.
“커헉!”
헛숨을 토하며 오른손으로 옆구리를 붙잡았다.
지금껏 좀비화 중에는 통증을 느끼지 못했는데, 대체 얼마나 강한 충격을 입었기에 통각이 느껴지는 거지?
오른손으로 옆구리를 더듬자, 불룩 튀어나온 갈비뼈를 확인할 수 있었다.
부러졌다.
눈살을 찌푸리며 알파2를 응시하자, 놈은 피를 토하며 상체를 일으켰다.
얼굴을 맞는 와중에도, 기다란 오른팔을 감아 내 빈틈을 노렸다.
거만하고, 장난기만 가득하던 이전의 변종과 확연히 다르다.
신중한 모습도 그렇고, 회피와 반격, 충격을 감내하는 모습까지.
한두 번 싸워본 놈이 아니다.
드득- 득- 득.
부러진 갈비뼈가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패시브 스킬 재생이 없었다면 진즉에 승패가 정해졌을 것이다.
난 폐부 깊숙이 숨을 들이쉬고, 천천히 내쉬며 재생이 끝나길 기다렸다.
집중력을 끌어올리자, 세포 하나하나가 미세하게 반응하며 동체 시력과 반사신경을 보다 선명하게 만들었다.
‘파고들어서 확실하게 잡아야 돼.’
이전의 경험을 잊어선 안 된다.
한 마리도 쉽지 않은데, 수성 호텔에서 알파2 두 마리를 어떻게 상대했지?
당시 좀비화와 광폭화, 광란까지 사용해서 잡았다.
이 모든 스킬을 사용했을 당시, 근력 수치는 176에 달했다.
150은 넘어야 수월하게 알파2를 잡을 수 있는 것 같은데…….
현재 좀비화를 사용했으니 내 근력은 110이 된다.
광폭화까지 사용할까?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광란이 발동할지도 모른다.
난 알파2의 모습을 응시했다.
얼굴은 피떡이 되었고, 상체가 비틀거리고 있었다.
지금도 충분히 타격을 입히고 있는데, 광폭화까지 무리해서 사용할 필요가 있을까?
무리하지 말고 재생으로 버티면서 상대해도 될…….
껴억!! 껴억!! 껴억!!
그 순간, 놈은 허공을 바라보며 탄력 있는 울음소리를 토했다.
고막을 찌르는 날카로운 울음소리.
마치 벨로시랩터의 울음소리와 흡사했다.
잠깐, 벨로시랩터?
영화 속에서 본 벨로시랩터는…… 동료를 부를 때 저렇게 울었다.
키에에에에엑!!
그러자 건물 외벽에 있던 알파 변종 8마리가 알파2를 따라 찢어지는 귀곡성을 뱉으며 이곳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설마, 알파2는 공명 좀비와 같은 능력을 지닌 건가?
주변 변종들에게 적의 위치를 알리고, 지원 요청이 가능한 거야?
모르겠다.
시끄러운 울음소리 때문에 알파1들이 반응하는 건지, 아니면 알파2에게 공명 좀비처럼 아군을 부르는 힘이 있는 건지.
난 미간을 찌푸리며 옆구리의 상태를 확인했다.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으로 달려오는 8마리의 알파 변종 때문에, 완치되기를 기다리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젠장!”
황급히 가드를 올리며 놈들의 위치를 직시했다.
갈비뼈는 완전히 붙지 않았지만, 좀비화 덕분에 통증은 없었다.
뼈가 부러질 정도의 순간적인 충격이 아니면, 통각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훙-!
코앞으로 다가온 알파 변종이 대뜸 팔을 휘두르기에, 가볍게 상체를 숙여서 회피했다.
동시에 상체를 일으키며 있는 힘껏 놈의 하관에 주먹을 꽂았다.
떡!!
아래턱이 부러지며 바람 빠진 풍선처럼 나풀거리는 녀석.
확실하게 처리하고 싶지만, 계속해서 달려드는 알파 변종들로 인해 확인 사살은 불가능했다.
남은 7마리부터 행동불능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훅, 하고 숨을 뱉으며 가드를 올리고 상체를 좌우를 흔들었다.
키에에에에엑!!
전진 더킹과 함께 변종들의 공격을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회피하며, 놈들의 안면에 정밀타격을 가했다.
-변종을 처리했습니다. 카운트 50점이 주어집니다.
-변종을 처리했습니다. 카운트 50점이 주어집니다.
-변종을 처리했습니다. 카운트 50점이 주어집니다.
-변종을 처리했습니다. 카운트 50점이 주어집니다.
…….
…….
어깨를 스치고, 눈썹과 귓불을 스치는 변종들의 손길.
하지만 좀비화를 사용한 이상, 알파1은 내게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았다.
턱!
그 순간, 무언가가 내 발목을 붙잡고 늘어졌다.
황급히 지면을 살폈다.
모조리 처리한 줄 알았는데, 쓰러진 알파 변종 하나가 내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키…… 키에에…….
놈은 있는 힘껏 내 발목을 잡아당기고 있지만, 알파1의 근력으로는 내 신체를 끌고 갈 수 없다.
“놔.”
알파 변종의 손길을 뿌리치며 놈의 찌그러진 안면을 발로 짓밟았다.
쩍!!
으스러진 두개골에서 흘러나오는 알파 변종의 뇌수.
다른 알파 변종이 저 뇌수를 섭취하면 알파2로 진화하기에, 지체 없이 뇌를 으깨버렸다.
다시금 알파2를 노려보자, 그 새 체력을 회복했는지 더는 상체를 떨지 않았다.
정신을 다잡기 위해 알파1로 시간을 끈 건가?
덕분에 나도 잘 쉬었다.
갈비뼈의 재생도 끝났고, 좀비 카운트도 얻었다.
난 정면으로 보이는 알파2와 놈의 주변을 번갈아 살폈다.
아직 벨로시랩터 같은 울음소리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했다.
만약 지원 요청이라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르기에, 섣불리 광폭화를 사용할 수 없었다.
또한 내게도 부담이 가는 스킬이니, 최악의 상황이 아니면 절제해야 한다.
내가 광폭화 사용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광란이 발동될 수 있어서?
물론 그것도 걱정이지만, 그보다 더한 것이 있었다.
수성못을 정리하고 황금동으로 돌아가는 길에 발생했던 기이한 신체 변화.
좀비화도 사용하지 않았는데, 안구가 검게 변한 현상.
그것이 좀비화 때문인지, 광폭화 때문인지, 광란 때문인지, 명확한 이유를 파악할 수 없었다.
껴어어어…….
알파2는 상체를 숙이더니, 금방이라도 튀어오를 듯한 자세를 취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도 상체와 하체를 숙이며 언제든 반격할 수 있는 자세를 취했다.
껴어어어억!!!
놈은 괴성을 내지르며 쏜살같이 달려들었다.
나 역시 두 주먹을 말아쥐며 하체에 힘을 실은 뒤, 지면을 박차며 놈에게 달려들었다.
* * *
“머리 숙여!”
전완수는 입구를 막아선 일행에게 외치며 카타나를 휘둘렀다.
촥!!
문틈으로 비집고 들어오던 알파 변종의 성대가 잘려 나가며 머리가 덜렁이는 모습을 보였다.
설여원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양손으로 덜렁이는 머리를 잡아 뜯었다.
-변종을 처리했습니다. 5코인이 지급됩니다.
마지막 남은 알파1을 처리한 뒤, 일행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모두가 변종의 피를 뒤집어쓴 상태였다.
설여원은 양손으로 얼굴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일행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재형이, 재형이 도와주러 가야지.”
“우리, 우리 다 잡은 거 맞아? 20마리 안 되는 거 같은데.”
다들 숨이 거칠어서 말도 똑바로 못하고 있었다.
설여원은 입안의 가래를 뱉으며 몇 차례 심호흡하더니, 일행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저랑 진영이 오빠만 가죠. 남은 변종이 있을 수도 있으니, 다른 사람들은 여기 있어요.”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설여원은 지체할 시간이 없다는 듯이, 황급히 1관을 빠져나와 근처로 보이는 창가로 향했다.
외부에서 들리는 파열음에, 박재형이 밖에 있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그 순간, 설여원의 눈으로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왜 그래. 안 가?”
옆에서 정진영이 묻자, 설여원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어스름이 내려앉은 세상을 응시했다.
뒤이어 나지막한 목소리로 욕설을 읊조렸다.
“미친…….”
“왜, 또 무슨 일인데 그래.”
정진영이 인상을 찌푸리며 묻자, 설여원은 두려움에 잠식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몰려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