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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178화 (178/373)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178화

경찰서를 이 잡듯이 살폈지만, 찾은 건 무전기 4개가 전부였다.

이곳에 있던 생존자들이 경찰서를 깨끗하게 털어간 게 분명했다.

우린 1층에 모여 현 상황을 정리했다.

“이 동네 느낌이 안 좋아요. 정우 형 본가만 확인하고 이동하는 게 좋을 거 같은데요.”

전완수의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반면에 이정우는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었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갈등하는 것으로 보였다.

이에 이정우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정우 형, 무슨 고민 있어요?”

“아니야, 그냥…….”

이정우는 말끝을 흐리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설여원도 의구심을 느꼈는지, 이정우를 쳐다보며 얘기했다.

“그냥 얘기해요. 우리가 남이에요?”

“소꿉친구가 좀…… 신경 쓰여서.”

“소꿉친구요?”

“나랑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같이 나온 친구거든. 형제 같은 친구야.”

이정우의 대답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친구는 집이 어딘데요?”

“나랑 같은 아파트야.”

“그럼 본가로 가서 확인하면 되지 뭐가 걱정이에요.”

“안개가 퍼진 날, 그 친구 야간 교대 들어갔거든.”

“야간이요? 어딜 들어가요.”

“저 앞에 공장 다니는 친구야. 대학 안 가고 바로 취직부터 했어. 우리 아빠랑 같은 라인에서 일하거든.”

그럼 이정우의 아버지도 소꿉친구와 같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건가?

상황이 제대로 그려지지 않아서, 더욱 상세히 말해달라고 했다.

“남의 가정사까지 얘기하게 생겼네.”

이정우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이정우의 소꿉친구는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외아들이라고 한다.

이정우도 형제가 없기에, 어린 시절부터 소꿉친구와 함께 지내는 일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소꿉친구의 사정을 이정우의 부모님도 자연스레 알게 되었고, 유치원 때부터 붙어 지내는 일이 많다 보니 부모님 간에도 자연스레 왕래가 많았다고 한다.

이정우의 아버지는 놀이공원에 가거나 가족 여행을 갈 때면 항상 이정우의 소꿉친구를 데려갔다고 한다.

소꿉친구의 어머니는 일이 바빠서 아들을 챙기기 어렵다 보니, 그런 이정우의 부모님께 항상 감사한 마음을 지녔다고 한다.

한번은 이정우와 소꿉친구가 학교를 무단결석하고 오락실에 갔는데, 이정우의 아버지가 오락실까지 찾아왔다.

담임 선생님이 이정우의 아버지께 전화를 해서, 이정우의 아버지가 연차를 쓰고 오락실까지 찾아온 것이다.

이제 혼쭐이 나겠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이정우의 아버지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땡땡이도 학교 다닐 때 추억이지. 너희는 추억을 공유했으니, 이제 둘도 없는 친구야.

-그렇다고 만날 땡땡이치면 안 돼. 이런 일탈은 가끔, 1년에 한 번. 알았지?

-물론 아무리 친한 친구끼리도 절대 보증은 서면 안 된다. 명심해.

혼쭐이 날 줄 알았는데, 너그러이 용서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눈시울이 붉어졌다고 한다.

상황만 들어도, 정말 형제 같은 친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황덕록은 모든 이야기를 듣고 덤덤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럼…… 정우 형 본가부터 확인하고, 그 뒤에 공장으로 가면 되는 거예요?”

“그래도 되는지, 너희한테 묻고 싶어서 얘기한 거야.”

이정우의 말에 전완수는 양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넣으며 얘기했다.

“까짓거 전부 확인하죠.”

“괜찮겠어?”

“저도 현이가 그런 상황이었으면 똑같이 했을 거예요.”

그러자 전완수의 옆에 있던 최현이 콧방귀 뀌며 얘기했다.

“아이…… 전완수 이 쉐끼…….”

“싸나이 으리!”

“아 으리!”

전완수와 최현이 시시덕거리자, 설여원은 두 눈을 게슴츠레 뜨며 얘기했다.

“의리든 으리든 됐고. 빨리 본가부터 확인하죠.”

다들 찬성하는 모습을 보이자, 이정우는 그제야 엷은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다들 고맙다.”

난 일행의 표정을 살피며 얘기했다.

“훈훈한 분위기도 좋지만, 다시 집중하죠.”

“그래.”

지체할 필요 없이, 각 차량으로 이동했다.

* * *

버스를 타고 이정우의 본가로 이동했다.

전완수는 차량의 속도를 조절하며 구시렁거렸다.

“이 동네도 불법 주차 심하네.”

2차선 도로.

양옆으로 불법 주차된 차량이 빼곡하게 세워진 상태였다.

분명 왕복 차선인데, 일방통행 수준이었다.

전완수는 휠에 달아둔 칼날이 부러지지 않도록 사이드미러로 살피며 30㎞의 속도로 나아갔다.

좁은 길을 벗어나 큰길로 나오자, 5차선 도로가 나타났다.

전완수는 한시름 놓으며 옆에 있는 이정우에게 물었다.

“여기서 어디로 가요?”

“오른쪽으로 쭉 가다 보면 대로변에 아파트 보일 거야.”

전완수는 이정우의 지시에 따라 핸들을 틀었다.

여기까지 오면서 좀비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안개 속을 거니는 좀비도, 먼발치에서 들리는 좀비들의 울음소리도 없었다.

거짓말처럼 조용한 동네.

난 긴장되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전완수에게 물었다.

“완수야, 너도 좀비들 봤어?”

“한 마리도 못 봤어.”

“어떻게 이럴 수 있지?”

“…….”

전완수는 뚱한 표정을 지을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최소한 건물의 창가에서 아우성치는 좀비라도 보여야 정상이다.

길거리에 좀비가 없어도, 건물 내에 갇혀 있는 좀비들까지 정리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전완수는 퍼석한 입술을 핥으며 얘기했다.

“이런 동네는 처음이지?”

“처음이지.”

“어떻게 인기척이 하나도 없냐. 유령도시도 아니고.”

이런 얘기를 할수록 이정우의 표정은 점점 굳어갔다.

이에 이정우의 눈치를 보며 얘기했다.

“꼭 신평동이 아니더라도, 다른 동에 계실지도 몰라요.”

“……그래.”

“아니면 좀비들을 전부 정리하고 쉘터를 만들었을 가능성도 있고요.”

“나도 알아.”

이정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심란한 것 같으니, 괜한 소리 말고 있어야겠다.

이윽고 전완수는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며 주변 건물의 상태를 확인하더니, 이정우를 쳐다보며 물었다.

“형, 저 앞에 아파트 단지 있는 거 같은데. 저기에요?”

“맞아. 주변에 좀비는 없어?”

“어…… 조용해요.”

“가다 보면 오른쪽에 길이 나올 거야. 거기로 들어갈 수 있겠어? 거기로 들어가면 단지 입구 나오는데.”

“보이네요. 2차선 도로. 앞에 편의점 있고.”

“어, 맞아.”

이정우의 표정으로 기대감이 엿보였다.

내색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목소리부터 들떠 있었다.

넉 달 만에 집에 도착했으니, 감회가 새로울 것이다.

전완수는 조심스레 핸들을 돌리며 아파트 단지 입구로 향했다.

“어?”

그러다 문득, 입구에서 브레이크를 밟으며 정면을 유심히 살폈다.

내겐 자욱한 안개밖에 보이지 않지만, 전완수는 무언가를 발견한 것으로 보였다.

난 마른침을 삼키며 물었다.

“왜. 앞에 뭐 있어?”

“경비실 벽에…… 뭐라고 적혀 있는 거 같아.”

전완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을 이었다.

“뭔지 몰라도 내려서 확인해야 할 거 같은데? 버스로 들어가는 건 무리야. 한번 들어가면 나오는 것도 힘들고.”

하는 수 없이 무전기를 들며 얘기했다.

“다들 차에서 대기하세요. 완수랑 뭐 좀 확인하고 올게요.”

치지직- 치직.

-왜, 뭔데?

정진영의 물음에 전완수를 쳐다보자, 그는 무전기를 달라는 손짓과 함께 얘기했다.

“아아, 들리십니까? 경비실에 누가 글자를 적어둔 거 같은데, 지금 위치에서 안 보여서요.”

-멀리 가는 건 아니지?

“네, 앞에만 확인하고 올게요. 다들 차에서 기다려요.”

전완수는 무전을 마치고 카타나를 챙기며 뒤에 있는 사람들에게 얘기했다.

“재형이랑 저, 정우 형만 갔다 올게요. 다들 여기 있어요.”

난 한발 앞서 버스에서 내리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안개 때문에 보이는 건 없지만, 그 어느 때보다 청각과 후각이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뭔가 꿉꿉한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 이게 안개 때문인지, 아니면 내 몸에서 나는 냄새인지 모르겠다.

아파트 맞은편에 강이 있는 거 같은데, 거기서 나는 냄새인가?

“재형아 뭐 해, 가자.”

전완수의 목소리를 듣고 아파트 입구로 걸음을 옮겼다.

이동하며 건틀릿을 착용하고, 주먹을 쥐었다 펴며 현재 내구도를 살폈다.

[건틀릿: 100%]

건틀릿도 보호대처럼 내구도가 존재했다.

라스트아크의 재료로 만든 아이템이라서 그런지, 두 눈으로 직접 내구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전완수가 들고 있는 카타나도 내구도가 표시된다고 했으니, 이는 자가복구기능이 탑재된 것으로 생각된다.

곧 경비실 외벽이 두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갈색빛의 글자.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 확인하자, 피로 적은 글자라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

흘러내린 혈흔 자국이, 이곳에서 있었던 일을 반영하고 있었다.

긴장되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천천히 글자를 읽어내려갔다.

-이 글을 보는 사람이 있다면, 당장 구미를 떠나시오.

이정우는 경비실에 적힌 글자를 보고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았다.

사고 회로가 멈췄는지, 글자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전완수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곧 내 어깨를 톡톡 건드리며 얘기했다.

“재형아, 저쪽에도 뭐 쓰여 있어.”

“뭐라고 적혀 있는데?”

전완수는 두 눈을 가늘게 뜨며 고개를 삐죽 내밀더니, 천천히 글자를 읽어내려갔다.

“생존자는…… 순…… 병원?”

“그게 뭐야.”

“글씨를 너무 휘갈겨서 잘 안 보여.”

그러자 뒤에 있던 이정우가 얘기했다.

“순천향대학교 부속 구미병원.”

“오, 그거 맞는 거 같아요. 어떻게 알았어요?”

“순으로 시작하는 병원은 이 근처에 거기뿐이야.”

이정우는 덤덤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거기로 가면 되는 거야?”

“위치 알아요?”

“알아. 차 타고 가면 금방이야.”

이정우가 버스로 돌아가려 하기에, 그의 팔을 잡으며 물었다.

“형, 퀘스트는 완료됐어요?”

이정우는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병원에 생존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급해진 모양이다.

대명동에서 겪었던 일이 되풀이될 수 있기에, 신중하게 물었다.

이정우는 홀로그램을 켜고 퀘스트 목록을 확인하더니,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퀘스트 완료 안 됐어. 이러면 내 부모님 살아계신 거 맞지?”

“모르겠어요. 아파트 입구가 아니라 거실까지 들어가야 완료 표시가 뜰 수도 있어요. 재우는 거실 도착해서야 완료 표시 떴거든요.”

솔직하게 얘기하자, 이정우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저쪽에 놀이터 보여?”

이정우가 가리키는 방향을 쳐다보자, 새하얀 안개를 제외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반면에 전완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노란색 미끄럼틀 있는 놀이터요?”

“맞아, 그 너머에 있는 동이 내가 사는 곳이야.”

“주변에 인기척은 없는 거 같은데, 빠르게 확인하고 올까요?”

경비실에 적힌 글자가 마음에 걸리지만, 이정우의 퀘스트를 완료하기 위해선 거실까지 들어가야 하는 게 맞다.

그래야 퀘스트 완료든 아니든, 확인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전완수는 훅, 하고 숨을 뱉으며 얘기했다.

“딱 붙어서 따라와요. 길가에 깡통이랑 이것저것 많으니까 발로 안 차게 조심하고.”

우린 고개를 끄덕이며 전완수의 뒤로 붙었다.

* * *

한편, 중형차에 있던 설여원은 차량에서 내려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망원경을 들고 사방을 살폈지만, 좀비나 변종의 움직임은 발견되지 않았다.

“언니, 거기서 뭐해요?”

중형 트럭에 있던 김희연이 다가오자, 설여원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얘기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뭐가요?”

“어떻게 개미 새끼 하나 안 보일 수 있지?”

“…….”

김희연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설여원의 의구심 가득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대장 좀비가 지나갔으면 충분히 이럴 수 있지만…… 다수의 좀비가 이동한 흔적도 없어.”

“생존자들이 좀비들 정리한 건 아닐까요?”

“그럼 생존자가 있어야지. 식량을 구하러 돌아다닌 발자취라도 있어야 하는데…… 여긴 아무런 흔적도 없잖아.”

“…….”

“예감이 안 좋아. 이런 분위기…… 학교랑 비슷하면서도 살짝 달라.”

김희연이 마른침을 삼키자, 설여원은 눈살을 찌푸리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여긴…… 수성못이랑 비슷한 느낌이야.”

“수성못이요?”

“변종이 많아도 좀비가 없거든. 수성못이 딱 이런 느낌이었어. 을씨년스럽고, 느낌도 불길하고, 냄새도 비슷하고.”

“변종이 있으면 좀비가 없어요?”

“당연하지. 변종은 좀비도 먹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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