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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174화 (174/373)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174화

팡!!!

눈앞의 남자가 좀비들에게 주먹을 휘두르자, 레일 위에 있던 좀비들은 볼링핀처럼 나가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아니, 나가떨어지는 정도가 아니었다.

터져 나가고 있었다.

생존자들은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얼빠진 표정으로 남자의 모습을 지켜봤다.

하나같이 전신이 석고상처럼 굳은 모습을 보였다.

크어어어어어!!

퍽! 퍼걱! 빡! 떠걱!

챙그랑!!

뒤이어 명덕역에 들어찼던 좀비들은 안개를 뚫고 올라온 정체불명의 사람들에게 머리가 터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명덕역에 들어찬 좀비들을 창밖으로 던져 버리거나, 기다란 검으로 사지를 잘라버리기 시작했다.

흑색의 보호대를 입은 6명의 사람에게, 좀비들은 도륙당하고 있었다.

뒤이어 우락부락한 외형의 남자가 생존자들 앞으로 다가오더니,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피기 시작했다.

곧 남산역 방면을 응시하며 외쳤다.

“어머니!”

* * *

황덕록의 부모님이 살아계신 모양이다.

하지만 황덕록과 그의 부모님 사이에는 수십 명의 생존자가 레일 위에 주저앉아 있는 상황,

난 명덕역 역사에 들어서며 설여원에게 얘기했다.

“사람들 여기로 들여보내고 올라오는 좀비들 막아줘.”

“넌 어디 가려고.”

“좀비화 쓰고 반대편 레일로 뛸 거야.”

“지금? 지금 좀비화 쓰면 생존자들이 뭐라고 생각하겠어.”

“그런 걸 따질 때야?”

골목에 숨어 있던 좀비들이 점점 모여들고 있었다.

공명 좀비를 처리하지 않는 이상, 계속해서 모여들 것이다.

일행의 보호대가 온전한 상태면 몰라도, 지금은 싸움이 길어져서 좋을 게 없다.

난 한차례 심호흡과 함께 남산역 방면을 돌아보며 읊조렸다.

“다이브.”

두근-

심장의 고동과 함께 혈류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며 전신의 근육이 팽팽하게 조여왔다.

뒤이어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남산역 방면으로 뛰어올랐다.

발밑으로 보이는 생존자들은 허공을 가로지르는 내 모습을 보고 넋이 나간 표정을 지었다.

쾅!

“헉!”

안전하게 레일 위에 착지하자, 좀비들을 저지하고 있던 40대 후반의 여자가 기겁하는 모습을 보였다.

난 뒤를 돌아보지 않고 물었다.

“덕록이 어머님 맞으십니까?”

“더, 덕록이? 우리 덕록이 알아요?”

황덕록을 안다.

더는 설명할 필요 없었다.

난 달려오는 좀비들의 안면에 주먹을 내지르며 외쳤다.

“덕록아! 어머니 여기 계신다!”

“우리 덕록이, 덕록이 살아 있어요?”

“뒤에 보세요.”

양손을 번쩍 들고 좌우로 흔드는 황덕록의 모습.

“덕록아!”

“어머니!”

난 황덕록과 그의 부모님을 보고 내심 안도감이 들었다.

세상이 망했지만, 아직 살아남은 사람이 많았다.

이제 남은 건 좀비들의 정리.

머뭇거릴 필요 없이, 빠르게 좀비들을 뚫고 들어갔다.

“으으으!”

맞은편 레일에서 할아버지의 신음이 들려왔다.

철근으로 좀비들을 저지하고 있지만, 그 무게를 감당하기 버거운 것으로 보였다.

이에 눈앞에 있는 좀비의 오른팔을 붙잡고, 있는 힘껏 맞은편 레일로 집어 던졌다.

뻑!!

일직선으로 날아간 좀비는 반대편 철로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좀비들과 함께 레일 밖으로 추락했다.

난 생존자들을 향해 외쳤다.

“전부 명덕역으로 뛰어요!”

생존자들은 그제야 정신이 드는지, 헐레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명덕역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크어어어어어!!

남산역에서 쉴 새 없이 올라오는 좀비들.

난 두 주먹을 말아쥐며 놈들의 모습을 직시했다.

좀비화를 사용한 이상 체력적 부담도 없기에, 침착하고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퍽! 쩍! 떠걱- 떡! 빠각!

레일 위의 좀비들을 쏜살같이 처리하며 남산역 역사로 들어섰다.

서로 깔고 뭉개고 짓밟으면서도, 생존자의 살점만을 탐하는 좀비들.

역사에 들어찬 좀비들까지 모조리 으깨버리고, 꽉 막힌 계단을 뚫고 지면으로 내려갔다.

수백 마리의 좀비가 촘촘하게 뭉쳐있었다.

생존자들을 데리고 쉘터로 돌아가기도 쉽지 않은 상황.

까짓거 다 죽이고 이동해야지.

다른 방법이 없다.

카하아악! 카하악!

코앞의 좀비가 목젖을 갈며 달려들기에, 놈의 울대를 붙잡고 좀비들 사이로 집어 던졌다.

뒤이어 재빠르게 하체를 접고, 도로변을 향해 뛰어올랐다.

탓!

발밑으로 보이는 좀비의 안면을 무릎으로 으스러뜨리고, 착지하자마자 바로 옆에 세워진 제한속도 표지판 기둥을 뽑았다.

상명하복 관계가 없는 길거리의 좀비들이라면 효율적으로 싸워야 한다.

난 청룡언월도를 휘두르는 장수처럼 2m 길이의 쇠기둥을 휘둘렀다.

떠덩! 떵! 떠더덕! 떵!

좀비화를 사용한 이상, 내 근력은 84에 달한다.

묵직한 쇠기둥도 손쉽게 휘두를 수 있었고, 그 힘은 좀비들의 두개골을 깨뜨리기에 충분했다.

표지판을 휘두를 때마다 좀비들의 두개골은 찰흙처럼 뭉개지며 사방으로 붉은 선혈을 흩뿌렸다.

기둥의 하단에 있던 원형의 시멘트 덩어리가 부서지자, 더욱 휘두르기 편해졌다.

“크어어어어어!!”

-반경 50m 내의 적에게 두려움을 각인시킵니다.

-두려움이 각인된 적은 1분간 이동속도 30% 반감 효과가 적용됩니다.

하울링을 사용하자, 평범한 좀비들의 움직임은 굼벵이처럼 느려졌다.

난 홈런을 노리는 4번 타자처럼, 혹은 골프 선수처럼 좀비들의 머리를 터뜨리며 재빠르게 길을 뚫었다.

남산역과 명덕역 사이에 다다르자, 주변 좀비들의 시선이 내게 쏠리기 시작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명덕역 1층까지 쉬지 않고 길을 뚫었다.

일행의 입장에서 생각해도, 계단으로 올라오는 좀비들을 상대하는 것보다 남산역에서 달려오는 좀비를 처리하는 게 수월할 것이다.

두 개의 레일만 막으면 그만이니 말이다.

이에 명덕역 입구를 내가 담당하고, 일행이 레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이 동네의 모든 좀비를 말살한다는 생각으로, 쉴 새 없이 표지판을 휘둘렀다.

* * *

얼마나 지났을까.

대략 40분 동안 쉬지 않고 좀비들을 깨부순 끝에, 모든 좀비를 곤죽으로 만들 수 있었다.

기다란 무기는 어색해서, 무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하다 보니 희열을 느낄 새도 없었다.

쓰러진 좀비들 중에 살아 있는 놈들은 없는지 하나하나 살피며 무전기를 들었다.

“여원아 들려?”

치지직- 치직.

-얘기해.

“사람들은 어때.”

-다들 안전해. 너 어디야? 안 보이는데.

“여기 골목길. 공명 좀비가 골목에서 계속 좀비들 불러서 처리하려고 들어왔어.”

-좀비화…… 아니, 스킬 지속 시간 끝났어?

“아직 20분은 남았어.”

무전기로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망설이는 것으로 보였다.

이에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차피 알게 될 거. 그냥 올라갈게.”

-괜찮겠어?

“남들 시선 신경 쓰면서 어떻게 싸워. 나도 익숙해져야지.”

검은 안구로 사람들을 대면하는 게 어색하지만, 언제까지 피해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한차례 심호흡과 함께 명덕역으로 향했다.

골목을 빠져나와 역사로 들어서자, 몇몇 사람들이 놀란 눈으로 내 전신을 훑었다.

“자, 자네 괜찮은가?”

흰머리가 가득한 할아버지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내 눈을 쳐다봤다.

1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학생은 대뜸 쇠파이프를 들고 양손을 덜덜 떨며 나를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생존자의 숫자를 살폈다.

하나, 둘, 셋, 넷…….

총 24명.

5살에서 7살 사이로 보이는 아이들이 4명이었고, 10대로 보이는 청소년이 3명.

30대에서 40대 사이로 보이는 여자가 13명, 칠순은 될 법한 할아버지들이 4명.

싸움에 적합한 청년, 혹은 중년 남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생존자들이 동요한 모습을 보이자, 설여원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얘기했다.

“다들 진정하세요, 제 동료예요.”

“도, 동료라고요? 좀비, 좀비 아니에요?”

아이를 품에 안은 여자가 겁에 질린 눈으로 되묻자, 황덕록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외쳤다.

“제 친굽니다! 사람 맞아요!”

“덕록아, 설명 좀 해줘.”

작업복을 입은 중년의 여자.

황덕록의 어머니가 묻자, 그는 현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명덕역에 모인 생존자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비현실적인 세상이지만, 좀비로 변했다가 사람으로 돌아오는 나를…… 쉬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석 달이 넘도록 좀비들과 혈투를 벌였으니, 좀비를 향한 증오심이 극에 달한 상태일 것이다.

또한 20대에서 40대 사이의 남자가 없는 것도, 어쩌면 좀비들로부터 가족을 지키는 과정에 먼저 세상을 등졌을 가능성이 높다.

난 한숨과 함께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얘기했다.

“자세한 얘기는 쉘터로 돌아가서 하죠.”

“쉘터? 쉘터가 있습니까?”

30대로 보이는 여자가 묻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여러분이 푹 쉬고, 안정을 취할 수 있는 쉘터가 있습니다. 도착해서 질의응답 시간을 갖도록 하죠.”

“…….”

생존자들은 서로 눈치를 보더니, 곧 너도나도 황덕록의 어머니를 쳐다봤다.

생존자들을 이끄는 대표가 황덕록의 어머니인 모양이다.

황덕록의 어머니는 눈빛부터 남다른 분이었다.

연애도 못 해보고 죽을 수 없다던 황덕록과 달리, 카리스마가 넘치는 분이었다.

황덕록의 어머니는 아들을 쳐다보며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우리 아들 동료라면, 우리도 신뢰할 수 있을 겁니다.”

간단명료한 대답에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생존자가 많은 탓에, 돌아가는 길은 속도가 더딜 것 같다.

난 정진영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아직 좀비화 풀리려면 15분은 남았으니 제가 50m 앞에서 좀비들 처리하면서 이동할게요. 형은 여원이, 완수, 현이, 덕록이랑 같이 생존자 지켜주세요.”

“그래. 좀비화 풀릴 것 같으면 우리 쪽으로 돌아와.”

“네.”

그러자 뒤에 있던 설여원은 무전기를 들며 얘기했다.

“차라리 버스를 부를까?”

그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찰나의 고민 끝에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여기까지 들어오는 건 쉘터에서 부담이니, 대봉교에서 만나자고 연락해 줘.”

“알았어.”

빠르게 상황을 정리하고, 우린 자욱한 안개가 내려앉은 1층으로 향했다.

* * *

이동에 어려움은 없었다.

아이들과 어르신이 많아서 불안한 게 사실이었지만, 오랜 시간 살아남은 생존자답게 다들 앓는 소리 없이 꿋꿋하게 따라와 주었다.

이윽고 대봉교 앞에 다다르자, 저 멀리 몇몇 좀비들을 처리하는 버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버스의 상향등을 보고 뒤따라오는 일행에게 손짓하자, 모두의 표정에 안도감이 돌았다.

뒤이어 버스의 문이 열리고, 이정우와 곽찬혁이 이곳으로 달려왔다.

“대체 무슨 일이야. 변종이라도 만난 거야?”

아직 좀비화가 풀리지 않은 상태라서, 검게 물든 내 안구를 보고 이정우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에 싱겁게 웃으며 얘기했다.

“변종은 없었어요. 좀비들이 많아서 급하게 사용했습니다.”

“다친 곳은, 다른 사람들도 괜찮은 거지?”

“다들 안전해요. 그리고 덕록이 어머님도 찾았습니다.”

이정우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내 등을 토닥였다.

수고 많았다는 말과 함께 대봉교로 달려가 생존자들의 안내를 도왔다.

뒤이어 한지현도 버스에서 내리고, 생존자들의 모습을 보고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을 보였다.

한지현은…… 참 심성이 고운 여자였다.

우리가 처음 황금동 쉘터에 도착했을 때도 임신한 한슬기를 보고 빠르게 대처해 주었다.

또한 아이들을 데려온 우리를 믿어주었고,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이번에 구출한 생존자들도 아이와 어르신들이 섞여 있기에, 이들의 노고에 깊은 공감을 표하며 눈물을 글썽이는 것으로 보였다.

모두가 탑승하기엔 버스가 협소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들 오랜 굶주림에 왜소한 모습이라서 공간이 부족하진 않았다.

핑-

뒤이어 아찔한 현기증이 일며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선명하던 세상이 다시금 자욱한 안개에 가려지고, 전신에 혈류를 공급하던 심장의 고동이 옅어지기 시작했다.

좀비화가 풀리고, 다시금 본래의 상태로 돌아왔다.

어질어질한 이마를 짚으며 버스에 탑승하자, 차내에 탑승한 생존자들은 마른침을 삼키며 내 얼굴을 쳐다봤다.

몇몇 아이들은 내 곁으로 다가와 옷소매를 잡아당기는 모습을 보였다.

아이들을 쳐다보자, 맑고 깨끗한 눈으로 내 얼굴을 멀뚱멀뚱 쳐다본다.

검게 물들었던 안구가 본래의 색으로 돌아온 걸 보고, 마냥 신기한 모양이다.

이에 엷은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제 걱정할 필요 없다고.

안전하다고.

내심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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