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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168화 (168/373)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168화

샤워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윤혜리가 생수와 통조림을 들고 걸어왔다.

“이거 오빠 먹어요.”

대명동 좀비들에게 공격을 받기 전, 황금동 쉘터의 생존자들은 간단한 식사로 허기를 달랬다.

소리결 일행도 똑같은 식량을 배분받았다.

생수와 통조림.

걱정스러운 마음에 윤혜리를 쳐다보며 물었다.

“왜 안 먹었어? 배 안 고파?”

“별로 밥 생각이 없어서 챙겨뒀어요.”

“너 먹어.”

“다이어트 중이에요.”

윤혜리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씁쓸한 마음이 엿보였다.

이에 윤혜리를 쳐다보며 물었다.

“통조림만 먹으니까 물려서 그래?”

“…….”

윤혜리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물려도 그렇지, 밥은 제때 먹어야지.

난 윤혜리를 쳐다보며 진지하게 얘기했다.

“배부른 소리 하지 말고 빨리 먹어.”

“……해서요.”

윤혜리는 쭈뼛거리는 모습을 보이더니, 들리지도 않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쳐다보자, 윤혜리는 내 눈치를 보며 얘기했다.

“고마…… 워서요.”

“응? 뭐가?”

“저도 몰라요. 그냥 오빠한텐 항상 미안하고 그래요.”

윤혜리의 말에 호쾌하게 웃어젖혔다.

마음만 받아도 충분하다는 게 이런 걸까?

난 윤혜리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윤혜리가 뚱한 표정으로 쳐다보기에, 싱겁게 웃으며 얘기했다.

“다 같이 힘내는데 나 혼자 이런 뒷돈 받을 수는 없지.”

“뒷돈은 무슨 뒷돈이에요.”

“장난이야. 진짜 괜찮아서 그래. 마음 쓸 필요 없어.”

난 윤혜리의 표정을 보고 싱겁게 웃으며 무전기를 들었다.

“찬혁이 형 어디에요?”

-C구역. 왜?

“오늘 다들 고생 많았는데, 야식 파티 어때요?”

-그래. 정우랑 진영이 돌아오면 먹자.

황금동 쉘터에는 많은 식량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아끼는 게 습관이 되다 보니, 윤혜리는 본인이 먹어야 하는 식량도 내게 주려고 했다.

나를 믿어주고 생각해 주는 것 같아서, 오히려 내가 더 고마웠다.

윤혜리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내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다.

“우리 야식 먹어요?”

“약속했거든. 찬혁이 형 인간으로 돌아오고, 상황 정리되면 배불리 먹기로.”

곽찬혁과 수성못에서 약속했다.

본인이 인간으로 돌아오고, 상황이 정리되면 결인들에게 식량 창고를 열어주겠다는 약속.

윤혜리는 그제야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통조림을 열었다.

곧 내 얼굴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오빠, 그럼 이거 같이 먹어요.”

“왜, 야식 많이 먹어야 돼서?”

“어떻게 알았어요?”

난 박장대소를 터뜨리며 윤혜리와 함께 통조림을 먹었다.

그 뒤로 1시간 정도 기다리자, 상동교로 향했던 일행이 돌아왔다.

갈 때는 중형차와 승합차만 가져갔는데, 돌아올 때는 이삿짐 트럭까지 끌고 왔다.

* * *

모든 생존자가 식당에 모였다.

야식을 배분하고, 함께 웃고 떠들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하지만…….

“엄마, 아빠는 언제 와?”

5살 정도로 보이는 남아가 엄마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물었다.

아이의 목소리가 신호탄이 되어, 식당은 귀신이라도 지나간 것처럼 정적이 내려앉았다.

아이는 어른들의 눈치를 보더니,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엄마의 옆에 바짝 붙었다.

뒤늦게 발견할 수 있었다.

아이의 엄마는…… 식탁에 놓인 음식을 한술도 들지 않았다.

“흐흑…….”

아이의 엄마가 힘겹게 참아내던 눈물을 쏟자, 옆에 있던 아이도 덩달아 울상을 지었다.

사망한 생존자의 남은 가족이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형제를 잃은 사람도 있고, 자식을 잃은 사람도 있다.

남편, 혹은 아내를 잃은 사람도 있고, 아버지 혹은 어머니를 잃은 아이도 있다.

분위기는 금세 침울하게 변했다.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그들의 감정을 이해하고, 헤아릴 수 있다는 오만하기 짝이 없는 소리는 하고 싶지 않았다.

이덕배는 입술을 옹졸하게 모은 채 미간을 찌푸리더니, 주머니에 넣어둔 담배를 꺼내 들었다.

조용히 밖으로 나가는 이덕배의 뒤로, 그의 딸 이예정과 친동생 이현배가 따라 나갔다.

최만석은 멀어지는 이덕배를 쳐다보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먼저 떠난 아내가 생각난 모양이다.

상황을 지켜보던 곽찬혁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입을 열었다.

“여러분, 잠시 주목해 주세요.”

곽찬혁의 목소리에 모두가 그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는 덤덤한 표정으로 생존자들의 얼굴을 살피더니, 경건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먼저 간 사람들을 위해, 잠시 묵념의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식당에 모인 100여 명의 사람은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묵념을 올렸다.

5분간 묵념한 뒤, 곽찬혁은 남은 생존자들을 바라보며 얘기했다.

“먼저 떠난 이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 꿋꿋하게 살아갑시다. 비록 우리가 피는 섞이지 않았어도, 여기 있는 모두가 가족입니다.”

곽찬혁의 말에 모두가 말없이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뒤이어 한지현과 강요한이 희생자 가족을 챙기는 모습을 보였다.

아이와 엄마의 손을 꼭 잡고, 아픔을 공유하는 모습에 나도 덩달아 마음이 아려왔다.

헥, 헥, 헥.

장군이는 내 얼굴을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에 쓴웃음을 지으며 장군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는 좋겠다. 아무것도 몰라서.”

* * *

축시가 넘어설 무렵, 슬슬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다 같이 그릇을 옮기고, 설거지하며 하루의 마무리를 알렸다.

생존자들은 삼삼오오 모여 귀갓길에 올랐다.

희생자의 가족을 챙기며 집으로 돌아가는 생존자들.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마음속의 응어리가 사르르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다.

아픔을 공유할 수 있고, 서로를 이해하고 이해받을 수 있는 사람들.

세상이 이 지경이 되고, 모든 것이 무너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짙은 어둠도 작디작은 불빛 한 점에 사라진다는 말처럼, 따뜻한 사람들을 알아볼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재형아, 가자.”

등 뒤로 이정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 고개를 끄덕이며 한지현의 방으로 향했다.

소리결 파티와 황금동 파티는 한지현의 방에 모였다.

회장 무리는 처리했지만, 우린 정리해야 하는 일이 남았다.

거실로 들어서자, 이미 모든 결인과 실개천 너머의 수색대가 모인 상태였다.

이덕배와 이현배, 최만석, 천호진은 어색함이 사라졌는지, 태연하게 앉아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곽찬혁은 상석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다 오셨으니 회의 시작하겠습니다.”

회의의 주된 안건은 퀘스트 단결된 의지의 보상과 향후 계획이었다.

[단결된 의지: S(Clear)]

-클리어 보상: 모든 공격대원에게 상점 이용권을 지급합니다.

홀로그램을 확인하고 곧장 상점을 열었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상점 이용권 1개를 받았다.

구매 가능한 물품은 여전히 보호대와 응급 키트뿐이었다.

최소한 이용권 2장은 있어야 라스트아크의 무기를 구매할 수 있었다.

가장 비싼 무기는 이용권 5장을 요구하는 중력장 소총.

탄알 소비 없이, 충전식으로 사용하는 무기였다.

지금은 필요없지만, 추후 세 번째 에피소드에 들어서면 저런 무기를 소지해도 진행이 어려울 수 있다.

그만큼 두 번째 에피소드와 세 번째 에피소드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첫 번째 에피소드가 준비단계였다면, 두 번째 에피소드는 게임에 적응하는 시간.

본격적인 생존싸움은 세 번째 에피소드부터 시작된다.

난 입맛을 다시며 얘기했다.

“보호대 없는 사람들은 보호대부터 구매하고, 보호대 있는 사람들은 이용권을 모으는 게 어떨까요?”

“보호대 업그레이드 안 하고?”

이정우가 묻기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지금 내구도 많이 부족해요?”

“부족한 건 아니야. 우린 너처럼 주먹으로 싸우진 않으니까.”

“부족한 게 아니면 모으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세 번째 에피소드 들어가기 전에 상점에 있는 무기를 구매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세 번째 에피소드에 나타나는 변화를 일행도 알기에, 지금부터 준비하자는 의견에 다들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곽찬혁은 보호대를 구매한 뒤, 각 부위를 착용해며 얘기했다.

“우린 좀비카 제작에 시간을 좀 투자해야 할 것 같아.”

“좀비카요?”

“어, 오늘 들어온 이삿짐 트럭 2대를 개조하려고. 여기 있는 사람들 부산까지 가려면 준비 단단히 해야 할 것 같아서.”

하긴, 쉘터의 생존자들이 이동하려면 이삿짐 트럭 2대로도 부족할 것이다.

식량과 갈아입을 옷, 무기, 사람까지 전부 타려면 지금부터 바삐 준비해도 몇 주는 걸릴 것이다.

그건 그렇고 부산으로 간다는 건…… 역시 이별인가?

아쉬운 마음에 곽찬혁을 쳐다보자, 그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여기 있는 사람들 전부 데리고 구미, 포항을 거쳐서 부산까지 가는 건 무리잖아.”

“괜찮겠어요?”

“안 괜찮아도 어쩌겠어. 마음은 고맙지만, 짐이 되는 건 우리도 싫거든.”

“…….”

“이미 너희한테는…… 받은 게 너무 많아서 미안할 지경이야.”

짧은 시간 동안 정이 들어서 그런지, 아쉬운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곽찬혁의 옆에 있던 한지현이 입을 열었다.

“저희가 먼저 가서 부산 정리하고 있을게요. 여러분 여정 끝나면 편히 쉴 수 있도록.”

다들 아쉬운 표정을 짓자, 소파에 앉아 있던 이덕배가 입을 열었다.

“분위기 왜 이래? 영영 못 만나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부산에서 다시 만날 텐데.”

“맞아요, 내일 당장 헤어지는 것도 아니잖아요. 다들 준비할 게 많은데.”

천호진이 수줍게 웃으며 얘기하자, 다들 엷은 미소를 지으며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래, 천호진의 말이 맞다.

내일 헤어지는 것도 아니고, 영영 이별도 아니다.

앞으로 몇 주는 이곳에 머물러야 하고, 그때까지 만반의 준비를 마치면 된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와 달리, 부엌에 있던 최현은 덤덤한 표정으로 오른손을 들었다.

곽찬혁이 얘기하라고 하자, 최현은 목을 가다듬으며 얘기했다.

“그…… 대명동 좀비들 말인데요.”

“대명동이 왜?”

최현을 쳐다보며 묻자, 그는 입맛을 다시며 물었다.

“남은 대장 좀비들은 어떡해?”

“아.”

회장을 처리한 뒤로 대명동에 남아 있는 대장 좀비들은 생각도 안 하고 있었다.

처음 수성못에서 찾은 부장이란 녀석은 대명동에 12명의 대장 좀비가 있다고 했다.

지금껏 우리가 처리한 대장 좀비는 10마리.

아직 2마리의 대장 좀비가 남았다.

최현은 머리를 긁적이며 황덕록의 눈치를 보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리고…… 아까 부회장 머릿속을 들여다봤을 때, 좀 찝찝한 게 하나 있어서.”

“뭔데.”

“남은 두 마리는 대명동에 있는 창고를 지키고 있는 거 같아.”

“생존자 창고?”

“어, 그런데 거기 있는 생존자들 사이에…….”

최현은 황덕록을 쳐다보며 말끝을 흐렸다.

황덕록은 어느 정도 예상이 되는지, 애써 침착하게 얘기했다.

“괜찮으니까 얘기해.”

“저번에 그랬지? 덕록이 네 부모님이 달성공원역 근처에서 일하신다고.”

“어.”

“부회장이 담당하던 구역이 중앙로 주변이었어.”

중앙로라면…… 달성공원 바로 옆이었다.

놀란 눈으로 최현을 쳐다보자, 그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달성공원역 주변에 쉘터가 하나 있었고, 부회장이 거기 있는 생존자들을 앞산으로 데려간 기억이 있더라고.”

황덕록은 멍한 표정으로 최현을 쳐다보며 물었다.

“그걸 왜 이제 얘기해?”

“부회장 기억 속의 중앙로랑 달성공원역의 경계도 모호하고, 쉘터 위치도 명확하지 않았거든. 그냥 문득 생각나서 지금 얘기하는 거야.”

전투가 끝난 지 아직 6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대명동에 있는 대장 좀비들은 아직 회장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에 주변에 있는 일행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갔다 올게요.”

“지금 뭐가 보인다고 대명동을 가? 지금 새벽 3시야 인마.”

정진영이 반박하기에, 난 태연하게 대답했다.

“좀비들이 시간 따지는 거 봤어요? 아침까지 기다리면 대명동에 남은 좀비들도 회장이 죽었다는 걸 눈치챌 거예요.”

“아니 그건…….”

정진영이 말끝을 흐리기에, 난 최현을 쳐다보며 물었다.

“현아, 창고 위치 알아?”

“장소는 내가 알아. 부회장 머릿속에 창고 위치도 있었어.”

“덕록아, 같이 갈 거지?”

“당연하지.”

“여원이랑 완수, 한 명만 따라와 줘.”

그러자 바닥에 앉아 있던 설여원과 전완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둘은 서로를 쳐다보더니, 본인이 가겠다고 난리를 쳤다.

이정우는 말없이 상황을 지켜보더니,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얘기했다.

“누가 가든 상관없는데, 너희들 하나만 약속해.”

이정우를 쳐다보자, 그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얘기했다.

“덕록이 부모님 구출이 우선이라는 것만 기억해. 대장 좀비 처리는 뒷일이야.”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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