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164화
고막을 때리는 세 차례의 총성.
윤혜리는 양손으로 귀를 막으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정진영은 놀란 마음에 황급히 손도끼부터 치켜들었다.
곽찬혁은 총구를 내려놓고 정면을 응시하더니, 황급히 홍 이사의 곁으로 달려갔다.
곽찬혁이 격발한 탄알은 홍 이사의 양쪽 어깨를 관통한 상태였다.
곽찬혁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개머리판으로 홍 이사의 관자놀이를 가격했다.
뻑!!
그러자 홍 이사의 동공이 풀리며 물에 젖은 수건처럼 축 처지는 모습을 보였다.
기절했다.
“혜리야.”
곽찬혁이 윤혜리를 부르자, 그녀는 황급히 홍 이사의 곁으로 달려왔다.
윤혜리는 홍 이사의 모습을 보고 두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뭐, 뭐 하신 거예요?”
“기절시켰어. 빨리 확인해.”
“이 여자가 무슨 짓 했어요?”
“혀 깨물고 죽으려고 했어.”
“예?”
“갑자기 자결하려고 했다니까?”
윤혜리가 얼빠진 표정을 짓자, 곽찬혁은 홍 이사의 이마에 총구를 겨누며 얘기했다.
“일어나기 전에 빨리 확인해. 움직이면 내가 쏴버릴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윤혜리는 잔뜩 긴장한 모습을 보이더니, 이 악물고 홍 이사의 발목을 잡았다.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홍 이사의 기억을 읽고, 오래 지나지 않아 두 눈을 홉뜨며 얘기했다.
“됐어요.”
“대장 좀비 총 몇 마리야. 황금네거리에 두 마리 맞아?”
“네, 맞아요. 황금네거리에 둘, 상동교 건너에 둘이었어요.”
“회장은 죽었고, 후발대로 들어온 부회장만 잡으면 되는 거지?”
곽찬혁의 물음에 윤혜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윤혜리는 마른침을 삼키며 홍 이사와 곽찬혁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 여자…… 죽일 거예요?”
“필요한 건 다 알아냈으니 죽여야지.”
“하지만…… 이 여자 갱생의 가능성이 있어요.”
“다시 인간으로 돌아오진 못해.”
“오빠는 돌아왔잖아요.”
윤혜리가 반박하자, 곽찬혁은 미간을 찌푸리며 얘기했다.
“치료제는 진화한 대장 좀비한테는 통하지 않아.”
“네?”
“사용 조건이 있다고. 한 번이라도 진화한 대장 좀비는 치료제의 효과를 받을 수 없어.”
곽찬혁의 말에 윤혜리는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그러자 상황을 지켜보던 정진영이 다가와 윤혜리의 팔을 잡았다.
윤혜리가 정진영을 쳐다보자, 그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곽찬혁의 의견에 따르자는 것으로 보였다.
윤혜리는 씁쓸한 표정으로 홍 이사를 쳐다보더니, 결국 시선을 외면했다.
곽찬혁은 폐부 깊숙이 숨을 들이쉬며 홍 이사가 마지막에 했던 말을 되뇌었다.
-살아 있을 때 하고 싶은 거 다 해. 너무 참고 살면 후회밖에 안 남아.
이번 생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몰라도, 다음 생에는 원하는 바를 이루는 행복한 인생이 되기를 내심 기도했다.
탕!!
단발의 총성과 함께 눈앞으로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대장 좀비를 처리했습니다. 1.25코인이 지급됩니다.
곽찬혁은 눈앞의 홀로그램을 닫으며 윤혜리에게 물었다.
“대체 대명동 좀비들은…… 관계가 어떻게 되는 거야?”
곽찬혁이 윤혜리를 쳐다보자, 그녀는 착잡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홍 이사랑 부회장은…… 평범한 회사원이었어요.”
“회장은 그럼 뭐야.”
“중소기업 팀장에 있던 사람이고, 회장 밑에 있던 사람이 홍 이사랑 부회장이에요.”
“……얘기해 봐.”
윤혜리는 본인이 들여다본 기억을 하나도 빠짐없이 들려주었다.
홍 이사의 눈에 비친 회장은 변화한 시대의 흐름은 따라가지 못하고, 생존에 필요한 눈치만 빨라진 사람이었다.
직원들에게 희롱도 서슴없이 하고, 사람을 차별하고 급 나누기를 즐기는 사람.
홍 이사는 내심 회사를 그만두고 싶었지만, 학자금 대출과 집안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아득바득 이를 갈며 버텼다.
싹싹하고 일도 잘해서, 사내에서 인정받는 일도 많았다.
덕분에 젊은 나이에 승진의 기회도 얻고, 이를 통해 팀장을 밟고 올라설 계획까지 세웠다.
아등바등 버티며 온갖 치욕스러운 순간도 참고, 회장을 향한 원망과 분노를 차곡차곡 쌓아갔다.
그런 홍 이사의 일상에 한 줄기 빛과 같은 사람이 지금의 부회장이었다.
부회장의 이름은 김창민.
홍 이사는 힘들 때마다 김창민과 술잔을 기울이며 하루의 피로를 풀었다.
하지만 정체 모를 안개가 퍼지고, 세상이 멸망했다.
철야에 시달리던 홍 이사와 부회장은 회사에서 지금의 사태를 직면했고, 그렇게 플레이어가 되었다.
문제는 회장과 성 이사.
두 사람도 철야 중이었고, 자연스레 플레이어가 되었다.
회식 1차가 끝나고, 2차로 PC방에 데려간 게 화근이 되었다.
노래방이 가기 싫어서 PC방에 데려간 건데, 회장과 성 이사는 딱 한 번 라스트아크를 플레이하고 특전을 얻은 것이다.
윤혜리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홍 이사는…… 죽을 때까지 그 순간을 후회했어요. PC방 말고 평소처럼 노래방을 갔어야 한다고.”
“…….”
“잘해보려고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점점 일이 꼬이는 인생이었어요.”
곽찬혁은 윤혜리의 말을 듣고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문질렀다.
옆에 있던 정진영은 씁쓸한 표정으로 입맛을 다시더니, 바닥에 가래를 뱉으며 얘기했다.
“하여튼, 신이라는 작자는 더럽게 불공평해.”
“넌 신이 있다고 믿어?”
곽찬혁이 눈꼬리를 치켜뜨며 묻자, 정진영은 어깨를 으쓱이며 얘기했다.
“있으니까 세상이 이 지경이 됐죠. 그것도 아주 악신.”
정진영의 대답에 곽찬혁은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었다.
라스트아크의 제작자가 신이니, 더 무슨 말을 하겠는가.
뒤이어 나지막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회장을 그렇게 원망했으면서, 왜 좀비가 돼서도 같이 다닌 거지?”
“나름의 이유가 있겠죠. 대장 좀비든 생존자든, 힘을 합쳐야 살아남을 수 있는 건 마찬가지니까요.”
이번에도 정진영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자, 곽찬혁은 눈꼬리를 치켜뜨며 그를 쳐다봤다.
정진영은 헛기침과 함께 말을 이었다.
“찬혁이 형도 5단지 사람들 쓰레기 같은 거 알면서 같이 지냈잖아요.”
“지금은 후회하고 있어.”
“홍 이사도 후회하면서 죽은 거 아닐까요?”
정진영이 맞는 말만 하니, 곽찬혁은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뒤이어 가만히 있던 윤혜리가 곽찬혁을 쳐다보며 물었다.
“그건 그렇고…… 홍 이사가 혀 깨물고 죽으려고 했다면서요? 총은 왜 쐈어요?”
“자결하면 코인 못 받잖아.”
“…….”
“챙길 건 챙겨야지.”
상황이 어떻고, 처지가 어떻든 살 사람은 살아야 한다.
앞으로 나아가려면 힘이 필요하고, 무너지면 뒤처질 뿐이다.
이를 윤혜리도 알기에,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았다.
곽찬혁은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정진영에게 얘기했다.
“진영이는 중형 트럭 타고 희연이랑 같이 상동네거리 도와줘.”
“형은 어쩌려고요.”
“남은 좀비들 정리해야지. 수성못으로 이동한 200마리도 찾아야 하고. 버스만 우리가 쓸게.”
“정리 끝나면 무전 쳐요.”
상황을 정리하고, 곽찬혁은 빌딩을 나서며 생각했다.
안개가 퍼진 세상과 퍼지기 전의 세상에 큰 차이가 있을까?
살아남기 위해 아등바등 버티는 건……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었다.
* * *
“꽉 잡아요!”
설여원은 핸들을 꽉 쥐고 있는 힘껏 좌측으로 돌렸다.
끼이이이익!!
헛바퀴 도는 소리와 함께 승합차가 기우뚱거리자, 이정우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양손으로 대시보드를 잡았다.
그동안 건물 옥상에서 쉴 새 없이 좀비들을 죽이고, 계단을 틀어막은 채 올라오는 좀비들을 상대했다.
하지만 대장 좀비의 명령 때문인지, 몇몇 좀비들이 건물의 외벽을 타고 설여원과 이정우의 뒤를 노리기 시작했다.
설여원과 이정우는 살아남기 위해 창문을 깨부수고 맞은편 건물로 뛰었다.
그 뒤에 덫을 설치한 장소로 좀비들을 유인하고, 그곳에서 좀비들을 막아냈다.
하지만 끝도 없이 밀려드는 좀비들로 인해 덫이 파괴되는 상황에 이르렀고, 최후의 수단으로 승합차에 올라 좀비들을 상대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정우는 무전기를 들며 외쳤다.
“완수야 상황 보고해!”
치지직- 치직.
-철근 심어둔 골목입니다! 형은 어디예요?
“우리 쪽 철근은 전부 박살 나서 승합차로 이동 중이야!
-저희도 중형차로 이동하겠습니다! 여기도 철근이 좀비들 무게를 못 버티는 거 같아요!
“탈출할 수 있어? 시간 끌어줄까?”
-괜찮아요! 다음 작전지에서 봐요!
전완수의 대답을 듣고 이정우는 설여원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여원아, 상동지구대로.”
“직진만 하면 되죠?”
“직진하다가 사거리 보이면 우측으로 틀어야 돼.”
상동지구대를 마지막 작전지로 정한 이유는 간단했다.
수성못에 있는 좀비들의 시체를 그곳에 모아둔 상태였다.
후발대를 상대하는 용도로 말이다.
대략 500구의 시체.
황금네거리에 쌓아둔 시체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숫자였지만, 좀비들의 공격을 저지하는 용도로 충분했다.
화염으로 길목이 좁아지면 좀비들은 불이 없는 곳으로 모일 것이고, 그럼 차량의 회전 반경은 자동으로 줄어든다.
그 순간, 이정우는 잊고 있던 것이 떠올랐다.
이에 설여원을 쳐다보며 물었다.
“여원아, 우리 상동지구대 앞에 있는 시체들 휘발유 부었어?”
“그거 완수가 하기로 한 거 아니에요?”
이정우는 황급히 무전기를 들었다.
“완수야! 상동지구대에 있는 시체들, 휘발유 네가 부었지?”
-예? 그거 형이 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내가? 내가 언제.”
-아니에요? 그럼 누가 담당했어요?
“…….”
담당자가 없다.
이정우는 뒤늦게 당시의 상황이 떠올랐다.
상동지구대 앞으로 시체들을 옮길 무렵, 공사장을 발견하고 철근을 옮겼다.
철근으로 덫을 설치한 뒤에, 상동지구대를 확인한 기억이 없었다.
즉 상동지구대 앞으로 시체는 옮겼는데, 휘발유를 부어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황금네거리와 상동네거리에 집중하느라, 상동지구대 앞은 뒷전이 되었다.
치지직- 치직-.
-휘발유가 필요한 거야?
그 순간, 무전기로 정진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목소리에, 이정우는 황급히 입을 열었다.
“황금네거리 정리됐어?”
-대장 좀비들은 다 죽였지! 지금은 좀비들 정리 중이고.
“넌 어디야?”
-도와주러 왔다 인마! 찬혁이 형이 우리 먼저 보냈어.
“휘발유 남은 거 있어?”
-가져갈게. 상동지구대로 가면 돼?
“가서 시체들 위에 휘발유 부어! 그때까지 좀비들 시선 끌고 있을게!”
-오케이!
준비 단계에 착오가 있었지만,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싸우기에 금방 해결되었다.
이정우는 설여원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여원아 유턴해라. 시간 끌어야 돼.”
“저도 들었어요.”
끼이이이익!!
설여원은 황급히 핸들을 돌리며 뒤따라오는 좀비들을 향해 일직선으로 나아갔다.
“꽉 잡아요!”
쾅!! 콰곽- 콱! 텅! 떠걱!!
크어어어어어어!!
창밖에서 들리는 좀비들의 고함도, 더는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황금네거리가 버텨냈으니 뒤가 든든해졌다.
또한 승합차에 오를 무렵, 설여원과 이정우의 눈앞에도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7코인이 지급되었다는 홀로그램.
대장 좀비 하나가 7코인을 지급할 정도면, 이는 박재형이 성공했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앞뒤로 모든 대장 좀비를 처리했으니, 남은 건 상동네거리에 있는 부회장뿐.
여전히 힘겨운 상황이지만, 일행의 표정으로 활력이 돌고 있었다.
* * *
크어어어어어!!
뻑!!
주먹을 내지르자, 순두부처럼 으깨지는 좀비의 안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좀비화를 사용하며 근력 수치가 84까지 증가했다.
회장이 죽으면서 흔하디흔한 길거리의 좀비로 전락한 수하들은 너무나 손쉬운 상대였다.
굳이 주먹을 휘두를 필요 없이, 힘껏 따귀만 날려도 좀비들의 경추가 부러지는 모습을 보였다.
빨라진 이동속도와 강해진 근력 덕분에, 빗자루로 쓸어 담듯이 좀비 카운트를 올릴 수 있었다.
좀비화가 유지되는 1시간 동안 2,000마리는 잡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속도면 이곳에 있는 모든 좀비를 처리할 자신이 있었다.
골밀도도 대폭 증가한 덕에, 신체에 충격이 쌓이지도 않았다.
순두부를 으깨면서 아파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나를 둘러싼 좀비들이 모조리 포인트로 보이기 시작했다.
“가속.”
쾅!!
스킬 급가속을 쿨타임마다 사용하며 빠르게 숫자를 줄여 나갔다.
하나의 폭주 기관차처럼, 주변을 둘러싼 좀비들을 으깨고 짓밟고 집어 던지며, 죽지 못한 존재들을 모조리 성불시켰다.
광폭화를 사용할 필요도 없었다.
좀비들로 가득하던 상동교 건너는 순식간에 선혈이 낭자하는 지옥도로 변했다.
그 중심에, 내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