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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162화 (162/373)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162화

좀비들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 마리오네트를 이용해서 대장 좀비의 이동경로를 추격할 생각이었다.

아무리 대장 좀비라 한들, 수하들에게 명확한 지시를 내리기 위해선 근방에 머물러야 한다.

황금네거리에 있는 좀비들이 아직 조직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은, 근처에 대장 좀비가 전황을 살피고 있다는 뜻이었다.

치지직- 치직-

-방금 수성못 방면으로 좀비 무리 지나갔습니다!

무전기로 들려오는 정진영의 목소리.

곽찬혁은 황급히 무전기를 들며 물었다.

“숫자는?”

-희연이 말로는 200마리 정도랍니다!

곽찬혁은 퍼석한 입술을 핥으며 얘기했다.

“우린 좀비들 숫자부터 줄이고 따라갈 테니까 너희 먼저 붙어! 공격하지 말고 계속 상황 보고해!”

-넵!

곽찬혁의 지시에 박재우는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진영이 형이 따라가요? 우리가 따라가는 게 아니라?”

“우리가 빠지면 생존자들이 못 버텨. 중형 트럭으로는 이 많은 좀비 못 밀어.”

“그래도 혜리가 있으니 대장 좀비부터 빠르게 처리하고…….”

“없으면.”

“……네?”

“수성못으로 이동한 좀비들 사이에 대장 좀비 없으면 어떻게 할 거냐고. 거기에 대장 좀비 있다는 확신 있어?”

곽찬혁의 물음에 박재우는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그러자 뒤에 있던 윤혜리가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 상황에 미끼를 던질 여유가 있을까요? 수하들 하나하나가 소중한 상황인데.”

윤혜리의 말에 곽찬혁은 덤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서 더 조심해야 한다는 거야.”

“……네?”

“여유는 생기는 게 아니야. 만드는 거지.”

“…….”

“더 늦기 전에 시선을 분산시키려는 속셈일 수 있어.”

여전히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좀비들.

그 질서정연한 움직임이 곽찬혁의 마음에 걸렸다.

곽찬혁은 훅, 하고 숨을 뱉으며 얘기했다.

“혜리야, 지금 마리오네트 사용해.”

“지금요?”

“재우야, 살짝만 속도 줄여. 좀비들 버스에 붙을 수 있도록.”

박재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서서히 속도를 줄였다.

80㎞로 질주하던 버스가 60㎞로 속도를 줄이자, 우측에서 좀비 하나가 몸을 던졌다.

크어어어!!

놈은 사이드미러를 붙잡고 매달리더니, 버스 앞 유리에 쉴 새 없이 머리를 들이받기 시작했다.

대머리의 좀비.

윤혜리는 그놈을 보고 황급히 외쳤다.

“마리오네트!”

-5초 이내에 명령어를 말씀하세요.

-입력이 완료되면 대상은 10초간 명령에 복종합니다.

눈앞의 홀로그램을 보고, 윤혜리는 몇 번이고 복기한 명령을 내렸다.

“지금 당장 네 대장이 있는 곳으로 뛰어!”

-입력이 완료되었습니다.

-명령어: 대장 좀비 곁으로 이동.

명령을 하달받은 좀비는 수성못으로 이동하는 게 아니라, 황금네거리에 있는 어느 빌딩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곽찬혁은 홀로 역주행하는 좀비를 주시하며 무전기를 들었다.

“진영아! 차 돌려! 돌아와!”

-네?

“거기 대장 좀비 없어! 아직 황금네거리에 있다!”

곽찬혁의 신중함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 * *

홍 이사와 김 이사는 황금네거리에 있는 빌딩에 몸을 숨겼다.

김 이사는 옆에 있는 두 마리의 수하를 제 손으로 죽이더니, 홍 이사를 쳐다보며 얘기했다.

“홍 이사님, 빨리 먹어요.”

“젠장…… 저놈들 총을 어디서 구한 거지?”

“말 그만하고 빨리.”

좀비들의 패시브 스킬.

시체 먹기.

시체를 파먹으면 다친 부위가 재생되기에, 김 이사는 두 마리의 수하를 데리고 들어왔다.

홍 이사는 황급히 시체를 먹으며 떨어져 나간 어깨부터 재생했다.

곧 입가에 묻은 핏물을 닦으며 김 이사에게 물었다.

“미끼는 멀리 보냈어?”

“네, 수성못으로 보냈습니다.”

“몇 마리.”

“200마리 보냈습니다.”

“잘했어. 그 정도면 대장 좀비가 거기 있다고 생각할 거야.”

홍 이사는 재생된 어깨를 빙빙 돌리며 숨을 가다듬더니, 까드득 이를 갈며 얘기했다.

“나한테 총 쏜 새끼…… 내 손으로 죽인다.”

“안 됩니다.”

“안 되긴 뭐가 안 돼?”

“정찰이 목적이잖아요. 벌써 수하들을 너무 많이 잃었어요. 이런 플레이어들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습니다. 빨리 돌아가서 알려야죠.”

“…….”

김 이사의 말에 홍 이사는 미간을 찌푸리며 두 주먹을 파르르 떨었다.

흥분한 나머지 감정적으로 행동한 게 맞다.

억울하지만, 김 이사의 의견에 따르는 게 최선이었다.

홍 이사는 울분을 삭이며 얘기했다.

“남은 수하들이라도 살려간다.”

“네.”

홍 이사와 김 이사는 황급히 빌딩의 입구로 향했다.

그 순간, 대머리의 좀비가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홍 이사는 대머리 좀비를 발견하고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김 이사를 돌아봤다.

“너 미쳤니? 설마 여기로 수하들 불렀어?”

“예? 아니요? 저는 이사님이 부른 줄 알았는…….”

빠아아아앙!!

쾅!!

그 순간, 대머리 좀비를 그대로 밀어버리는 버스를 발견할 수 있었다.

스쳐 지나가는 버스 창문으로, 홍 이사와 김 이사를 응시하는 한 남자.

홍 이사는 버스에 있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그는…… 무전기를 들고 있었다.

* * *

부회장은 초조한 마음으로 홍 이사와 김 이사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지금쯤이면 정찰을 마치고 돌아와야 정상인데,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다.

이에 박 회장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회장님, 제가 가봐야겠습니다.”

“아까 내가 한 말, 이해하기 어려웠나? 아직도 네 주제를 모르겠어?”

박 회장이 눈꼬리를 치켜뜨자, 부회장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뒤이어 박 회장을 똑바로 쳐다보며 얘기했다.

“압니다. 하지만…… 지금 보내주지 않으면 평생 회장님을 원망할 겁니다.”

“…….”

“지금 보내주신다면, 앞으로 평생 회장님을 모시겠습니다.”

박 회장은 옹졸한 표정으로 부회장을 쳐다보더니, 오래 지나지 않아 콧방귀를 뀌며 얘기했다.

“마음대로 해.”

“부탁이 있습니다.”

“원하는 것도 많다. 뭔데?”

“이삿짐 트럭 한 대만 가져가겠습니다.”

박 회장은 부회장의 얼굴을 가만히 지켜보더니,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얘기했다.

“그렇게 해. 그리고…… 자네 뒤에 내가 수하들 좀 붙여줄게. 걱정돼서 말이야.”

“……감사합니다.”

부회장은 박 회장에게 인사를 올린 뒤, 황급히 이삿짐 트럭으로 달려갔다.

뒤이어 차량에 시동을 걸고, 창문을 활짝 열며 수하들에게 소리쳤다.

“크어어어어어어!!”

전부 따라오라는 명령.

부회장이 트럭을 몰고 들어가자, 그 뒤로 4,000의 수하들이 일제히 포효를 내지르며 상동교로 향했다.

그리고 회장은 부회장의 뒤로 2,000의 수하를 붙였다.

모든 게 회장의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어차피 홍 이사와 김 이사는 버리는 카드.

지금쯤 생존자들의 숫자도 상당히 줄었으리라 예상했다.

부회장의 뒤에 2,000의 수하를 붙인 것도 이유가 있었다.

생존자들의 현재 위치를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머릿속의 붉은 점이 사라지거나 속도가 느려지면, 그곳에 생존자가 있을 것이다.

“자, 그럼…… 그림이나 그려볼까?”

회장은 들고 온 지도를 펼치며 볼펜을 손에 쥐었다.

2,000의 수하가 죽으면 어디서 죽었는지, 지도에 표시하기 위함이었다.

아군이 다 죽어도 이득, 적을 물리쳐도 이득.

결과가 어떻든, 박 회장은 다 죽어가는 생존자들을 마지막에 쓸어 담으면 된다.

부회장이 살아서 돌아오더라도, 수하를 붙여줬으니 합당한 요구를 할 수 있다.

회장은 손해 볼 게 하나도 없었다.

* * *

상동네거리에 있던 설여원은 망원경으로 좀비들의 동태를 살피다 말고 이정우에게 얘기했다.

“오빠, 정우 오빠! 후발대 움직입니다.”

“규모는?”

“선발대랑 비슷해요. 다만…… 이삿짐 트럭이 같이 움직여요.”

“이삿짐 트럭?”

이정우는 눈꼬리를 치켜뜨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치지직- 치직-

곧 이정우의 무전기에서 전완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장 좀비 하나! 숫자는 5,000마리 이상!

“대장 좀비 한 마리 확실해?”

이정우가 되묻자, 전완수는 다급히 입을 열었다.

-조수석에 아무도 없어요! 운전석에 한 마리뿐입니다!

이정우는 소총을 장전하며 설여원에게 얘기했다.

“여원아, 너 총 쏘는 법 배웠지?”

“당연하죠.”

“조준할 수 있겠어?”

설여원은 이정우가 건네는 소총을 받아들고 상동교로 접근하는 트럭을 응시하더니, 금세 총구를 내리며 얘기했다.

“안 될 거 같아요. 너무 빠릅니다.”

“시도라도 해봐.”

“괜히 빗나가서 위치 발각되는 것보단 확실한 방법으로 잡아야죠.”

설여원은 소총을 내려놓고 바닥에 있는 수류탄을 손에 들었다.

이정우는 덩달아 수류탄을 손에 쥐며 물었다.

“5,000마리 이상이면, 저게 회장일까?”

“아직 대기 중인 수하들이 많아요. 지금 들어오는 놈은 부회장일 가능성이 커요.”

“부회장이면…… 거느릴 수 있는 수하 4,000마리가 한계 아니야?”

“회장이 2,000마리 정도 붙여둔 거 같아요. 성 이사가 밑에 직원들한테 좀비 두 마리씩 붙여둔 것처럼.”

“허, 손도 크다. 두 마리가 2천 마리가 되네.”

“우리한테 혼란을 주고싶었던 것 같은데, 완전히 빗나간 거죠. 빨리 정리하고 재형이나 돕죠.”

부아아앙- 부아아아앙!

차량의 엔진소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설여원은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고 자세를 잡았다.

곧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밑으로 수류탄을 던졌다.

그 모습을 보고 옆에 있던 이정우도 덩달아 안전핀을 뽑고 설여원의 수류탄이 날아간 방면으로 투척했다.

쾅!! 쾅!!

두 차례 폭음이 울리자, 2층까지 차올랐던 안개가 세차게 일렁이는 모습을 보였다.

끼이이익!!

뒤이어 타이어 미끄러지는 소리와 함께 이삿짐 트럭이 옆으로 고꾸라지는 모습을 보였다.

설여원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재빨리 수류탄을 손에 쥐었다.

이정우는 설여원의 모습을 보고 무전기에 외쳤다.

“완수야! 좀비들 보여?”

-보입니다!

“너희도 수류탄 던져!”

-저희도요? 네!

“좀비들한테 위치 발각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걱정 마세요!

무전을 마치고 이정우도 설여원을 따라 쉴 새 없이 수류탄을 던졌다.

선두에 있던 이삿짐 트럭이 엎어지는 바람에, 뒤따라오던 좀비들은 오도 가도 못 하고 수류탄에 터져나갔다.

각 건물마다 15개의 수튜탄을 배치했는데, 순식간에 남은 수류탄은 2개가 되었다.

“크어어어어어!!”

뒤이어 트럭에 갇혀 있던 대장 좀비가 포효를 내질렀다.

설여원은 남은 수류탄 2개를 옆구리에 차며 얘기했다.

“이동해요. 좀비들 흩어지기 시작했어요.”

이정우는 기다란 창을 들고 설여원과 함께 1층으로 내려갔다.

설여원은 소총을 어깨에 메고, 헌팅 나이프를 뽑으며 선두에 섰다.

맞은편 건물 옥상에 있던 전완수와 최현도 그에 따라 이동하기 시작했다.

* * *

멀찍이서 들리는 수류탄의 폭음을 듣고, 난 인상을 찌푸리며 더욱 박차를 가했다.

수류탄을 사용했다는 건 후발대가 이동하기 시작했다는 뜻.

마음은 급해지는데, 이삿짐 트럭을 세워둔 장소가 보이지 않았다.

설여원은 적의 본대가 쌍둥이 아파트 앞에 있다고 했다.

안개 너머로 쌍둥이 아파트의 윤곽이 보이는데, 좀비들의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설마 길을 잘못 들었나?

그럴 리가, 내가 길치는 아닌데.

크르르르…… 카각! 카학!

그 순간, 귓바퀴를 간질이는 좀비들의 음성이 들려왔다.

이에 황급히 두 다리에 제동을 걸고, 우측으로 보이는 이름 모를 건물의 3층으로 올라갔다.

창가로 달려가 상체부터 숙이고, 인기척을 지운 채 창밖에서 들리는 좀비들의 음성에 귀를 기울였다.

크르르르…….

칵! 카각…… 카하악!

좀비들의 음성이 특이하다.

폭음을 듣고 반응하는 것 같은데, 당장에라도 튀어 나가고 싶은 본능을 억누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는 좀비들의 행동을 저지하는 대장 좀비가 근처에 있다는 뜻이나 마찬…….

“조용해 이것들아!”

뒤이어 쩌렁쩌렁한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굳이 묻지 않아도, 직감적으로 느껴졌다.

‘제대로 찾아왔구나.’

예상이 맞았다.

회장이 후발대와 함께 움직이지 않았다는 건, 아직 동태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이는 황금동 쉘터의 생존자들이 잘 버티고 있다는 방증이나 마찬가지였다.

늦기 전에 처리해야 한다.

난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응시하며 읊조렸다.

“감지.”

-20초간 전방 80m 내의 좀비와 변종의 움직임을 감지합니다.

-움직임이 포착된 적은 감지의 지속 시간이 끝나도 10초간 위치를 추적할 수 있습니다.

-감지의 재사용 대기 시간은 45분입니다.

눈앞으로 푸른 인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좀비들이 얼마나 많으면, 푸른 인영이 하나의 거대한 강물처럼 보였다.

그 옆에서 홀로 손을 움직이는 존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껄렁껄렁한 움직임도 없고, 사람처럼 서서 종이에 무언가를 열심히 표시하는 모습.

글을 적을 수 있는 수준이면 말 다 했지.

찾았다,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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