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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158화 (158/373)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158화

18마리의 좀비를 처리하고 창가로 향했다.

이정우의 말이 사실이라면 성 이사는 아직 3호선 레일 위에 있거나, 역사에 갇혀 있을 확률이 높다.

가브리엘이 신경 쓰일 테니, 다음 역으로 이동하는 무리수는 두지 못할 것이다.

즉, 역사에 숨어 머리를 굴리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설여원에게 쉬라고 한 것이다.

여기선 3호선 레일을 내려다볼 수 있기에, 안개가 없는 2층 이상의 좀비들은 내 눈으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곧 3호선 레일을 거니는 몇몇 좀비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비규환에 빠진 지면과 달리, 상체를 좌우로 흔들며 미동도 하지 않는 좀비들.

특이점이 있다면…… 놈들은 하나 같이 황금역 방면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는 수성못역에서 황금역으로 레일을 통해 이동했다는 증거였다.

레일이 좁은 탓에, 몸을 돌리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다.

좀비들의 시선을 따라 황금역을 살피자, 역사 내에 있는 좀비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계단과 에스컬레이터를 통해 시끄러운 1층으로 내려갈 수 있음에도, 무언가를 가리기 위해 똘똘 뭉쳐 있는 모습.

“찾았다.”

주먹을 말아쥐고 흡! 하는 기합과 함께 창문을 가격했다.

쩍! 챙그랑!!

커다란 창에 거미줄 모양의 균열이 생기고, 곧 수백 개의 유리 파편이 지면으로 떨어졌다.

후오오오오-

깨진 창문 너머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

거리가 상당한데, 가능하려나?

대략 40m 거리, 높이는 한 층 정도 낮은 곳에 위치한 황금역.

황금역 역사의 위치를 확인하고,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충분한 도움닫기 거리를 확보하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가속.”

쾅!!

창틀을 박차며 뛰어올랐다.

순식간에 좁혀지는 거리.

역사의 천장은 온통 유리로 덮여 있었다.

그리고 유리와 유리를 연결하는 철제골조가 두 눈에 들어온다.

유리가 깨져도 위험하고, 철제골조에 얼굴을 부딪쳐도 위험하다.

공중에 튀어오른 개구리처럼 사지를 쫙 펴고 충격에 대비했다.

텅! 끼이이이익-

돔 형태의 천장 꼭대기에 안착하려고 했지만, 살짝 벗어났다.

재빨리 양손으로 유리를 잡았지만, 손이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추락하기 전에 몸을 고정해야 하기에, 고민할 새도 없이 오른손으로 유리를 가격했다.

챙그랑!

유리를 깨고, 오른손으로 철제골조부터 붙잡았다.

동시에 이 악물고 상체를 끌어올렸다.

간신히 역사 내로 진입하자, 놀란 눈으로 내 얼굴을 쳐다보는 좀비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무, 무슨 말도 안 되는…….”

놈은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말을 더듬더니, 금세 상황 파악을 마치고 수하들에게 소리쳤다.

크어어어어!!

대장 좀비를 둘러싸고 있던 수하들이 일제히 내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끽해봐야 30마리.

스킬 급가속의 남은 시간은 7초.

지체할 필요 없이 좀비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쩍!! 퍽! 떠덕- 딱! 빡!!

좀비들의 두개골을 순차적으로 깨부수며 대장 좀비의 앞으로 향했다.

대장 좀비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쓰러지는 수하들을 지켜보더니, 기겁하며 계단으로 향했다.

놓치면 안 된다.

마지막 남은 좀비의 팔을 잡고 풍차처럼 돌리며 대장 좀비를 향해 집어 던졌다.

뻑!

“억!”

놈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고꾸라졌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재빨리 튀어 나가 대장 좀비의 목덜미를 붙잡았다.

당장에라도 죽이고 싶지만, 이사 정도 되면 얻을 수 있는 정보도 많을 것이다.

한 손에는 대장 좀비를, 다른 한 손에는 무전기를 쥐며 얘기했다.

“현아, 황금역으로 와.”

치지직- 치직-

-무슨 일이야!

“이사 잡았어. 빨리 와.”

-간다!

빠아아앙!!

저 멀리, 안개 속에서 경적을 울리며 접근하는 차량을 발견할 수 있었다.

버스가 길을 터주자, 황금역 출입구에 정차하는 중형차.

그곳에서 전완수와 최현, 정진영이 내리며 이곳으로 달려왔다.

최현은 30마리의 시체와 천장에 뚫린 구멍을 보고 얼빠진 표정으로 물었다.

“너 설마…… 천장으로 들어온 거야?”

“시간 없어. 빨리 생각 읽어.”

최현은 바퀴벌레처럼 버둥거리는 대장 좀비의 뒤통수에 손을 얹었다.

오래 지나지 않아 놈의 계략을 파악한 뒤, 내 얼굴을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난 악력을 더하며 대장 좀비의 목덜미를 으스러뜨렸다.

“커걱! 커헉! 헉!”

숨넘어가는 소리를 뱉으며 전신을 파르르 떠는 대장 좀비.

목숨이 질기다.

들고 있던 무전기를 내려놓고, 폐부 깊숙이 숨을 들이쉬며 뒤통수를 으깨버렸다.

-대장 좀비를 처리했습니다. 카운트 25점이 주어집니다.

이사급을 죽여도 좀비 카운트는 25밖에 오르지 않았다.

신체 능력이 알파 변종보다 떨어져서 그런가?

하긴, 2000의 수하 때문에 잡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신체 능력만 보면 알파 변종이 월등할 것이다.

수성못에서 처리한 대장 좀비의 생각을 읽었을 때도, 대장 좀비는 4000의 수하를 거느린 시점부터 알파 변종을 처리할 수 있었다고 했다.

크어어어어…… 크르르르…….

밖에서 들리는 좀비들의 울음소리에, 전완수는 황급히 창가로 달려갔다.

길거리의 상황을 살피더니,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얘기했다.

“와…… 저렇게 변하는구나.”

“왜.”

“밖에 있는 좀비들, 감전된 사람처럼 부르르 떨더니 기진맥진한 모습인데?”

대장 좀비로 인해 증가했던 신체 능력이 다시금 평범한 좀비로 돌아온 건가?

최현은 쇠뇌를 견착하며 3호선 레일에서 접근하는 좀비들부터 처리했다.

뒤이어 내 얼굴을 돌아보며 물었다.

“여원이는, 여원이 어디 있어?”

“여기 정리 좀 부탁해. 난 여원이 데려올게.”

전완수와 최현, 정진영은 반박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난 무전기를 들고 홈플로 향하며 얘기했다.

“대장 좀비 죽였습니다. 근처 좀비들 처리하고 황금역으로 모여요.”

* * *

설여원은 홈플 비상구에 앉아 숨을 고르고 있었다.

계단에서 올라오는 내 얼굴을 확인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대장 죽인 거지? 2.5코인 들어오던데.”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움직일 수 있겠어?”

“오른쪽 다리가 좀…… 안 좋아.”

다리를 살피자, 설여원의 허벅지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이에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허벅지를 가려둔 보호대를 살짝 벌렸다.

칼에 베인 것처럼 20㎝가량 찢어진 피부.

보호대에 가려서 지금껏 몰랐다.

“언제 다친 거야?”

놀란 눈으로 설여원을 쳐다보며 묻자, 그녀는 싱겁게 웃으며 얘기했다.

“나도 몰랐어. 여기 앉아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따끔거려서 봤더니 이러네.”

설여원의 옆에 피로 얼룩진 철판이 놓여 있었다.

길이 10㎝의 철판.

철판과 설여원의 허벅지를 번갈아 쳐다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 정도면…… 철판이 박힌 상태로 격하게 몸을 써서 살이 더 찢어졌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반면에 설여원은 게슴츠레 풀린 눈으로 입꼬리를 올리며 얘기했다.

“테라스로 내려올 때 박힌 거 같아. 정신없어서 다친 줄도 몰랐네.”

보호대가 모든 부위를 가려주는 건 아니었다.

하필 그 비좁은 허점에 철판이 박혔다.

보호대 때문에 철판이 빠지지도 않고, 살을 깊게 파고든 것으로 보였다.

절대 모를 수가 없는 상처다.

설여원은…… 본인이 다친 걸 알면서도 괜히 내가 걱정할까 봐, 이를 숨긴 것으로 보였다.

이에 눈살을 찌푸리며 설여원을 부축해서 일으켰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등에 업었다.

설여원은 기력이 없는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부디 파상풍은 아니기를.

난 계단을 내려가며 얘기했다.

“아프면 아프다고 얘기를 해야지, 왜 바보같이 혼자 참고 있어?”

“나도 몰랐다니까.”

“…….”

마음이 아픈데, 이상하게 화가 난다.

설여원에게 화가 난 게 아니었다.

미안함과 죄책감이 들어서,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설여원이 이런 줄도 모르고 참…….

착잡한 마음을 뒤로한 채, 서둘러 황금역으로 향했다.

* * *

이정우와 정진영의 치료로 설여원의 상처는 금세 아물었다.

하지만 체력은 돌아오지 않았는지, 설여원은 벽에 기댄 채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동안 최현은 현 상황을 면밀하게 설명했다.

대명동에 남은 대장 좀비는 회장과 부회장, 홍 이사와 김 차장, 그리고 성 이사를 따르던

과장급 몇 명이라고 한다.

전완수는 눈꼬리를 치켜뜨며 물었다.

“성 이사 밑에 직원이 더 있어?”

“성 이사는 회장 라인이라, 밑에 직원이 좀 많았던 거 같아.”

“그럼 홍 이사랑 부회장, 김 차장은 뭐야.”

“김 차장은 지금쯤 이사가 됐을 거야. 마지막 기억이 김 차장을 이사로 만들라는 명령이거든.”

황금역에 둘러앉은 일행은 다들 심란한 표정을 지었다.

최현도 머리가 복잡한지, 착잡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부회장이랑 홍 이사, 김 차장…… 아니, 김 이사가 한 편이고, 회장이랑 성 이사가 한 편이야.”

“파벌싸움이야?”

최현을 쳐다보며 묻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문제는 부회장이랑 홍 이사, 김 이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 회장의 명령에 따르는데, 발톱을 숨긴 느낌?”

“어디까지나 성 이사의 생각이라는 거지? 정확한 내막은 모르는 거고?”

“그렇지. 하지만 성 이사는 회장을 꽤나 신뢰하고 있어. 회장을 늙은 여우 같다고 생각하거든.”

“늙은 여우?”

“머리가 좋아. 부회장 세력의 브레인은 홍 이사 같은데, 회장은 홍 이사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저울질하는 것 같아.”

“그것도 성 이사가 생각하는 회장일 뿐이야. 실제로 홍 이사가 회장의 손바닥에 있을 가능성은 불확실하다고 봐야 돼.”

수성못에서 저지른 실수를 반복해선 안 된다.

대상의 생각은 파악할 수 있지만, 내면에 품은 감정과 상대방의 의도까지 파악하는 능력은 데니에게 없으니까.

이정우는 가만히 턱을 매만지며 생각을 정리하더니, 최현을 쳐다보며 물었다.

“부회장은 중앙로에 있고, 홍 이사랑 김 이사는 달서구에 있다고 했나?”

“네.”

“왜 힘을 안 합치고 홍 이사랑 김 이사를 달서구로 보낸 거지?”

“성 이사랑 회장의 대화에 따르면…… 둘은 수성못에 각성 플레이어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정우가 눈꼬리를 치켜뜨자, 최현은 입맛을 다시며 얘기했다.

“회장의 진화 조건이 각성 플레이어 10명 섭취에요. 각성 플레이어를 독점하려고 한 것 같습니다.”

최현의 설명에 정진영은 콧방귀를 뀌며 얘기했다.

“그럼 회장 입장에서는…… 욕심부리다가 똥 밟은 거네?”

“그렇죠. 성 이사가 당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을 거예요.”

최현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하긴, 성 이사도 플레이어를 상대한 경험은 있는 것 같은데, 좀비카를 상대한 경험은 없는 것 같았어.”

“각성하면 신체 능력이 증가하는 것도 모르고 있었어.”

캐릭터 각성에 신체 능력 증가가 붙어 있는 건 우리도 몰랐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상황을 지켜보던 박재우는 팔짱을 끼며 물었다.

“그건 됐고, 성 이사가 돌아오지 않으면 회장도 의구심을 가질 텐데, 앞으로 계획은 있나?”

현 상황에 가장 적절한 질문이었다.

일행은 서로 눈치를 보더니, 은근슬쩍 내 얼굴을 쳐다봤다.

내게 방안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건가?

난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한숨을 내쉬었다.

짧게 생각을 정리하고, 일행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회장이 눈치채기까지 길어봐야 5시간일 거야. 5시간 이내에 처음 계획대로 움직이는 건 불가능해. 방법을 바꾸자.”

“그러니까 어떻게.”

“좀비들 시체를 이용하자.”

“시체?”

박재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에 덤덤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수성못에 땅을 파서 구덩이를 만드는 것보다, 차라리 시체 더미를 노면에 울퉁불퉁하게 까는 게 더 빠를 거야.”

“그 뒤에는.”

“시체에 휘발유를 부어두는 거지. 회장의 수하들이 진입하면 전부 태워버리자고. 시체가 질어서 아무리 회장의 수하라도 대응하기 힘들 거야.”

“그래도 8000마리를 상대하는 건 무리야. 부회장이랑 같이 올지도 모르고.”

“덫은 하나로 끝내면 안 되지.”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이에 폐부 깊숙이 숨을 들이쉬며 얘기했다.

“몇 명은 상동교에 자리 잡고 뒤를 노리자.”

“앞뒤를 잡자고? 수적으로 우리가 불리해. 잘못하면 이도 저도 아니게 돼.”

“아까 건물 뛰어다니면서 느꼈어. 여긴 좀비들 유인해서 잡기 좋은 지형이야. 수하들을 분산시켜서 상대해야 승산이 있어.”

선뜻 반박하는 사람은 없었다.

난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쉘터를 지키려고 높은 벽을 쌓아봐야, 8000마리가 때려 박으면 못 막아. 심지어 회장의 수하면 일반인의 3배는 강하니까.”

“그래서.”

“오히려 길을 터주고, 놈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어야 승산이 있다고. 앞뒤로 찌그러뜨리자는 게 아니라, 앞뒤로 흔들어서 진흙탕 싸움을 유도해야 돼.”

“그게 승산이 있다고?”

“우린 상황에 따라 대응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만, 그쪽은 명령을 내리는 사람이 한 명이잖아. 계속 흔들면 정신 못 차릴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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