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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156화 (156/373)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156화

옥상을 타고 넘으며 좀비들의 발치까지 다다르자, 어딘가를 향해 쉴 새 없이 달려가는 좀비 무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으며 놈들에게 투척했다.

쾅!!!

골목에 메아리치는 폭음과 함께 사방에서 좀비들의 울음소리가 공명하기 시작했다.

그어어어…… 그어어어!

크어어어어!! 카하아악!!

정처 없이 안개 속을 달리던 좀비들이 소리의 근원지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뒤이어 내 손을 잡아끄는 손길이 느껴졌다.

뒤를 돌아보자, 설여원이 놀란 눈으로 내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미쳤어? 갑자기 수류탄을 던지면 어떡해?”

“일부러 던진 거야.”

“일부러?”

“이쪽으로 모이는 좀비들은 무시하고, 상동네거리로 움직이는 좀비를 찾아.”

아무리 대장 좀비의 수하라도 자극을 받으면 몰려드는 법이다.

좀비들이 대열을 벗어나지 않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대장 좀비가 곁에 있어야 한다.

성 이사가 이곳에 있을 확률은 현저히 떨어진다.

지금쯤 두산오거리에서 수성못 입구를 경계하고 있을 테니까.

즉, 폭음을 듣고 몰려드는 놈들이 아니라, 도망치는 좀비들이 있다면 그곳에 방 과장이 있을 것이다.

설여원은 금세 내 의도를 파악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곧 맞은편 7층 빌라를 향해 몸을 날렸다.

이에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설여원에게 외쳤다.

“야! 잠깐……!”

우리가 있는 곳은 5층 옥상이다.

아무리 신체 능력이 향상했어도, 7층 옥상까지 단번에 올라가는 건 무리에 가까운…….

챙그랑!!!

내 생각과 달리, 설여원은 맞은편 건물의 5층 창문을 깨고 들어갔다.

이정우처럼 신중하던 설여원은, 어느새 무력이 지략을 씹어먹는 수준에 달했다.

본인의 증가한 신체 능력을 100% 활용하고 있었다.

난 황급히 설여원의 뒤를 따랐다.

핏-!

깨진 창문으로 들어서는 찰나, 날카로운 유리 조각에 옆구리가 긁히는 느낌이 들었다.

착지하자마자 옆구리를 살폈다.

유리에 긁힌 부위가 금세 빨갛게 변했다.

하지만 피는 흐르지 않았다.

저토록 날카로운 유리도, 내겐 손톱에 긁힌 것만 못했다.

스탯 표피강화를 높인 덕에, 웬만해선 살이 베이거나 찢어지지 않았다.

놀란 마음을 추스르고 설여원을 따라 7층 건물 옥상으로 향했다.

이곳은 근방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설여원은 옥상에서 사방을 살피더니, 어느 한 지점을 가리키며 얘기했다.

“저기다.”

설여원이 가리키는 방향에서 안개가 세차게 일렁이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300마리 이상이 움직일 때 발생하는 일렁임.

표면의 움직임을 주시하자, 정확히 상동네거리를 향해 이동하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이에 옆에 있는 설여원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여원아, 여긴 나한테 맡기고 너는…….”

훙-!

말을 끝맺기도 전에, 설여원은 맞은편 5층 건물로 몸을 날렸다.

놀란 눈으로 설여원을 쳐다보자, 그녀는 5층 옥상에 착지하자마자 몇 바퀴를 구르며 내게 소리쳤다.

“빨리 와!”

족히 20m는 떨어진 거리.

게다가 7층에서 5층이면 두려움이 엄습할 수밖에 없는 높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여원의 움직임에 망설임은 없었다.

내가 호랑이를 키웠구나.

항상 일행을 보호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나머지, 자식 걱정하는 부모님처럼 일행의 성장에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설여원을 보고 확신이 들었다.

소리결 파티원들은 내가 보호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서로가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라는 것을.

입꼬리를 올리며 황급히 설여원의 곁으로 향했다.

설여원과 함께 몇 번이고 건물을 넘으며 이동한 끝에, 도주하는 좀비 무리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뒤이어 설여원은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고 냅다 집어 던졌다.

쾅!!!

사방으로 흩날리는 좀비들의 살점과 순식간에 흐트러지는 대열.

설여원은 안개 속을 똑바로 응시하더니, 재빨리 쇠뇌를 견착하며 볼트를 발사했다.

퉁퉁퉁퉁!

연달아 네 발을 발사하더니, 세차게 혀를 차며 맞은편 건물로 이동했다.

퉁! 퉁! 퉁!

또다시 세 발을 발사하더니, 고개를 돌리며 외쳤다.

“그쪽으로 돌아간다! 오른쪽 밑에!”

설여원의 말을 듣고 오른쪽 밑을 내려다보며 읊조렸다.

“감지.”

온 세상이 흑백사진처럼 변하고, 그 속에서 바퀴벌레처럼 도망치는 푸른 인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른 놈들은 갈팡질팡하며 설여원이 있는 건물로 향하는데, 한 놈만 골목길로 도망치고 있었다.

이에 두 눈 부릅뜨고 난간 너머로 뛰어내리며 읊조렸다.

“가속.”

건물의 외벽에 부착된 환풍기를 발판으로 이용하며 1층으로 내려갔다.

쾅!! 텅! 턱- 텅!

찌그러지는 환풍기도 보이고, 내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떨어지는 환풍기도 있었다.

1층에 착지하자마자 다시금 정면을 살피자, 서서히 흐려지는 푸른 인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에 지면을 박차며 노도와 같이 달려나갔다.

“히익!”

뒤를 돌아보며 비명을 지르는 푸른 인영을 보고, 재빨리 놈의 머리칼을 휘어잡았다.

그리고 달려온 힘을 이용해 붙잡은 대장 좀비의 머리를 있는 힘껏 건물 외벽에 찍었다.

쾅!!!

-대장 좀비를 처리했습니다. 카운트 25점이 주어집니다.

대장 좀비의 두개골이 으깨지며 홀로그램이 떠올렸다.

잡았다, 방 과장.

타닷, 탓.

그 순간, 등 뒤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에 재빨리 뒤를 돌아봤다.

설여원이 아니다.

발소리가 두 개였다.

두 눈을 홉뜨며 안개 속을 응시하자, 죽은 대장 좀비와 내 얼굴을 쳐다보는 두 마리의 좀비를 발견할 수 있었다.

놈들의 행동을 보고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씹……!”

지면의 돌멩이를 주워들고 재빨리 좀비들에게 달려들었다.

그억…….

떡! 투두둑.

좀비들을 죽이는 대신, 놈들의 입에 돌멩이를 쑤셔 넣었다.

좀비들의 이빨이 깨지며 커다란 돌멩이가 입을 틀어막았다.

일전에 박재우와 황덕록을 구출하던 당시, 이런 좀비들을 본 기억이 있었다.

도서관 광장에서, 사람을 발견해도 선공을 취하지 않고 공명하던 좀비들.

그 공명 소리를 듣고 조성훈과 그의 수하들이 몰려왔었다.

성 이사는…… 방금 죽은 방 과장에게도 두 마리의 수하를 붙여둔 것이다.

이놈들은 살려둬야 한다.

정찰병을 살려두고, 공명하지 못하도록 만들면 방 과장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성 이사가 접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치지직- 치직-

-재형아! 박재형!

뒤이어 전완수의 목소리가 무전기에서 들려왔다.

양손으로 좀비들의 입을 틀어막은 상태라서, 무전에 대답할 수 없었다.

타닷, 탓! 탁!

뒤이어 골목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에,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나야.”

설여원이었다.

수류탄으로 좀비들의 시선을 유도하고 이곳으로 달려온 모양이다.

설여원은 무전기에서 들려오는 전완수의 목소리를 듣고, 재빨리 내 옆구리로 손을 옮겼다.

“얘기해.”

-설여원? 너희 어디야!

“정확한 위치는 모르겠는데, 상동네거리 근처 같아.”

좀비들 꽁무니만 보고 쫓은 탓에, 나도 정확한 위치를 모르겠다.

설여원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바닥에 엎어진 시체를 보고 내게 물었다.

“저놈이야? 방 과장?”

“어, 그리고 이놈들은 성 이사가 붙여둔 수하들.”

내가 붙잡은 두 마리의 좀비를 보고, 설여원은 무전기에 얘기했다.

“완수야, 성 이사 움직임은 없어?”

-뭔가 이상해, 좀비들이 시끄럽게 울어.

좀비들이 울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크어어어어어!!

카하아악!! 하악!!

뒤이어 좀비들의 울음소리가 내 귀에도 들리기 시작했다.

점점 가까워지는 울음소리.

설마 방 과장에게 붙여둔 수하들이 움직임을 멈춘 탓인가?

치지직- 치직-

-움직인다, 좀비들 상동네거리 쪽으로 이동하고 있어!

무전기에서 들려오는 이정우의 목소리.

뭐야, 완수랑 같이 있는 거 아니었어?

“형 어디에요?”

-그건 나중에 설명하고! 너희 잡으러 가는 거 같으니 빨리 빠져나와!

설여원은 점점 가까워지는 좀비들의 울음소리에 안절부절못하며 물었다.

“어떡해, 이제 어디로 가!”

카하아아아아!!

근처에서 들리는 좀비들의 울음소리.

골목에 메아리치는 좀비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죽은 방 과장의 수하들도 이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찰나의 고민 끝에, 손에 쥔 두 마리의 좀비를 있는 힘껏 지면에 내리꽂았다.

콰직!! 쩍!!

좀비들의 두개골을 으깨고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설여원은 놀란 표정을 짓더니, 말까지 더듬으며 내게 물었다.

“야! 그, 그놈들 죽여도 돼?”

대답할 새도 없이 설여원의 손을 잡고 옆 건물로 들어갔다.

설명은 이동하면서 해도 된다.

“이제 방 과장이 죽었다는 걸 성 이사도 알아챘을 거야.”

“그러니까 왜 죽이냐고!”

“다른 방법 있어? 놔주면 공명할 게 뻔하잖아. 어차피 공명하면 성 이사도 알게 돼. 살려도 발각되고, 죽여도 발각된다고.”

성 이사가 두 마리씩 붙여둔 수하는 전부 공명 좀비였다.

평범한 좀비면 몰라도, 공명 좀비는 최소한의 사고기능을 지녔다.

쫓아가야 하는 대장 좀비가 사라졌으니, 내버려 두면 허공을 향해 공명할 게 뻔하다.

좀비들의 공명은 봉화처럼 육성을 타고 멀리 퍼질 것이다.

내가 무슨 선택을 내리든, 성 이사의 귀에 방 과장의 사망 소식이 들어가는 것이다.

어차피 들킬 상황이라면, 쓸데없이 머리 쓰지 말고 속전속결로 끝내는 게 이롭다.

설여원과 건물 옥상까지 쉬지 않고 올라간 뒤, 주변을 살피며 수성못의 위치를 살폈다.

“이제 어쩌려고.”

설여원이 불안한 목소리로 묻기에, 훅, 하고 숨을 뱉으며 얘기했다.

“속전속결로 끝내야지.”

“그러니까 어떻게?”

“밑에 있는 놈들 무시하고, 두산오거리로 가야 돼.”

이곳으로 달려오는 좀비들은 성 이사의 지시를 받았을 것이다.

움직이지 않는 공명 좀비를 찾으라는 명령을.

하지만 방금 공명 좀비들이 죽었으니, 성 이사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두 개뿐이다.

우리와 싸우거나, 도주하거나.

많은 수의 수하를 이곳으로 보낸 지금이, 성 이사를 처리할 기회다.

한발 앞서 두산오거리를 향해 박차를 가했다.

이동하는 길에 이정우에게 무전을 보냈다.

“정우 형, 제 말 들려요?”

치직- 삑.

-얘기해.

“상동네거리로 이동하는 좀비들 말고,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좀비들 보여요?”

-있어. 움직인다.

“그놈들 놓치지 마요! 거기에 성 이사도 있을 겁니다. 어디로 가고 있어요?”

아무리 기다려도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설마 이정우가 있는 곳으로 성 이사가 움직이는 건가?

그럼…… 좀비화를 쓰고 달려야 하나?

하지만 좀비화의 재사용 대기 시간은 12시간.

대명동에 있는 회장이 정찰대의 연락 두절을 파악하고 수성못에 찾아오고도 남을 시간이다.

지금 좀비화를 사용하면 추후 발생할 위협에 대비할 수 없다.

치지직- 칙- 치지직- 삑.

-안…… 려?

“형!”

-안 들려? 안 들리냐고!

옥상을 뛰어넘으며 무전을 친 탓에, 연결 상태가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뒤이어 이정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것들 3호선으로 이동하고 있어! 황금네거리로 간다고!

3호선? 황금네거리?

그럼…… 황금동 쉘터와 가까워지고 있다는 건가?

하필이면 그쪽으로…….

난 인상을 찌푸리며 얘기했다.

“형, 희연이랑 같이 있죠? 승합차 타고 왔어요?”

-어.

“추격합니다. 살려 보내면 안 돼요.”

치지직- 치직- 삑.

-우리도 갈까?

무전기에서 들려오는 전완수의 목소리.

이에 머릿속으로 인원을 파악하며 물었다.

“완수야, 현이 만났어?”

-만났어.

“다들 중형차 타고 성 이사 쫓아. 상동네거리에 있는 수하들과 합류하기 전에 처리해야 돼.”

방 과장이 죽었으니, 성 이사는 어떻게든 대명동으로 돌아가기 위해 발악할 것이다.

놓치면 안 된다.

이사 하나도 이리 까다로운데, 회장과 이사가 동시에 공격한다면…… 상상하기도 싫은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뒤이어 무전기 너머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야. 황금네거리로 움직인다고?

곽찬혁이었다.

이에 입술을 갖다 대며 얘기했다.

“찬혁이 형! 버스 타고 황금네거리 길목 막아줘요!”

-어? 여기 버스 운전할 줄 아는 사람 없어.

“한지현 씨 직업이 로즈잖아요!”

-아, 잠깐만 기다려. 빨리 지현이 찾아서 황금네거리로 데려갈…….

치지직- 칙- 삑.

-내가 운전할게.

무전기 너머로 들려오는 차분하게 가라앉은 남자의 목소리.

암울한 현실에 무너져 가던 박재우가, 마침내 절망을 딛고 세상 밖으로 나올 준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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