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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155화 (155/373)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155화

속도를 높여 상동네거리로 향했다.

다들 자신감이 붙은 뒤로 옥상을 타고 넘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설여원은 공중으로 높이 뛰어오르며 주변을 살폈다.

상동네거리에 접어들 무렵, 설여원은 좌측을 가리키며 얘기했다.

“좌측 대로에 좀비들 다수.”

“숫자는?”

“못해도 500마리 이상.”

“성 이사란 놈은 보여?”

“양복 입은 놈은 안 보이고, 이사의 수하로 보이는 좀비도 없어. 전부 상명하복 관계가 사라진 좀비들 같아.”

그러자 옆에 있던 최현이 입을 열었다.

“벌써 상동교 지나서 대명동 들어간 거 아니야?”

설여원은 시야가 흐린지, 건물을 타고 상동네거리 바로 앞에 있는 건물로 이동했다.

급히 뒤따라가자, 설여원은 눈살을 찌푸리며 얘기했다.

“흔적이 너무 없는데?”

“흔적이 없다니?”

“2,000마리의 좀비가 움직였다면 최소한 흔적이라도 남아야지.”

설여원의 말을 듣고 괜스레 불안한 마음이 차올랐다.

혹시…… 내가 놓친 게 있나?

설여원은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주변 일대를 살피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을 이었다.

“너무 쥐 죽은 듯이 조용해. 심지어 좀비들이 엄폐물을 일일이 피해서 이동하는 것도 아닐 텐데, 정차된 차량도 멀쩡하고.”

실개천 너머에서 조성훈의 수하들과 싸울 당시, 조성훈의 수하들은 버스며 승합차며, 모든 차량을 짓밟으며 이동했다.

그러다 문득 머릿속으로 아차, 싶은 생각이 스쳤다.

최현이 3층 카페에서 했던 말.

성 이사가 간사한 놈이라는 말.

그 말에 현혹된 나머지, 변수를 생각하지 않았다.

너무나 당연하게, 성 이사가 도주를 택했으리라 생각했다.

이에 옆에 있는 일행을 쳐다보며 물었다.

“현아, 방 과장이란 놈은 수성못 입구로 이동했다고?”

“어.”

“하…… 씹…….”

눈살을 찌푸리며 이를 갈자, 설여원은 불안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왜?”

“생각이 짧았어. 성 이사란 놈이 간사하다고 해서, 밑에 직원도 쉽게 버리는 놈인 줄 알았는데.”

“그게 무슨 말이야.”

“과장, 차장, 이런 놈들한테 수하들 붙이고 멀리서 관찰하다가 도망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고.”

“……?”

설여원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기에, 난 수성못 방면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성 이사는 대명동으로 간 게 아니라 수성못 입구로 간 거라고.”

“두, 두산오거리?”

최현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말까지 더듬으며 얘기했다.

“아, 아니 차장이란 놈 머릿속을 들여다봤을 땐…… 성 이사가 눈치 빠르고 아첨하는 모습만 보였는데?”

“죽은 홍 과장이나 강 차장은 그런 성 이사를 믿고 따른 놈들이야. 성 이사를 못 믿었으면 수성못으로 들어올 때 수하들 데리고 들어왔겠지.”

데니가 들여다볼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상대방의 생각, 그리고 기억이었다.

감정까지 파악하는 능력은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게 인간관계라는 말처럼,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얼마나 많은가?

예를 들어 애증 관계.

이를 두고 누군가는 사랑이라 하고, 또 누군가는 미련이라 한다.

그리고 어떤 이에겐 후회로, 누군가에겐 추억으로 기억된다.

지금껏 성 이사가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할 것이라 생각했다.

인간을 사냥하는 대장 좀비들이 전부 그래왔기에, 그런 모습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도 약한 놈이라면?

사람을 먹고 이사에 오른 놈이지만, 같은 족속에 대한 최소한의 의리가 있다면?

성 이사는 홍 과장과 강 차장의 사망 소식을 듣고 도망치지도, 광분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방 과장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을 가장 먼저 했겠지.

설여원은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럼…… 성 이사가 수성못 입구에 있다는 거야?”

성 이사가 상동네거리에 진을 친 이유도 이제야 알 것 같다.

수성못 뒷길이든, 입구든, 적에게 들키지 않고 빠르게 지원을 갈 수 있는 장소가 상동네거리였다.

생각을 정리하고 다급히 최현을 불렀다.

“현아, 중형차 운전할 수 있어?”

“어깨너머로 배웠지.”

“중형차 타고 수성못 뒷길로 돌아가. 가서 완수랑 합류해.”

“차 타고 두산오거리로 가야 하는 거 아니야?”

“차 타고 상동네거리 지나가는 건 불가능하고, 골목으로 이동하면 좀비들 눈에 발각될 거야.”

그러자 최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골목 정도면 그냥 밀고 들어가면 되잖아.”

“그러니까, 소란을 일으키면 안 된다고.”

최현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기에, 눈살을 찌푸리며 얘기했다.

“성 이사가 방 과장이랑 같이 있으면 방 과장을 대명동으로 돌려보낼 가능성이 커. 회장한테 보고 올릴 놈이 필요하니까.”

“도보로 가면서 방 과장을 처리하겠다는 거야?”

“그래. 대명동으로 가려면 결국 이 길을 지나가야 하니까. 우리가 두산오거리로 가면서 방 과장 처리하고 갈게.”

“못 찾으면 어쩌려고.”

“좀비 500마리가 움직이면 여원이가 찾기도 수월할 거야.”

최현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갈등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설여원에게 수류탄을 건네며 얘기했다.

“무슨 일 생기면 무전 보내.”

최현은 곧장 중형차를 세워둔 장소로 달려갔다.

설여원은 최현의 수류탄을 받아들며 내게 물었다.

“성 이사가 벌써 수성못을 공격했으면 어떡해?”

“그럼 완수가 지원 요청부터 했을 거야. 그리고 성 이사도 쉽게 공격은 못 해.”

성 이사도 회장이 도착하기 전에는 먼저 공격하지 못할 것이다.

홍 과장과 강 차장이 죽었으니, 먼저 공격하는 건 부담스럽겠지.

그러니 2,000마리의 수하로 수성못 입구를 봉쇄하고, 밖으로 나오는 생존자를 감시할 가능성이 크다.

“가자. 가는 길에 방 과장이라 생각되는 좀비 보이면 얘기해. 분명 수하들 데리고 움직일 거야.”

“알았어.”

생각을 정리하고, 설여원과 함께 두산오거리로 향했다.

옥상을 타고 이동하며 무전기를 들고 전완수를 불렀다.

“완수야, 내 말 들려?”

치직- 칙-

-어, 얘기해.

무전기 너머로 전완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작전 변경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나가지 마. 그냥 수성못에 있어.”

-뭐? 방금 좀비들 모여 있는 곳 찾았는데?

“건드리지 말고 숨어 있으라고!”

-……정우 형이랑 희연이가 수성못 밖으로 나갔는데?

이정우와 김희연?

우리가 상동네거리로 출발할 때, 전완수가 쉘터에 있는 일행에게 지원을 요청한 게 생각났다.

이정우와 김희연이 밖으로 나갔다는 말에 머릿속이 멍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에 다급히 이정우를 불렀다.

“정우 형, 정우 형 제 말 들려요?”

-숨어 있으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이정우도 무전 내용을 듣고 있었던 모양이다.

다행이다, 아직 대장 좀비에게 발각되지 않았다.

이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얘기했다.

“거기 있는 놈 과장 아닙니다. 이사일 가능성이 커요. 절대 선공하지 마세요.”

* * *

이정우는 박재형의 말을 듣고 벌어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대명동 좀비들의 진화 단계에 따라 직급이 달라지는 건 쉘터에서 들었기에,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간다는 걸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곧 이정우의 옆에 있던 김희연이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소리예요? 이사라니? 분명 과장이라고…….”

이정우는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곤란한 표정을 짓더니, 무전기에 대고 얘기했다.

“그럼 수성못에 있는 4층 카페에서 대기해?”

-네, 일단 4층 카페에서 대기하세요. 수성못 들어가는 길목이 좁아서 방어도 쉬울 거예요.

“알았어.”

-금방 갈 테니 무슨 일 생기면 무리하지 말고 기다려요.

이정우는 무전을 마치고 옥상 난간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

북동쪽 방향에서 어슬렁거리는 300마리의 좀비.

김희연과 이정우는 두산오거리에 있는 건물 옥상에서 좀비들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있었다.

두산오거리를 중앙에 두고 봤을 때 수성못 입구는 북서쪽, 이정우의 위치는 남서쪽, 다수의 좀비가 분포된 곳은 북동쪽이었다.

좀비들이 수성못으로 이동하면 뒤를 잡기 위해 일부러 건물 옥상에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좀비들이 움직이면 좀비카로 밀어버리기 위해 1층에 승합차까지 세워둔 상태였는데,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

뒤이어 김희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쉘터로 돌아가요? 아니면 수성못으로 가요?”

이정우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고심에 잠긴 모습을 보이더니, 오래 지나지 않아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쉘터로 돌아가는 건 더 위험해. 수성못으로 가자.”

“그럼 승합차로 갈까요?”

“지금 차를 타고 이동하면 시야에 포착될 거야. 걸어가야 돼.”

김희연은 마른침을 삼키더니, 입술을 굳게 다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뒤이어 바닥에 내려둔 쇠뇌를 손에 들었다.

황덕록이 만들어준 쇠뇌.

보호대가 없는 김희연을 위해, 황덕록은 추가 제작한 쇠뇌를 김희연에게 먼저 주었다.

김희연이 쇠뇌를 챙겨서 자리에서 일어나는 찰나, 이정우는 다급히 그녀의 팔을 잡아끌었다.

김희연이 놀란 눈으로 그 자리에 주저앉자, 이정우는 엎드리라는 손짓과 함께 검지로 입술을 가렸다.

뒤이어 난간 너머로 고개만 슬쩍 내밀어 어딘가를 응시했다.

김희연은 당황스러웠지만, 이정우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끼고 덩달아 난간 너머를 살폈다.

곧 벌어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지하철 3호선 수성못역에 들어찬 좀비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대략 70m 거리.

눈높이가 얼추 비슷해서, 자리에서 일어나면 대장 좀비의 시야에 발각될 위험이 있었다.

이정우와 김희연은 오도 가도 못 하는 상황에 처했다.

좀비들의 뒤를 노리려고 했는데, 오히려 좀비들에게 뒤를 잡힌 꼴이 되었다.

* * *

설여원과 함께 쉴 새 없이 건물을 뛰어넘으며 두산오거리로 향했다.

500m 정도 이동했을까?

대각선 방향에서 일렁이는 안개의 표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에 다급히 설여원의 옷자락을 잡았다.

설여원은 놀란 눈으로 내 얼굴을 쳐다보더니, 내가 가리키는 방향을 살폈다.

“있다.”

설여원의 입에서 나온 대답에 두 주먹을 말아쥐며 얘기했다.

“몇 마리.”

“못 해도 150마리.”

150마리?

과장은 500마리를 거느릴 수 있는데?

영문은 모르겠지만, 일단 150마리가 이동하는 방향으로 향했다.

크르르르…… 크어어어!

카하악! 하악!

목젖을 갈며 어딘가로 달려가는 좀비들.

옥상 난간 뒤에 상체를 숙이고, 골목을 통과하는 좀비들의 모습을 살폈다.

설여원은 눈살을 찌푸리며 곤란한 표정을 짓더니, 착잡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안 좋은데.”

“왜.”

“대장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어.”

“양복 입은 놈 없어?”

“양복이 문제가 아니야. 저것들…… 속옷 빼고 전부 탈의한 상태야.”

좀비가 탈의?

그게 무슨 말이야.

설명을 바라는 표정으로 쳐다보자, 설여원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뒤이어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눈꼬리를 치켜뜨며 어딘가를 가리켰다.

“재형아, 저기.”

설여원이 가리키는 방향을 쳐다보자, 반대편 골목에서도 안개의 표면이 일렁이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최소한 100마리 이상이 일제히 달려야 안개의 표면이 일렁이는데, 그런 움직임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었다.

얼빠진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설여원은 미간을 찌푸리며 얘기했다.

“우리…… 아무래도 잘못 걸린 거 같아.”

“잘못 걸리다니?”

“플레이어를 한두 번 상대해 본 놈들이 아니야. 이래선 어디에 방 과장이 있는지 알 수 없어.”

연막작전인가?

방 과장이 대명동으로 이동하는 길에 죽지 않도록, 수하들을 풀어서 시선을 분산시키고 있었다.

또한, 모든 좀비가 속옷 빼고 전부 탈의하고 있다는 건…… 방 과장도 탈의했을 가능성이 크다.

어떻게 해야 좋을까.

난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르며 생각을 반복했다.

이사의 수하들은 일반인의 1.8배에 가까운 신체 능력을 지녔다.

이는 평범한 좀비들보다 월등한 이동 속도를 지녔다는 결과가 나온다.

100m를 돌파하는 데 13초가 걸리는 평범한 사람들의 속도를 생각했을 때, 이사의 수하들은 10초가 걸리지 않을 것이다.

일반인이 우사인 볼트가 됐다고 생각하면 편할 것이다.

난 설여원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제일 느린 놈들을 찾아야 돼. 유독 느린 집단 보여?”

설여원은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더니, 어느 한 지점을 가리키며 얘기했다.

“저기.”

설여원이 가리키는 방향을 확인하고, 난 입꼬리를 올리며 얘기했다.

“잘못 걸린 건 우리가 아니라 저것들이야.”

“…….”

“아직 안 끝났어. 포기하긴 이르잖아.”

망설임 없이 설여원이 가리킨 방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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