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154화
뒤이어 설여원과 최현이 들어오고, 그 뒤로 정진영과 전완수가 들어왔다.
정진영과 전완수도 홀로그램과 무전을 듣고 달려온 모양이다.
일행은 카페 3층의 상황을 확인하고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어디로 들어온 거야.”
“정찰대야?”
정진영과 전완수, 최현의 물음에 하나하나 대답할 시간이 없었다.
이에 최현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최현은 내 손에 붙잡힌 좀비를 보고 눈꼬리를 치켜뜨며 물었다.
“이놈…… 대장 좀비야?”
“어.”
“팔다리는 왜 이래?”
“저항할까 봐 부러뜨렸어.”
최현은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옷소매를 걷어붙이며 얘기했다.
“꽉 잡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본인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곧장 파악하는 모습을 보였다.
난 오른손으로 대장 좀비의 목을 잡고, 왼손으로 수건이 빠지지 않도록 입을 틀어막았다.
최현은 대장 좀비의 머리에 손을 얹고 두 눈을 지그시 감더니, 곧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완수야, 여기서 수성못 뒷길 보여?”
“보이지.”
“확인해 줘. 좀비들 움직임 없어?”
“조용한데?”
최현은 다소 긴장한 표정을 짓더니, 옆에 있는 설여원에게 얘기했다.
“여원아, 두산오거리 방면 확인해 줘.”
“수성못 입구? 입구 쪽도 조용해.”
최현은 곤란한 표정을 짓더니, 내 얼굴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일단 이놈부터 죽여.”
“그냥 죽여?”
“데리고 있을 가치가 없어.”
최현의 말에 대장 좀비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읍읍! 거리기 시작했다.
이에 망설임 없이 대장 좀비의 목을 꺾었다.
뚜둑!
경추에서 듣기 거북한 소리가 들리더니, 눈앞으로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대장 좀비를 처리했습니다. 카운트 25점이 주어집니다.
눈앞의 홀로그램을 닫고, 최현을 쳐다보며 물었다.
“정찰대는 이게 다야?”
“아니, 이제 시작이야.”
“시작?”
“두산오거리에 하나 더 있을 거야. 방 과장이라고 부르는 거로 봐서는 아직 진화는 못 한 거 같아.”
“여기 있는 둘은 직급이 뭐였어?”
“과장이랑 차장.”
최현의 설명을 듣고 의구심이 먼저 들었다.
그럼…… 여기 있는 두 놈도 아직 진화를 못 했다는 말이 아닌가?
난 오른손을 쥐었다 펴며 물었다.
“분명 느낌이 이상했는데.”
“느낌? 무슨 느낌.”
설여원이 묻기에, 난 자신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기 있는 4마리 말이야. 지금까지 처리한 좀비들이랑 달랐거든. 뼈가 좀 더 단단한 느낌이었어.”
설여원도 의아한 표정을 짓자, 최현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당연하지, 저 4마리는 여기 있는 대장 좀비의 수하가 아니니까.”
설명을 바라는 표정으로 최현을 쳐다보자, 그는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말을 이었다.
“상동네거리에 이번 정찰대의 대장이 있어.”
“직급은?”
“이사.”
이사라는 말에 3층에 있던 일행은 마른침을 삼키며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이사라면 2번 진화했다는 말이 되고, 이는 2000의 수하를 거느리고 있다는 말이 된다.
난 마른침을 삼키며 물었다.
“그럼 저기 있는 4마리는…… 이사의 수하라는 거야?”
죽은 시체를 가리키며 묻자, 최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어, 대장 좀비들이 죽으면 소식을 전하기 위한 정찰병이지.”
“수하가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대장 좀비가 죽었다는 소식을 어떻게 전해?”
“대장이 죽었다는 건 지금 같은 상황이 발생했다는 거잖아.”
“아…….”
하긴, 대장만 골라서 죽이는 건 말이 안 된다.
대장이 죽으면 정찰병도 같이 죽었다는 뜻이니, 이사라는 놈도 현 상황을 인지했을 것이다.
최현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아랫입술을 깨물더니, 내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다.
“재형아, 너 이 동네 지리 알아?”
“당연히 모르지.”
“여원이는?”
“나도 대구 출신 아니야.”
최현은 곤란한 표정을 짓더니, 세차게 혀를 차며 전완수에게 얘기했다.
“완수랑 진영이 형은 두산오거리로 가서 대장 좀비 처리해 주세요. 둘이서 잡을 수 있죠?”
“지금? 대장 좀비를 잡으라고?”
정진영이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묻자, 최현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다.
최현은 대장 좀비의 머릿속을 들여다봐서 현 상황을 면밀히 알고 있겠지만, 다른 사람들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운 게 당연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쳐다보자, 최현은 이마를 짚으며 얘기했다.
“이사란 놈은 도망칠 가능성이 커. 그러니 빨리 움직여야 돼.”
“도망친다고? 수성못으로 안 들어오고?”
“성 이사라 불리는 놈인데, 간사하기 짝이 없는 놈이야.”
“……?”
“대명동 대장 좀비들, 생각보다 관계가 복잡한 거 같아. 설명은 나중에 할 테니 지금은 이사부터 잡자. 성 이사가 대명동에 도착하면 회장을 데려올 거야.”
회장을 데려온다는 말에 자리에서 일어나 보호대의 내구도를 살폈다.
회장과 이사를 함께 상대하는 것보다, 당연히 이사부터 처리하는 게 쉽다.
설여원은 덩달아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차 타고 갈까?”
“버스 없으면 힘들어. 방금 죽은 대장 좀비들의 수하가 상동네거리에 있으니, 지금쯤 상동네거리는 좀비들로 꽉 막혔을 거야.”
최현의 대답에 설여원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럼 어떡해?”
“뛰어가야지.”
“그게 더 미친 짓 아니야?”
“상동네거리 가기 전에 빌라촌이 있어. 거기로 이동하면 돼.”
“건물 옥상으로 움직이자고? 체력적으로 힘든 거 알잖아. 속도가 안 붙을 텐데.”
“지금 우리 신체 능력이면 건물 뛰어넘는 건 일도 아니야.”
설여원은 긴장한 표정을 짓더니, 조심스레 내 얼굴을 쳐다봤다.
최현의 의견에 나도 동의하는지, 묻고 싶은 것으로 보였다.
이에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현이 의견이 맞아. 중형차 출력으론 1000마리 못 뚫어. 대신, 다들 수류탄 챙겨.”
“좀비 죽이는 데 수류탄을 쓰자는 거야?”
최현이 반박하기에, 난 덤덤하게 얘기했다.
“최악의 상황은 대비해야지.”
“…….”
“뭐든 아끼다 똥 되는 거야.”
“몇 개씩 챙길까.”
“3개씩은 챙겨야지.”
단호하게 얘기하자, 최현은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그럼 무기 챙겨서 상동네거리 근처까지 중형차로 이동하고, 근처 도착하면 도보로 이동하자.”
“움직여.”
* * *
전완수와 정진영은 쉘터에 있는 일행에게 무전을 보내며 무기를 챙겼다.
드넓은 두산오거리에서 대장 좀비를 찾는 건 무리라고 생각했는지, 지원을 요청했다.
쉘터에 있던 이정우는 흔쾌히 승낙하며 수성못으로 진입하겠다고 했다.
그동안 설여원과 나, 그리고 최현은 무기를 챙겨서 상동네거리로 향했다.
대로로 이동하지 않고, 수성못 산책로와 붙어 있는 2차선 도로를 따라 뒷길로 이동했다.
핸들을 잡고 있는 설여원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에 설여원을 쳐다보며 물었다.
“떨려?”
“떨리는 건 아니고, 옥상으로 이동하는 게 힘드니까 그렇지.”
설여원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열심히 액셀을 밟았다.
지금이야 두렵겠지만, 막상 옥상을 뛰어넘어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새끼 코끼리의 다리에 밧줄에 묶어두면, 성체가 되어서도 밧줄을 끊지 못한다.
이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뇌리에 박힌 나머지 밧줄을 끊을 수 없다는 인식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즉, 5m 이상 뛰어본 적 없는 사람은 아무리 신체 능력이 증가해도 5m가 두렵게 느껴지는 법이다.
본인이 10m 넘게 뛸 수 있음에도 말이다.
나도 그랬으니, 설여원은 오죽하겠는가?
덜컹- 텅- 덜컹.
지면에 널브러진 시체를 밟을 때마다 요동치는 차량.
뒷좌석에 있는 최현을 쳐다보자, 그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일행의 심란한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신체를 강화한 뒤에 수시로 신체 능력을 확인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본인의 한계를 알 수 없다.
그러니 끊임없이 시도하고, 한계에 도전해야 한다.
수성못을 벗어난 차량은 4차선 대로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뒤이어 핸들을 조작하던 설여원은 브레이크를 밟으며 얘기했다.
“200m 앞에 좀비들.”
“움직임은 어때, 이사의 수하들 같아?”
“아니, 움직임이 불규칙적이야. 죽은 대장 좀비 수하 같아.”
길거리의 좀비들은 정처 없이 거리를 거닐지만, 대장 좀비의 수하들은 상명하복 관계에 따라 단체로 몰려다니는 경향이 있었다.
“옆에 주차하고, 여기서부터 걸어가자.”
설여원은 도로변에 차를 세운 뒤, 트렁크에서 쇠뇌와 소총, 수류탄을 꺼내 들었다.
뒤이어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이더니, 소총과 탄알집을 도로 집어넣는 모습을 보였다.
어떻게든 무게를 줄이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최현은 카타나와 수류탄만 챙긴 뒤, 심호흡과 함께 입을 열었다.
“대명동으로 들어가려면 저 앞에 상동네거리 좌측에 있는 상동교를 건너야 돼.”
최현의 설명을 듣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내겐 자욱한 안개밖에 보이지 않지만, 우측으로 높다란 아파트의 윤곽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현아, 어디에 빌라가 있다는 거야?”
“아파트 맞은편은 빌라들이 빽빽하게 모여 있어.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가서 빌라로 이동하면 돼.”
“그럼 상동교랑 멀어지는 거 아니야? 상동교는 좌측이라며.”
“안전하게 이동하려면 이게 최선이야. 좌측은 단층 건물뿐이라서 좀비들한테 발각될 게 뻔해.”
다소 돌아가는 길이지만, 안전하게 이동하기 위해선 최현의 의견에 따르는 게 최선이었다.
이에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가자.”
훅, 하고 숨을 뱉으며 한발 앞서 우측 골목으로 향했다.
* * *
설여원과 최현의 표정으로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좀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긴장한 게 아니었다.
증가한 신체 능력으로, 전속력으로 달려보는 건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두 볼의 스치는 안개의 감촉과 귓바퀴를 간질이는 바람의 저항, 지면을 디딜 때마다 느껴지는 탄력과 빠르게 변화하는 주변 풍경에 감회가 새로울 것이다.
100m를 돌파하는데 8초가 걸리지 않았다.
설여원은 눈앞으로 보이는 빌라를 가리키며 어서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난 한발 앞서 빌라로 진입하고, 인기척을 살피며 계단을 뛰어올랐다.
계단을 5칸씩 뛰어오르며 빠르게 옥상까지 올라갔다.
5층 높이의 빌라였으며, 옥상 철문은 열려 있는 상태였다.
크르르르…….
옥상을 거니는 좀비 한 마리.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놈의 안면을 으스러뜨리고, 상동네거리 방면을 살폈다.
뒤따라 올라온 최현은 좌측을 가리키며 얘기했다.
“저쪽에 아파트단지 보여?”
“어.”
“저게 상동교 건너에 있는 아파트야. 저것만 보고 뛰면 돼.”
“가자.”
난간을 주시하며 속도를 높이고, 박차를 가하며 맞은편 건물로 뛰어넘었다.
중력을 거스르는 강한 압력과 함께 전신이 떠오르는 부유감이 느껴졌다.
발밑으로 보이는 자욱한 안개.
맞은편 건물 옥상에 안착하고, 뒤에 있는 설여원과 최현을 쳐다봤다.
두 사람은 몇 차례 심호흡을 통해 긴장되는 마음을 가라앉히더니, 흡! 하는 소리와 함께 난간을 박차며 뛰어올랐다.
뒤이어 두 눈을 휘둥그레 뜨는 설여원과 최현을 발견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힘 조절에 실패했는지, 하마터면 건물 하나를 통째로 뛰어넘을 뻔했다.
다행히 내가 있는 건물의 끝자락에 착지하며 바닥을 뒹굴었다.
설여원은 두 손을 덜덜 떨며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에 싱겁게 웃으며 물었다.
“어때?”
“뭐야 나? 나 지금…… 10m는 뛴 거 같은데?”
“훨씬 더 뛰었어.”
건물 간의 간격만 4m에 달했다.
건물 사이의 일방통행로를 넘어 반대편 건물 옥상의 끝자락까지 닿았으니, 족히 15m는 넘게 뛰었을 것이다.
최현은 옆구리에 차고 있는 칼집을 손에 쥐더니, 허탈하게 웃으며 얘기했다.
“재형이 네가 왜 무기를 안 쓰는지 알 거 같다.”
“왜?”
“움직일 때 걸리적거려.”
최현의 말에 설여원도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다.
설여원도 어깨에 메고 있던 쇠뇌를 손에 쥐며 얘기했다.
“나도 들고 뛰어야겠다.”
다들 자신감을 얻었다.
이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속도 올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