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150화
회장의 말에 홍 이사는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회장은 목덜미를 주무르며 한숨을 내쉬더니, 홍 이사를 내려다보며 얘기했다.
“너랑 부회장 덕에 게임을 시작한 건 나도 인정한다. 그래서 말단 사원이었던 너랑 김창민 그놈을 지금 이 자리까지 올려줬잖아?”
“그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 이사를 봐. 너랑 부회장에 비하면 내가 챙겨준 게 없잖아.”
성 이사는 헛기침과 함께 홍 이사를 쳐다봤다.
홍 이사는 성 이사를 슬쩍 쳐다보더니,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 숙였다.
회장은 홍 이사의 어깨에 손을 얹더니, 엷은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수성못은, 우리 성 이사한테 양보하자고.”
“회장님…….”
“대신 성 이사가 담당하는 달서구 쉘터를 우리 홍 이사가 담당해. 그럼 됐지?”
홍 이사는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 숙였다.
회장이 대답을 재촉하자,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그럼…… 하나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얘기해.”
“최 부장과 이 과장이 죽었으니…… 저 혼자 달서구 쉘터는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으하핫! 그게 문제였나? 김 차장은 살아 돌아온 거야?”
“네.”
“그럼 김 차장이랑 같이 가.”
회장이 대수롭지 않게 얘기하자, 홍 이사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성 이사님 밑에 차장과 과장만 4명인데 달서구 쉘터 공략에 실패했습니다. 대장 좀비가 더 필요합니다.”
그러자 맞은편에 있던 성 이사가 눈살을 찌푸리며 얘기했다.
“이봐 홍 이사, 실패라니? 거의 함락시킨 쉘터 거저먹는 거면 감사하게 생각해야지.”
홍 이사는 성 이사의 의견을 무시한 채, 회장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김 차장을 부장으로 진화…… 아니, 승진시켜주세요.”
“승진이라…….”
회장은 가만히 턱을 매만지며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오래 지나지 않아 눈꼬리를 치켜뜨며 물었다.
“인간창고에 얼마나 있지?”
“대략 250명 남았습니다.”
회장은 재미난 방안이라도 떠올랐는지,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
“차장이면…… 100명은 먹어야 진화하는 거지?”
“예.”
“인간창고에 굶어 죽어가는 놈들 100명 섭취하라고 해. 부장되면 길거리 좀비들 500마리 섭취하라고 하고. 좀비 창고에 있는 좀비는 절대 먹으면 안 된다?”
좀비 창고에 있는 좀비들은 사지 멀쩡한 A급 좀비들이었다.
팔 하나가 없으면 B급, 다리 하나가 없으면 C급, 이런 식으로 좀비들의 신체 상태에 따라 등급을 매겼다.
마치 고기에 등급을 매기듯이 말이다.
회장의 말에 홍 이사의 눈꼬리가 꿈틀거렸다.
홍 이사는 회장의 눈치를 보더니, 쓴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좀비를 섭취하라는 건…… 김 차장을 이사까지 승진시키시는 겁니까?”
“왜, 김 차장은 이사 되면 안 돼?”
“갑자기 그렇게 승진하면…….”
홍 이사가 불안한 표정을 짓자, 회장은 간사한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왜, 불안해? 경계하고 싶나? 김 차장은 네 사람 아니었어?”
“…….”
“아까는 나더러 본인을 의심하지 말라고 하더니, 막상 본인 상황이 되니 기분이 묘한가 봐?”
회장의 말에 홍 이사는 더는 반박하지 않았다.
결국 홍 이사는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회장은 그제야 상석으로 걸어가 앉으며 얘기했다.
“얘기 끝났으면 그만 나가봐.”
홍 이사가 회장에게 인사를 올리고 밖으로 나가자, 소파에 앉아 있던 성 이사는 그제야 입꼬리를 올리며 얘기했다.
“회장님, 하늘이 저희를 돕나 봅니다.”
“으하핫! 역시 될 놈은 된다니까?”
“부장과 과장이 동시에 죽었다면, 분명 각성한 플레이어가 있을 겁니다.”
“각성 플레이어 10명을 어디서 섭취하나 했는데, 호박이 덩굴째로 굴러들어 오는구나.”
회장은 호쾌하게 웃어젖히며 지금의 들뜬 기분을 감추지 못했다.
회장의 다음 진화 조건이 각성 플레이어 10명 섭취였다.
변종을 섭취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나약한 대장 좀비들, 명령에 따르지 않는 대장 좀비들을 억지로 굶긴 뒤, 변이가 시작되면 그 틈에 섭취해 버리면 그만이었다.
4000의 수하를 거느린 뒤에는 길거리에서 발견되는 변종도 더는 위협이 되지 않았다.
물량으로 밀어붙이면 변종도 잡을 수 있었다.
그렇게 8000의 수하를 거느린 회장이 되었다.
성 이사는 묵은 체증이 내려간 듯, 회장을 쳐다보며 물었다.
“달서구를 버리는 게 내심 아쉽지만, 소를 지키려고 대를 포기할 수는 없지요?”
“당연한 소리.”
“그럼…… 수성못에 있는 플레이어들은 대장 좀비로 만든 뒤에, 변종으로 변이될 기미가 보이면 제가 섭취하겠습니다. 각성 플레이어는 회장님께서 드시지요.”
“좋아 좋아, 혼자서 처리할 수 있겠어?”
“물론이죠. 달서구 쉘터도 회장님이 찔러만 보라고 하셔서 여태 살려둔 거 아닙니까?”
“으하하핫! 잘했어, 잘했어. 그건 그렇고 김창민 부회장은 잘 감시하고 있지?”
“하하하! 물론이죠. 제 밑에 애들이 잘 감시하고 있습니다.”
회장실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문너에서 성 이사와 회장의 웃음소리를 엿듣고 있던 홍 이사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뒤이어 입꼬리를 올리며 혼잣말을 읊조렸다.
“X신들, 좋단다.”
홍 이사는 곧장 김 차장에게 달려갔다.
빛 한 점 들지 않는 창고에서, 김 차장은 홍 이사가 돌아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홍 이사가 돌아오자, 김 차장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어떻게 됐습니까?”
“합당하게 얻어냈어. 눈치 볼 필요 없이 부장이 아니라 이사까지 달아도 돼.”
“정말요? 아아……! 드디어.”
“쉿, 다음 계획은 달서구에서 다시 얘기하자.”
“네, 알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제 형님 소식…… 아니, 부회장님 소식은 없습니까?”
김 차장의 물음에 홍 이사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성 이사랑 박 회장 밑에 놈들의 감시가 너무 삼엄해. 부회장님과 접촉하는 건 달서구를 정리한 뒤에 시도하자.”
“아…… 네.”
“그리고 여기서는 말조심해. 눈이랑 귀가 사방에 있으니까. 우리가 아는 사이라는 거 아무도 몰라야 돼.”
“알겠습니다.”
* * *
“오른쪽 골목 세 마리. 30m.”
“제가 갑니다.”
곽찬혁의 브리핑에 따라 우측 골목으로 나아갔다.
크르르르르…….
인기척을 느낀 좀비들이 목젖을 갈며 이곳을 돌아본다.
뻑!! 떠걱!! 쩍!!
평범한 좀비는 더는 위협이 되지 않았다.
아니, 나뿐만 아니라 일행에게도 위협이 되지 않았다.
전완수와 최현의 스탯은 근력 26, 체력 26, 반사신경 22, 동체 시력 22, 골밀도 18, 표피강화 18이었다.
반사신경, 동체 시력은 내가 조금 더 높지만, 근력과 골밀도는 나보다 높은 수치를 보유하고 있었다.
설여원이 나와 비슷한 수치였으니, 더는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물론 체력과 표피강화는 내가 월등히 높지만, 길거리의 평범한 좀비를 처리할 때는 크게 메리트가 없는 스탯이었다.
전완수와 최현, 설여원은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나처럼 주먹으로 좀비들을 때려잡기 시작했다.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 없다던 설여원마저, 지금은 본인의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들뜬 모습을 보였다.
전완수는 좌측 골목의 좀비를 처리한 뒤, 내 곁으로 붙으며 얘기했다.
“반사신경 이거 미쳤는데? 눈으로 안 봐도 근방의 좀비들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느낌이야.”
“들뜬 건 이해하는데, 절대 방심하지 마. 한번 물리면 끝이니까.”
“알지, 그냥 신기해서.”
일행의 싸움을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심지어 전완수와 설여원은 안개 속에서 시야 확보까지 가능하니, 나보다 더 잘 싸우는 모습을 보였다.
괜스레 라스트아크를 플레이하던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 원래는 이게 맞지.
싸움 방식은 스킬에서 주먹으로 바뀌었지만, 초반에 빠르게 각성하고 게임을 진행하는 게 가장 효과적인 건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게임이 아닌 현실이기에, 오히려 각성이 늦은 편이었다.
다만…… 내가 일행의 성장을 위한 비료가 된 것 같아서, 씁쓸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약해진 게 아니다.
일행이 갑자기 강해졌을 뿐.
그러자 뒤에 있는 곽찬혁이 내 옆으로 붙으며 얘기했다.
“내 위치는 재형이 네 옆인 거 같네.”
곽찬혁도 주먹으로 좀비를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보호대가 없는 탓에 카타나를 들고 있었다.
다들 좀비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된 상태기에, 내 눈이 되어줄 사람은 곽찬혁뿐이었다.
난 곽찬혁과 함께 좀비들을 처리하며 뒤처지지 않도록 열심히 따라붙었다.
설여원은 좀비들을 때려잡다 말고 슬쩍 뒤를 돌아보더니, 앞서 가는 전완수를 쳐다보며 얘기했다.
“완수야 잠깐.”
“왜.”
“현이랑 재형이도 생각해. 거리 벌어지지 않도록 유지해.”
“아, 그래.”
들뜬 전완수는 대형을 이탈하기 일쑤였다.
배려하는 입장에서 배려받는 처지가 되었다.
그래도 불편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든든하다고 해야 좋을까?
어깨를 짓누르던 압박감을, 일행에게 나눠준 기분이었다.
두근.
‘아…….’
그런 그렇고……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심장이 아팠다.
바늘로 찌르는 느낌도 들고, 심장박동이 갑자기 빨라지는 순간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이마에 식은땀이 맺히고, 몸에서 후끈거리는 열기가 느껴졌다.
“후…….”
심호흡을 통해 심박을 조절하며, 잠시나마 걸음을 멈췄다.
그러자 옆에 있던 최현이 싱겁게 웃으며 물었다.
“야, 벌써 지쳤냐?”
지쳐?
무의식적으로 두 눈에 힘을 주며 최현을 쳐다봤다.
“……너 왜 그래.”
순간, 최현은 뒷걸음질 치며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최현의 뒤에 있는 이름 모를 빌라의 유리문으로 내 모습이 비쳤다.
그리고 난…… 변종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최현을 쳐다보고 있다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살기.
난 황급히 시선을 돌리며 얘기했다.
“기절했다가 정신을 차려서 그런지…… 좀 지치네.”
애써 엷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자, 최현은 마른침을 삼키며 앞서가는 일행을 불렀다.
“야 잠깐만! 조금만 쉬었다 가자.”
그러자 선두에 있던 설여원과 전완수가 내 곁으로 달려왔다.
설여원은 내 모습을 보고 두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내 팔을 잡으며 물었다.
“재형아 괜찮아? 너 안색이 안 좋아.”
“괜찮아.”
전완수도 내 모습을 위아래로 훑더니, 싱겁게 웃으며 얘기했다.
“갑자기 왜 그래? 박재형답지 않게.”
“…….”
머릿속으로 ‘나 다운 게 뭔데’라는 질문이 스쳐 지나갔다.
이런 생각이 왜 들지?
아니, 내가 왜 이러지?
말로는 형용하기 어려운 떨림.
마치 분노조절장애에 걸린 것처럼 사소한 일에 화가 치밀어 오르는 느낌.
문득, 이와 비슷한 감정을 느낀 순간이 떠올랐다.
좀비화 중에 느끼는 감정과 비슷했다.
이유 없는 분노, 정해진 대상이 없는 폭력성.
난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수성못에서 좀비화를 쿨타임마다 사용한 탓인가?
아니면 광폭화와 광란까지 사용해서?
심장이 떨린다.
난 몇 번이고 심호흡하며 심박을 되돌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좀비를 죽이기 위해 괴물의 힘을 빌렸다가, 나 자신이 괴물이 되어가는 기분이었다.
설여원의 내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더니, 가방에서 수건을 꺼내어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주었다.
“너 괜찮은 거 맞아? 왜 이렇게 땀을 흘려.”
“애, 애들아. 여기…… 너무 덥지 않아?”
일행을 쳐다보며 묻자, 다들 당혹감이 묻어나는 표정으로 내 얼굴을 쳐다봤다.
설여원은 뒤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왜 저렇게 쳐다보지?
난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맞은편에 있는 유리문을 쳐다봤다.
희뿌연 안개 너머로, 바닥에 주저앉은 내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난……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는 것을 느꼈다.
유리에 비친 내가 이상하다.
왜…… 눈이 검은색이지?
전완수는 내 얼굴을 쳐다보더니, 말까지 더듬으며 물었다.
“야, 너 좀비화 썼어?”
그러자 옆에 있던 최현이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아직 재사용 대기시간 아니야? 아직 12시간 안 됐어.”
난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폐부 깊숙이 숨을 들이쉬고, 천천히 내쉬었다.
3초간 들이쉬고, 6초간 뱉으며 가슴이 진정될 때까지 반복했다.
그렇게 5분간 진행한 끝에, 서서히 맥박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다시금 눈을 뜨자, 새까맣게 변했던 안구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일행이 불안한 눈빛으로 쳐다보기에, 나 역시 마른침을 삼키며 얘기했다.
“한동안…… 우리 거리 두는 게 좋을 거 같다.”
“왜 그러는 거야? 홀로그램 뜬 거 없어?”
“홀로그램 떴으면 너희한테도 보였겠지.”
나도 영문을 모르겠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스스로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어쩌면…… 게임에 없던 좀비화라는 스킬이, 내겐 양날의 검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