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149화
설여원은 뚱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쳐다봤다.
이에 태연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제작자가 캐릭터 각성에 신체 능력 향상을 넣었다는 건, 그만큼 좀비들이 강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거야.”
“…….”
“여원이 네가 언제나 옳은 말만 하는 거 알아. 하지만 나중에는…… 좀비 카운트 올릴 기회조차 없을지도 몰라.”
“나는…….”
설여원은 입술을 굳게 다문 채 더는 반박하지 않았다.
이에 설여원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세 번째 에피소드 들어서면,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힘들 거야.”
“독 안개 제거도 할 수 있으니 이제 걱정할 필요 없잖아.”
“독 안개도 독 안개지만, 너는 변종에 대해서 잘 모르잖아.”
“해봤자 지금 알파 변종이랑 똑같은 수준 아니야? 그럼 충분히 잡을 수 있잖아.”
“게임처럼 흘러간다면 세 번째 에피소드 시작하자마자 베타, 감마, 델타가 나올 거야. 지금은 난이도가 올라갔으니 뭐가 더 나올지도 모르고.”
설여원은 한층 차분해진 목소리로 물었다.
“많이 강해? 베타, 감마, 델타가 미확인 변종보다 강해?”
“그건 아니야. 그건 아니지만…… 시너지가 문제야.”
“시너지?”
“우리도 각 직업군이 모이면 생존에 유리한 것처럼, 변종들도 종류가 많아지면 시너지가 발생해.”
“예를 들면…… 어떤 시너지?”
“내가 예전에 얘기했지? 베타 변종의 별명이 개구리라고.”
차분하게 묻자, 설여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기억나.”
“베타가 혓바닥으로 우릴 잡아끄는 상황에, 다른 좀비나 변종이 달려든다고 생각해 봐.”
설여원은 마른침을 삼키며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일행도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기에, 난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감마 변종의 별명은 풍선이야.”
“풍선?”
전완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시선을 사선으로 두었다.
상상의 나라를 펼치는 것으로 보였다.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풍선을 생각하는 건가?
문제는…… 전완수의 생각이 맞다는 것.
난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감마는 속도가 느린 대신 몸을 부풀려서 20m 높이까지 올라갈 수 있어.”
“쇠뇌로 터뜨리면 어떻게 돼?”
최현의 물음에 좋은 지적이라는 말과 함께 얘기했다.
“멀리서 터뜨리는 건 몰라도, 가까운 거리에선 절대로 죽여선 안 돼.”
“변종을 죽이면 안 된다고?”
“감마는 움직이는 폭탄이야. 게임에서는 가까운 거리에서 감마를 처리하면 전멸이었어.”
일행은 넋이 나간 표정을 지으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최현은 마른침을 삼키며 긴장한 모습을 보이더니, 귓불을 만지작거리며 조심스레 물었다.
“그럼…… 델타는 뭐야?”
“델타부터 문제가 많아져.”
“지금까지 나온 놈들도 충분히 문제가 많은데?”
최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일행을 쳐다봤다.
소리결 파티원은 세 번째 에피소드를 경험한 적이 없다.
이정우도 세 번째 에피소드 초반까지 경험한 게 전부였기에, 변종과 좀비의 시너지가 얼마나 위험한지 모를 것이다.
난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델타는 뒤에서 보면 사람처럼 생겼어.”
“사람?”
최현은 한쪽 눈꼬리를 치켜뜨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들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기에, 눈썹을 긁적이며 얘기했다.
“난이도가 달라져서 내가 아는 정보랑 달라질 수도 있는데, 지금 들어야겠어?”
“그래도 알아두는 게 좋잖아.”
내 이야기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던 곽찬혁이 입을 열었다.
라스트아크를 플레이한 건 맞지만, 그는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하는 말을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하기 위해, 수첩까지 펼쳐서 받아적고 있었다.
결국 델타에 대해서도 들려주었다.
“델타는 뒤에서 보면 사람 같지만…… 앞에서 보면 단번에 변종이라는 걸 알 수 있어요.”
“왜?”
“눈이랑 코가 없거든요.”
곽찬혁은 열심히 볼펜을 움직이다 말고 어벙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쳐다봤다.
“누, 눈이랑 코가 없어?”
“네. 입이랑 귀만 존재하고, 어둡고 비좁은 곳을 좋아해요.”
“그럼…… 만날 일이 거의 없지 않을까? 굳이 비좁은 곳을…….”
“저희가 위험할 때 어디에 몸을 숨겨요?”
곽찬혁을 쳐다보며 묻자,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뒤이어 상체를 부르르 떨더니, 양팔을 문지르며 물었다.
“위험해서 숨은 곳에, 델타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거야?”
“네.”
“그럼 가브리엘이 없으면 어떻게 살아남아?”
“델타를 때려죽일 힘이 없으면 못 살아남는 거죠.”
그러자 옆에 있던 최현이 목을 가다듬으며 물었다.
“다른 방법은 없어? 꼭 눈으로 보지 않더라도 델타를 감지하는 방법이라거나…….”
“있긴 있어.”
“뭔데?”
“우는 소리가 들리면 일단 도망쳐.”
최현은 사레들린 사람처럼 기침을 하더니, 퍼석한 입술을 핥으며 되물었다.
“우는 소리? 변종이 울어?”
“여자 우는 소리.”
옆에 있던 전완수는 상체를 부르르 떨더니,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오우 씨…… 처녀 귀신이야 뭐야.”
“맞아. 딱 처녀 귀신 흐느끼는 소리야.”
“…….”
“이유는 모르겠지만, 감마 변종은 대부분 남자들이 많이 변하고, 델타 변종은 여자들이 많이 변하거든.”
일행은 아무런 대답도 없이 고개만 연신 끄덕였다.
설여원은 다소 겁먹은 표정을 짓더니,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재형이 너는…… 변종들 감지하는 방법 아는 거지?”
“알파랑 베타는 눈으로 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어. 대신 감마는 그림자, 델타는 방금 얘기했다시피 울음소리로 감지할 수 있고.”
“그림자?”
“20m 위로 날아다니면 그림자가 생기거든. 이유 없이 머리 위에 그림자 생기면 감마 떴다고 생각하면 돼.”
최현은 가만히 생각을 정리하더니, 내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다.
“잠깐만, 머리 위에 감마가 떴을 때, 급하다고 아무 건물이나 들어가면 델타를 만날지도 모르는 거야?”
“맞아.”
“그럼 어떻게 해야 돼?”
“무작정 건물에 숨지 말고 일정한 거리 유지하면서 공중에 있는 감마를 처리해야지.”
“그럼 높은 곳으로 올라간 뒤에 안전거리 확보하고…….”
“높은 곳에 있으면 베타한테 잡혀갈 수도 있고.”
“……그럼 어떻게 하라는 거야?”
“그러니 불필요한 위험을 감수해서라도 지금 기회가 왔을 때 강해져야 한다고.”
설여원을 쳐다보며 얘기하자, 설여원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더는 반박하지 않았다.
이에 쓴웃음을 지으며 얘기했다.
“걱정하지 마. 아무것도 모르면 당할 수 있지만, 지금은 내가 있잖아.”
“…….”
“캐릭터 각성에 신체 능력 증가를 넣어준 건…… 제작자도 우리가 클리어하길 바라는 거 아닐까?”
최대한 긍정적인 방향으로 얘기하자, 설여원은 한 차례 심호흡과 함께 얘기했다.
“그럼…… 가는 길에 좀비들 정리하면서 가자.”
“잘 생각했어.”
모두의 동의를 얻고, 우린 무기를 챙기서 밖으로 나갔다.
* * *
“확실한 거야?”
“제가 분명히 봤습니다.”
햇빛이 들지 않는 이름 모를 창고에서 속삭이는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정체 모를 여자는 앞에 있는 남자를 쳐다보며 물었다.
“김 차장이 나한테 거짓말할 사람은 아니니까 나도 믿어. 믿긴 믿는데…….”
“홍 이사님, 제 말을 믿으셔야 합니다. 이 과장과 최 부장이 당했어요.”
“확실하게 죽은 거지?”
“예, 제가 시체까지 확인하고 왔습니다.”
“적들의 무장 상태는 확인했어?”
“총성은 못 들었고, 최 부장의 몸에 화살 맞은 구멍이 있었습니다.”
홍 이사라 불린 여자는 가만히 턱을 매만지더니, 오래 지나지 않아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수성못에 생존자라…… 이 과장과 최 부장이 당할 정도면 숫자도 꽤 되나 봐?”
“거리가 멀어서 생존자들의 숫자는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좀비 1천 마리 이상을 처리할 정도면 최소한 400에서 500명은 되겠지. 전부 무장했을 가능성이 높고.”
김 차장은 대명동으로 곧장 돌아오지 않고, 수성못으로 향한 최 부장과 이 과장의 뒤를 밟았다.
그들이 생존자를 몰래 섭취하는 걸 확인하기 위함이 아니라, 밤거리를 울리는 좀비들의 울음소리 때문이었다.
좀비들의 함성을 듣고 다른 세력과 싸움이 붙었구나, 하고 생각은 했지만, 싸움이 40분가량 이어질 줄은 몰랐다.
괜히 싸움에 끼어서 득 될 게 없기에, 그는 소리가 잦아들 때까지 쥐 죽은 듯이 기다렸다.
마침내 소리가 잦아든 거리로 나왔을 때, 김 차장의 눈에 들어온 건 사망한 최 부장의 시체였다.
얼룩진 핏자국을 따라 수성못 뒷길로 향하자, 그곳은 지옥도나 다름없었다.
1400마리에 가까운 좀비들이 전부 사망하고, 머리가 터진 이 과장의 시체도 확인할 수 있었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한 김 차장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명동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지금, 본인의 상사인 홍 이사에게 모든 걸 털어놓고 있었다.
홍 이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수고 많았어. 김 차장이 살아 돌아와서 다행이야.”
“하지만 최 부장과 이 과장이…….”
“어차피 최 부장이나 이 과장이나, 그 깡패 놈들 걸리적거렸는데 잘 됐지 뭐. 애초에 그 둘은 믿음도 안 가고, 회장의 첩자일 수도 있어서 불안했거든.”
“그럼…….”
김 차장이 조심스레 홍 이사를 쳐다보며 말끝을 흐리자, 홍 이사는 싱겁게 웃으며 얘기했다.
“걱정하지 마. 회장한테 보고 올리고, 김 차장이 진화할 수 있도록 적절한 조처를 부탁할 테니까.”
“제가 강해지면, 그 뒤에 제 형님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부회장님?”
“네.”
홍 이사는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생각을 정리하더니, 오래 지나지 않아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나한테 생각이 있어. 너도, 네 형도, 내가 이렇게 두지 않을 거야.”
“그럼…… 저는 이사님만 믿겠습니다.”
홍 이사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김 차장의 등을 토닥였다.
뒤이어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거리로 나와, 곧장 지하철 안지랑역 앞에 위치한 어느 건물로 향했다.
건물의 10층까지 올라간 뒤, 방문을 노크하며 얘기했다.
“회장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와.”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드넓은 거실에 소파와 탁자, 책상 등이 놓여있었다.
홍 이사는 소파에 앉아 있는 남자를 보고 눈꼬리를 꿈틀거리더니, 애써 엷은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성 이사님이 계신 줄은 몰랐네요. 나중에 다시 오겠습니다.”
“괜찮아, 와서 앉아.”
상석에 있는 회장이 대수롭지 않게 얘기하자, 홍 이사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소파로 걸어가 앉았다.
탁자를 앞에 두고 마주 앉은 성 이사와 홍 이사.
둘 사이로 미묘한 신경전이 오갔다.
회장은 두 사람의 표정을 살피더니, 콧방귀를 뀌며 얘기했다.
“우리 이사님들,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라도 났어?”
회장은 와인잔을 돌리며 둘의 신경전을 재미나게 지켜봤다.
둘 다 함묵하는 모습을 보이자, 회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홍 이사, 무슨 일로 여기까지 왔나?”
“수성못에서 생존자를 발견했습니다.”
홍 이사가 덤덤하게 대답하자, 회장은 눈살을 찌푸리며 얘기했다.
“생존자는 여기도 많아. 내가 분명히 얘기했을 텐데? 플레이어를 찾아오라고.”
“상당수의 플레이어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홍 이사의 표정으로 태연함이 엿보이자, 회장은 눈꼬리를 치켜뜨며 물었다.
“몇 명.”
“생존자의 규모는 대략 400에서 500명으로 추정되고, 플레이어는 최소 40명 이상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홍 이사의 대답에 회장은 움찔거리는 모습을 보이더니, 들고 있던 와인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40명…… 이상이라고?”
“예.”
“근거는.”
“이 과장과 최 부장이 죽었고, 그들의 수하도 전멸했습니다.”
부장이 죽었다는 말에 회장은 손깍지를 끼며 수성못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뒤이어 성 이사를 쳐다보며 물었다.
“성 이사, 달서구 쉘터는 아직이야?”
“네, 생각보다 생존자들의 저항이 거센 편입니다.”
“거긴 플레이어 몇 명이라고 했지?”
“파악된 플레이어는 8명이고, 생존자는 300명입니다.”
“네가 과장, 차장급 애들 몇 명이나 데리고 있지?”
“4명 데리고 있습니다.”
“너는 밑에 애들 한 명도 안 죽었지?”
“네.”
회장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홍 이사를 쳐다보며 물었다.
“플레이어 8명 있는 쉘터가 과장이나 차장을 못 죽였는데, 지금 부장이 죽었다는 거지?”
“예.”
회장은 입술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럼 플레이어만 40명이 넘는다는 것도…… 근거 없는 소리는 아니네?”
“회장님께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홍 이사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회장을 쳐다봤다.
회장은 의자 등받이에 상체를 기울이며 잠시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오래 지나지 않아 얘기하라는 시늉을 보였다.
홍 이사는 한 차례 숨을 고르며 얘기했다.
“부회장님과 함께 이동하겠습니다.”
“부회장은 중앙로 정리하느라 바쁜 거 알잖아.”
회장이 단칼에 거절하자, 홍 이사는 눈살을 찌푸리며 얘기했다.
“회장님.”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회장님이 라스트아크를 플레이하신 것도, 저와 부회장님 덕 아닙니까?”
“갑자기 그 얘기가 왜 나와?”
“저희가 회식 끝나고 2차로 PC방 안 갔으면 회장님도 평범한 좀비, 혹은 생존자로 남으셨을 겁니다.”
“내가 그걸 몰라? 그래서 홍 이사 밑으로 부장급 넣어준 거 아니야?”
“이 과장이나 최 부장, 그 길거리 조폭 출신들이요? 관리하기 귀찮아서 저한테 떠넘기신 거 아닙니까?”
“뭐?”
회장이 미간을 찌푸리며 홍 이사를 노려보자,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두 주먹을 꼭 쥐었다.
뒤이어 본인의 의사를 조곤조곤 얘기했다.
“회장님이…… 저와 부회장님을 경계하는 거 압니다. 하지만 저희가 회장님을 실망시킨 적 있습니까?”
“경계?”
회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홍 이사의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그녀와 눈높이를 맞추며 얘기했다.
“애야, 경계라는 건 말이다. 자기보다 강한 놈한테 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