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148화
“별로 안 놀랍나 봐?”
그러자 최현은 격하게 손사래 치며 대답했다.
“아니요, 그런 게 아니라…… 에피소드가 끝나야 파티 설정이 가능한 거로 아는데, 혹시 시스템 에러의 일종인가 싶어서요.”
“에러는 아닌 거 같아. 소리결을 도와 각성에 성공한 플레이어들에게 특전이 주어진다는 홀로그램이 떴거든.”
“특전이요?”
“응, 그리고 너희 파티도 달라졌을걸? 이정우 씨도 새로운 홀로그램 확인했다고 들었어.”
“우리한텐 아무것도 안 떴는데요?”
“파티장만 뜨는 거 같아.”
파티장이란 말에 최현은 금세 수긍하더니, 콧잔등을 긁적이며 물었다.
“무슨 홀로그램인지 들었어요?”
“뭐라더라, 공격대 구성? 너희랑 우리랑 같은 파티는 아닌데, 서로 연결되는 관계라고 하던데?”
최현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설여원은 곧장 파티창을 열고 뭐가 달라졌는지 살폈다.
-파티명: 소리결(제1파티)
소리결, 이라고 적혀 있던 파티명의 옆으로 제1파티라는 글자가 생겼다.
전완수와 최현은 설여원의 홀로그램을 옆에서 살피더니, 둘 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여원아, 이런 거 라스트아크에서 본 적 있어?”
“나도 처음 봐. 이건…… 꼭 RPG게임에서 공격대 구성할 때 나오는 표시 같지 않아?”
“공격대? 라스트아크는 싱글 플레이만 가능한 게임이잖아. 그런데 공격대가 왜 나와?”
“어쩌면 온라인 플레이가 가능하도록 테스트를 하려고 했을지도 모르지. 다른 캐릭터를 NPC로 두는 게 아니라, 유저들끼리 활동할 수 있도록 말이야.”
“제작자가 난이도를 높이면서 온라인 플레이가 가능하도록 만들고, 공격대 시스템을 도입할 계획이었다, 이거야?”
“그렇지, 그리고 그걸…… 컴퓨터가 아닌 현실 세계에 적용해 버린 거지.”
공격대 시스템.
대부분의 RPG게임에 있는 시스템이었다.
파티 하나로 클리어할 수 없는 레이드를 공략하기 위해, 여러 파티가 힘을 모아 던전을 클리어하는 걸 공격대라고 했다.
최현은 가만히 턱을 매만지며 생각을 정리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불가능한 가설은 아니야. 난이도가 올라가면서 설정 자체가 달라진 부분도 많고, 지금은 현실이 온라인이나 다를 바 없는 상황이니까.”
그러자 옆에 있던 전완수가 구레나룻을 긁적이며 물었다.
“그럼 혜택 같은 건 없나? 공격대에 속한 파티끼리 공유되는 거.”
“찬혁 오빠, 아까 파티끼리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하셨죠? 그게 뭐예요?”
설여원의 물음에 곽찬혁은 플레이어 정보를 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일행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자 곽찬혁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공격대끼리는 홀로그램도 확인할 수 있어. 그리고 습득 코인도 절반은 공유되고.”
곽찬혁의 설명에 전완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습득 코인이 공유된다는 게 무슨 말이에요?”
“소리결 파티원이 좀비를 잡아도 우리 황금동 파티한테 코인이 들어온다는 거지.”
“그게 절반이라는 거예요?”
“맞아, 너희가 0.1코인을 얻으면 우린 0.05코인.”
“반대로 황금동 파티가 좀비를 잡아도 저희한테 0.05코인이 들어와요?”
“맞아.”
하나의 파티로 인정해 주진 않지만, 하나의 공격대로 인정해 주는 시스템.
좀비들만 똘똘 뭉치는 게 아니라, 플레이어끼리도 뭉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었다.
뒤이어 설여원은 플레이어 정보를 확인하며 어? 하는 탄성을 뱉었다.
이에 모든 일행이 설여원의 홀로그램을 살폈다.
설여원의 근력이 20에서 22로 증가한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전완수와 최현은 그 모습을 보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각자의 홀로그렘을 살폈다.
두 사람은 24였던 근력이 26으로 증가했다.
근력 외에 다른 스탯도 증가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행이 설명을 바라는 표정으로 곽찬혁을 쳐다보자, 곽찬혁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각성 레이첼의 패시브 스킬이 파티원의 신체 능력 1.5배 증가지? 공격대원은 1.2배 증가시켜줘.”
“전체 능력치 기준이 아니라 기본 스탯 기준 1.2배인 모양이네요?”
설여원이 묻자, 곽찬혁도 홀로그램을 살피며 얘기했다.
“맞아, 기본 신체 능력 기준으로 1.2배. 그리고 소수점은 반올림되는 거 같아.”
설여원의 근력은 10(+12)으로 표기되어있었다.
이는 뒤에 붙은 12중 10은 이정우와 정진영의 버프고, 나머지 2는 강요한의 버프라는 말이 된다.
곽찬혁의 설명에 일행은 연달아 감탄사를 터뜨리며 올라가는 입꼬리를 주체하지 못했다.
각성 한 번 했을 뿐인데, 엄청난 변화가 찾아왔다.
전완수는 곤히 잠든 박재형을 쳐다보며 혼잣말을 읊조렸다.
“이래서 재형이가 각성, 각성, 그렇게 노래를 불렀구나.”
최현은 전완수의 말을 듣고 싱겁게 웃으며 얘기했다.
“재형이도 이렇게 많이 증가할 줄은 몰랐을걸? 라스트아크에는 각성을 통한 신체 능력 증가는 없었으니까.”
“그런가?”
“일어나서 어떤 표정 지을지 궁금하네.”
곤히 잠든 박재형의 얼굴을 보고, 다들 엷은 미소를 머금었다.
* * *
새벽 어스름의 위로 여명이 밝아올 무렵, 난 묵직한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정신을 차렸다.
지끈거리는 두통으로 인해 이마를 짚으며 상체를 일으키자, 옆에서 곤히 잠든 전완수와 최현, 설여원의 얼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전완수의 얼굴이 너무 가까워서 반사적으로 움찔거렸지만, 좀비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밤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라도, 우린 4층 카페로 돌아온 상태였다.
흩어졌던 기억의 조각을 하나씩 모으며, 광란에 빠진 내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천천히 떠올렸다.
호텔 옥상에서 미확인 변종 하나를 순식간에 처리한 건 기억이 난다.
다른 하나는…… 실컷 두들겨 패고 수성 스퀘어로 집어 던졌던 기억이 있다.
그 뒤의 상황은 아무리 떠올려도 기억나지 않았다.
미확인 변종을 전부 처리한 뒤에 일행의 얼굴을 봤던 것 같기도 하고…….
모든 기억이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모호했다.
“어? 재형아.”
뒤이어 창가에 앉아 있던 곽찬혁이 인기척을 느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내 곁으로 걸어왔다.
“아, 찬혁이 형.”
“몸은 좀 어때. 괜찮아?”
“네, 그런데 여긴…… 어떻게 온 거예요?”
곽찬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내 등을 토닥이더니,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어젯밤의 일들을 상세하게 들려주었다.
그를 통해 내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 수 있었고, 파티 황금동에 관한 이야기, 공격대에 관한 이야기까지 전해 들을 수 있었다.
갑작스레 너무 많은 정보가 들어오니, 머릿속으로 혼란이 빚어졌다.
고개를 저으며 멍한 정신을 다잡자, 곽찬혁은 내게 미지근한 물을 건네며 얘기했다.
“물부터 마시고, 천천히 홀로그램 확인해 봐.”
“아…… 네. 감사합니다.”
곽찬혁이 건네주는 물로 텁텁한 목부터 축이고, 일행이 깨기 전에 홀로그램을 확인했다.
플레이어 정보를 확인하려는 순간, 눈앞으로 연달아 떠오르는 문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에덤 화이트의 기본 능력은 강화입니다. 추가적인 강화 효과를 받을 수 없습니다.
-레이첼의 패시브 스킬 효과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에덤 화이트는 각성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신체 능력 증가 효과를 받을 수 없습니다.
레이첼의 패시브 스킬 효과?
신체 능력 증가 효과?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의 연속이었다.
결국 곽찬혁을 찾아가서 상세한 설명을 부탁했다.
내가 아무런 효과도 못 받는다고 하자, 곽찬혁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뒤이어 각성 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일행의 신체에 발생한 변화까지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모든 설명을 듣고 벌어지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설여원의 근력이 22, 전완수와 최현의 근력이 26이라고?
26이면…… 나보다 근력이 높은데?
이거 맞아?
난 왜 아무것도 안 줘!
심호흡으로 감정을 추스르고, 현실적으로 생각했다.
그래, 일행이 강해지면 모두에게 좋은 것이다.
더는 나 혼자 생쇼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니, 긍정적으로 생각해야겠다.
그건 그렇고, 에덤은 정말 아무런 효과도 못 얻은 건가?
아쉬운 마음에 모든 홀로그램을 확인했다.
[에덤 화이트의 스킬 강화권]
[에덤 화이트의 스킬 강화권]
[에덤 화이트의 스킬 강화권]
플레이어 정보를 확인하는 찰나, 눈앞으로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스킬 강화권 3장?
이게 다야?
아니지, 이게 뭔데?
스킬 강화권의 옆으로 느낌표가 반짝이기에, 조심스레 느낌표를 눌렀다.
[에덤 화이트의 스킬 강화권]
-에덤 화이트는 레이첼의 버프를 받을 수 없기에, 제작자가 특별 제작한 에덤 화이트 전용 스킬 강화권입니다.
-선택한 스킬의 레벨이 몇이든, 강제로 높여줍니다.
들어보니 레이첼의 패시브 효과가 신체 능력의 1.5배 증가라는데, 그걸 고작 스킬 강화권으로 바꿔준다고?
먹고 떨어져라, 이런 것도 아니고 무슨…….
어처구니없는 마음에 욕부터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그런데 스킬의 레벨이 몇이든 강제로 높여준다면…… 스킬이 최고 레벨에 도달해도 높여주는 건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스킬 좀비화에 강화권을 사용했다.
-강화할 수 없는 스킬입니다.
안 되는 건 안 되는구나.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고민 끝에 홀로그램을 닫았다.
지금은 강화권을 쓸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스킬은 레벨을 높일수록 요구 포인트가 2배 증가하기에, 되도록 묵혀두는 게 좋다.
광폭화의 경우 스킬 사용 조건에 정신력 150이 붙어 있었으니, 어쩌면 150 포인트를 투자해야 레벨업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Lv.2에서 Lv.3을 만들기 위한 포인트는 300.
300포인트를 얻기 위해선 좀비 3000마리를 죽이는 것과 같은 격이기에, 강화권은 최대한 아끼는 게 이롭다.
생각을 정리하고 일행을 돌아보자, 몸을 뒤척이던 설여원이 두 눈을 게슴츠레 뜨며 내 얼굴을 쳐다봤다.
“어…… 어? 박재형!”
설여원은 쌍꺼풀진 눈을 휘둥그레 뜨며 벌떡 일어났다.
뒤이어 내 전신을 훑으며 물었다.
“너 괜찮아? 언제 일어났어!”
설여원의 목소리에 자고 있던 전완수와 최현도 오만상을 찌푸리며 깨어났다.
곧 너도나도 내 이름을 부르며 괜찮냐는 말을 건넸다.
이렇게 반겨주는 사람들이 있는데 어떻게 안 괜찮을 수 있겠는가?
당연히 괜찮지.
아무리 힘들어도, 친구들 덕에 없던 힘도 생기는 기분이었다.
* * *
각 캐릭터의 변화를 들으며 간단하게 아침을 먹었다.
일행은 신체 능력뿐만 아니라 새로운 스킬도 획득했다고 한다.
데니에게 생긴 마리오네트.
가브리엘에게 생긴 독 안개 제거.
레이첼에게 생긴 파티원 버프.
로즈에겐 어떤 스킬이 생겼을까?
돌아가면 박재우와 황덕록에게 물어봐야겠다.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우린 무기를 정비하며 움직일 채비에 나섰다.
설여원은 황금동 쉘터에 있는 일행을 불러서 좀비카로 이동하자고 했지만, 이를 전완수와 최현이 반대했다.
쉘터에 있는 일행이 걱정돼서 반대한 게 아니라, 전완수와 최현은 골목에 숨어있는 좀비를 처리하며 돌아가자고 했다.
전완수는 남은 볼트를 확인하며 얘기했다.
“지금 신체 능력이면 우리도 재형이처럼 좀비를 때려잡을 수 있는 수준이야. 지금이 코인 모을 기회 아니야?”
“이건 게임이 아니야. 현실이라고. 우리가 RPG 게임 사냥터 나가는 줄 알아? 코인 모으려다 감염되면 어쩌려고?”
설여원이 반박하자, 지켜보던 최현은 구레나룻을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여원아, 이번엔 나도 완수랑 같은 의견이야.”
“현이 너까지 이러기야?”
“대장 좀비들이 뭉치기 시작하면 우리에게 불리한 상황은 계속 생길 거야. 그전에 힘을 키우는 게 맞아.”
“나도 알아. 나도 아는데…… 굳이 불필요한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다는 거지.”
“아니, 지금 불필요한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나중에 더 힘들어져.”
최현이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자, 설여원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내 얼굴을 쳐다봤다.
이에 어깨를 으쓱이자, 설여원은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물었다.
“재형이 너도 같은 생각이야?”
“솔직하게 얘기해도 돼?”
“솔직하게 얘기해.”
“현이 의견에 동감이야.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게 맞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