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143화
혈관이 검게 물들고, 전신이 불가마에 들어간 것처럼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두 주먹을 으스러질 듯 말아쥐며 이를 갈았다.
“크하…….”
이마 위로 솟아오른 핏대가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폐부에 들어찬 뜨거운 숨결이 입 밖으로 흘러나오고, 모든 생명체를 갈가리 찢어 죽일 기세로 놈들을 직시했다.
좌측에 있던 미확인 변종은 갑작스레 변화한 내 모습에 움찔거리는 모습을 보이더니, 저자세를 취하며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다.
껴어어어억!!
반면에 우측에 있는 미확인 변종은 괴성을 내지르며 광분한 모습을 보였다.
쾅!!
곧 수영장 바닥을 박차며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미확인 변종의 움직임은 이미 인간의 범주를 벗어났다.
이동속도부터 탄력, 방어력, 지능까지, 모든 것이 알파 변종보다 월등했다.
알집을 깨고 태어난 새 생명처럼, 모든 것이 업그레이드된 놈들이었다.
7m가량을 뛰어올라 하나의 유성우처럼 내 머리 위로 날아드는 미확인 변종.
그런 미확인 변종의 움직임조차, 내겐 위협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기존 능력치를 2배 강화하는 좀비화, 거기서 2배를 더 증가시키는 광폭화.
이는 최대 수치에 도달한 반사신경과 동체 시력에도 영향을 주기에, 내겐 미확인 변종의 움직임이 평범한 인간이나 다름없었다.
미확인 변종의 정확한 힘을 측정하기 위해, 놈의 주먹을 향해 오른팔을 내질렀다.
쾅!!!
주먹과 주먹의 마찰.
3m에 달하는 기다란 팔이 휘두르는 공격은 예사롭지 않았다.
철문의 경첩이 일격에 틀어진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하지만 미확인 변종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쏜살같이 뒷걸음질 치는 모습을 보였다.
한 대 받았으니, 이제 내 차례.
질질 끌어서 좋을 게 없다.
“가속.”
쾅!!!!
지면을 박차며 노도와 같이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좁혀지는 거리.
미확인 변종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다급히 양손으로 얼굴을 방어했다.
쩍!!!!
놈의 기다랗고 두꺼운 팔에 주먹을 내지르자, 단단한 시멘트벽이 무너지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미확인 변종의 오른팔이 움푹 파이고, 뼈가 부러지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재빨리 왼발을 앞으로 내디디며 하체에 무게를 싣고, 왼손으로 놈의 옆구리와 하복부에 연타를 가했다.
쩍!!! 뻑!!!
껴억……!
변종의 입에서 숨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오고, 상체가 반쯤 접히며 얼굴을 방어하고 있던 기다란 팔이 풀리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키가 커서 그런지, 변종의 허리가 접혀야 나와 눈높이가 맞았다.
가드가 풀렸다.
기회다.
재빨리 허리와 어깨를 비틀어 놈의 관자놀이를 향해 라이트 훅을 내질렀다.
빡!!
관자놀이에 적중할 줄 알았는데, 변종은 그 짧은 찰나에 숄더가드를 올려 얼굴을 방어했다.
3m에 달하는 팔길이를 지니고 있어서 그런지, 관절의 움직임부터 기괴했다.
예상할 수 없는 범위에서 기이하게 휘어지는 팔의 움직임.
걸리적거리기 짝이 없다.
뒤이어 방어를 마친 변종의 왼팔이 일직선으로 내 가슴을 향해 날아들었다.
오른팔만 뼈가 부러진 건가?
왼팔은 멀쩡한 상태였다.
난 왼발을 주축으로 지면을 박차고 뛰어올라, 머리와 허리, 골반 순으로 비틀며 오른발로 돌려차기를 날렸다.
쩍!!!
뒤꿈치로 느껴지는 묵직한 타격감.
마치 크고 거대한 바위에 발길질을 가한 것처럼, 내게도 진동이 전해졌다.
착지하며 변종의 모습을 살피자, 미확인 변종의 머리가 90도로 꺾인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징그럽게 생긴 미확인 변종의 귀에 충격의 여파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미확인 변종의 귀에서 검붉은 피가 터져 나오고, 5㎝ 정도 파인 것으로 보아 최소한 두개골에 금이 가거나 깨진 것으로 보였다.
마무리를 가하기 위해 다시 한번 하체를 접는 찰나, 우측에서 날아드는 한기를 느꼈다.
‘막아야 돼.’
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피하기엔 늦었고, 막지 않으면 치명상이라는 걸.
황급히 가드를 올려 얼굴을 방어했다.
쾅!!!
가드를 올리자마자 묵직한 타격감과 함께 중력을 거스르는 부유감이 느껴졌다.
난 좌측으로 5m가량을 뒹군 뒤, 재빨리 균형을 잡으며 변종의 움직임에 집중했다.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또 다른 미확인 변종이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놈은 조심해야 한다.
오른팔이 부러진 녀석은 저돌적인 성향을 지녔지만, 저놈은 아니다.
물이 해롭지 않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도 빨랐고, 내게 섣불리 달려들지도 않았다.
싸움을 지켜본 것만 봐도, 놈의 예리함을 알 수 있었다.
이는…… 저놈의 인지능력이 옆에 놈보다 뛰어나다는 말이 된다.
미확인 변종은 개체마다 특색이 존재하는 건가?
알파 변종까지는 크게 차이가 없었는데, 미확인 변종부터는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까다로운 놈.”
두 팔을 빙빙 돌리며 뼈의 이상을 살폈다.
다행히 부러진 곳은 없는 것 같다.
급가속의 지속시간이 끝났다.
15초 이내에 한 놈은 처리해야 했는데, 침착한 변종 때문에 실패했다.
껴걱…… 컥! 껴어어억…….
한쪽 귀가 찌그러진 놈은 상체를 일으키며 내 얼굴을 돌아보더니, 광분한 모습으로 포효를 내질렀다.
껴어어어어어억!!!
분기에 휩싸인 놈이 괴성을 내지르며 달려들자, 침착한 성격의 변종도 상체를 접으며 내 모습을 직시했다.
빈틈을 노리려는 자세.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협공을 시작하겠다는 건가?
난 가드를 올리며 훅, 하고 숨을 뱉었다.
흥분해선 안 된다.
최대한 이성을 유지하며 놈들을 처리해야 한다.
오른팔이 부러진 놈이 다짜고짜 왼팔을 내지르기에, 오른쪽으로 위빙(Weaving) 하며 놈의 안면에 레프트 훅을 날렸다.
뻑!!
힘이 실리진 않았지만, 미확인 변종의 머리가 뒤로 젖혀지며 균형이 흐트러졌다.
‘빈틈.’
재빨리 오른발을 앞으로 내디디며 옆구리에 주먹을 꽂으려는 찰나, 쏜살같이 접근하는 또 다른 변종을 발견할 수 있었다.
순간의 판단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모른다.
난 마무리 일격을 포기하고, 주먹을 뻗었던 왼손으로 균형이 흐트러진 변종의 목을 쥐고 방패로 삼았다.
뒤에 있는 미확인 변종도 알 것이다.
지금은 혼자보다 둘이 싸워야 한다는 걸.
그러니 동료를 공격하진 않을…….
훙-!
그 순간, 내 왼쪽 관자놀이로 날아드는 거대한 주먹을 발견할 수 있었다.
3m 길이의 팔과 자유자재로 꺾이는 관절을 이용해, 동료를 공격하지 않고도 내게 주먹을 뻗을 수 있었다.
이건 예상하지 못했다.
이렇게 유연하다고?
대체 관절이 몇 개야.
방패로 사용하는 미확인 변종의 목을 다급히 왼쪽으로 비틀었다.
텁!
그 순간, 등 뒤로 느껴지는 손길에 오한이 느껴졌다.
미확인 변종의 왼팔이 내 어깨를 붙잡은 상태였다.
오른팔로 시선을 유도하고, 왼손으로 내 배후를 노리는 공격.
놈은…… 나와 직접적인 난타전을 피하고, 본인의 장점인 리치를 이용하고 있었다.
신체적 차이를 이겨내기 위해선 어떻게든 안으로 파고들어서 타격을 입혀야 하는데, 뒤에 있는 놈은 아군을 이용해서 본인의 장점을 살리고 있었다.
이건…… 탱커와 딜러의 구도가 아닌가?
사고능력이 이렇게 뛰어나다고?
훅!
뒤이어 어깨를 잡아끄는 악력과 함께 전신이 공중으로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어깨 보호대: 92%, 88%, 84%……]
대체 손아귀의 힘이 얼마나 강한 거야?
어깨 보호대의 내구도가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놈은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아이처럼, 내 어깨를 붙잡고 공중에서 마구잡이로 흔들기 시작했다.
전신의 뼈마디가 비명을 지르고, 시야가 어지럽게 흔들렸다.
3m의 키, 3m의 팔길이.
난 6m 허공에서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었다.
시야가 어지럽게 흔들리니 어디가 어디인지도 모르겠다.
쾅!!!
“커헉……!”
세차게 흔들리던 전신은 바닥에 내려꽂힌 뒤에야 멈췄다.
사방으로 흩날리는 깨진 타일과 시멘트 가루, 그 속에서 빙빙 도는 밤하늘의 모습이 두 눈에 들어왔다.
영화 속 녹색 괴물에게 붙잡힌 거짓말쟁이 신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영혼까지 탈탈 털어버린다는 게 이런 건가?
머릿속이 깨끗하게 비워지고, 나 홀로 다른 차원에 뚝 떨어진 기분이었다.
콰득!
그 순간, 옆구리로 느껴지는 기이한 감촉에 다급히 시선을 내렸다.
변종이 내 옆구리를 물어뜯고 있었다.
하지만 좀비화와 광폭화가 적용된 상태라서, 살가죽이 떨어져 나가는 일은 없었다.
옆구리에 박힌 미확인 변종의 치아.
놈은 어떻게든 살점을 뜯어내기 위해 버둥거리고 있었다.
난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정신을 다잡은 뒤, 오른손을 말아쥐며 놈의 관자놀이를 향해 있는 힘껏 내질렀다.
쩍!!!
껵!
놈은 짧은 탄성을 뱉으며 물고 있던 옆구리를 놓았다.
기우뚱거리는 변종을 보고,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옆구리의 상태를 살폈다.
사과에 찍힌 이빨 자국처럼, 타원형의 커다란 이빨 자국이 깊게 새겨져 있었다.
표피강화 스탯을 높이지 않았다면 분명 살과 함께 내장이 쏟아져 내렸을 것이다.
뒤이어 이빨 자국이 서서히 아물기 시작했다.
껴어어어…… 껴걱!
놈은 미간을 찌푸리며 내 옆구리를 직시했다.
상처가 아무는 것을 보고 긴장한 것으로 보였다.
광폭화의 남은 시간은 3분 40초.
광폭화를 쓰면 어떻게든 될 줄 알았는데, 미확인 변종들은 전혀 탈진한 기색이 없었다.
소모전을 이어가면 승산이 없다.
결국…… 내게 주어진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난 미확인 변종들을 똑바로 직시하며, 더는 감정을 억누르지 않았다.
두근.
심장의 고동이 점점 빨라지고, 호흡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전신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아드레날린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고막을 찌르는 이명과 함께 시야가 아찔하게 흔들리더니, 내면 깊숙이 눌러놨던 감정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혈흔이 낭자하고, 뼈가 으스러지고, 고통과 폭력이 선사하는 희열.
“카학……!”
치솟는 광기에 모든 것을 맡겼다.
광란의 시간이다.
* * *
“쏴!”
퉁! 퉁퉁! 퉁!
수성못 우측 변의 놀이공원까지 추격한 끝에, 수색대는 사이코패스들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볼트에 맞은 사이코패스들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며 비명을 내질렀다.
최현은 비명을 지르는 사이코패스들의 안면을 칼자루로 가격하며 기절시켰다.
그 자리에서 2명을 생포하고 9명을 사살했으며, 3명을 놓쳤다.
설여원이 시야에서 사라진 3명을 쫓으려 하자, 전완수가 그녀의 팔을 잡았다.
“이제 그만, 이미 퀘스트 완료했잖아.”
“발목 잡힐 일은 미리 뿌리를 뽑아야지.”
“저것들 3명이서 우리 발목을 어떻게 잡아? 그리고 뿔뿔이 흩어졌는데 어떻게 쫓으려고, 우리도 흩어지자는 거야?”
설여원이 반박하지 못하자, 전완수는 입맛을 다시며 얘기했다.
“괜히 쫓아갔다가 우리까지 위험해지는 수가 있어. 지금은 각성부터 하고 재형이 데리러 가야지.”
박재형을 데려가자는 말에, 설여원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최현은 죽은 사이코패스들의 등에서 볼트를 회수하고, 설여원과 전완수를 쳐다보며 물었다.
“아직 2명 살았는데, 저것들은 어떻게 할까.”
“뭘 망설여.”
“혹시라도 우리가 모르는 정보를 알고 있을지도 모르잖아.”
“플레이어의 감염 여부에 따라 대장 좀비와 변종이 나타나는 것도 모르는 놈들이야. 이런 놈들이 뭘 알겠어.”
설여원이 덤덤하게 대답하자, 최현은 뚱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뒤이어 카타나를 뽑아 들며 기절한 사이코패스들을 응시했다.
“잠깐.”
그러자 곽찬혁이 다가와 최현의 손을 잡았다.
최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쳐다보자, 곽찬혁은 기절한 사이코패스들의 행색을 보고 치를 떨었다.
“내가 죽일게.”
“아는 놈이에요?”
“종아리에 볼트 박힌 저놈, 구덩이에 갇힌 내 동료들을 보고 비웃었던 놈이야.”
곽찬혁의 말에 최현은 망설임 없이 카타나를 건네주었다.
곽찬혁은 양손으로 칼자루를 쥐고 바들바들 떨더니, 두 눈을 질끈 감으며 기절한 사이코패스의 등에 칼을 꽂았다.
푹! 푹! 푹! 푹! 푹!
쉬지 않고 쑤셔대는 모습에, 최현은 보다못해 곽찬혁의 팔을 잡았다.
곽찬혁은 손에 쥐고 있던 카타나를 떨어뜨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화가 나지만, 살생의 죄책감이 그의 정신을 좀먹고 있었다.
아무리 해도 적응되지 않는 것.
그것이 살생이었다.
곽찬혁은 이마를 짚으며 아랫입술을 깨물더니, 지금의 더러운 기분을 한숨으로 달랬다.
“미안하다, 이런 약한 모습…… 보여서.”
“괜찮아요.”
“대장 좀비일 때는 이렇게까지 떨리진 않았는데…….”
최현은 바닥에 떨어진 카타나를 손에 쥐며 남은 사이코패스를 처리했다.
설여원은 생포한 사이코패스가 모두 사망한 것을 확인하고, 홀로그램을 열고 퀘스트 내용을 살폈다.
각성 퀘스트(Clear)라는 글자를 확인하자, 설여원의 손바닥 위로 알약처럼 생긴 물건이 생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