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139화
옆에 있던 최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여태 어디 있다가 이제 와서 나타난 거지?”
“이 건물 뒤편에 언덕 있는 거 알지? 그쪽에서 내려온 거 같은데…….”
전완수는 말끝을 흐리더니, 내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다.
“어떻게 할 거야? 지금 나가서 잡을까?”
아직 좀비화의 재사용 대기시간이 3시간 40분이나 남았다.
변수에 대비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 페널티는 끝났으니 변종 3마리는 크게 위협적이지 않았다.
뒤이어 창밖을 바라보던 설여원이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입을 열었다.
“저게 뭐야.”
설여원의 말에 전완수도 창밖을 살폈다.
전완수도 놀란 표정을 짓더니, 바닥에 내려둔 소총과 쇠뇌를 들고 한발 앞서 계단으로 향했다.
“다들 무기 들고 따라와!”
긴박해 보이는 전완수의 모습.
이에 무슨 일인지 물어볼 새도 없이 전완수를 따라 1층으로 내려갔다.
칠흑 같은 어둠과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 하지만 전완수의 걸음에 망설임은 없었다.
전완수가 향하는 곳은 아침에 처리한 변종의 시신 2구가 있는 곳.
뒤이어 전완수는 쇠뇌를 견착하더니, 정면을 향해 쉴 새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퉁! 퉁! 퉁! 퉁! 퉁!
전완수의 예상치 못한 행동에 다급히 사주 경계에 나섰다.
전완수가 아무리 다혈질적인 구석이 있어도, 이유 없이 돌발행동을 하는 친구가 아니었다.
쇠뇌를 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니 행동에 망설임이 없겠지.
3마리의 변종이 있다고 했으니 남은 2마리가 소음을 듣고 달려들지도 모른다.
난 전완수를 호위하며 언제든 주먹을 내지를 수 있도록 가드를 올렸다.
키리릭- 키릭-
뒤이어 낡은 수레바퀴 소리가 발치에서 들려왔다.
두 주먹을 말아쥐며 재빨리 방향을 틀자, 어둠 속에서 날아드는 변종의 오른팔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가속.”
훙-!
순식간에 날아드는 공격에 다급히 상체를 접었다.
간발의 차로 변종의 공격을 회피하고, 왼발을 앞으로 내디디며 변종의 하관에 어퍼컷을 날렸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묵직한 타격감과 함께 변종의 상체가 휘청거리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허공을 휘젓는 변종의 오른팔을 붙잡고 있는 힘껏 엎어치기를 시도했다.
쾅!!
아스팔트 바닥에 등부터 떨어진 변종은 헛숨을 토하며 두 다리를 버둥거렸다.
일어날 시간을 주면 안 된다.
붙잡은 팔을 비틀어 꺾고, 오른발을 치켜들며 놈의 콧대를 향해 일직선으로 찍었다.
쩍!!
-변종을 처리했습니다. 카운트 50점이 주어집니다.
10초 만에 변종을 처리하고, 뒤에 있는 전완수를 쳐다봤다.
전완수는 오만상을 찌푸리더니, 쇠뇌를 어깨에 둘러메고 소총을 손에 쥐었다.
이에 전완수를 쳐다보며 물었다.
“쏴야 하는 상황이야?”
“늦으면 기회 없어.”
전완수는 무언가를 조준하더니,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격발했다.
타당!! 타당!! 타당!!
안개 속을 향해 쉬지 않고 격발하더니,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옆구리에 차고 있던 수류탄을 손에 쥐었다.
난 전완수의 손에 있는 수류탄을 빼앗은 뒤, 옆을 가리키며 얘기했다.
“여원이랑 현이가 안 보여. 가서 애들 도와줘.”
전완수는 우측 산책로로 시선을 돌리더니, 마른침을 삼키며 얘기했다.
“처리하고 우측 산책로로 와. 애들도 알 까고 있어.”
알?
무슨 말인지 몰라도,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전완수는 산책로를 따라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일찍이 내가 확인한 길이라서, 구덩이에 떨어질 걱정은 없었다.
그건 그렇고 알이라니?
난 탄알이 날아간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자욱한 안개 너머로 들어오는 거대한 알의 형태를 보고, 벌어지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사람보다 큰 알이었다.
사방에 볼트가 박혀 있고, 소총의 공격받아 벌집이 되었지만…… 지금도 꿈틀거리고 있었다.
구멍이 뚫려 검붉은 액체가 쏟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알 속의 생명체는 살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
난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아 구멍 난 알집 속에 쑤셔 박았다.
뜨거운 액체 너머로 단단한 골조가 손끝에 닿았다.
아직 피부조직이 완성되지 않았다.
시기를 놓치면 무슨 일어날지 모르기에, 알 속에 수류탄을 선물하고 재빨리 도망쳤다.
퍽!!
수류탄이 폭발하며 먹먹한 파열음이 들려왔다.
폭음이 이상하다.
알집이 튼튼해서 그런가?
아니면 총성 때문에 이명이 들려서 그런가?
명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사소한 걸 신경 쓸 때가 아니다.
다시금 알집이 있는 곳으로 향하자, 신체의 절반이 사라진 괴생명체가 꿈틀거리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완전히 변태하지 못해 너덜거리는 살점과 부러진 뼈가 고스란히 두 눈에 들어왔다.
껴어어…… 껴걱…….
놈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숨넘어가는 소리.
그 소리를 듣고 등골이 오싹해졌다.
굳이 정답을 듣지 않아도 무의식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건…… 미확인 변종이다.
오른팔을 파르르 떨며 삶을 갈망하던 괴생명체는, 이윽고 움직임을 멈추며 마지막 숨을 내뱉었다.
띠링-
-변종을 처리했습니다. 카운트 100점이 주어집니다.
눈앞으로 떠오른 홀로그램을 보고, 다급히 산책로를 따라 일행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총구가 내뿜는 불꽃이 일행의 위치를 말해준다.
“쏘지 마!”
일행에게 외치며 옆구리에 차고 있던 수류탄을 손에 쥐었다.
5구의 시신을 방치한 곳에 다다르자, 너덜거리는 알집의 모습이 두 눈에 들어왔다.
이번에도 알집에 수류탄을 쑤셔 넣고 재빨리 일행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엎드려!”
일행에게 외치며 바닥에 엎드리자, 이번에도 먹먹한 폭음과 함께 눈앞으로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변종을 처리했습니다. 카운트 100점이 주어집니다.
거칠어진 숨을 가다듬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을 많이 써서 숨이 가쁜 게 아니었다.
긴장감과 두려움 때문에, 심장박동이 빨라지며 숨이 거칠어졌다.
이는 다른 일행도 마찬가지였다.
전완수와 최현, 설여원도 넋이 나간 표정을 하고 있었다.
금호강 건너에 있을 때, 미확인 변종이 어디서 나타난 건지 알 길이 없었다.
변이 조건을 알 수 없으니, 우린 돌연변이의 일종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알파 변종이 다른 알파 변종의 시신을 먹으면…… 미확인 변종으로 진화하는 것이었다.
난 일행을 돌아보며 얘기했다.
“여원이랑 완수, 현이는 근처 차량에서 휘발유 뽑아서 모아줘. 찬혁이 형은 저랑 같이 변종 시신 옮기죠.”
반박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일사불란하게 흩어졌다.
* * *
모든 시신을 한데 모아 수성못 우측 변으로 향했다.
수성못의 우측 변에는 자그마한 놀이공원이 있었다.
이런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는 작은 불씨도 쉽게 확인할 수 있기에, 일부러 멀리 떨어진 곳에 시체들을 모았다.
놀이공원 중앙에 알파 변종의 시신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뒤, 일행이 구해온 휘발유를 부었다.
종이뭉치에 불을 붙여 시신 위에 던지자, 후끈거리는 열기와 함께 금세 불꽃이 피어올랐다.
곽찬혁은 수성 호텔 방면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우리도 늦기 전에 돌아가자.”
“호텔에서 별다른 움직임은 없죠?”
“아직은 없어. 그보다…… 퀘스트 완료됐어.”
곽찬혁에게 주어진 퀘스트.
지키지 못한 약속.
14마리의 변종을 처리하고 퀘스트 완료가 뜬 모양이다.
“치료제 받았어요?”
“받았어.”
곽찬혁은 손에 쥐고 있는 주사기를 보여주었다.
푸른색의 액체가 들어 있는 주사기.
분명 1시간 이내에 맞아야 효과가 있다고 했다.
난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수하들 수성못 입구에 모아주세요.”
“5단지 앞에 있는 수하도 불러?”
“네, 전부 모아주세요.”
“괜찮겠어? 좀비화 없이 잡는 건 힘들 텐데.”
“저번처럼 한 번에 달려들면 위험하지만, 나눠서 처리하면 할 만해요.”
취할 건 취해야 한다.
곽찬혁의 능력을 이용해서 최대한 좀비 카운트를 올리고, 늦지 않게 치료제를 맞으면 된다.
이러한 계획을 무전기를 통해 일행에게 전달하고, 곽찬혁과 함께 수성못 입구로 향했다.
* * *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이기에 10마리 단위로 나눠서 처리했다.
50마리를 처리할 때마다 2분 정도 휴식을 취하며, 체력과 보호대의 내구도를 확인했다.
곽찬혁의 모든 수하를 처리한 뒤에 치료제의 남은 시간을 묻자, 아직 15분 남았다고 했다.
여유 있게 지금 맞으라고 했지만, 곽찬혁은 고개를 저으며 얘기했다.
“두산오거리에 좀비들 많아. 저것들 수하로 만든 뒤에 좀 더 처리하는 건 어때?”
“저야 좋지만…… 괜찮겠어요? 시간이 촉박한데.”
“너도 이득 볼 수 있을 때 봐야지. 나도 돕고 싶어.”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건가?
처음 변종의 위치를 파악한 것도 그렇고, 시신을 옮기는 것도 곽찬혁이 없었다면 힘들었을 것이다.
또한 재사용 대기시간을 기다리며 마음 편히 쉴 수 있었던 것도 곽찬혁의 수하들이 수성 호텔을 감시한 덕이었다.
“형, 충분히 도움 많이 됐어요.”
“그래도 재형이 너 없었으면…… 이 치료제는 구경도 못 했을 거야. 어떻게든 더 돕고 싶어.”
곽찬혁의 뜻이 그렇다고 하니, 더는 반대하지 않았다.
난 뻐근한 어깨를 돌리며 계속하자고 했다.
곽찬혁은 두산오거리를 거니는 좀비들을 수하로 만든 뒤, 다시금 10마리 단위로 내게 보냈다.
내가 10마리를 처리하면 다시 수하를 만들고, 내게 보내기를 반복했다.
어둠 속에서 좀비와 싸우는 건 쉽지 않았다.
가뜩이나 안개 때문에 시계가 짧은데, 빛 한점 들지 않는 어둠이 내려앉으니 1m 앞의 사물도 분간하기 어려웠다.
반사신경에 의존한 채, 잠시도 긴장을 풀지 않고 좀비들을 처리했다.
버거운 게 사실이지만, 곽찬혁의 지원이 있기에 큰 위협 없이 카운트를 높일 수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곽찬혁이 다가오며 얘기했다.
“2분 남았어.”
“늦기 전에 지금 맞아요.”
얼얼한 손을 털며 얘기하자, 곽찬혁은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주사기를 쳐다봤다.
생각이 많을 것이다.
이에 엷은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괜찮을 거예요.”
“후…… 생각보다 긴장되네.”
곽찬혁의 얼굴에 긴장과 기대가 공존했다.
괜찮을 거라고, 다시 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곽찬혁을 응원하며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렸다.
곽찬혁은 훅, 하고 숨을 뱉으며 주삿바늘을 응시하더니, 눈 딱 감고 팔뚝에 찔러넣었다.
혈관을 타고 들어가는 푸른 액체.
모든 약물이 투여되자, 곽찬혁은 눈살을 찌푸리며 상체를 말았다.
이 악물고 버티는 것으로 보아, 고통이 상당한 모양이다.
하지만 비명을 지르면 좀비들이 몰려들까 봐, 고통을 감내하는 것으로 보였다.
뒤이어 창백하던 피부에 서서히 혈색이 돌기 시작하고, 도드라졌던 혈관도 가라앉기 시작했다.
“후우…….”
곽찬혁은 참아왔던 숨을 내뱉으며 감았던 두 눈을 떴다.
붉게 충혈되어 있던 안구가, 다시금 흰자와 검은자로 나뉘었다.
난 곽찬혁의 전신을 위아래로 훑으며 물었다.
“괜찮아요? 어때요, 효과 있어요?”
곽찬혁은 본인의 양손을 쳐다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주먹을 쥐었다 펴기도 하고,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몸 상태를 살폈다.
뒤이어 눈물을 글썽이더니, 그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됐다…… 됐어.”
아이처럼 울먹이는 30대 형님.
그 모습을 보고 나까지 콧잔등이 시큼해졌다.
난 곽찬혁의 등을 토닥이며 그동안 마음고생 많았다고, 이제 걱정할 필요 없다고 위로했다.
곽찬혁은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눈물을 훔치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고마워…… 정말 고맙다…… 재형아.”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난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곽찬혁이 진정될 때까지 등을 토닥여주었다.
그 뒤로 얼마나 지났을까.
곽찬혁이 마음을 추스른 걸 확인하고,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을 일행에게 돌아갔다.
4층에 도착하자, 일행은 너도나도 놀란 표정으로 곽찬혁의 모습을 살폈다.
“헐! 찬혁 오빠?”
설여원은 곽찬혁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금세 환하게 웃었다.
전완수와 최현도 흡족한 표정으로 곽찬혁의 전신을 훑었다.
곽찬혁은 일행의 관심이 민망한지,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다들 고맙다. 정말……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를 만큼 고마워.”
설여원은 흐뭇한 미소를 짓더니, 무전기를 건네며 얘기했다.
“기쁜 소식은 빨리 전해야죠.”
설여원이 건넨 무전기는 우리가 사용하는 무전기가 아니었다.
곽찬혁과 한지현을 연결하는, 두 사람만의 무전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