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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130화 (130/373)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130화

얼추 상황을 들었으니, 나도 무전기로 들은 얘기를 곽 대표에게 얘기해야겠다.

“그…… 곽 대표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방금 무전으로 들었는데, 아무래도 한지현 씨가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지현이가? 뭐를 알게 됐다는…… 아.”

곽 대표는 한 박자 늦게 상황이 이해됐는지, 멍하니 입을 벌린 채 아무런 말도 잇지 않았다.

곽 대표의 대답을 기다리자, 오래 지나지 않아 당혹감이 묻어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제가 좀비로 변한 걸 알게 된 겁니까?”

“아니요. 곽 대표님이 살아 있는 거로…… 아는 것 같습니다.”

“아니 그걸 누가 얘기해서……!”

곽 대표는 눈살을 찌푸리며 이를 물더니,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모양이다.

그러자 옆에 있던 설여원이 입을 열었다.

“언젠가는 알게 될 일이었어요.”

“압니다, 저도 아는데…… 지금은 아니라고요.”

“그럼 언제예요? 곽 대표님이 변종으로 변한 뒤에? 아니면 한지현 씨가 죽은 뒤?”

“…….”

“쉘터에 있는 우리 일행은 멍청한 사람들이 아니에요. 한지현 씨가 이번 공습으로 눈치를 챈 것 같으니, 하는 수 없이 얘기했을 가능성이 높아요.”

곽 대표는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고심에 잠긴 모습을 보이더니, 연신 한숨을 내쉬며 애꿎은 바닥만 발로 찼다.

그가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자, 설여원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런 말이 있죠.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

“…….”

“그거 약 아니에요. 기다리는 사람 피 말려 죽이는 일이지.”

“하지만 지금 모습으로는…….”

“우리가 세 번째 에피소드에 나오는 독 안개 얘기 안 했으면, 쉘터에 있던 사람들 결국은 죽을 운명이었어요.”

“…….”

“우리가 얘기해서 방안이 생긴 것처럼, 한지현 씨도 알 권리가 있어요. 알아야 하고.”

곽 대표는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건물 밖을 응시했다.

어느새 저녁노을이 서서히 내려앉기 시작했다.

곽 대표는 유리문에 비친 본인의 얼굴을 쳐다보더니, 설여원을 돌아보며 물었다.

“하나만…… 부탁해도 될까요?”

“뭐든 얘기하세요.”

“혹시 화장 하면…… 좀 달라질까요?”

화장이란 말에 가장 먼저 불이 떠올랐다.

뒤늦게 아차, 싶은 생각과 함께 얼굴에 하는 화장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세상이 망한 뒤로 화장품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어서 그런지, 화장이란 단어의 인식 자체가 변했다.

멋쩍은 표정으로 설여원을 쳐다보자, 그녀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화장실 가서 씻고 오세요. 맞은편 건물에 화장품 가게가 있던데, 가서 이것저것 가져올게요.”

* * *

붉게 물든 노을이 서쪽 하늘 너머로 지고, 검푸른 하늘이 천공을 물들일 무렵, 설여원은 손에 들고 있던 브러쉬를 내려놓으며 얘기했다.

“됐다.”

“다 된 겁니까?”

순순히 앉아 있던 곽 대표는 헛기침하며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설여원은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화장 처음 해봐요?”

“당연히 처음이죠. 남자가 무슨…….”

“왜요? 화장하는 남자들도 은근히 많아요. 물론 세상이 망하기 전이지만.”

“거울 있습니까?”

“자, 여기요.”

곽 대표는 거울에 비친 본인의 얼굴을 바라보며 좌우로 고개를 돌렸다.

뒤이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눈은…… 어떻게 안 되겠죠?”

“그건 어떻게 할 수가 없네요. 이게 최선이에요.”

“흠…….”

“일단 피부가 너무 창백해서 전체적으로 톤을 높였어요.”

“다운시켜야 하는 거 아닙니까?”

“다운시켰더니 푸른색 혈관이 너무 많이 보여서요. 눈만 빼면 사람 같은데요? 마음에 안 들어요?”

전완수와 최현, 그리고 나는 팔짱을 낀 채 설여원과 곽 대표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옆에 있던 최현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내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다.

“뭔가…… 모르겠다.”

“무슨 말이야 그게.”

“괜찮은데 이상해.”

최현의 말에 전완수도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얼굴만 보면 괜찮은데, 목이랑 색깔이 너무 달라.”

이에 바닥에 내려둔 목 폴라 티를 들었다.

곽 대표는 내가 들고 있는 목 폴라 티를 쳐다보더니,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걸…… 입으라는 겁니까?”

“몸도 좋으시고, 목도 길어서 잘 어울릴 겁니다. 한번 입어보세요.”

곽 대표가 옷을 갈아입자, 설여원은 오, 하는 탄성과 함께 내게 물었다.

“저거 어디서 구했어?”

“옆 가게에서. 괜찮아?”

“괜찮네. 옷걸이가 좋아서 그런가?”

곽 대표는 쭈뼛거리며 본인의 전신을 살피더니, 쑥스러운 듯이 웃으며 내게 물었다.

“어떱니까?”

“완벽합니다. 몸이 좋아서 그런지, 아주 좋아요.”

설여원도 고개를 끄덕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곽 대표는 거울 앞의 자신을 바라보며 훅, 하고 숨을 뱉더니, 오른손으로 심장을 쓸어내렸다.

긴장되는 모양이다.

“준비됐으면 슬슬 움직일까요?”

“어디로 가면 됩니까?”

“이미 무전으로 얘기해뒀습니다. B 구역 바리케이드 앞에서 보기로 했어요.”

“무섭네요. 처음 고백할 때도 이렇게 긴장되진 않았는데.”

난 곽 대표의 등을 토닥이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이정우에게 출발한다는 무전을 보내고, 다 같이 건물을 나섰다.

곽 대표의 수하들은 골목으로 흩어져 다른 좀비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경계를 서고 있기에, 근방에 좀비들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B 구역을 향해 걸어가며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혹여나 좀비로 변한 곽 대표를 보고 한지현이 기절하거나, 기겁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었다.

과연 좀비로 변한 남자친구를 보고 맨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까.

곽 대표 앞에서는 애써 태연한 척을 했지만, 나도 긴장되긴 마찬가지였다.

번- 쩍.

뒤이어 거대한 바리케이드가 안개 너머로 드리울 무렵, 그 앞에서 번쩍이는 불빛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옆에 있는 곽 대표를 쳐다보자, 그는 마른침을 삼키며 심호흡을 반복했다.

뒤이어 마음을 다잡았는지, 불빛을 향해 입을 열었다.

“……지현아.”

“오빠? 진짜 찬혁 오빠야? 오빠!”

곽찬혁.

곽 대표의 이름을 듣는 건 처음이었다.

안개 너머에서 발소리가 들려오자, 곽 대표는 황급히 양손을 들며 외쳤다.

“오지 마!”

그러자 이곳으로 다가오던 발소리에 머뭇거림이 묻어났다.

곽 대표는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상황을 지켜보던 설여원이 곽 대표의 팔을 잡으며 얘기했다.

“할 수 있어요.”

“…….”

“눈 딱 감고, 남자답게.”

설여원은 곽 대표의 팔을 놓아주며 내 얼굴을 쳐다봤다.

난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자리 비켜주자.”

설여원과 전완수, 최현과 함께 B 구역 바리케이드로 향했다.

안개 속으로 10m 정도 나아가자, 한껏 차려입은 한지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한지현의 두 눈에는 벌써 눈물이 고인 상태였다.

다른 말을 하는 대신, 입술을 굳게 다문 채 바리케이드로 향했다.

활짝 열린 바리케이드 입구로 들어서자, 바리케이드 위에서 이정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수고 많았어.”

“우리가 한 게 있나요. 저기 있는 두 분이 한 거지.”

“괜찮을까? 저 두 사람.”

“우리 손은 떠났어요. 둘이 감당해야 하는 문제죠.”

내겐 새까만 안개 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설여원과 전완수는 안개 속의 두 남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검푸른 빛의 하늘이 완전히 어둠에 잠식될 무렵, 설여원은 양손으로 입을 가리며 두 눈을 화등잔만 하게 떴다.

이에 설여원을 쳐다보며 물었다.

“왜, 무슨 일이야.”

“한 대표님이…….”

설여원의 눈가에 닭똥 같은 눈물이 고이더니, 뜨거운 눈물방울이 두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설마, 곽찬혁이 이성을 잃고 한지현을 공격한 건가?

그럴 리가, 성 대표를 먹은 게 오늘 낮인데?

설마 한지현이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바리케이드를 넘어가려 하자, 옆에 있던 전완수가 다급히 내 팔을 잡으며 말렸다.

“경솔하게 행동하지 말라고 몇 번을 말해?”

그러자 최현이 콧방귀를 뀌며 얘기했다.

“전완수 이 새끼, 오늘 낮에 배웠다고 바로 써먹는 거 봐라.”

이에 의구심 가득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전완수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한지현 씨, 곽찬혁 씨한테 안겼어.”

한 대표와 곽 대표.

두 사람의 서로를 향한 그리움은 죽음조차 갈라놓지 못했다.

* * *

그날 밤, 한지현과 곽찬혁은 밤이 늦도록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린 일찍이 자리를 피해 주고, 일행이 있는 숙소로 향했다.

501호에 들어서자, 우리의 무사 귀환을 기도하던 모든 일행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박재우와 황덕록, 윤혜리와 김희연, 정진영, 이덕배, 이현배, 최만석, 천호진, 이민정, 10대 아이들과 장군이까지.

모두의 환영을 받으며 일행의 품에 돌아왔다.

다들 궁금한 게 많을 것이다.

이에 거실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낮에 있었던 일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들려주었다.

뒤이어 식탁 앞에 앉아 있던 이민정이 물컵을 들고 다가왔다.

“다들 수고 많았어. 너희 덕에 참…… 뭐라 감사해야 좋을지 모르겠네.”

“아니에요. 이번엔 저희도 별로 한 게 없습니다.”

“그래도 항상 고마워. 우리도 내일부터는…… 도움이 돼야지.”

도움?

좀비와 싸우는 건 아닐 테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쳐다보자, 이민정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여기도 급식소가 있나 봐. 나랑 혜리, 희연이, 예정이, 지혜, 수연이, 그리고 서연이는 식당에서 일하기로 했어.”

서연?

서연이 누구더라?

거실을 둘러보자, 김희연의 옆에 있는 친언니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 김서연.

이런 생각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그동안 존재감이 없어서 까맣게 잊고 있었다.

민망한 마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요?”

그러자 이민정의 옆에 있던 이덕배가 입을 열었다.

“나랑 현배, 만석이, 호진이, 성하, 진영이는 수비에 가담하고, 덕록이랑 재우는 강 대표가 따로 부탁할 일이 있다고 하더라고.”

“따로 부탁할 일이요? 어떤 일인지 들었어요?”

“차량 개조를 부탁하더라고.”

“차량 개조?”

눈꼬리를 치켜뜨며 박재우를 쳐다보자, 그는 싱겁게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가 로즈라고 얘기했거든.”

“아…….”

이미 한지현과 강요한은 우리가 플레이어라는 걸 안다.

직업을 계속 숨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이에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박재우는 벽에 걸려 있는 달력을 쳐다보더니, 날짜를 확인하며 얘기했다.

“여기 있는 생존자들이 전부 이동할 수 있는 차량이 필요한데, 힘을 보태 달라고 그러더라고. 우리도 한동안 이동할 수 없으니 일단 수긍했어.”

그래, 우리도 정비시간이 필요했다.

내일부터 수성못도 확인해야 하니까.

그러다 문득, 잊고 있던 것이 떠올랐다.

“아 참, 재우랑 덕록이, 너희 부모님은 찾았어?”

“너희 없을 때 한 대표님한테 들었는데…… 상황이 좋지 않아.”

“왜?”

“덕록이랑 내 본가는 5단지거든. 그런데 거긴 초기진압에 실패했나 봐.”

5단지라면 나도 곽찬혁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씁쓸한 마음에 시선을 회피하자, 박재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혼잣말을 읊조렸다.

“하루아침에 천국과 지옥을 오가네.”

“…….”

“괜찮을 줄 알았는데, 내심 기대하고 있었나 봐. 황금동에 쉘터 있는 거 보고 혼자 들떠서는…… 하필 5단지가…….”

박재우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차마 말을 끝맺지 못했다.

황덕록도 가부좌를 튼 채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이에 거실에 모인 사람들을 가볍게 훑으며 얘기했다.

“일단…… 오늘은 다들 쉬고, 내일 아침에 다시 모여서 얘기하죠. 덕록이랑 재우는 내일 아침에 나랑 같이 5단지 가보자.”

“들어가도 괜찮겠나? 거기 성김공 쪽 사람들도 갇혀 있고, 곽찬혁 씨 수하들이 틀어막은 상태라며.”

“좀비들은 곽찬혁 씨한테 잠시만 치워달라고 하면 되고, 사람들은 신경 쓸 필요 없어.”

“괜히 우리한테 붙어서 도와달라고 하는 거 아닌가?”

“그 사람들, 절대 우리 근처로 못 와. 장담해.”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전형적인 쓰레기들이다.

조금만 무력을 보여주면 꼬리를 내리고 더 깊은 곳으로 숨을 게 뻔하다.

쉘터 정리가 얼추 끝났으니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아직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내일도 바쁜 하루가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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