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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127화 (127/373)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127화

심장에서 아찔한 충격이 느껴지고, 시야가 일렁이는 것을 느꼈다.

뜨거운 불가마에 들어온 것처럼 전신이 후끈거리더니, 이마 위로 핏대가 서며 전신에 힘이 들어갔다.

“크하…….”

폐부에 들어찬 후끈거리는 숨을 내뱉으며 상체를 일으켰다.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전처럼 좀비들의 움직임이 느리게 보이거나, 미친 듯이 펌프질하는 심장의 고동은 들리지 않았다.

모든 것이 차분하고, 가빠졌던 숨도 고요한 호수처럼 잔잔해졌다.

덤덤한 표정으로 정면을 살피자, 양팔을 휘저으며 달려드는 좀비를 발견할 수 있었다.

팡!!

주먹을 내지르자, 채찍을 휘두른 것처럼 청아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좀비의 머리는 바닥에 떨어진 수박처럼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변했다.

이전과는 판이한 느낌.

마른침을 삼키며 손끝에서 떨어지는 붉은 핏방울을 쳐다봤다.

이것도 정신력을 높인 영향인가?

좀비들의 움직임이 느리게 보이지 않고, 내 움직임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느껴졌다.

크어어어어!!

뒤이어 사방에서 좀비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1, 2, 3, 4.’

가까운 좀비들의 숫자를 세며 순서대로 주먹을 내질렀다.

파바바박!!

네 마리의 좀비가 갈대처럼 쓰러지자, 그 너머에 있던 수십 마리의 좀비가 육안에 포착됐다.

먹잇감을 향한 본능만을 지닌 채, 불규칙적으로 달려드는 좀비들.

난 두 주먹을 말아쥐며 가드를 올렸다.

“후…….”

한 차례 심호흡과 함께, 쉴 새 없이 허리와 어깨를 비틀었다.

떠걱!! 팍!! 떠덕!! 딱- 팡!! 으드득!! 쩍!!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백스텝과 사이드스텝을 밟으며 균형을 잡았다.

달려드는 좀비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지자, 좀비들의 시신으로 둔덕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카하아악!!

그 순간, 등 뒤로 느껴지는 인기척에 재빨리 오른팔을 뻗었다.

텁!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좀비의 위치가 그려진다.

손을 뻗어 좀비의 안면을 붙잡자, 버둥거리는 좀비의 움직임이 손끝으로 전해졌다.

좀비화를 사용하면 기존 능력치가 2배로 증가하기에, 반경 30m 내의 움직임은 아무리 미약하더라도 전부 포착할 수 있었다.

오른손에 있는 힘껏 악력을 가하자, 좀비의 두개골이 으스러지며 손잡이가 생겼다.

붙잡은 머리를 휘두르자, 원심력으로 인해 좀비의 목에서 뼈마디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달려들던 좀비들은 휘두르는 좀비에 맞아 옆으로 고꾸라지기 시작했다.

쯔즉- 쩍! 떠걱!!

뒤이어 오른손으로 느껴지던 무게감이 사라졌다.

손잡이를 확인하자, 기다란 척추가 뽑힌 채 몸통이 어딘가로 사라진 상태였다.

크어어어!!

좌측에서 달려드는 좀비.

손에 쥐고 있던 볼링공을 완전히 으스러뜨리고, 좌측의 좀비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쩍!!!

끔찍하기 짝이 없는 광경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데, 난 아무런 감정도 느낄 수 없었다.

죄책감, 괴리감, 공포, 두려움에 따른 방어기제가 나타나지 않았다.

눈앞에서 으스러지는 좀비들을 보며, 마치 종이상자를 구기는 느낌이 들었다.

왜지?

내가 미쳐가는 건가?

아니면 좀비화로 인한 영향인가?

문득, 좀비화의 설명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35분간 좀비의 성향을 지닙니다.

그래, 좀비들은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하고, 오직 폭력성만을 지닌다.

이런 기분이었구나.

좀비들은…… 인간을 이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구나.

감상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니다.

난 근방의 좀비들부터 빠르게 정리한 뒤, 재빨리 거리를 벌리며 홀로그램을 열었다.

스킬 목록을 확인하자, 좀비화 발동 중에 사용할 수 있는 스킬들이 떠올랐다.

[하울링 Lv.1]

-포효를 내질러 반경 50m 내의 적에게 두려움을 각인시킵니다.

-두려움이 각인된 적은 1분간 이동속도 30% 반감 효과가 적용됩니다.

-하울링의 재사용 대기시간은 10분입니다.

*하울링을 사용하기 위한 최소 기준은 정신력 70입니다.

(정신력이 부족하여 아직 사용할 수 없습니다)

*추후 스킬 목록에 하울링이 추가됩니다.

[광폭화 Lv.1]

-아드레날린 분비를 촉진합니다.

-광폭화는 5분간 유지되며, 스킬이 유지되는 동안 좀비화의 능력이 2배 증가합니다.

-광폭화의 재사용 대기시간은 20분입니다.

*광폭화를 사용하기 위한 최소 기준은 정신력 150입니다.

(정신력이 부족하여 아직 사용할 수 없습니다)

*추후 스킬 목록에 광폭화가 추가됩니다.

[광란]

-학살의 희열을 느낄 시 이성을 잃고 발동됩니다. 또는 사냥감을 향한 강한 집착을 보일 시 발동됩니다.

-정신력 스탯이 낮을수록 발동확률이 증가합니다.

-스킬이 발동되면 좀비화의 능력이 2배 증가합니다.

*(1/10)

*광란은 강화할 수 없습니다.

설마…… 이전에 경험한 게 광란이었나?

좀비들을 처리하며 느꼈던 희열.

희열을 느낀 시점부터 만취한 것처럼 시야가 일렁이더니, 그 뒤로 기억을 잃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튜닝숍이었지?

나도 모르게 광란을 사용한 모양이다.

그보다 광폭화와 광란의 설명에 적힌 좀비화의 능력치 2배 증가.

광폭화를 사용한 뒤에 광란까지 발동된다면…… 몸이 버틸 수 있을까?

모든 능력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추세로 봤을 때, 이런 말도 안 되는 능력치 향상이라면 분명 페널티가 존재할 것이다.

광란의 설명에 적힌 1/10이라는 글자가, 내심 마음에 걸렸다.

크어어어어!! 카하악!!

홀로그램을 확인하고 있는데, 좀비들의 육성이 발치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재빨리 홀로그램을 닫고 주변을 둘러싼 좀비들에게 집중했다.

앞으로 스킬 목록에 추가된다고 하니, 설명은 나중에 확인하고 좀비들부터 정리해야겠다.

* * *

곽 대표는 창밖에서 일어나는 학살의 현장을 바라보며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저건…… 이미 인간이 아니지 않습니까?”

“저번보다 양호한 것 같지 않아?”

반면에 설여원은 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전완수에게 물었다.

전완수도 설여원의 의견에 동감하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정신력을 4배는 높였다더니, 확실히 미친놈처럼 날뛰진 않네.”

“좀비화 지속시간 몇 분이라고 했지?”

“35분, 이전보다 15분은 길어졌어.”

“35분…… 저런 추세면 진짜 500마리 다 죽이겠는데?”

“지켜봐야지. 중간에 또 날뛸 수도 있으니 긴장 늦추지 마.”

설여원과 전완수의 대화에 곽 대표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에덤도 스킬이 있습니까? 라스트아크에 에덤은 스킬이 없는 거로 압니다만…….”

“우리도 정확히는 몰라요. 난이도가 Hell로 올라가면서 기존 설정이 틀어졌다는 것만 알지.”

설여원의 대답에 곽 대표는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뒤이어 설여원을 쳐다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그럼…… 혹시 치료제가 나올 가능성도 있을까요?”

곽 대표의 눈에서 실낱같은 희망을 바라는 심리가 엿보였다.

이에 설여원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건…… 저희도 모르겠어요.”

설여원과 전완수, 곽 대표는 숨죽인 채 박재형의 싸움을 지켜봤다.

반면에 최현은 뚱한 표정을 짓더니, 입맛을 다시며 물었다.

“나만 아무것도 안 보이냐?”

“안개 속에서 뭔가가 휙휙 지나가는 것도 안 보여?”

설여원이 묻자, 최현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대답했다.

“정확한 형체는 모르겠고, 검은색 덩어리가 보였다가 안 보였다가 하는데? 그것도 너무 빨라서 잘 안 보여.”

“그게 재형이야.”

“재형이가 저렇게 빠르다고?”

최현은 탄성을 뱉으며 안개를 지그시 바라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얘기했다.

“우리가 싸워야 하는 좀비가 저렇게 강해진다면, 난 1초도 못 버틸 것 같은데?”

“야, 말이 되냐? 평범한 좀비들이 재형이처럼 된다는 게?”

전완수가 콧방귀를 뀌며 얘기하자, 옆에 있던 설여원은 가만히 턱을 매만지며 대답했다.

“완전히…… 불가능한 얘기는 아니야.”

“에이, 재형이가 좀비화 쓰면 일반인보다 10배 이상 강해지는 거 알면서 그래? 좀비들이 저렇게 대폭 성장하는 건 말도 안 되지.”

전완수가 히죽거리며 얘기하자, 설여원은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첫 번째 에피소드 끝나고 좀비들의 감각이 1.5배 증가했잖아. 만약 두 번째 에피소드 끝나고 신체 능력이 증가한다면?”

“…….”

“게다가 300명의 생존자를 섭취해서 신체 능력이 1.3배 증가한 대장 좀비가 있다면…… 그놈이 이끄는 수하들은 우리가 상대할 수 없는 수준일 거야.”

전완수는 머리를 긁적이며 뚱한 표정을 짓더니, 금세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X벌…… 그건 다 죽으라는 거 아니야?”

“이 게임 만든 작자가 언제는 그런 거 따졌니?”

설여원이 되묻자, 전완수는 바닥에 가래침을 뱉으며 읊조렸다.

“밸런스 개 같네.”

“그래서 재형이가 캐릭터 각성에 목숨 거는 건지도 몰라.”

“왜.”

“에피소드 끝날 때마다 좀비들이 성장한다는 설정은 원래 없었잖아. 난이도가 증가하면서 추가된 설정이지.”

“그래서.”

전완수가 뚱한 목소리로 묻자, 설여원은 덤덤한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캐릭터가 각성했을 때, 우리도 능력치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고.”

“……설마 그것 때문에 수성못에 목숨 거는 건가?”

전완수가 눈꼬리를 치켜뜨며 묻자, 설여원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태연한 척하면서 속으로는 우리 걱정만 하잖아. 어떻게든 더 챙겨주려고 무리하고.”

“그래서 만날 무리하지 말라고 그런 거였어?”

“넌 나보다 재형이 오래 봤으면서 그걸 몰랐어? 정우 오빠도 재형이 성격 아니까 만날 무리하지 말라고 하는 거잖아.”

전완수는 머리를 긁적이며 최현을 쳐다봤다.

최현은 팔짱을 낀 채 두 눈을 지그시 감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이에 전완수는 최현을 쳐다보며 물었다.

“현아, 넌 알았냐?”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

* * *

좀비들이 지치지 않고 달리는 이유를 알겠다.

좀비화를 사용하면 체력적인 한계가 느껴지지 않았다.

문제는 근육과 뼈에 문제가 생겨도 고통이 느껴지지 않으니, 부상 부위를 알 길이 없었다.

30분 넘게 싸우자, 오른팔의 움직임이 이전 같지 않다는 걸 느꼈다.

근육에 무리가 갔는지, 혹은 뼈에 이상이 생겼는지…… 육안으로 봐서는 모르겠다.

띠링-

[남은 시간: 30, 29, 28…….]

30초를 남겨두고 시야의 상단으로 좀비화의 남은 시간이 표시되었다.

남은 좀비는 어림잡아 40마리.

아쉽다, 모조리 죽일 수 있었는데.

전투 중에 희열이 차오를 때가 몇 차례 있었다.

그럴 때마다 좀비들과 거리를 벌리며 정신을 다잡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격해지려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다시금 평정심을 되찾고 싸움에 임했다.

그런 시간만 아니었어도 500마리 전원을 처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추후 원활한 싸움을 위해서라도 정신력을 더 높여야겠다.

또한 하울링과 광폭화를 사용하기 위해서라도 정신력 스탯을 높일 필요가 있었다.

남은 시간이 10초를 가리킬 무렵, 일행이 있는 건물로 쏜살같이 달리며 무전기를 들었다.

“좀비화 풀린다! 엄호해 줘!”

건물 입구에 다다르자, 계단에서 내려오는 곽 대표와 최현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타이밍 좋게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좀비화의 지속시간이 끝났습니다.]

[과부하가 적용됩니다.]

[18시간 동안 모든 능력치가 반감됩니다.]

“윽! 커헉!”

좀비화가 풀리자 전신에 축적된 데미지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머리에서 핑, 하는 소리와 함께 시야가 아찔하게 흔들리고, 두 다리에 힘이 풀리는 걸 느꼈다.

난 그 자리에 고꾸라지며 사시나무처럼 전신을 떨었다.

전신을 대못으로 찌르는 통증과 두개골이 찌그러질 것 같은 두통이 몰려왔다.

맑아졌던 시야가 다시금 새하얀 안개에 가려지고, 습한 공기가 폐부를 적셨다.

양손으로 관자놀이를 잡으며 버둥거리자, 최현이 다가와 나를 질질 끌고 계단으로 향했다.

크어어어어어!!

옆에 있던 곽 대표가 건물로 다가오는 수하들을 향해 포효를 내지르자, 이곳으로 달려오던 20마리의 좀비는 주춤거리며 멈춰 서는 모습을 보였다.

뒤이어 쇠뇌를 견착한 설여원과 전완수가 내려왔다.

4층에서 좀비들을 향해 쇠뇌를 발사하다가 1층까지 다다른 걸 보고 내려온 모양이다.

설여원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내 뺨을 때리며 물었다.

“정신 차려, 정신 차려 박재형!”

이에 눈살을 찌푸리며 읊조렸다.

“치…… 치…….”

“얘기해, 얘기해 재형아!”

“치지 마…… 머리 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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