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125화 (125/373)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125화

곽 대표는 인상을 찌푸리고 내 얼굴을 쳐다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뭐요? 호구?”

“본인 여자친구가 죽어가는 줄도 모르고, 이상한 놈들한테 식량을 넣어줬으면 호구 아닙니까?”

“지현이가 죽어가요? 어디 아픈 겁니까?”

“안색만 보면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아 보이더군요.”

“…….”

곽 대표가 마냥 착한 기부 천사는 아닐 것이다.

그는 대화 중에 말을 더듬는 순간이 없었다.

이는 상당한 숫자의 생존자를 섭취했다는 말이 된다.

나름 합리적인 결단을 내리는 사람일 것이다.

다만, 지금은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했을 뿐.

곽 대표는 바닥에 엎어진 성 대표를 노려보더니, 한 차례 심호흡과 함께 내게 물었다.

“방금 움직임은…… 인간의 움직임이 아니었어.”

“…….”

“박재형 씨 당신, 에덤 화이트죠?”

“맞습니다.”

“성 대표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겠다고 한 사람은 데니일 테고, 수하들의 머리를 꿰뚫은 볼트가 2발이었으니 옆에 분들은 가브리엘입니까?”

그 짧은 순간에 우리의 직업을 전부 파악했다.

역시 머리가 나쁜 사람이 아니다.

심성이 너무 착한 사람일 뿐.

곽 대표는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뜨더니,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당신 능력이면 성 대표, 김 대표, 공 대표도 혼자 처리할 수 있을 텐데, 굳이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가 뭡니까.”

“…….”

“나한테 바라는 게 뭐예요.”

이제야 차분하게 대화할 마음이 생긴 모양이다.

본심을 선뜻 꺼내 드는 건 부담이기에, 감정적으로 접근해야겠다.

난 곽 대표를 똑바로 쳐다보며 얘기했다.

“곽 대표님, 당신 손으로 만든 쉘터잖아요. 무너뜨리는 것도 당신 손으로 해야죠.”

“내가 못하겠다면.”

“제 일행은 어차피 외부인입니다. 언젠가 떠날 거예요. 다만, 당신이 결단을 내리지 못하면 한지현 씨는 계속 고통받겠죠. 성 대표와 김 대표, 공 대표에게.”

“…….”

“저는 곽 대표님과 싸우고 싶어서 여기까지 온 게 아닙니다. 당신과 싸울 생각이었다면 진즉에 그들을 죽였겠죠.”

곽 대표는 내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며 곰곰이 생각하는 모습을 보였다.

반박부터 하는 사람들과 달리, 굉장히 침착한 사람이었다.

쉽지 않은 상대다.

나 역시 침착함을 유지하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저는 곽 대표님이 쉘터의 상황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온 겁니다.”

“나한테 이런 얘기를 해서 당신이 얻는 게 뭡니까. 퀘스트라도 있어요?”

곽 대표의 물음에 난 덤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양심.”

“…….”

“성 대표 같은 미꾸라지 때문에 올바른 사람들이 너무 많이 죽었어요. 곽 대표님도 희생자 중의 한 명이고요.”

“…….”

“한지현 씨는 지금도 곽 대표님의 무사 귀환을 바라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한지현 씨를 이곳에 묶어둘 겁니까? 그만 진실을 밝히고, 정리해야 할 부분은 정리하세요.”

쉘터의 수장이었던 곽 대표에게 황금동 쉘터의 운명을 결정지을 권리를 주고 싶었다.

곽 대표는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곽 대표는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더니,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물었다.

“그렇다고 다른 곳으로 보낼 수도 없잖아요. 저 많은 사람을 데리고 어디로 갑니까.”

“그러니 숫자를 줄여야죠. 필요 없는 사람과 필요한 사람을 구분 지어야 합니다.”

“나더러 저기 있는 사람들을 다 죽이라는 겁니까?”

“4단지와 3단지의 생존자들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다 죽이셔야 합니다.”

“…….”

“그래야 곽 대표님 일행이 살아요.”

“그건 무슨 말입니까? 다 죽여야 제 일행이 산다니?”

곽 대표는 세 번째 에피소드를 모르는 모양이다.

이에 세 번째 에피소드에 발생하는 독 안개를 설명해 주었다.

모든 이야기를 전해 듣고, 곽 대표는 허탈하게 웃으며 얘기했다.

“사람을 지키려고 지은 바리케이드가, 우리의 발목을 잡는 족쇄라는 겁니까?”

“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결국에는 여길 떠나야 합니다. 아크로 가야 돼요.”

태연하게 얘기하자, 곽 대표는 마른침을 삼키며 내 얼굴을 쳐다봤다.

뒤이어 한쪽 눈꼬리를 치켜뜨며 물었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 안 듭니까?”

“뭐가 이상하죠?”

“당신이 바라는 게 정말 최소한의 양심이라면, 4단지와 3단지 생존자들만 데리고 떠나도 되는 문제입니다. 굳이 성 대표, 김 대표, 공 대표의 밑에 있는 생존자들을 죽이라는 게…… 난 이해가 안 되네요.”

역시 머리가 나쁜 사람이 아니다.

흐름에 휘말려 당장 쉘터로 달려가도 이상하지 않은 마당에, 끝까지 내 속내를 알아내려는 마음이 엿보였다.

곽 대표는 턱을 치켜들며 내게 물었다.

“그리고 하나 더.”

“말씀하세요.”

“당신은…… 대장 좀비와 대화하는 게 처음이 아니죠?”

“…….”

“내가 처음 입을 열었을 때, 당신은 당황한 기색이 없었어. 대장 좀비가 말을 할 수 있다는 걸 아는 거지. 생존자를 섭취해야 가능하다는 것도 아는 거고. 이런 일을 겪는 게 한두 번이 아니라는 방증이죠.”

이 정도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떠보는 행위는 멈추는 게 좋겠다.

흐름에 말려선 안 된다.

난 궁극적으로 바라는 점을 사실대로 밝혔다.

“맞습니다. 그저 양심으로 호소할 생각은 없습니다. 지금까지 인적인 얘기를 했으니, 이제 물적인 요구를 하겠습니다.”

“…….”

“곽 대표님이 쉘터를 정리한 뒤에, 저한테 수하들을 주세요.”

“수하를 달라고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곽 대표님도 아시다시피 제 직업은 에덤입니다. 좀비 카운트를 올려야 하죠. 곽 대표님은 악인을 처리하고, 저는 카운트를 높일 수 있으니 서로 좋은 거죠.”

곽 대표는 폐부 깊숙이 숨을 들이쉬며 고심에 잠긴 모습을 보였다.

정적이 내려앉은 골목으로 서로의 시선이 오갔다.

전완수와 설여원, 최현 역시 긴장한 모습으로 곽 대표의 대답만을 기다렸다.

곽 대표는 생각을 정리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물었다.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은데?”

이렇게 머리가 좋은 사람이 어째서 좀비에게 당한 걸까.

인류애가 넘치던 사람이 좀비로 변하면서 조심성이 생긴 건가?

난 어깨를 으쓱이며 대수롭지 않게 얘기했다.

“저는 곽 대표님이 평범한 좀비에게 당할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대화만 봐도 충분히 유추되네요.”

“…….”

“마지막으로 수색을 나간 게 수성못이라고 한지현 씨에게 들었습니다.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제가 대장 좀비로 변한 뒤에, 어떻게 말을 할 수 있는지 묻는 겁니까?”

“얘기가 빠르네요.”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곽 대표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가능하면…… 수성못은 가지 말아요.”

곽 대표의 입에서 나온 말에 반사적으로 눈꼬리가 꿈틀거렸다.

의구심 가득한 표정을 짓자, 그는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제 동료들이…… 거기 있습니다.”

“동료라면 수색대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더는 수색대가 아니죠. 변종입니다.”

변종이란 말에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 * *

곽 대표를 통해 수성못에서 있었던 일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우리 예상대로 수성못에 인간말종들이 있다고 한다.

무질서와 폭력, 비인륜적인 행위가 통용되는 단체.

그들 사이에도 플레이어가 있고, 플레이어들이 생존자를 사냥하러 다닌다고 한다.

좀비를 사냥하는 게 아니라 생존자를 사냥한다는 말에 말문이 막혔다.

사이코패스가 아니고서야, 어찌 그런단 말인가?

곽 대표는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놈들이 쳐둔 덫에 걸리는 바람에……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당했어요.”

“덫이요?”

“수성못 주변에 구덩이가 많습니다. 좀비를 가두기 위함도 있지만, 사람을 잡기 위한 덫도 많아요.”

“구덩이에 빠지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곽 대표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두 주먹을 불끈 쥐더니, 그날의 참상을 떠올리며 얘기했다.

“그 위로…… 좀비들을 부어요.”

“……사람을 가두고, 그 위로 좀비들을 부어요?”

“정상적인 사고를 지닌 놈들이 아니에요. 말 그대로…… 미친놈들입니다.”

“아니…… 대체 왜…….”

“이해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이해할 수 없는 놈들이니까요. 저와 제 동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그놈들은 웃더군요.”

성악설, 성선설, 백지설 등, 많은 설이 있지만, 지금의 경우만 봐서는 성악설이 맞는 것 같다.

인간의 가죽을 쓴 괴물.

좀비보다 더 지독한 놈들이었다.

난 퍼석한 입술을 핥으며 물었다.

“그럼 곽 대표님은 어떻게 탈출하신 겁니까.”

“저와 제 동료들은 대장 좀비로 변했고, 야심한 시각에 탈출을 감행했습니다. 하지만…… 사람을 먹고 싶다는 욕망이 정신을 좀먹더군요.”

“…….”

“정신을 차려보니 제 양손에 피가 묻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건……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남자의 머리였습니다.”

곽 대표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날의 참담한 심정을 삼켰다.

본인은 사람을 먹고 이성을 되찾았지만, 사람을 섭취하지 못한 다른 동료들은 변종으로 변했다고 한다.

변종으로 변하는 동료들을 보고, 사람을 먹지 않으면 이성을 유지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모양이다.

그 뒤에는 파국에 직면했다.

수성못에 있던 사이코패스들과 변종들의 싸움.

많은 사이코패스가 목숨을 잃거나 좀비로 변했고, 8명의 사이코패스가 혼란을 틈타 탈출을 감행했다고 한다.

곽 대표는 그 모습을 보고 가장 먼저 황금동의 쉘터가 떠올랐다고 한다.

저들이 황금동 쉘터에 도착하면…… 쉘터마저 병들 것이라 판단하고 그들을 뒤쫓아 포획에 성공한 것이다.

뒷일은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난 착잡한 마음에 아무런 질문도 할 수 없었다.

그러자 뒤에 있던 설여원이 곽 대표를 쳐다보며 물었다.

“혹시 수성못에 사이코패스가 몇 명이나 되는지 아세요?”

“8명을 포획한 뒤에는 수성못 근처도 안 갔습니다. 무엇보다 변종의 숫자만 봐도…… 살아남은 놈은 없을 겁니다.”

“그럼 수성못에 있던 변종이 이곳으로 온 적은 없나요?”

“아직은 없습니다.”

“곽 대표님은 대장 좀비의 퀘스트는 아직 달성 못 하신 거죠?”

설여원의 물음에 곽 대표는 움찔거리는 모습을 보이더니, 마른침을 삼키며 물었다.

“거기까지…… 알고 계십니까?”

“딱 거기까지 알아요. 300명을 섭취한 뒤에 발생하는 변화는 아직 본 적 없고요.”

설여원의 말을 듣고 머릿속으로 반짝이는 빗금이 스쳐 지나갔다.

난 곽 대표를 쳐다보며 물었다.

“곽 대표님, 수하들에게 생존자를 공격하지 말라는 명령도 가능한가요?”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아니요, 생존자를 코앞에 두고도 수하들이 따르는지, 그걸 알고 싶은 겁니다.”

“그건 모르겠네요. 실험해 본 적이 없어서.”

곽 대표의 대답에 난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이번 기회에 실험하면 되겠네요.”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쉘터에 있는 생존자들, 전부 포박하고 곽 대표님이 섭취하세요.”

“……뭐요?”

곽 대표는 미간을 찌푸리며 내 얼굴을 쳐다보더니, 다소 격양된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 수성못에서 왔어?”

“곽 대표님을 위해서입니다.”

“……무슨 말이야.”

“더 많은 수하를 거느리고, 더 강해진 뒤에 저와 수성못으로 가시죠.”

“왜 그렇게 수성못에 집착하는 거야?”

“각성 퀘스트 때문입니다. 수성못에 40명 이상의 사이코패스가 살아있다면, 각성 퀘스트가 생성될 것 같거든요.”

“각성?”

곽 대표는 캐릭터 각성에 관한 내용도 모르는 것으로 보였다.

캐릭터 각성 방법과 추후 나타나는 변화에 대해 설명하자, 그는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르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다시는 발을 들이고 싶지 않은 곳으로 돌아가자는 말이나 다름없으니, 곽 대표의 심정도 이해는 된다.

그러자 뒤에 있던 최현이 팔짱을 끼며 물었다.

“동료들, 변종으로 살아가게 내버려 둘 거예요?”

“…….”

“곽 대표님 가족이나 마찬가지잖아요. 곽 대표님 믿고 수성못까지 같이 간 사람들인데, 편히 눈감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도리 아닌가요?”

“하지만…… 쉘터에 있는 생존자를 섭취하라는 건…….”

“목숨 걸고 곽 대표님과 같이 움직인 사람들은 변종이 되든 좀비가 되든 상관없고, 저기 남은 개새끼들이 더 소중하다, 이겁니까?”

“…….”

“당신 웃기는 사람이네요. 위선자세요?”

최현이 조곤조곤한 말투로 대놓고 험담을 하자, 곽 대표는 두 눈을 부라리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하지만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