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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116화 (116/373)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116화

김희연은 시속 100㎞까지 속도를 높였다.

뒤이어 사이드미러로 좀비들의 위치를 확인하더니, 브레이크를 밟으며 재빠르게 우측으로 핸들을 돌렸다.

이에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외쳤다.

“아니야, 여기 아니야! 더 가서 꺾어야지!”

“사거리 쪽도 좀비들 천지에요!”

뒤이어 왕복 2차선의 도로가 나타나고, 자욱한 안개가 좌우로 갈라지는 모습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시야가 확보된 가브리엘이 아니면 이렇게 액셀을 밟지 못할 것이다.

김희연은 쉬지 않고 백미러와 우측 골목을 연달아 살폈다.

난 손잡이를 꽉 쥐고 마른침을 삼키며 얘기했다.

“이렇게 깊게 들어갈 필요 없어. 아까 고가도로 밑에서 유턴해서 빠졌…….”

“쉿.”

김희연은 눈살을 찌푸리며 내 말을 끊었다.

핸들을 꽉 쥐고 있는 양손으로 힘줄이 솟아 있었다.

겁에 질려 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좀비 하나를 들이받은 뒤부터 눈빛이 달라졌다.

김희연은 계속해서 좀비들의 위치와 정면을 살피며 내게 얘기했다.

“사람들 출발하라고 해요.”

차에서는 핸들을 쥐고 있는 사람이 왕이라는 말이 있던가?

반박 대신 김희연이 시키는 대로 무전기를 들었다.

“완수야, 지금도 고가도로 끝에 좀비들 보여?”

-대부분 너희 따라갔어. 저 정도면 뚫고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길 열렸으면 범안대교까지 먼저 들어가.”

-너희는? 나올 수 있어?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문 열고 뛰어내리고 싶다.”

-……응? 왜, 희연이가 실수라도 했어?

“아니, 얘 완전 라이더야.”

김희연을 흘깃 쳐다보자, 쉴 새 없이 핸들을 돌리며 액셀과 브레이크를 연달아 밟고 있었다.

난 김희연을 쳐다보며 물었다.

“목적지는 있는 거지? 그냥 밟는 거 아니지?”

“대한민국 길이 다 거기서 거기죠. 계획도시는 대부분 격자로 길을 뚫었잖아요? 계속 오른쪽으로 돌면 고가도로가 보일 거예요.”

김희연의 말에 마른침을 삼키며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정리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대로로 돌아왔을 때 좀비들이 진을 치고 있으면 퇴로가 막힐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하고 운전하는 건지 모르겠다.

끼이이익!

김희연은 예고도 없이 핸들을 좌측으로 돌렸다.

우측으로 급격하게 상체가 기우는 바람에,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양손으로 대시보드를 잡았다.

부아아앙!!

끼이이익!!

좌측으로 꺾자마자 액셀을 냅다 밟더니, 이번엔 우측으로 핸들을 틀었다.

반사적으로 전신에 힘이 들어가고, 까드득 이가 갈렸다.

뒤이어 양옆으로 보이는 율하타임스퀘어와 이마트에브리데이.

이 앞은…… 길이 없을 텐데?

시야 확보가 가능한 김희연이 모를 턱이 없다.

설마.

난 목에 핏대를 세우며 외쳤다.

“브레이크, 브레이크!”

하지만 김희연은 더욱 거세게 액셀을 밟으며 외쳤다.

“꽉 잡아요!”

“안 돼!”

“돼!”

쾅!!

철로 된 펜스를 부수고 차량이 앞으로 기우는가 싶더니, 찰나의 부유감이 느껴졌다.

‘씹…….’

머릿속으로 육두문자를 떠올리며 정면을 직시했다.

시간이 엿가락처럼 늘어지며 증가한 동체 시력으로 인해 주변의 모든 것들이 세세하게 두 눈에 들어왔다.

차가 앞으로 10도는 기운 것 같다.

안개 너머로 보이는 수풀과 흙길.

‘닿…… 는…… 다.’

충격에 대비하기 위해.

아니, 살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손잡이부터 꽉 잡았다.

콰각!!

전신이 앞으로 쏠리는 충격과 함께 고막을 때리는 굉음이 차내로 들어왔다.

상체가 메트로놈처럼 앞뒤로 움직이고, 어질어질한 정신으로 인해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정면을 살폈다.

나뭇가지를 짓밟는 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려오고, 사방으로 흙이 흩날렸다.

김희연은 까드득 이를 갈며 와이퍼부터 켜더니, 빠르게 핸들을 조작하며 우측으로 달렸다.

난 넋이 나간 표정으로 김희연과 정면을 번갈아 쳐다봤다.

왜 이리 조마조마할까.

김희연은 가브리엘의 능력을 지녔고, 전완수에게 운전도 배웠다.

전완수에게 운전을 배워서 불안한 건가?

아니면…… 이런 신기에 가까운 솜씨로 운전을 하는 사람이 무면허라서?

내가 알던 김희연이 아니다.

김희연에게 이런 모습이 숨어 있을 줄이야.

부아아앙!

점차 빨라지는 엔진과 함께 내 심박 수도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뒤이어 드넓은 대로가 나타나자, 김희연은 양손으로 빠르게 핸들을 돌리며 좌측으로 드리프트를 시도했다.

끼이이익!! 끼긱!

이젠…… 잔소리할 기력도 없었다.

골이 울리고 머릿속이 멍해서, 흔들리는 차체에 몸을 맡겼다.

그 뒤로 대략 1㎞ 정도 달렸을까?

저 멀리 비상등을 켜고 우리를 기다리는 일행을 발견할 수 있었다.

김희연도 일행을 발견했는지, 무전기를 잡으며 외쳤다.

“좀비들 따라오고 있어요! 다들 빨리 출발해요!”

괜스레 김희연을 처음 만났던 순간이 떠올랐다.

위축되어 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건강을 되찾아서 다행이다.

난 엷은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김희연이 활력을 되찾아서 다행이라고.

다만, 앞으로 다시는 이 차를 타지 않겠다고.

* * *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앞서가던 중형 트럭에서 무전이 들어왔다.

-저 앞에 삼거리 들어가기 전에 잠깐 정차했다가 움직이자고.

이덕배의 말에 선두에 있던 버스의 후미등이 들어오고, 모든 차량이 줄줄이 정차했다.

난 중형차에서 내리자마자 오른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트림부터 했다.

속이 좋지 않았다.

뒤이어 이정우와 전완수, 설여원이 이곳으로 달려왔다.

그들은 중형차의 정면부를 살피더니, 하나같이 얼빠진 표정으로 내 얼굴을 쳐다봤다.

뒤이어 이정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재형이 네가 운전했어?”

또 내가 무리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난 격하게 손사래 치며 운전석에 있는 김희연을 가리켰다.

“……희연이가 이렇게 만들었다고?”

이정우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김희연을 쳐다봤다.

전완수는 옆구리에 차고 있던 카타나를 뽑으며 차량 정면부를 툭툭 건드렸다.

그러자 개조하면서 달아둔 철판과 프레임 뼈대에서 부러진 나뭇가지와 흙더미가 떨어졌다.

김희연은 쭈뼛거리며 차에서 내리더니, 엷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달려왔다.

뒤이어 하이파이브하자는 듯이 오른손을 내밀었다.

난 쓴웃음을 지으며 손뼉을 쳤다.

핸들만 잡으면 난폭해지는 사람이 있다더니, 김희연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반면에 주변의 일행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김희연과 내 얼굴을 번갈아 쳐다봤다.

설여원은 김희연의 곁으로 다가가더니,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재형이가 시킨 거야? 이렇게 운전하라고?”

“네? 아니요?”

“……이것도 재능이네.”

설여원은 싱겁게 웃으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전완수는 차량의 외관을 살피더니, 연신 탄성을 뱉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운전했는데 휠에 달린 칼날이 하나도 안 부러졌어. 나무를 긁은 자국도 없고.”

“다 완수 오빠 덕분이죠. 운전…… 생각보다 재밌는 것 같아요.”

“역시 수제자는 달라.”

까르륵거리는 두 사람을 보고 난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상황을 지켜보던 이정우가 속삭이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때, 희연이한테 계속 맡겨도 괜찮을 것 같아?”

“바지에 오줌 지릴 뻔했어요.”

“그 정도야?”

난 상체를 부르르 떨며 치를 떨었다.

뒤이어 이덕배와 최현이 이곳으로 다가왔다.

마침 최현이 왔으니, 난 그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얘기했다.

“현아, 바꾸자.”

“응? 뭐를.”

“자동차 말이야. 이제 곧 수성구 도착하잖아? 내가 버스에서 상황보고 움직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래.”

최현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며 중형차 앞으로 걸어갔다.

뒤이어 차량의 전면부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멧돼지라도 들이받았어?”

“어어, 대구에 멧돼지가 많더라.”

“…….”

최현은 가만히 턱을 매만지며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하긴, 안개가 퍼진지 석 달은 넘었으니 야생동물이 내려올 때도 됐지.”

믿는 건가?

농담으로 던진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니, 괜스레 죄책감이 들었다.

결국 이실직고했다.

김희연의 운전이 무서워서 같이 합승 못 하겠다고.

그러자 최현은 콧방귀를 뀌며 물었다.

“재형이 쫄?”

“어 쫄. 그러니 네가 타.”

최현은 어깨를 으쓱이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허허, 경험만큼 좋은 자극은 없을 것이다.

뒤이어 이덕배가 손뼉을 치며 얘기했다.

“자, 다들 집중해 봐.”

모두가 이덕배를 쳐다보자, 그는 손가락으로 뒤편을 가리키며 얘기했다.

“저 앞이 관계삼거리야.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빠져서 2㎞ 정도 가면 황금동이고. 어떻게, 바로 이동할 거야?”

“가는 길에 아파트나 빌딩 같은, 인구가 밀집된 지역은 없나요?”

이덕배를 쳐다보며 묻자, 그는 이마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삼거리 옆으로 아파트가 있긴 있는데, 거기 있는 사람들이 좀비로 변했더라도 도로로 나올 일은 없을 거야.”

“어떻게 확신해요?”

“길도 6에서 7차선이고 우측은 전부 산이랑 논밭이거든. 반대편으로 가면 모를까, 아무것도 없는 도로로 나오진 않겠지.”

“그럼 황금동까지 가는 길은 안전하다는 거죠?”

이덕배는 주머니에 넣어둔 지도를 꺼내어 다시 한번 확인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쭉 직진해서 무학네거리 지나고, 경북고등학교 보이면 그때부터 좀비들 좀 있겠네.”

“고등학교 근처는 아파트나 건물 많아요?”

“고등학교는 안전할 거야. 대로를 중심으로 봤을 때 우측에 있고, 그 주변은 전부 산이거든. 대로의 좌측으로 아파트 단지가 쭉 이어진 구조야.”

이덕배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며 일행을 쳐다봤다.

“다들 들었죠?”

“그럼 1차 목적지는 경북고등학교로?”

이정우의 물음에 난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상황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일단은 고등학교를 목적지로 하죠. 한슬기 씨가 편히 누울 공간이 필요합니다.”

“그럼 고등학교에 베이스캠프부터 만들고, 정찰은 도보로 하자.”

이정우의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뒤이어 맞은편에 있던 전완수가 입꼬리를 올리며 얘기했다.

“드디어 코스트코에서 가져온 텐트 설치해 보는 건가?”

세상이 망한 마당에, 캠핑의 미련을 못 버린 전완수였다.

* * *

관계삼거리를 지나 한적한 도로를 달렸다.

새하얀 안개 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풍경.

좀비들의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고, 차량에 달려드는 인영도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누군가가 도로를 정리한 것처럼 느껴졌다.

핸들을 잡은 전완수도 이를 이상하게 여겼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이상하게 조용한데? 이 근처에 아파트가 없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개미 새끼 하나 안 보이냐.”

전완수의 말에 뒤에 있는 이민정과 한슬기도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이에 태연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아파트 쪽에 시신이 많아서 그럴 수도 있어. 좀비들이 시체 먹으러 이동했다면…… 여긴 조용한 게 당연하지.”

“아무리 그래도 한두 마리는 보여야 정상인데…….”

전완수는 입맛을 다시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말은 태연하게 했지만, 나도 불안한 건 마찬가지였다.

좀비들이 이토록 깨끗한 건…… 대장 좀비가 지나간 자리의 특징이었다.

대장 좀비는 길거리의 모든 좀비를 수하로 만들어서 끌고 가기에, 그 자리에 남는 건 이름 모를 초목과 한때 사람이 살았던 흔적뿐이었다.

교내에 있을 때도 이와 비슷한 풍경을 경험한 적이 있기에, 경계심을 거둘 수 없었다.

전완수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30㎞로 속도를 줄였다.

근처에 시신을 뜯어먹는 좀비 무리가 있다면 소리를 듣고 달려들지도 모르기에, 안전을 기하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무학네거리를 지나 얼마나 갔을까.

전완수는 눈살을 찌푸리며 정면을 응시하더니, 서서히 브레이크를 밟아 차량을 세웠다.

이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왜, 앞에 뭐 있어?”

“한…… 600m 앞에 벽 같은 게 있는데?”

“벽?”

“망원경 줘봐.”

버스 바닥에 내려둔 가방을 열고 망원경을 꺼냈다.

전완수에게 망원경을 건네주자, 그는 정면을 유심히 살피며 입을 열었다.

“와…… 뭐야 저거.”

“뭔데 그래.”

“6차선을 바리케이드로 틀어막았는데?”

전완수의 말을 듣고 반사적으로 눈꼬리가 올라갔다.

바리케이드로 6차선을 틀어막았다고?

그게 가능해?

난 마른침을 삼키며 물었다.

“바리케이드에 생존자 보여? 높이는 얼마나 돼?”

“높이만 대략 4m는 되고, 사람은…… 4명 보여.”

사람이 있다는 말에 무전기를 들고 얘기했다.

“전방에 바리케이드 발견했습니다. 육안으로 파악된 생존자는 4명. 황금동에 생존자가 있는 것 같습니다.”

치지직- 치직- 삑.

-무장 상태는.

이정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완수를 쳐다보자, 그는 망원경으로 생존자들을 살피며 얘기했다.

“대부분 몽둥이 들고 있어. 장거리 무기는 없는 것 같아.”

전완수의 대답을 듣고 무전기에 얘기했다.

“장거리 무기는 없고, 대부분 근접무기 소지한 상태라고 합니다.”

-근방에 좀비는 없으니 길가에 차량 정차하고 도보로 이동하자. 나랑 재형이, 여원이, 덕배 아저씨만 따라와요.

이건…… 계획에 없는 상황이었다.

생존자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했지만, 6차선을 바리케이드로 틀어막을 정도라니?

게다가 4m 높이라면…… 생존자가 한두 명이 아닐 것이다.

쉘터일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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