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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110화 (110/373)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110화

바리케이드를 지나 차고지로 들어서는 버스와 승합차를 보고 수비팀은 말문이 막힌 표정을 지었다.

전쟁이라도 치르고 돌아온 차량처럼,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치이익-

버스의 문이 열리자, 박재형을 업은 이덕배와 뒤에서 받쳐주는 이현배가 먼저 내렸다.

수비팀은 박재형의 모습을 보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일전에 주먹으로 좀비들을 때려잡는 박재형의 모습이 그들의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런 박재형이 탈진이라니.

10대 아이들은 우르르 달려와 박재형의 상태를 살피며 재잘거렸다.

박재우는 입술을 벙긋거리더니, 뒤따라 내리는 전완수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야. 재형이 왜 저래.”

“조금만 쉬자. 얘기할 힘도 없다.”

뒤이어 승합차에서 내린 이정우가 전완수의 곁으로 다가왔다.

“너 괜찮아? 뒤에서 보니까 좀비 두 마리가 창문으로 들어가는 거 같던데.”

“괜찮아요. 덕배 아저씨랑 현배 아저씨가 막아줬어요.”

황덕록은 상황을 파악하고 재빨리 바리케이드부터 닫았다.

좀비들이 근방에 있다는 건, 건물 내부에 있던 좀비들이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는 뜻이었다.

이는 이곳에 있는 생존자들의 체취 때문일 수도 있고, 차량의 엔진 소리 때문일 수도 있다.

이유가 뭐든, 수비를 강화해야 한다는 걸 어렴풋이 느낀 것으로 보였다.

윤혜리는 차량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살피더니, 불안한 눈빛으로 이정우에게 물었다.

“오빠, 여원 언니랑 현이 오빠는요?”

“들어가서 얘기하자. 다들 안으로 들어가요! 밖에 오래 있으면 위험합니다.”

사람들은 이정우의 말에 따라 우르르 실내로 들어갔다.

이정우는 미지근한 물로 목부터 축이고, 3층에 둘러앉은 사람들을 쳐다봤다.

다들 불안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저런 사람들에게 박재형의 좀비화에 대한 정보는 차마 얘기할 수 없었다.

이정우는 훅, 하고 숨을 뱉으며 좀비화와 관련된 이야기만 빼고 혁신도시에서 겪은 일을 사람들에게 들려주었다.

다들 귀담아듣는 모습을 보이더니, 너나 할 것 없이 소파에 있는 박재형의 모습을 살폈다.

이민정은 물수건을 들고 와 박재형의 얼굴에 묻은 혈흔을 닦아주고,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얘기했다.

“재형 학생에겐…… 무슨 말로 감사를 표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3층으로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모두가 알고 있었다.

박재형이 생존자들을 위해 희생하고 있다는 것을.

자리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던 이예정은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저희도 돕고 싶어요. 재형 오빠한테도 그렇고, 다른 언니 오빠들한테도 그렇고, 이대로 도움만 받는 건 너무…… 죄송해요.”

이예정의 말에 10대 남학생 박성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얘기했다.

“저도 싸우겠습니다! 코스트코는 제가 앞장서서…… 아악!”

박성하는 놀란 고양이처럼 펄쩍 뛰며 옆에 있는 사람을 쳐다봤다.

최지혜가 박성하의 종아리를 꼬집었다.

최지혜는 이정우를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지금 저희 오빠는 여원 언니랑 같이 있는 거죠?”

“어.”

“하…… 그럼 다행이네요.”

설여원이 최현과 함께 있어서 다행이 아니라, 최현이 설여원과 함께 있어서 다행으로 여기는 최현의 친동생이었다.

뒤이어 의자에 앉아 있던 한슬기가 입을 열었다.

“다들 똑같은 마음일 거예요. 저희도 돕고 싶어요. 그리고…… 많이 늦었지만 다들 고마워요.”

너도나도 소리결 결인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전완수는 이런 훈훈한 분위기가 민망한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화제를 돌렸다.

“그건 그렇고 우리 식량은 얼마나 남았어요?”

“오늘 저녁까진 어떻게든 될 것 같아요.”

윤혜리가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하자, 구석에서 팔짱을 끼고 있던 최만석이 입을 열었다.

“코스트코는 그럼…… 다른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다는 거지? 총도 있고.”

최만석의 물음에 이정우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네, 파악한 숫자는 40명이 넘는데, 정확한 무장 상태는 모르겠습니다.”

“코스트코에 있으면 무기도 많으니, 쉽게 생각하면 안 될 거야.”

최만석은 뻐근한 목을 풀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이정우를 쳐다보며 얘기했다.

“이번엔 덕배랑 현배 대신 내가 가지. 나도 몸 좀 풀어야겠어.”

의기양양한 최만석과 달리, 이정우는 마른세수를 하며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이덕배가 이정우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정우 학생, 이번엔 계획 없어?”

“사실…… 이번엔 저도 모르겠습니다. 좀비보다 위험한 게 총 들고 있는 사람이니까요.”

“그래도 안개 속에서는 쉽게 발포하지 못할 텐데?”

“한 발입니다. 상황이 걷잡을 수 없게 흘러가는 건 단 한 발이에요.”

“…….”

“저희가 피격받는 것도 문제지만, 총성을 듣고 좀비들이 몰려들면 승산이 없어요. 재형이가 없는 상태에서 100마리가 넘는 좀비는 못 잡습니다.”

“그땐 우리도 쏴야지. 수류탄도 던지고, 뭐든 해야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느냐가 문제에요. 수류탄과 탄알은 한정적이고, 변종에 대비해서 아껴두는 게 좋습니다.”

이정우의 말에 다들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전완수는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긁적이더니, 이정우의 의견에 살을 덧붙였다.

“혁신도시는 아직 유동인구가 많지 않아서 변종이 없지만, 일전에 금호강 건너처럼 인구 밀집 지역은 분명 변종이 있을 거예요. 저도 정우 형 의견에 찬성이요.”

“아끼다 똥 되는데…….”

이현배는 입맛을 다시며 구시렁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정우는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게다가 시야 확보가 가능한 사람은 여원이랑 완수, 희연이뿐이에요. 지형은 상대가 더 유리하니 쉽지 않습니다.”

이정우의 설명이 끝나자, 튜닝숍 3층으로 침묵이 내려앉았다.

어떻게든 유리한 상황을 떠올리기 위해, 다들 고심에 잠긴 것으로 보였다.

그 순간, 박성하가 손가락을 튕기며 얘기했다.

“아! 밤에 움직이면 되겠네요!”

“……뭐 인마?”

이현배가 미간을 찌푸리며 쳐다보자, 박성하는 움찔거리며 어깨를 움츠렸다.

반면에 이정우는 박성하를 가리키며 얘기했다.

“아니에요. 성하 말이 맞을지도 몰라요.”

“정우 학생, 밤에 뭐가 보인다고 그래?”

“안 보이니까 괜찮은 거예요. 심지어 밤에는 2층까지 안개가 차오르잖아요.”

“…….”

“진영아, 코스트코가 2층까지 있다고 했지?”

정진영은 이마를 긁적이며 기억을 되짚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어, 2층까지 있었던 거로 기억해.”

이정우는 가만히 턱을 매만지며 생각을 정리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밤에 이동합니다.”

“계획이 뭐야.”

이덕배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이에 이정우는 한 차례 심호흡과 함께 입을 열었다.

“코스트코가 2층까지 있다면, 거기 있는 생존자들은 에스컬레이터 앞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했을 겁니다. 바리케이드와 안개 때문에 저희가 더 안 보일 거예요.”

“불빛은 있을 거 아니야. 거기도 촛불은 많을 텐데.”

“촛불이 밝아봐야 촛불이에요. 안개가 차면 오히려 촛불 때문에 더 안 보일 겁니다.”

“그게 무슨…….”

“사람 눈이 그래요. 어둠 속에 빛이 보이면 동공이 빛에 적응해서 주변은 더 어둡게 보입니다. 안개가 차오르면 더더욱 그렇죠.”

이는 이정우의 경험에서 나오는 얘기였다.

학생회관에 갇혀있을 당시, 결인들은 촛불을 최소한으로 사용했었다.

밤이 깊으면 오히려 촛불을 완전히 끄고, 동공이 어둠에 적응하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하는 게 생존에 훨씬 도움이 되고, 시야 확보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니까.

이를 이덕배도 모르는 게 아니지만, 불안한 마음에 반박하고 있었다.

안개 속은 좀비들의 세상이니까.

이정우는 일행의 얼굴을 살피더니, 이번 작전에 함께 할 사람들을 호명했다.

“저랑 완수, 진영이만 갑니다. 다른 분들은 수비 강화하고 되도록 바깥은 순찰하지 마세요.”

“아니야, 나도 가겠네.”

이덕배가 손을 들자, 여기저기서 손을 들기 시작했다.

이에 이정우는 엶은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마음만 받겠습니다. 최대한 들키지 않는 게 중요해요. 많이 움직이면 발각될 위험이 있습니다.”

“적은 40명 가까이 된다고 정우 학생이 그랬잖아. 그 많은 걸 어떻게 셋이 잡으려고.”

“혁신도시에 여원이와 현이도 있습니다.”

“그래 봐야 다섯이구먼.”

이덕배가 못마땅한 표정을 짓자, 이정우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압니다. 그 마음 누구보다 제가 잘 알아요. 여러분을 못 믿어서 그러는 게 아닙니다. 이게 가장 안전해서 그래요.”

이정우의 말에 이덕배는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학생회관에 있을 당시, 사과대의 살인귀들을 잡기 위한 작전에 이정우는 제외됐었다.

박재형이 반대한 탓이었다.

그때는 섭섭한 마음도 들고, 본인을 못 믿어서 그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막상 살인귀들을 잡으러 가는 입장이 되니, 박재형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은밀하게 움직이는 게 관건이기에, 많은 수의 사람을 데려갈 수 없었다.

반면에 최만석은 눈살을 찌푸리며 얘기했다.

“난…… 영 불안한데? 그것들 권총 들고 있다며. 학생들만 보내는 건 마음이 무거워.”

“제가 알기로 권총을 들고 있는 건 경관들뿐이에요. 많아 봐야 두세 명. 충분히 가능합니다.”

“난 어떻게 안 되겠는가? 항상 수비만 했더니 감이 무뎌지는 것 같아서 말이야. 덕배랑 현배는 좀 쉬게 하고, 나만 따라갈게.”

최만석의 말에 이정우는 깊은 공감을 표했다.

최만석은 예전 이정우와 똑같은 마음을 품고 있었다.

이에 이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그럼 만석 아저씨까지 넷이 들어가죠.”

이야기가 정리되고, 윤혜리와 김희연은 점심 준비에 들어갔다.

자리에 앉아있던 10대 학생들과 천호진, 이민정, 한슬기까지 두 팔 걷고 식사 준비를 도왔다.

이정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박재형의 상태를 살폈다.

그동안 못다 한 숙면을 취하는 것처럼, 박재형은 편안한 표정으로 깊은 잠을 청하고 있었다.

이정우는 박재형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얘기했다.

“쉬어. 이번 퀘스트는 우리한테 맡기고.”

* * *

서쪽 하늘 너머로 붉은 노을이 걸터앉을 무렵, 이정우는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뒤에 있는 일행을 쳐다봤다.

정진영과 전완수, 최만석도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이정우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준비를 마친 일행을 승합차로 안내한 뒤, 이정우는 수비팀에게 당부의 말을 남겼다.

“근방에 좀비들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다들 밖은 순찰하지 말고 되도록 내부에 있어.”

“걱정 말고 다녀오세요.”

박재우가 싱겁게 웃으며 대답하자, 이정우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승합차에 올랐다.

전완수가 핸들을 쥐고, 조수석에 이정우가 올랐다.

승합차에 오른 일행은 수비팀의 배웅을 받으며 혁신도시로 향했다.

전완수는 최대한 소음이 발생하지 않도록 30㎞로 속도를 조절했다.

이윽고 코스트코로 이어지는 지하도에 도달할 무렵, 상향등을 끄고 주변 지형을 살폈다.

“좀비는 없어요.”

전완수의 말에 따라 이정우는 무전기를 들며 설여원을 불렀다.

“여원아, 지금 어디야.”

치지직- 치직- 삑.

-저희 빌라 옥상입니다.

“생존자들 움직임은 없었지?”

-1시간 전에 약간의 소란은 있었는데, 밖으로 나온 사람은 없었어요.

“너희 주변에 좀비는 없어?”

-여긴 조용해요.

“내려와, 우리가 마중 나갈게.”

이정우의 말을 듣고 승합차에 있던 사람들은 각자의 무기를 들고 차에서 내렸다.

차량의 엔진소리나 상향등을 보고 코스트코에 있는 사람들이 인기척을 느낄지도 모르기에, 도보로 이동하는 걸 선택했다.

좌측으로 대로를 건너 빌라 단지에 다다르자, 골목에서 손전등을 점멸하는 불빛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완수는 불빛이 날아든 방향을 쳐다보더니, 오른손을 들고 가까이 붙으라고 손짓했다.

뒤이어 최현과 설여원이 다가왔다.

최만석은 가방에 넣어온 샌드위치를 꺼내 두 사람에게 건네주었다.

설여원과 최현은 군침을 흘리며 순식간에 샌드위치를 흡입했다.

온종일 아침 외에 아무것도 먹지 못했기에, 상당히 굶주린 것으로 보였다.

설여원은 입가에 묻은 부스러기를 닦으며 얘기했다.

“정문으로 들어가는 유리문에 테이프를 감아뒀어요. 열리지도 않을 것 같고, 억지로 열면 소리가 날 거예요.”

“주차장은.”

“사실상 주차장이 유일한 출입구에요.”

이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각자의 위치를 지정해 주었다.

설여원과 전완수가 선두, 이정우와 최현이 중앙, 정진영과 최만석이 후방을 담당하기로 했다.

선두를 담당한 설여원은 쇠뇌를 견착하며 뒤에 있는 일행에게 얘기했다.

“바닥 잘 보고 따라오세요. 발소리만 죽여도 안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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