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109화 (109/373)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109화

“재, 재형아.”

이정우는 말까지 더듬으며 박재형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박재형은 고개를 비틀며 아무런 대답도 없이 일행의 모습을 쳐다봤다.

마치 처음 보는 생명체를 발견한 아이가 호기심을 보이는 것처럼, 결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재형아 내 말 안 들려? 박재형!”

이정우가 호소에 가까운 목소리로 소리쳤지만, 박재형의 여전히 히죽히죽 웃을 뿐이었다.

이정우는 변종을 처음 마주했을 때와 같은 공포를 느꼈다.

철컥.

이정우는 소총을 견착하며 안전장치를 풀고, 떨리는 목소리로 경고했다.

“한 걸음만 더 가까이 오면 쏠 수밖에 없어. 제발 재형아. 방아쇠 당기게 만들지 마.”

“좀…… 비…….”

박재형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에, 전완수는 아랫입술을 파르르 떨며 외쳤다.

“정신 차려 인마! 우리가 좀비로 보여? 사람이잖아!”

“사…… 람?”

“그래 사람! 네 친구 씨X럼아!”

“사람…… 맛…… 있어?”

박재형의 상태는 이미 좀비나 다름없었다.

아니, 굳이 정하자면 변종에 가까웠다.

뚜벅.

박재형이 한 걸음 더 다가서자, 이정우는 까드득 이를 갈며 눈살을 찌푸렸다.

“제발 좀 멈추라고 새끼야!!”

퉁-!

그 순간, 옆에 있던 최현이 박재형의 허벅지에 쇠뇌를 발사했다.

이에 모든 일행이 놀란 눈으로 최현을 쳐다봤다.

전완수는 박재형의 허벅지와 최현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넋이 나간 표정을 지으며 읊조렸다.

“미, 미친 새끼야…….”

“미친 건 재형이고. 안 보여? 이 거리에서 쇠뇌를 쐈는데 쇠뇌 촉만 박혔어. 변종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고.”

“아니 도발하지 말라고 미친놈아! 다 죽고 싶어?”

흥분한 전완수와 달리, 박재형은 본인의 허벅지에 박힌 볼트를 쳐다보며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볼…… 트. 쇠…… 뇌.”

“맞아, 맞아 재형아!”

전완수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박재형은 앞에 있는 사람들을 살피며 읊조렸다.

“최…… 현. 엉뚱한…… 친구.”

최현은 들고 있던 쇠뇌를 내려놓으며 마른침을 삼켰다.

본인의 앞에 있는 존재가 변종인지, 혹은 친구인지, 판단이 서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박재형은 허벅지에 박힌 볼트를 뽑아서 유심히 쳐다보더니, 히죽거리며 얘기했다.

“헌팅…… 나이프.”

“아니야, 그거 헌팅 나이프 아니야! 볼트잖아 인마! 정신 좀 차려 제발!”

전완수가 눈살을 찌푸리며 외치자, 히죽거리던 박재형의 표정이 순식간에 돌변했다.

박재형은 살기로 가득한 표정을 짓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헌팅…… 나이프.”

“……어 맞아. 그거 헌팅 나이프야.”

전완수는 빛보다 빠르게 말을 바꿨다.

상황을 지켜보던 이덕배는 마른침을 삼키며 이정우에게 물었다.

“정우 학생, 저 친구 아무래도…… 뇌까지 퇴화한 거 같은데?”

“…….”

“인간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거 맞아?”

“가능할 겁니다. 분명 20분이 지나면 본래의 상태로 돌아온다고 했어요. 지금은…… 좀비의 본능에 사로잡힌 것 같습니다.”

“그럼 좀비나 마찬가지라는 건데, 왜 우릴 공격하지 않는 거지?”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만…… 재형이가 어떻게든 억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정우도 확신은 없지만, 박재형의 행동은 다른 좀비들과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박재형은 10초 간격으로 오한을 느낀 사람처럼 신체의 일부를 떨고 있었다.

지금껏 이정우가 경험한 어떠한 좀비도 저런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무언가가 행동을 억제하는 것처럼, 정전기를 느끼고 움찔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뒤이어 칠흑 같던 안구가 서서히 본래의 색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박재형은 전신을 파르르 떨며 그 자리에 엎어졌다.

이마와 목에 굵은 핏줄이 솟아나고 안색은 창백하게 변했다.

그와 동시에 숨넘어가는 소리를 뱉으며 고통을 호소하더니, 경련을 일으켰다.

“왜 저래. 저 친구 왜 저래!”

이덕배의 물음에 이정우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도 처음 보니까.

오래 지나지 않아 박재형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축 늘어지더니, 더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위축되어 있던 일행은 조심스레 박재형의 곁으로 다가갔다.

“야, 재형아, 박재형!”

전완수가 박재형의 뺨을 때리며 애타게 그의 이름을 불렀지만, 박재형은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정우는 박재형의 손목을 쥐고 맥을 짚더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얘기했다.

“기절한 것 같아.”

“좀비화 풀릴 때 기절한다는 말은 없었잖아요.”

“우리를 못 알아본다는 말도 없었지. 급격하게 증가했던 신체 능력이 본래 상태로 돌아왔으니 축적된 피로가 한 번에 몰려왔을 거야.”

“…….”

“그리고 좀비화 풀린 뒤에 페널티도 있잖아. 본래 스탯의 반감.”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사람이 갑자기…….”

“그래, 사람이니까. 현실이니까. 게임 캐릭터처럼 아무 이상 없는 게 이상한 거지.”

전완수는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박재형의 상태를 살폈다.

이정우도 씁쓸한 표정을 짓더니, 한숨을 내쉬며 얘기했다.

“좀비화가 풀리면서…… 고통이 어마어마했을 거야.”

치지직- 치직- 삑.

-정우 오빠! 재형아! 다들 괜찮아요? 왜 아무도 대답이 없어요?

이정우는 무전기를 손에 쥐며 얘기했다.

“미안하다 여원아. 연락할 상황이 아니었어.”

-다들 괜찮은 거 맞죠?

설여원의 물음에 이정우는 박재형의 모습을 쳐다봤다.

뒤이어 한숨을 내쉬며 앞머리를 쓸어넘기더니, 짧은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다들 괜찮아. 다친 사람도 없고.”

-그럼 저 좀 어떻게 해주세요. 도저히 혼자는 못 내려가겠어요.

“……금방 갈게.”

* * *

옥상에 있던 일행은 처참하기 짝이 없는 대로의 상황을 살피며 지하도로 이동했다.

사방이 좀비들의 시신이었다.

주먹으로 안면을 깨부순 정도가 아니라, 사지가 찢기고 살점이 너덜거리는 시신이 많았다.

잔혹함이 인간의 수준이 아니었다.

마치 들짐승이 시신을 훼손한 것처럼 보일 정도.

전완수는 좌우를 살피며 읊조렸다.

“못해도 150마리는 될 거 같은데. 이걸 20분 만에…….”

“20분도 안 걸렸지.”

최현의 덤덤한 대답에 모든 사람이 함묵하는 모습을 보였다.

무시무시한 파급력.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는 파급력이었다.

이덕배는 등에 업은 박재형의 얼굴을 살피며 얘기했다.

“이렇게 순하게 생겨서 어떻게 이런…….”

“형님, 재형 학생이 이런 게 아니잖아요. 스킬인가 뭔가, 그것 때문이지.”

이덕배는 입맛을 다시며 씁쓸한 표정을 짓더니, 앞서가는 이정우를 불렀다.

“정우 학생, 앞으로 이 친구 스킬인가 뭔가, 그거 못 쓰게 해야겠지?”

“현 상황만 봐선 두 번 다시 쓰면 안 되는 스킬이 맞죠.”

“다른 상황이면 써도 된다는 거야?”

“재형이가 그랬습니다. 스탯에 정신력이 있다고. 어쩌면 정신력 스탯을 높이면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어요.”

“그래도 영…… 불안한데.”

이덕배가 구시렁거리는 사이, 별동대는 지하도에 도달했다.

이정우는 가방에 넣어둔 20m 밧줄 2개를 연결해서 버스의 위로 올라갔다.

고속도로 방음벽 너머로 밧줄을 던지고, 설여원을 호출했다.

뒤이어 설여원이 모습을 보이고, 그녀는 밧줄을 쥐고 방음벽을 넘었다.

줄을 잡고 올라갈 때와 달리, 내려올 때는 방음벽의 홈을 잡고 아등바등하며 힘겹게 내려왔다.

혹여나 떨어질까 봐, 밑에서 이정우와 전완수, 최현이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지켜봤다.

다행히 설여원은 안전하게 버스에 착지했고, 내려오자마자 박재형의 안부부터 물었다.

곧 이덕배의 등에 업힌 박재형은 보고 두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일행의 얼굴을 돌아보며 물었다.

“재형이 왜 저래요? 어디 다쳤어요?”

“지쳐서 그래. 잠깐 기절했어.”

“아니…… 쟤가 기절할 애가 아닌데.”

“설명은 나중에 할게.”

이정우가 쓴웃음을 지으며 얘기하자, 눈치껏 상황을 파악한 설여원은 반박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덕배와 이현배는 버스 바닥에 박재형을 눕히고, 전완수는 버스의 상태부터 확인했다.

“다행히 방전은 안 됐고, 크게 문제없는 거 같아요. 하지만 철판이…… 하.”

전완수는 버스의 측면을 살피며 고개를 저었다.

철판이 휘고, 부러지고, 칼날에 박힌 좀비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박재형이 얼마나 처절하게 좀비들을 저지했는데,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반면에 최현은 홀로그램을 살피며 이마를 긁적이더니, 이정우를 쳐다보며 얘기했다.

“형, 우리 퀘스트는 어떡해요?”

“몇 시간 남았어.”

“30시간 남았어요.”

이정우는 가만히 턱을 매만지더니, 머리를 긁적이며 설여원과 전완수에게 물었다.

“두 사람, 혹시 코스트코에서 생존자들 움직임은 못 봤어?”

“형, 우리가 있던 위치에서는 코스트코 입구 안 보여요.”

전완수의 말에 이정우는 설여원을 쳐다보며 물었다.

“여원아, 네가 있던 곳에서는 보였어?”

“네, 정문이랑 주차장 출입로까지 다 보였어요.”

“혹시 생존자들 빠져나오는 건 못 봤어?”

“저는…… 못 본 거 같아요. 좀비들 때문에 못 봤을지도 모르지만.”

설여원이 자신 없는 목소리로 대답하자, 홀로그램을 보고 있던 최현이 어깨를 으쓱이며 얘기했다.

“그럼 못 나왔겠네요. 좀비들이 달려온 방향이 코스트코 주차장 쪽이었으니, 무서워서 못 나왔을 거예요.”

이정우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일단 돌아가자. 돌아가서 정비하고 다시 오자.”

“그사이에 경관들이 나오면 어쩌려고요?”

설여원의 물음에 이정우는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전완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무전기 하나만 주세요. 제가 저쪽 빌라에서 망보고 있을게요.”

“안 돼. 네가 없으면 버스는 누가 옮겨.”

“아…… 맞네.”

그러자 설여원이 슬쩍 손을 들며 얘기했다.

“제가 망보고 있을게요.”

“괜찮겠어?”

이정우의 물음에 설여원은 싱겁게 웃으며 얘기했다.

“계속 망보는 게 일이었으니, 연장 근무한다고 생각할게요.”

“제가 같이 있을게요.”

최현은 홀로그램을 닫으며 설여원의 앞으로 걸어왔다.

설여원이 의외라는 표정을 짓자, 최현은 대수롭지 않게 얘기했다.

“혼자보단 둘이 안전하겠지.”

이정우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잠시 고민하더니, 다른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그럼 둘이 수고 좀 해줘. 만약 좀비들이 나타나면 싸우지 말고 무전기로…….”

“걱정하지 마세요. 저쪽 빌라에 한슬기 씨 숨어있던 빌라는 안전해요.”

최현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얘기하자, 이정우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전완수를 쳐다봤다.

“완수야, 버스 타고 승합차 세워둔 곳으로 가자.”

* * *

튜닝숍에 있던 박재우와 황덕록은 오지 않는 일행을 오매불망 기다리며 담벼락 순찰을 돌았다.

“삼촌!”

뒤이어 5살 정도로 보이는 여아가 식빵을 들고 그들의 곁으로 다가왔다.

박재우가 엷은 미소를 지으며 쳐다보자, 아이는 들고 있던 식빵을 한 장씩 건네며 배시시 웃었다.

“삼촌들 먹으라고 이모가 줬어요!”

“아이고, 고마워라. 너는 안 먹어?”

“난 괜찮아!”

여아는 수줍은 듯이 양손을 마주 잡고 방긋방긋 웃었다.

황덕록은 아이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더니, 식빵의 반을 잘라 여아에게 건네주며 얘기했다.

“자, 여기서 조용히 먹고 들어가. 다른 친구들한테 얘기하지 말고.”

“괜찮아!”

말은 괜찮다고 하지만, 시선은 식빵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이에 황덕록은 여아의 손에 직접 식빵을 얹어주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여아는 황덕록의 눈치를 보더니, 해맑게 웃으며 식빵을 먹었다.

박재우는 그 모습을 보고 콧방귀를 뀌며 얘기했다.

“하여튼…… 이 새낀 덩치랑 안 어울려.”

“너는 덩치랑 잘 어울려서 그리 속이 좁나.”

“식빵 줄라고 반 나눈 거 안 보이나? 이 새끼 주고 싶은 마음도 쏙 사라지네.”

“아, 미안. 좀만 도.”

식량이 얼마 남지 않은 탓에, 빵 한 조각도 나눠 먹고 있었다.

부우우웅-

오래 지나지 않아 버스의 엔진 소리가 멀찍이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에 반대편을 확인하고 있던 천호진과 윤혜리, 김희연이 쇠뇌를 들고 다가왔다.

천호진은 괜히 호들갑을 떨며 물었다.

“형들, 방금 버스 소리 안 들렸어요?”

“너도 들었나? 왔나 보네.”

박재우는 무전기를 들고 일행을 호출했다.

“아아, 들리세요? 정우 형? 완수?”

치지직- 치직- 삑.

-5분 뒤에 열어. 근방에 좀비들 좀 정리하고 들어갈게.

전완수의 목소리였다.

0